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의 불멍을 통해 우리집을 본다.
내가 겪고 있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나는 지금 무너진 게 아니다.
끝나버린 것도 아니다.
이전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상태다.
변화의 시기, 이전의 역할이 죽어가는 중이다.
나는 오래 버텼다.
괜찮은 척했고,
알고 있는 척했고,
잘 해내는 사람인 척 살았다.
그건 허세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태도였다.
최선을 다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어린아이가
지금까지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지쳤다.
쉬는 것도 애써야 했고, 돌봄은 과제가 되었고,
쉼의 유일한 방법은 '잠'밖에 남지 않았다.
깨어 있는 나는 늘 긴장 상태였고,
내게 주어진 모든 일은 의무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불안했다.
지금의 우울은 고장이 아니다
이건 병이 아니다.
퇴보도 아니다.
이전의 역할을 보내는 애도의 시간이다.
성실한 사람
책임지는 사람
정리하는 사람
실천하는 사람
한결같은 사람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람
그 역할들이 끝나가고 있다.
올해 내가 정한 가벼움은
잘 살겠다는 목표가 아니다.
더 이상 증명하고 싶지 않다.
모르는 채로 있어도 괜찮다.
애쓰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다.
나는 이제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건 회복이 아니다.
단지 익숙한 것이다.
살아내느라 치열하게 애써 온 아이
누군가에게 포함되고 싶어 하지 않은 부탁을 미리 들어주던 아이
버림받을까 두려워 어떤 부탁도 하지 못해 많은 걸 혼자 해내던 아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은 세심히 묻고 살피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들여다볼 생각도 못했던 아이
다른 사람을 지키고 돌보는 일에만 향해있던 아이
아프고 상처 가득한 이제는 지칠 대로 지친 어린아이는 이제 흘려보낸다.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다.
조금 느슨하게,
조금 덜 책임지고,
조금 덜 진지하게,
나의 무게만큼,
흘러가는 대로.
나는 지금 끝이 아니라 전환의 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이 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제는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나는 올해, 나를 다시 땅에 심는다.
그 자체로
배움이고
연구이고
회복이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나는 다시 땅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