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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gsun Nov 03. 2020

삼수갑산을 영어로 하면... 팀북투?  

우리말에 '내가 삼수갑산(三水甲山)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라고 하면 '어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의 의미로 쓰인다. 그도 그럴것이 삼수갑산은 함경도 개마고원에 위치한 삼수라는 지명과 갑산이라는 지명을 결합한 말로 산세가 험하고 추워서 옛날에 큰죄인의 귀양지로 인기(?)가 높았다. 


시인 김소월 1934년에 발표한 <삼수갑산>이라는 시에서 '삼수갑산 날 가두었네 불귀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라며 절망과 고립감을 노래했다. 


서양에서는 우리말 삼수갑산에 비견할 오지로 팀북투(Timbuktu)를 들 수 있다. 서아프리카 말리의 북부에 위치한 도시 팀북투(Timbuktu)는 유럽인들에게는 '세상의 끝'을 의미했다. 오죽하면 옥스포드 사전에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오지(The most distant place imaginable)'라고 표기되어 있겠는가. 


시인 DH Lawrence는 1930년에 'And the world it didn't give a hoot If his blood was British or Timbuctoot'이라고 썼다고 한다. (그 사람이 영국인이던 팀북투인이던 상관없어). 이후로도 서양에서 팀북투는 미지의 세계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어 스웨덴의 유명 래퍼 가수 Timbuktu도 등장했으며, 오늘날에도 영여로 'from here to Timbuktu'라고 하면 너무 멀어서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곳을 표현할 때 쓰이는 표현이다. 일례로 아래처럼 Timbuktu는 우리말에서 '안드로메다'와 동급으로 쓰이기도 한다. 


A: You never come around my house anymore

B: That's because you live all the way out in Timbuku


Timbuktu는 미국의 오랜 동요 'From Kalamazoo to Timbuktu'라는 곡으로 미국인에게 친숙한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간혹 엉뚱한 장소라는 의미에서 팀북투라는 단어가 쓰이기도 한다. 


피키블라인더스에서 알피가 하티에게 농을 친다. 팀북투 못 가봤냐...


서아프리카 사막의 고도 팀북투는 어쩌다 유럽인들에게 '세상의 끝'과 동의어가 되었는가? 

12세기 부터 수세기 동안 팀북투는 유럽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하라사막을 건너서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무역도시였다. 역으로 서아프리카(가나, 코트디부아르)에서 보면 팀북투는 니제르 강을 통해 교역할 수 있는 최북단의 도시이고, 여기서부터 북아프리카 또는 중동과의 캬라반을 이용한 사막무역이 시작된다. 


팀북투는 단지 강을 이용한 무역에서 낙타를 이용한 무역으로 환적하기 위한 도시가 아니라, 서아프리카의 지식의 중심지로서 서아프리카의 대학과 학자와 문서들이 모이고 지식이 재생산되는 곳이기도 했다. 

University of Timbuktu

고대 도시 팀북투는 그외에도 세상이 원하는 두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금과 소금 이었다. 유럽인은 금을 원했고, 아프리카인은 돌소금을 원했다. 


14세기에 말리의 왕 만사무사는 이슬람 교도의 의무인 성지순례를 위해 메카를 방문하는 길에 유럽인들과 아랍인들에게 팀북투의 엄청난 금을 보유하고 있는지 맛배기를 보여줬다. 그의 성지순례 행렬이 지나가면 너무 많은 금을 뿌려서 해당 지역은 이후 10년간 금가격이 폭락하는 사태를 맞았다고 한다. 이후로 팀북투는 황금의 도시(엘도라도)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15세기 스페인의 무어인 레오 아프리카누스(Leo Africanus)가 쓴 '아프리카에 대한 기록(Description of Africa)'라는 책 역시 만사무사와 팀북투에 관한 묘사는 유럽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Rene Caillie가 그린 팀북투의 전경

이후, 팀북투는 유럽인들에게 도달할 수 없는 미지의 황금도시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팀북투에 가장 먼저 도달하고자 하는 유럽인들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파리의 지질학회(Societe de Geographie)는 팀북투에 가장 먼저 도달해서 소식을 전하는 비이슬람교도(Non-muslim)에게 1만 프랑의 상금을 걸었는데, 1828년에 프랑스의 탐험가인 Rene Caillie가 수상자가 되었다. 그는 이슬람 무역상으로 변장하고 도시로 숨어들었는데, 그의 경쟁자였던 스코트랜드의 Alexander Gorden Laing은 그보다 2년전에 팀북투에 도착했으나, 귀환하는 길에 의문의 살해를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Rene Caillie가 1828년에 팀북투에 도달했을 때의 팀북투는 이미 쇠락해서 4백년전에 Leo Africanus가 묘사한 황금의 도시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었다. Caillie는 '매우 실망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살고 있었다'고 묘사했을 정도이다. '도대체 황금도시 팀북투에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가?'


팀북투의 쇠퇴는 해상무역의 발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해상무역은 두가지 측면에서 팀북투의 무역도시로서의 입지를 약화시켰는데, 첫번째는 굳이 유럽인/중동인들이 위험한 사하라 사막을 통과하지 않아도 바다를 통한 동서양의 무역로가 열렸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유럽인들이 남미에서 금광과 은광을 확보하면서 서아프리카 내륙의 금에 관심을 잃었다는 점이다. 유럽인들이 해상무역 항로를 개척한 15세기 16세기를 거치면서 아프리카의 내륙도시 팀북투는 쇠락하고, 아프리카는 해안을 따라서 유럽인들의 배가 머물다가는 기착지 역할과 노예를 잡아들이는 노예집결지 역할을 하는 해안도시들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Rene Caillie가 1828년에 팀북투를 방문한 이후로, 유럽인들의 머릿속에서 팀북투에 대한 호기심은 사라지고, 팀북투는 관용어구로만 살아남게 되었다. 삼수갑산 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2012년에 팀북투가 서양의 뉴스에 다시 등장하는 일이 생겼는데, 투아렉족이 말리의 도시  팀북투를 점령하고 유적과 고문서를 파괴하고 있다는 외신이 쏟아지면서, 'Timbuktu is a real place!!'라며 소스라지게 놀라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다음에 삼수갑산이라는 표현을 영어로 쓸일이 있으면 Timbuktu를 쓸 수 있을까?  비슷하지만, 귀양지는 아니고, Timbuktu는 멀지만 도달할 수 없는 미지의 황금도시라는 느낌을 이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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