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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Sep 12. 2022

공부란 무엇인가

지겨운 공부가 놀이가 된다면




김영민 작가의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를 2022년 2월에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흠뻑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면서도 즐거웠다. 시간 내어 다시 한번 읽자는 다짐은 지키지 못했지만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을 연이어 주문했다. 주문한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음에 만족했다. 시간이 지나 문득 작가의 다른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던 찰나 김영민 작가의 『공부란 무엇인가』 강연 소식이 들려왔다.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마산지혜의바다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학들과 안부를 전하고 앞자리에 앉아 강연을 기다렸다. "수동적인 학생들은 대개 앞에 앉기를 꺼리고 강의자로부터 한껏 떨어져 않으려 든다.(124p)" 『공부란 무엇인가』에 나온 청중자의 자세를 배웠으니 실천은 기본이다. 우리가 앞자리에 앉은 이유다. 우린 배움을 위해 기꺼이 강연을 즐기러 온 능동적인 청중이니까.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세대 불문하고 가지고 있는 질문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을 때 충만한 것은 거품 같은 공허뿐이다. 생각할 수 있는 근력이 없기에,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대신해 줄 강력한 타자를 갈구한다. 그리하여 '진리'를 설파하는 사이비 지식인이나 종교 지도자나 독재자가 번성하게 된다. (중략) 이 사회를 무의미한 진창으로부터 건져낼 청사진이 부재한 시기에, 어떤 공부도 오늘날 우리가 처한 지옥을 순식간에 천국으로 바꾸어주지는 않겠지만, 탁월함이라는 별빛을 바라볼 수 있게는 해줄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더 나은 것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고, 나아가 보다 나은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할 것이다. 그러한 믿음 속에서야 비로소 비방과 조소를 넘어서는 논리와 수사학의 힘을 빌려 공적 영역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읽고 쓰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가능한 인간의 변화에 대해 믿게 될 것이다."(14p)



공부해야 진창인 세상에서 구원받을 수 있고 사이비 지식인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무지하기에 저지르는 수많은 과오와 몰라서 당하는 일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자신의 무지를 모른 체 저지른 일들도 많지 않은가? 그래서 배워야 하는데 배움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공부가 쉽다면 몰라서 당한 일들이 줄어들겠지만 애쓰지 않으면 배움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안타깝지만 막상 해야 할 공부가 재미가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작가는 공부가 왜 재미가 없는지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왜 공부가 재미 없어졌는가? 목적이 되거나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목적이 되는 건 재미가 없다. 목적은 그 자체로는 좋지 않다. 인간은 한갓 수단이 되는 것은 싫어한다. 그렇기에 목적과 수단 관계는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 목적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그 순간만 좋고 다음엔 공허가 찾아온다. "다음에 뭐 하지?"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허망해진다. 그뿐만 아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자괴감에 빠진다.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목표를 두지 않고 과정을 즐기게 되면 기쁨은 오래간다. 연애할 때도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순간이 즐겁기에 행복하다. 함께 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좋아야 오래가듯이 공부할 때도 과정이 즐거워야 오래간다.



어느 유명한 가수에게 물었다. 왜 노래하는가 물었을 때 "그냥 살기만 할 수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가 무엇인가?" 물었을 때 거창한 대답을 하는 건 사기다. 그냥 살아야 하니까 사는 거다. 무엇을 위해 산다는 것은 많은 우연에 의해서 결정된다. 결혼은 운명이 아니라 어쩌다 만난 몇 사람 중 마음에 든 사람과 결혼한 것이다. 이처럼 사는 게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우연으로 이뤄졌다. 그렇기에 거창한 목적을 두고 산다면 삶이 힘겨워진다. 목적과 수단으로 살려면 삶이 지치고 재미가 없다. 과정 자체를 즐기고 살아야 행복하다. 즐기고 사는 것만으로 인생은 짧다.



공부가 즐겁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재미를 느껴야 하는데 한국의 중, 고등학교는 이와 반대다. 공부가 목적이 되었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한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물론, 순간은 행복하겠지만 목적을 달성했기에 기쁨은 거기까지다. 합격하고 나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는 공부 재미를 모르게 만든 상태로 사회로 내보내는 것이다. 평생 동안 즐거울 수 있는 공부의 기쁨을 모른 체 사회로 보내는 게 가장 안타깝다. 공부의 즐거움을 알았다면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게 된다. 그런 즐거움을 빼앗는 게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공부가 즐겁지 않은 건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목적이 된 공부는 의무가 된다. 의무는 힘겨움을 동반한다. 구속력을 바탕으로 하기에 공부가 재미 없어진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를 몰라서 공부가 지겨울 수도 있다. 원하는 바를 알고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공부한다면 공부가 즐거워진다. 김영민 작가의 3권의 책을 읽으면서 즐거웠던 건 그 과정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과정이 즐겁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몇 시간을 해도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은 것, 자신이 좋아하는 일 말이다.



다행히 나에게 공부는 휴식이며 놀이이며 오티움이다. 공부하는 동안 자주 몰입을 경험한다. 자발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원하는 공부이기에 과정이 즐겁다. 작가의 말처럼 "자발성이 있는 사람, 스스로 동기부여를 잘하는 사람은 아무리 힘든 일도 거뜬히"(125p) 해낸다. 이번 강연도 1시간 30분을 달려 도서관에 왔지만 힘들다는 생각이 없었다. 원하는 강연이었으니 마냥 좋았다. 공부의 즐거움은 "알고 보면, 공부 역시 맥주 마시는 일 못지않게 쾌락적인 일이다.(125p)" 쾌락적인 공부의 맛을 모른 체 일상을 끝내기엔 억울한 일이다. 늦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라도 목적이 없는 공부의 맛에 빠져드는 게 어떤가? 공부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일상이 공부가 될 테고 공부하는 일상이 예술이 될 테니까.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기에도 인생은 짧다. 사는 건 무슨 거창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도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일상의 순간을 즐기며 사는 게 맞다.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하며 공부의 즐거움을 찾게 되면 남아있는 삶이 지루하지 않으리라. 심심하지 않으려면 좋아하는 공부를 찾는 게 먼저다. 놀이가 될 공부를 찾았다면 거창하게 목적을 세우지 말고 그냥 즐겨보도록 하자. 발목 부상으로 원하는 등산을 못했지만 대신 공부로 하루를 보냈는데 좋다. 알차게 공부하고 나자 탁월한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이런 기쁨을 누군가도 자주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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