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이꽃 Oct 26. 2022

올레길을 걸었어요.

와! 진짜 … 오늘도 잠이 안 와요. 서울 집에서 멜라토닌을 안 챙겨 와서 그냥 눈 뜨고 책 읽으며 한라산을 오를 시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행히 초저녁에 두 시간 정도 잠을 잤어서 산을 오르는데 문제는 없을 거 같습니다.  간밤에 잠 안 자고 써 놨던 갱년기에 대한 글을 하루 지나 읽으니 부끄러워져서 얼른 삭제했습니다.


왜 부끄러웠냐면요. 제가 그 글에 나랑 커피 안 마셔준 친구에 대한 원망이 아직도 느껴지더라고요.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자식의 시험보다 내가 안 중요할 수 있고 십수 년 만났던 큰애 친구 엄마들보다 내가 우선순위가 밀릴 수도 있는데 너무 과한 서운함을 품고 있는 게 심하게 부끄러워졌었습니다.


상대에 대한 나의 순번을 확인한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유치하게 차단하고 번호 삭제하고 그럴까요?

나는 왜 아직도 유치할까요? 그런 부끄러움이 들더라고요.


오늘은 제주도의 해안가 올레길을 걸었습니다. 2박 3일 내 등에 적당한 무게로 매달려있을 배낭을 꾸리는 일이 정말 어려웠는데 오늘 걸으면서 그 생각이 났어요.


나 좀 가벼워졌으면… 이십 년째 시어머님에 대한 미움도 켜켜이 누적시켜놨었는데 요즘 저의 심해진 감정 기복이 안쓰러웠던지 남편이 그런 말을 해줘서 조금 도움을 받았습니다.


“엄마랑 살려고 결혼한 게 아니라 나랑 살려고 결혼한 거니까.”


남편이 나와 누리고 싶은 시간이 더 많으니 어머님에 대한 누적된 서운함은 그만 내려놓고 가볍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의 급진적인 변화 앞에서 갱년기도 겪어볼 만하다 싶었습니다. 종일 내 등에 매달려있던 등짐이 지나치게 무거웠다면 오늘의 여행이 즐겁지가 않았을 겁니다.


적당히 견딜만한 무게의 배낭을 등에 메고 푸른 바다 언덕을 끝도 없이 종일 바라보며 걷다 보니 발은 아팠지만 마음이 종일 시원했습니다.


제가 요즘 제일 바라는 바는 내가 좀 가벼워지는 겁니다. 나를 가끔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도 이젠 버리고 싶고 억지로 참으며 불편함을 감수하며 나 자신을 자학하는 버릇도 버려버리고 싶습니다.


예전의 내가 아니라 뒤돌아보며 자꾸 우는 나 말고 앞에 펼쳐진 풍광을 즐기며 옆에서 걸어주는 내 진짜 가족을 위해 웃어줄 수 있는 내가 되길.


오늘 오를 한라산에서도 그 기도를 계속해보겠습니다.



ps. 간밤의 갱년기 글에 랜선 친구님들의 소중한 댓글은 가슴에 간직해두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