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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찬 May 17. 2017

망중한, 하루쯤 느리게

Slow Life in Slow City

"바쁘시죠?"

바쁨의 척도로 안부를 묻는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

.

.

.

한자어 바쁠 망(忙), 마음 심(心)에 없을 망(亡). 즉, 마음을 잃었다는 의미이다.

바쁘고 분주하게 사느라 정작 마음을 돌보지 못한채 살고 있다는 뜻이다.

한상복씨의 저서 <<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에 나오는 말이다. 


모두가 바쁘다. 대한민국에서 안 바쁜 사람이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다들 바빠도 너무 바쁘다. 10대는 학원에 쫓겨 바쁘고, 20대는 스펙을 쌓고 취업 준비 하느라 바쁘고, 30대는 돈 벌기 위해 일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그리고 세상은 자꾸만 '바쁜게 좋은거다, 젊을 때는 바쁜게 당연한거다'라고 세뇌시킨다. 세상은 개미가 옳고 베짱이는 틀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 일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 정도로 열심히 살았으면 이제는 좀 쉬엄쉬엄 살아도 되지 않을까?


망중한, '바쁜 가운데 한가함'이라는 의미이다.


오늘 나는 아무 일정도, 약속도 없었다. 날씨는 좋고, 시간은 넘치고! 여행을 떠나기 완벽한 날이었다!

"어디를 갈까!?"

서점에 가서 책을 뒤졌다. 눈에 띄는 단어가 있었다.

"Slow City!"


#Slow City

- cittaslow(이태리어):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마을'에서 유래한 영어식 표현. 

-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그 지역에 나는 음식을 먹고, 그 지역의 문화를 공유하며, 자유로운 옛날의 농경시대로 돌아가자는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국제운동.

- 2002년 7월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의 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파울로 사투르니니씨가 마을 사람들과 세계를 향해 '느리게 살자'고 호소하면서부터 유럽 곳곳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일까, 서울만 가면 나는 금세 피곤해지곤 했다. 모든 것이 빠르게 휙휙 지나가는 대도시의 빌딩 숲에게 나는 기를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반면에 시간이 멈춘 듯한 한적한 시골길은 내 마음에 평화를 선물해주곤 했다. 사람 많은 시끌벅적한 관광지 보다는 이름 없는 소소한 풍경에 감동을 받곤 했다. 어렸을 때는 자연 풍경보다는 도시의 네온 사인에 끌렸는데, 나이를 먹긴 먹나보다.


내가 오늘 방문한 예산 대흥은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지정된 슬로우 시티였다.

네비를 켜고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차를 몰았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지만 상관 없었다. 오늘 하루 나는 시간 부자니까! 세종시의 아파트 숲을 벗어나자 한적한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눈에 비치는 풍경이 변하자 내 마음도 달라졌다. 어느새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화창하고 평화로운 오후였다. 어느새 첫번째 목적지인 예당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별 기대없이 가볍게 바람이나 쐬고 오자는 마음으로 떠났는데 예당호는 기대이상으로 멋졌다!




청명한 하늘아래 맑은 예당호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맑아지는 듯 했다.

흔히들 '부자=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요일 오후에, 이러한 풍경을 오롯이 즐기고 있는 나는 분명 부자였다.


예당호를 천천히 한바퀴 돌고 카페에 들어가 망고 스무디 한 잔을 주문했다. 


서비스로 창가에 그림을 그려주셨다.


입으로는 망고 스무디를, 눈으로는 예당호를 한 모금 마셨다. 청량했다.


"행복 별거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창한 날씨와 멋진 풍경, 그리고 망고 스무디 한 잔이면 인생은 행복하다. 카페 직원분께 호수가 참 멋지다며 말을 건넸다. 직원 분 말씀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호수라고 했다. 슬로우 시티 가는 법과 어죽 맛집도 알려주셨다. 감사 인사를 건네고 슬로우 시티로 차를 몰았다.


망고 스무디를 홀짝이며 슬로우 시티를 천천히 걸었다. 지나가는 할머니께 길을 묻자 할머니가 대답하셨다.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걸어~~"

'아하!'


망중한이 따로 없었다. 2017년의 대한민국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느렸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평화로움이었을까, 시간이 멈춘 듯 했지만, 시계를 보진 않았다. 느리게 가도 시간은 흘렀는지, 어느새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논두렁에 걸친 해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배가 고팠다. 카페 직원 분께서 추천해주신 <대흥식당>이 장사가 너무 잘되서 진짜 대흥식당 딸이 차린 <대흥식당 딸>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어죽 1인분을 주문했다.


사실 어죽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 긴장했지만, 정말 진짜진짜진짜 맛있었다!! 싹싹 긁어 먹었다. 아니 마셨다. 맛있었다. 



오랜만에 혼자 떠난 여행.

사실 20대 내내 저~~멀리 멀리 유명한 해외 여행지만 찾느라 국내에는 소흘했다.


누군가 그랬다.

꼭 멀리 가지 않아도, 집 밖으로만 나오면 이미 여행은 시작이라고.


오늘 하루,

나는 여행했다.

그리고 내 여행은 계속 될 것이다.


PS

다음주엔 어디를 가볼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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