미드나잇 인 파리
창을 열면 얇게 비치는 커튼 사이로 불어오는 향긋한 바람이 따스한 봄의 시작을 알리는 때가 되면, 사람들은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퐁피두 분수 광장의 노천카페에 앉아 사라 맥켄지(Sarah McKenzie)의 노래를 듣는 꿈을 꾼다.
지긋지긋한 사무실 책상의 컴퓨터를 꺼버리고 노트북 하나 옆에 끼고 훌훌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럽여행이란 꿈과 같은 일생의 대로망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자들의 천국인 유럽에서도 프랑스는 정치, 경제, 교통, 예술, 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꽃과 빛의 도시이자 명품들의 도시인 파리가 있기에 낭만을 꿈꾸는 여행객들에게는 가고 싶은 여행지 제 1순위로 손꼽히는 곳이다.
파리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파리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영화중 한 편인 [미드나잇 인 파리(우디 앨런 감독. 2011)]에서는 시드니 베쳇(Sidney Bechet)의 ‘Si Tu Vois Ma Mere’ 연주와 함께 그림 같은 파리의 골목들, 노천카페, 세느강변의 수양버들, 비 내리는 파리의 거리, 반짝이는 밤의 에펠탑이 사진 속 풍경처럼 아름답게 스쳐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 ‘길’은 약혼녀와 다투고 혼자 파리의 밤거리를 걷다가 마법 같은 시간 여행 속으로 들어간다. 자신이 가장 동경하던 시대인 1920년의 파리에 도착한 길은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 친구가 되고, 그들의 뮤즈였던 매혹적인 여성 아드리아나와 사랑에 빠진다. 길과 아드리아나가 만날 때마다 흘러나오는 루시엔느 브와이에(Lucienne Boyer)의 ‘Parlez-Moi D’amour’는 사랑에 빠진 파리의 밤을 더욱 로맨틱하게 보이게 해주었다.
길은 19세기를 동경하는 아드리아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곳에 머물면 그곳이 현재가 되겠지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게 될 거에요. 현재란 그런거에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란 원래 그런거니까요.” 길에게 1920년의 파리는 누구나 사랑에 빠지는 ‘날마다 축제인 도시’이고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곳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드리아나에게 했던 말처럼, 길이 동경했던 황금시대와 사랑이란 현실에서 감당해야하는 팍팍하고 무거운 것들을 잠시 밀어내기 위해 빠져들었던 환상일 뿐이었다.
나의 오늘은 당신들의 내일보다 아름답다
사람들은 늘 내게 없는 것을 갖고 싶어 하고 내가 아닌 누군가를 동경하고 여기가 아닌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에게 파리는 사랑하기에 가장 적당한 곳이다. 파리의 골목길을 흐르는 물줄기와 강변을 따라 흐드러진 꽃들과 벼룩시장의 오래된 레코드판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은 마지막 정착할 곳을 찾는 유목민처럼 자신만의 황금시대와 새롭게 설레는 사랑을 좇는다.
하지만 때로는 어떤 사람에게, 때로는 명품 가방이, 때로는 자신이 걷고 있는 풍경이 너무 익숙해져 버리고 나면, 자신이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그래서 아프게 했던 무언가를 채 잊기도 전에 모든 것들로부터 또 다시 떠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에게 현재란 늘 불만스러운 것이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창을 열면 커튼 틈새로 불어오는 봄바람에서 머나먼 이국의 향기가 문득 느껴질 때면 모네의 ‘수련’과 세느 강변에서 연주하는 시드니 베쳇의 색소폰 소리를 떠올린다. 그 흔한 해외여행과 명품 가방 하나도 갖지 못한 나의 오늘이 만족스러운 것은 향이 진한 커피 한잔과 눈부시게 번지는 햇살 속에 틔어난 꽃망울과 함께 봄이 이제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누구처럼도 아닌, 누구보다도 아닌, 내가 마주하는 이 봄은 나의 현재이고 나의 꿈은 늘 싱싱한 햇살처럼 살아 숨 쉰다. 파리에 가지 않아도 맛있는 바게트 샌드위치를 만들 줄 알고, 낡은 청바지를 뜯고 기워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오튀 쿠튀르를 만드는 사람. 사랑엔 진지하고 이별엔 더욱 쿨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가장 멋진 나에게 오늘만큼은 근사한 사진이 담긴 엽서 한 장과 멋진 음악을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