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수업에 좀 늦어서 집에서 서둘러 나오던 중이었습니다. 바삐 걸음을 재촉해서 지하철역을 내려오고 있는데 에스컬레이터 하행선 밑에서 작은 소란스러운 소음이 있더라고요. 무슨 일인가 싶어 힐끗 봤더니 할아버지 한 분이 하행선 에스칼레이터를 무슨 고집인지 모르겠으나 연어처럼 거꾸로 올라가 볼 심산이었던지 불편한 몸으로 자꾸 발을 앞으로 내딛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한쪽팔이 마비가 되어 굽은 채로 발을 자꾸만 한 발 한발 고집스럽게 위로 올라갈 일이 없는 에스칼레이터 계단을 밟고 계시더라고요.
옆에서 지나가던 행인들이 그분을 말려보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답답했던지 같은 연배의 지나가던 할아버지마저도 지청구를 했습니다.
“아니! 위험한데 왜 여기서 그래요? 저 옆에 바로 올라가는 에스칼레이터 있고만!”
아줌마는 연신 말리고 그런 아줌마를 또 같이 있던 딸이 말리는 고집스러운 풍경을 지나치며 나는 어째야 할까를 5초 정도 고민했어요. 딸은 엄마가 왜 모르는 사람일에 참견이냐며 짜증이 났고 그 아줌마는 모르는 할아버지의 우매한 고집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짜증이 났던 모양입니다. 나는 어째야 했을까 싶더라고요. 그 아줌마를 도와 할아버지의 위험한 역류 질주본능을 막아야 했을까 싶었으나 정신마저 놓친 할아버지는 아닌 거 같아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다른이에게는 오지랖을 부르는 위험한 광경이었지만 할아버지는 꽤 굳은 의지로 꼭 오르고야 말겠다는 진심이 보였거든요. 왜 굳이 거길 올라야 하는지는 그 할아버지만 아실 겁니다.
오르고 싶은 이유가 있나 보지 … 하고 내 갈 길 가던 중에 나이 들며 생기는 고집의 추레함이 느껴져 잠시 맘이 좀 울적하더군요. 저 역시도 요즘 젊은 딸의 잔소릴 자꾸 듣거든요.
“엄마, 이건 말이야. 엄마가 귀찮아서 생각을 안 하는 걸로 밖에 안 보여. 이거 딱 한 번만 더 생각하면 될 일인데??”
“엄마 제발 천천히 가. 차 오는 것도 안 보고 자꾸 앞만 보고 가는 거야. 위험하게”
이젠 길을 나서면 내 외투를 뒤에서 자꾸 잡아당기며 내 걸음을 만류하는 딸이 나의 보호자 역할을 벌써 하느라 잔소리가 늘었습니다. 스마트폰 앱의 사용방법이 귀찮아서 자꾸 딸에게 내밀며 대신 결재를 해 달라고 하거나 대신 알아봐 달라 할 때가 많아집니다. 귀찮은 게 너무 질색이라 사람 만나는 일도 귀찮을 지경입니다. 뭐든 조숙하게 일찍 겪어내며 애늙은이 소리를 듣던 젊은 시절엔 때 이른 조숙이 나쁘지 않았으나 마흔아홉에 벌써 늙은 사람 흉내를 내는 요즘의 ‘나’는 딸에게 꽤나 근심이 되나 봅니다.
왜 나이가 들면 고집이 세질까… 싶어서 젊을 때는 나이 든 사람의 고집 앞에서 짜증이 먼저 일었지만 지금은 에스칼레이터를 역행하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어느 한 곳은 짐작이 되고 이해가 되어 그냥 지나쳤던 오후였습니다. 아마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도요.
‘내가 왕년엔 이까짓 에스칼레이터쯤이야 날쌘 걸음으로 거꾸로도 잘 올라갔단 말이다!! “
어린아이가 그 행동을 했으면 철없는 장난으로 치부되었을 테지만 나이 든 노인이 그런 행동을 하니 혹시 노망이 난 건 아닌지 걱정하며 다들 한 번씩 쳐다봐졌겠지요? 그 할아버지 생각을 하다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치고 부랴부랴 돌아가느라 수업에 십 분이나 지각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건망증도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는 용납이 안 됐을 행동인데 요즘엔 너무 자주 이래서 이젠 그러려니 합니다.
나이 듦, 그 앞에서 오늘은 좀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나도 그 할아버지 같은 행동을 어느 날, 부지불식 간에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