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60년이 걸려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성숙이 있다. 니체는 "너의 열매는 무르익었지만 너는 네 열매에 걸맞게 성숙하지 못했다"고 했다. 칸트도 철학자 한 명이 만들어지려면 60년은 걸린다고 했다. 그 나이가 되기 전에는 철학이라는 분야에서 뭔가 독창적인 것을 써내기가 불가능하다나. 노년은 그동안 거쳐온 나이들을 압축하고 하나로 합쳐 최선 아니면 최악을 낳는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어릴 때 말이에요. 시간이 어서 흘러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른이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맘처럼 인생이 풀리지 않아 링거에 주입된 하루치의 영양으로 연명하듯 살아간 시간이었어요. 희망이나 밝은 미래는 책 속의 구절일 뿐이라 생각했어요. 반복되는 일상이 허접했고 초라한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어서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침마다 했어요.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나은 삶이 되겠지 막연하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말이에요.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지 않았죠. 마흔이 넘어 새롭게 시작한 직장에서도 수없이 흔들렸어요. 리더의 자리에 오르고 많은 교사를 보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문제가 발생하면 명쾌한 답을 내줘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더군요. 리더는 앞일을 내다보는 혜안으로 직원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데 맘 같지 않았어요. 어른답지 않게 행동한 적도 많았죠. 부끄러워 숨고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프랑스 사상가 피에르 베일은 "의식이 방황할 권리"를 주장하는데요. "어떤 진리, 어떤 신앙을 강요당하기보다는 스스로 실수도 해보고 자기 판단을 돌아볼 수 있는 권리가 필요"(p.123) 하다고 했지만요. 실수하고 의식이 방황할 때는 아픔이 뒤따르더군요. 어른은 거저 되는 게 아니었어요. 어른이 된다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더군요. '칸트도 철학자 한 명을 만들어내는 데 60년이 걸린다'고 하잖아요. 어른도 마찬가지겠죠. 하루아침에 어른이 만들어지지 않으니까요. 이대로라면 60이 돼도 어른이 되기 힘들겠구나 싶어요. 오십이 넘은 지금도 이렇게 흔들리는데 말이에요.
제대로 된 어른이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을 때 만난 문장은 새로운 다짐이에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결심도 했어요. "노년은 그동안 거쳐온 나이들을 압축하고 하나로 합쳐 최선 아니면 최악을 낳는다."(p.122)처럼 허투루 산 오늘이 쌓여 내일이 된다는 게 무서웠거든요. 실은 새해가 시작되면서 배터리가 방전된 것처럼 살았어요. 다행인 건 문득,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거죠. 이대로 산다면 결코 행복하지 않겠구나 생각했어요. 성취욕구가 강해서 목표한 것을 이뤄내지 않으면 인생을 헛살았다고 치부하는 사람이 나니까요. 배움을 중지하면 삶이 허망해지는 게 나더군요. 다시 정신 차리기로 했어요. 게으름에 지배당한 오늘이 내일이 되게 할 순 없으니까요.
배우지 않고 노년이 된다면 머릿속이 텅 빈 허수아비가 될 거잖아요. 의식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건 누군가에게 주권을 내주는 거니까요. 주인으로써 사는 삶이 아닌 노예로 사는 삶이 되긴 싫어요. 현명한 어른이 되고 싶으니까요. 현명한 어른도 저절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죠. 부지런히 배우며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해요. 자신의 시선을 점검하는 일은 필수이고요. 인간은 이기적이라 상황을 자신의 시선과 감정으로 보잖아요. 잘못을 하고도 자신을 합리화하는데 온 힘을 쏟으니까요.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죠.
"너의 열매는 무르익었지만 너는 네 열매에 걸맞게 성숙하지 못했다"라는 말처럼 나이에 걸맞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성숙해야겠죠.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다 내세우고 싶지 않아요. 주위를 둘러보면 상식에 벗어난 어른들이 많잖아요. 나이만큼 편향된 사고만 커져서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불통 말이에요. 잘못된 신념으로 본인이 옳다고 주장하며 앞뒤 살피지 않고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이들 말이에요. 무지한 이들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이 이해되는 사건을 최근 정치판을 보면서 실감해요. 한 나라의 일꾼이라는 자들의 무지한 신념으로 직진하는 걸 보면 암담해요. 무작정 달려가는 경주마는 두려움의 대상이죠. 비판의식이 없으면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이죠. 콩깍지가 끼어있으면 제대로 볼 수 없잖아요. 자신이 쓰고 있는 콩깍지부터 벗어내야 어른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나이 든다는 게 멋진 일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진짜 어른이 되어야겠지요. 어른이 되려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대화가 되는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해요. 대화할 때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처럼 꽉 막힌 사람이 아닌, 대화가 숭숭 통하는 거미줄 사고를 가진 사람 말이에요. 경청과 소통을 밑바탕에 두고 대화하는 방법도 다시 배워야겠어요. 좋은 대화란 상대방을 이해하는 일이 먼저이니까요. 대화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서사를 알아야 해요. 그래야 지금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타인을 서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만 옳다고 주장할 오류를 저지르더군요. 코끼리 다리를 보고 코끼리가 굵은 기둥 같다는 대화를 자주 목격해요. 나 또한 그랬으니까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의식이 늙도록 방치하면 안 되겠죠. 육체가 나이 듦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의식이 녹슬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어요. 노력하지 않으면 어제와 똑같은 삶을 살 테니까요. 좋은 책을 읽었다면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변화된 삶을 위해 실천은 필수겠죠. 지식만으로는 좋은 어른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행여 실수하였더라도 변명만 늘어놓지 않을 거예요. 실수를 인정하고 반복된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어요. 누군가 돌을 던진다면 돌 던진 이를 원망할 게 아니라 행여 돌 맞을 행동을 했는지 뒤돌아 볼 거예요. 내가 보지 못한 단점일 수 있으니까요. 일이 터졌을 때 누군가를 원망할 게 아니라 나부터 살피는 연습부터 하겠어요. 다름을 인정하고 한 발짝 물러서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거예요. 조금씩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어른이 되겠죠. 오늘부터라도 작은 다짐부터 실천하기로 했어요.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할 나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