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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찬 Jul 30. 2015

인사이드 아웃

마음속으로 떠나는 여행

토이 스토리 이후 정말 오랜만에 픽사의 작품을 봤다. 과연 믿고 보는 픽사인만큼 참신한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하여 풍부한 상상력을 더하면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은 좋은 작품이었다. 덕분에 영화 시간 내내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음은 물론, 몰입해서 보느라 울고 웃고 난리도 아니었다. 옆자리에 있던 커플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쓰고 싶은 내용이 많아서 한 편으로 소화하기 힘들었기에 키워드별로 나누어서 정리해 보았다.


*아래 구분선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감정과 기억구슬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설정은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실체가 있는 물건이나 캐릭터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각 감정은 캐릭터가 되었고, 대표 색으로 구분된다. 황금색의 기쁨, 파란색의 슬픔, 보라색의 공포, 초록색의 역겨움(disgusted, 자막은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까칠함으로 번역되었겠지만 역겨움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빨간 색의 분노 등 다섯 감정이다.

다섯 가지 감정들!

캐릭터들을 잘 보면 재밌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각 캐릭터는 각자의 대표색에 따라 컬러링 되어 있는데, 유독 ‘기쁨’의 머리칼과 눈동자 색만이 ‘슬픔’의 푸른색이다. 이것은 종반부에도 나타나는 두 가지 색의 핵심 기억과 함께 기억이 한 번에 두 가지 감정을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최초 '기쁨'의 머리칼은 설정은 주황색이었다고 한다.




제어판 — 감정의 표출

다섯 가지 감정들은 본부의 화면에 나오는 라일리의 시야를 지켜보면서 제어판을 통해 행동을 제어한다. 분노가 제어하면 화를 내는 식이다. 첫 장면에서 버튼 하나밖에 없던 것이 10년 후에는 훨씬 복잡해져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양해짐에 따라 제어판의 복잡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세밀한 조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버튼이 하나 뿐인 아기 라일리의 제어판
훨씬 복잡해진 11살 라일리의 제어판

정신적 성숙도에 따라 제어판의 크기는 점점 커지는  듯하다. 잠깐 나오는 부모님의 계기판을 보면 5개의 감정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을 정도로 제어판이 넓으며, 한 번에 여러 감정이 공동으로 행동을 제어한다. 그리고 감정 중에 리더도 정해져 있어서, 리더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라일리처럼 감정이 오락가락하거나 어떤 한 감정을 배제하려 하지 않고 각자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어머니의 경우 공감 능력을 강조해서 ‘슬픔’이, 아버지의 경우 상대적으로 목표지향적인 성격을 강조해서 ‘분노’가 리더 자리를 맡고 있는 듯 보인다. (극 중 아버지의 행동으로 볼 때 납득이 안 되는 측면도 있지만, 아무래도 남녀간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머니의 감정 제어판. 훨씬 넓고 안정되어 있다. 그리고 왜인지 모든 감정의 머리 색이 동일하다.

본부 — 표층 의식

영화는 '기쁨'과 '슬픔'이 본부에서 다른 곳으로 날려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마음속 세계에서 본부란 상황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는 '표층 의식'의 공간이며, 그 공간에서 '기쁨'과 '슬픔'이 사라졌다는 것은 더 이상 두 감정을 표출할 수 없는 심리적 상태임을 나타낸다.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 슬픔이나 기쁨 등 원초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방어 기제에 의해 막혀 버리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 계기도 재미있는데, ‘기쁨’이 슬픔을 담고 있는 코어 메모리를 라일리 마음의 일부로 만드는 것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슬픈 사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게 되면 기쁜 감정마저 제대로 느낄 수 없게 되며 더 나아가서 마음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결국 이 때문에 라일리는 솔직히 슬픈 감정을 표현하고 공감받는 대신 극단적인 행동을 하려고 한다.



전구 — 아이디어, 실행 계획

'기쁨'과 '슬픔'이 없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본부에서 ‘분노’가 라일리의 제어판에 전구를 꼽는 장면이 있다. 가출을 결심하는 장면이다.

전구는 어떤 실행을 위한 아이디어를 나타내는 듯하다. 특히 어떤 감정도 제어하지 않고 있는데도 라일리가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자동으로 행동하도록 프로그램된 무언가라는 설정인 것 같다. 뒤에 그 아이디어로 인해 제어판이 동결되게 되는데, 아이디어의 특성과 진행 정도에 따라 감정이 더 이상 아이디어의 실행을 막을 수 없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특히 ‘분노’가 이 결정을 되돌려보려 하지만 전구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한번 실행하면 그걸 실행한 감정으로는 되돌릴 수 없다. 즉, 화가 난 상태에서 한 결정을 화를 냄으로 해서 돌아갈 수는 없다는 뜻. 특히 가출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 ‘공포’ 나 ‘역겨움’도 그 행동을 막지는 못한다.


한편,  그동안 '기쁨'과 '슬픔'은 라일리의 의식 바깥을 떠돌고 있었다.



장기 기억 보관소와 빙봉 — 잊히길 기다리는 기억들

장기 기억 보관소의 연출은 아주 재미있다. 피아노를 쳤던 기억에서 젓가락 행진곡과 다른 한 곡 빼고 모두 지워 버리라든지, 좋아했던 CM송은 장기 기억 보관소에서 본부로 자주 전송한다든지 하는 장면은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장면일 것이다. 특히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어린 시절의 상상의 산물 ‘빙봉’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기쁨’을 구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빙 봉 빙기디 봉봉

결국 ‘빙봉’은 사라지지만, 그로 인해 라일리는 ‘기쁨’을 영원히 잃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빙봉이 장기 기억 저장소에서 기억의 무덤으로 사라지는 것은 어린 시절과 작별인사를 고하고 한층 성숙해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우리가 잊어버린 기억조차도 우리의 일부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라일리가 언젠가 추억 속의 빙봉을 다시 떠올리는 날을 기대해본다.



슬픔 마음 대해  알고 있다?

‘슬픔’은 마음의 매뉴얼을 줄줄이 꿰고 있다. 어디가 위험한지, 어디로 가면 되는지 등등.

슬픔이라는 것은 부정적이고 조용한 감정의 상태이다. 분노나 역겨움, 공포와는 다르다. 넷다 부정적인 것은 동일하지만 뒤의 3가지는 이유가 외부에 있고 그 이유를 물리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행동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슬픔은  마음속의 문제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마음이 겪고 있는 것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슬픔이 마음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슬플 때 자기 마음 상태를 잘 돌보아 주어야 다시 ‘기쁨’이 본부로 돌아와 제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쁨’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늘 슬픔과 함께 쫓겨났다가 돌아와야 하는 건가...? 피곤하다!)


하나 더. ‘슬픔’은 ‘기쁨’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슬퍼본 사람이 슬픈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동병상련. 인지상정.




기쁨 위한 변명 — 행동력

중반부 이후부터 왠지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이 하는 것마다 트러블이 되는 ‘기쁨’. 하지만 인간의 모든 행동은 긍정적인 기대로부터 나온다. 종반의 ‘슬픔’의 자포자기한 상태는 슬픔의 역할이 감정의 표출이지 행동의 원동력은 아님을 보여준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무기력해지는 이유이다. 우울하기에 뭔가가 잘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 수 없고, 그렇기에 행동이 무의미해 보이는 것. 자신의 마음을 구성하던 것들(섬)이 무너져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기쁨’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슬픔을 표출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다. 결국 ‘기쁨’의 터무니없는 계획이 두 감정을 복귀할 수 있도록 한다.

가장 원초적인 두 감정.


슬픔과 기쁨 — "순간, 마음, 하나되어

복귀한 ‘슬픔’은 ‘분노’가 실행시킨 극단적인 아이디어를 취소하고 부모님께로 돌아가도록 돕는다. 그리고 재회 장면에서 부모님에게 슬픈 감정을 표출하면서 ‘기쁨’의 손을 끌어 함께 계기판을 함께 조작하게 된다. 라일리가 처음으로 두 가지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그 기억은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핵심 기억이 되어 먼젓번보다 훨씬 큰 ‘가족’ 섬을 만들게 된다. 마음을 재건하는 데 첫 번째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크고 아름다운 새 가족 섬!

리뷰를 마치면서

최근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어 많이 힘들어하던 중이었다. 처음 겪는 일이어서 많이 혼란스러웠고 악몽도 많이 꾸었다. 러닝 타임 동안 그런 자신의 마음을 라일리에게 대입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 몰입했던 것 같다. 왜 이유도 없이 화가 나는지, 우울한지, 악몽을 꾸는지... 내 마음이라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났다. 그리고 마지막에 괴로움을 딛고 더 단단해진 라일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러면서 스스로도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 한 편으로 삶이 더 나아지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작은 기억들이 모여 나를 구성할 테니까. 더 많은 마음의 섬을 짓고, 더 큰 감정 계기판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밖의 것들

무의식의 감옥 :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기쁨이나 슬픔을 표현하지 못해 억압된 경우, 무의식으로부터 과거의 무서운 기억이 되살아나 악몽을 꾼다. 우리가 꾸는 악몽도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꿈 제작 스튜디오 : '현실 왜곡'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역시 이 친구들.

섬 : 핵심 기억으로 이루어져,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어떤 개념의 덩어리. 마음이 작동하는 원동력.

가상의 남자친구 :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아이템. 진짜 남자친구가 생긴 라일리의  마음속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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