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우연히 블로그의 글을 보다가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큰 타격은 아니고 길을 무방비로 걷다가 모르는 타인과 어깨가 세게 부딪쳤을 때의 타격감 정도가 맞을 겁니다. 우리 나잇대의 여인들은 한이 많습니다. 오십까지 살아오는 동안 몸 안에 쌓인 풀어내지 못한 겹겹의 사연들이 얼마나 많이 있겠어요.
그 설움을 내 맘 안에서 붕괴시켜서 청승을 만들지 않고 그 재료를 잘 녹여 공감과 이해의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만, 그 글을 읽었을 때 나의 글의 향방도 너무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던 건 사실입니다. 에세이를 주로 쓰는 사람입니다만 가상의 소설이나 드라마는 죽어도 내 체질은 아니어서 그런 고급진 스킬은 엄두도 못 내고 내가 분명하게 겪어낸 일들만 적어내는 글쟁이인데 나의 과거나 가족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아직도 어려운 일이어서 어느 글엔 매우 솔직해졌다가 아침이 되면 부끄러워져 얼른 지워대느라 허둥대기도 했습니다.
그 블로그의 글엔 자신의 여동생의 직업에 대한 글이었는데 여동생이 직업여성임을 알고 있노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글을 읽으면서 얼른 글쓴이의 글을 덮어 가려주고 싶다는 충동이 들더라고요. 여동생에게는 허락을 받지 않은 글이었을 테고 그리고 블로그도 익명이었으니 괜찮은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며칠을 두고 생각하게 된 화두인 건 맞습니다.
나의 고통을 직면하게 하는 일이 내가 사랑하는 딸과 남편에게는 꽤 불편한 일이어서 브런치의 글을 구독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저의 sns도 남편과 자식과는 공유하지 않습니다. 내 고통은 나의 것이고 나의 지난 고난도 분명 내 것이라 그들을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가 않거든요.
블로그의 그 문제의 글을 읽고 나서 내가 써 놨던 글에는 그런 무방비 상태의 노출이 없는지를 검열하게 되었습니다. 꽤 고민스러운 일이더라고요. 나의 고백이 타인을 해치게 되는 일이면 어쩌나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설움 많은 여인은 내 얘기를 누군가 읽고 들어주고 공감해주었으면 했을 테지만 왜 그 글이 두고두고 저를 붙잡아 두는지 모르겠습니다.
꽤 오래 저를 그 생각에 붙잡아 둘 거 같습니다.
“정은 씨, 불행을 전시해서는 안돼.”
그 말을 작가교육원에서 선생님에게 배웠습니다. 그 당시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았으나 그 문장이 내 글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으나 그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의 조언을 늘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의 블로그의 그 글이 겹쳐져 제가 앞으로 글을 쓰는 데 있어 뭔가 영향을 끼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교회 주일 예배에서 들었던 설교 구절인데 너무 좋아서 오래 곱씹으려고 메모해 둔 구절이 있습니다.
“설움이 자기 속에 함몰되면, 안으로 붕괴되면 궁상, 설움을 재료 삼아 아름다운 인생을 빚어내면 사랑과 이해와 공감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궁상에 빠지고 어떤 사랑은 공감의 사람이 되어줍니다. 설움에 대한 태도가 달라서 그렇습니다. “
내가 쓰는 나의 글이 내 안에 함몰되어 고름의 찌꺼기가 되지 말기를 제발 부디 바라는 오후입니다. 이 고민을 브런치에 글을 쓰는 다른 작가님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좋은 의견, 저에게 해주실 말씀들이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