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찬 Apr 19. 2016

서른, 나는 여행에서 인생을 배웠다

[오늘은 천천히 사는 날]

 #1 아르헨티나에서 티셔츠를 사기 위해 아디다스 매장을 방문했다. 옷을 입어봐도 되겠냐고 묻자 탈의실로 안내해줬다. 3번 탈의실을 사용하라길래 아무 생각없이 3번 탈의실 문을 열었는데 안에 여직원 하나가 숨어있다가 짠! 튀어나오며 나를 놀래켰다. 나는 방심했었고, 오마이갓!! 소리를 질렀다. 직원들은 그런 나를 보며 깔깔거렸고, 나도 웃었다. 


 #2 부에노스 아이레스 라보카에서 탱고쇼를 보며 점심을 먹었다. 옆 테이블에는 외국인 커플이 있었다. 계산을 할때쯤, 옆 테이블 담당 서버가 외국인 커플 여자에게 손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들고 윙크를 날리며 말했다. 

 "I'll call you tonight!" 

 그리고 옆의 남자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당황하는 척을 했다. 외국인 커플 남자도, 여자도, 나도, 그 모습에 빵 터졌다.


 #3 호주에서 워홀 당시 외국인 친구들과 바베큐 파티를 한 적이 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계산을 하는데 캐셔가 숯을 보더니 오늘 바베큐 파티를 하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왜 자기는 초대를 안하냐며 서운해했다. 다음번엔 꼭 자기도 초대해달라고 했다. 웃긴 여자였다.


 #4 호주 국내선을 타고 멜버른을 향할 때의 일이다. 짐 검사를 위해 가방, 휴대폰 등을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고 있었다. 직원 한 명이 지갑도 꺼내라고 해서 올려놓았더니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응???!?" 이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니까 장난이라며 막 낄낄거리더니 돌려주었다. '아 고놈 재밌네, 짖궃긴' 이라는 생각을 하며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에 도착해서 비행기 탑승을 위해 티켓을 보여주었다. 티켓을 확인한 직원이 어디를 가냐고 물었고 "Melbourn"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직원이 심각한 얼굴로 여기는 브리즈번 게이트라고 잘못 찾아왔다며 얼른 뛰어가라고 말했다. 당황한 내가 막 뛰어가려는데 나를 부르더니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위를 가르켰다. "Melbourn"이라고 쓰여있었다.


 #5 셀카봉이 흔치 않던 시절, 남아공 보카타운을 혼자 찾아갔다. 파스텔톤의 이쁜 엽서같은 마을에 나를 담고 싶었다. 지나가던 청년 두명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사진을 부탁했고, 흔쾌히 승낙했다. 포즈를 잡고 딱 찍으려는데 갑자기 그 둘이 내 휴대폰을 들고 토꼈다. 나는 하필 쪼리를 신고 있었고, 황급히 쫓아갔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숨을 헐떡이며 추격을 포기하려던 찰나, 그 둘이 멈춰섰다. 그리고 장난이었다고 웃으며 휴대폰을 돌려줬다. 하아.. 이번엔 진짜 놀랬다.


 나만 이런 일을 겪은건지, 남들도 이런 일을 겪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한국에 비해 외국에 있을때 나는 확실히 이런 짖궃은 장난을 많이 경험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장난들이 좋다. 매 순간 특별하기만 할 것 같던 여행도 시간이 지나고 적응이 되며, 여행이 일상이 되는 순간이 온다. 여행이 익숙해지고 더이상 새롭지 않고 나른해질때마다 찾아오는 이러한 예상치 못한 장난은 나를 웃게 하고 나의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한국은 굉장히 효율적인 나라다. 전 세계 어디를 가보아도 한국의 마트, 공항, 음식점만큼 시스템이 효율적이고 스피드한 나라는 없다. 반면에 외국의 마트, 공항, 음식점의 직원들은 침 느긋하다. 성격이 급한 한국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나 역시 그럴때마다 한국이 미친듯이 그립곤 했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한국을 돌아오면 무언가 허전하다. 빠르고 편리한데 웃음이 없다. 외국인들에 비해 한국인들은 표정이 없다. 무표정하다. 예전에 한 기사에서 한국인들이 하루에 평균 웃는 시간이 90초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사느라 웃을 새도 없는건 아닐까? 우리는 이미 스피드로는 세계 최강이다. 이제 반박자 느리더라도 서로 장난도 좀 쳐가며 웃기고 웃어가며 살면 어떨까. 사실 좀 느리면 어떤가. 

 괜찮다, 오늘 하루쯤 천천히 살아도.

작가의 이전글 서른, 나는 여행에서 인생을 배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