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을 이전과 이후로 나눈, 음악방송계 인종차별 장벽을 부순 장본인
1983년 미국 LA, 모타운 레코드 설립 25주년 기념행사.
노래 하나가 흘러나오고 퍼포먼스가 시작되자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기립했고 탄성을 질렀다. 처음 보는 춤이자 발동작이었다. 특히 앞으로 발걸음을 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뒤로 미끄러지듯 흐르는 걸음걸이는 압권이었다. '빌리 진'(Billie Jean), 마이클 잭슨의 시그니처였다.
마이클 잭슨이 '팝의 황제'로 등극하는 첫 순간이었다. 어떻게 저것이 가능할까, 객석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놀라움이자 혁신이었다. 이 ‘something new’가 그 유명한 ‘문 워크(Moon Walk)’다. ‘빌리 진’을 부르면서 선보인 이 춤은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누구나 그를 따라(하고 싶어) 했다. 이 혁신적인 안무 동작은 그를 세계의 슈퍼스타로 만들었다. 고작 춤 하나, 안무 하나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었다. 문 워크는 대중음악을 넘어 대중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됐다. 마이클 잭슨은 단순하게 시대를 앞서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뉴욕타임스는 "문화 혁명"이라고 표현했으며 플레이빌은 "천재의 탄생"이라고 극찬했다. 이 춤을 보기 위해 음악 채널들은 모타운 25주년 방영권을 따고자 열띤 경쟁을 펼쳤고, 더 나아가 방송사 내부의 인종차별적 조항을 없앴다. 마이클 잭슨의 힘이었다.
[Click] Michael Jackson - Billie Jean [Live 1983]
‘빌리 진’이 포함된 앨범 《스릴러(Thriller)》는 또 다른 혁신을 불러왔다. 로큰롤과 백인 중심의 편성으로 차별을 일삼던 MTV는 이 앨범으로 무릎을 꿇었다. 여기에는 음반사인 CBS의 강공 정책이 한몫했다. 당시 MTV 방영 가수 대다수는 CBS 소속이었고, CBS는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를 틀지 않을 경우 다른 가수들 뮤직비디오도 (MTV에서) 빼고 흑인 가수라는 이유로 방송을 불허한다는 MTV 입장을 언론에 폭로하겠다고 통지했다. 백인 일색의 MTV는 마이클 잭슨을 필두로 문호를 개방했다. 물론, 상업적 판단이 우선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마이클 잭슨 덕분에 흑인 뮤지션과 흑인 음악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MTV를 변화시키자 연쇄 파장이 일어났다. 차별을 일삼던 수많은 라디오와 케이블 방송사도 방침을 바꿨다. 인종차별을 깬 혁신이었다.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는 흑인 뮤지션들은 마이클 잭슨의 후광 효과를 본 셈이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현대 음악의 역사는 마이클 잭슨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듣는 음악은 보는 음악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했다. 바브 슬레이드 Kiss FM 뉴스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마이클 이후 흑인 가수들은 마이클 덕분에 MTV에 자연스럽게 뮤직비디오가 나갈 수 있었다. 음악적으로 흑백 인종의 벽을 완벽하게 허물어 흑인음악의 위상을 높이고 각종 인종차별 장벽을 허문 것 외에도 또 하나의 중요한 업적이 있다. 뮤직비디오와 화려한 춤으로, 단순히 귀로만 듣고 만족하는 '듣는 음악'의 시대를 넘어 눈으로도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울러 좋은 음악을 계속 접하고 만날 수 있는 변곡점에 마이클 잭슨이 있었다. 그의 공연은 다른 가수들의 것과 또 달랐다. 공연에 처음으로 뮤지컬 개념을 도입하고 메이저 가수로서 처음 아시아 국가에서 투어 공연을 했다. 공연과 음악을 위해 새로운 장비를 들여와 다양한 시도를 마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스릴러》의 성공은 마이클 잭슨의 삶에도 하나의 분기점이 됐다. 그는 이후 노래를 통해 인권, 환경, 평화 등 진보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데도 앞장섰다. 그가 지은 詩 「Planet Earth」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詩의 일부는 이렇다.
Planet Earth, my home, my place (...)
지구여, 나의 고향, 나의 공간
You are my sweetheart gentle and blue
당신은 온화하고도 푸른 나의 연인
Do you care, have you a part
당신은 걱정이 있나요, 그 일부라도 가지고 있나요
In the deepest emotions of my own heart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서
Tender with breezes caressing and whole
산들바람의 부드러움으로, 사랑의 몸짓으로, 모든 것으로
Alive with music, haunting my soul
나를 감싸 안아 생생한 음악이 나의 영혼을 일깨웁니다
Planet Earth, gentle and blue
온화하고도 푸른 지구여
With all my heart, I Love You
나의 온 마음을 담아 당신을 사랑합니다
4집 앨범 《Dangerous》의 소책자에 실렸고, 본의 아니게 유작이 된 앨범 《This is it》에 마이클 잭슨이 육성으로 낭독한 이 詩가 흘러나온다. 그가 살아 있다면, 이 무슨 손발 오글거리는 고백이냐고 지청구를 늘어놓았을지도 모르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다. 온화하고 푸른 지구를 향한 사랑이 있었기에 그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다. 온갖 오해와 편견, 수모를 감수한 것도 그 사랑 덕분이 아니었을까.
6월 25일,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난 날(2009년)이다. 빌보드는 그를 “음악계의 제일 위대한 혁신가이자 제일 사랑받는 퍼포머”라면서 “아마 어떤 뮤지션도 음악 산업에 마이클 잭슨보다 커다란 임팩트를 남기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남긴 혁신의 유산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 뮤지션을 기억하기 위해 노래를 듣는 것도 좋겠다.
1980~90년대의 낭만을 꺼내보는 것도 좋겠고, 그가 외롭고 슬픈 누군가를 위해 건넸던 “You Are Not Alone”을 그에게 돌려주어도 좋을 것 같다. 서울혁신파크 등 사회혁신을 꾀하는 어딘가에 ‘혁신가들의 초상’이 걸린다면 나를 마이클 잭슨의 초상을 추천하겠다. 그의 노래도 함께. 그래서 어느 해 6월 25일 전후, 혁신이 싹트는 어디에서든 마이클 잭슨이 흘러나오면 좋겠다. 기왕이면 그의 춤도 홀로그램 등을 통해 만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누군가는 그것을 통해 또 다른 혁신의 영감을 받을 테니까.
마이클은 한국에 두 번 찾아와 공연을 했다. 두 번째 그가 찾아왔을 때가 1999년 6월 25일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도 있었고, 남북 평화를 바라는 마음에 그날을 공연 날짜로 잡았다고 했다. 그리고 남북이 평화통일을 하는 날, 다시 찾아와 공연을 하겠다고 말했다. 10년 후 그는 죽었고, 영영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됐다. 남북이 평화 무드를 타는 지금,
나는 여전히 마이클 잭슨이 그립다.
온화하고 푸른 지구를 사랑했던 음유시인이자 혁신가를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