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의 출산기록1
2022년 7월 4일 월요일, 오전1시.
밑에서 뜨뜻한 것이 왈칵 쏟아지는 느낌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예상했던 대로 양수가 터진 거였다.
일요일 오후 텃밭에서 감자해충 구제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가? 아니면 얼갈이배추 옆에 자라난 잡초 제거를 너무 열정적으로 해서...? 예정일까지 5일 앞둔 시점이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양수가 터지니 당황스러웠다. 이유는 자세히 몰라도, 오늘내일하는 만삭 임산부가 허리 잔뜩 구부리고 밭일한 게 트리거가 된 게 틀림없었다. 이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밭일하다 애 낳았다'는 서사가 그리도 많은 것인가. 생리통처럼 배가 사르르 아파오길래 진통주기체크 앱을 깐 게 불과 5분 전이건만, 헛수고가 됐다.
이제 막 잠든 남편을 흔들어 깨우고, 몇 주 전 미리 싸놓은 출산가방을 챙겼다. 오늘을 위해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해봐서 몸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병원에 전화해 현 상황을 설명하니 바로 내원하란다. 드디어 아기를 만난다는 설렘과 진통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인 상태로 차에 올라 병원으로 달렸다.
오전 2시~2시 30분.
병원에 도착하니 1시 35분. 한밤중인지라 산부인과 스테이션에 상주하는 직원이 없고, 버튼을 눌러 호출하는 시스템이다. 버튼을 누르고 양수가 꿀럭꿀럭 밀려나오는 걸 느끼며 초조하게 15분쯤 기다리자 세상 나른한 표정의 간호사분이 느긋한 태도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빠 출근하지 말라고 월요일을 골라 태어나는 효녀, 효자들이 많은지 현재 분만실이 만실이라, 준비될 때까지 잠시 일반 병실서 모니터링을 하며 대기해야 한단다. 분만실이 나길 기다리며 배에 모니터링 장치를 붙이고 침대에 누웠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 의기양양하게 '뭐 참을 만 하네'. 라며 가족들에게 카톡 보내고 인증샷도 찍으며 유유자적. 이때는 몰랐다. 대략 3시간 뒤 내가 분만실에서 짐승 소리를 내게 될 줄...
오전 2시 30분~4시.
2시 30분 경 드디어 분만실에 입성했다. 화장실에 갔더니 출산 임박을 알리는 팡파레마냥 물컹한 젤리같은 핏덩이가 후두둑 떨어졌다. 피로 얼룩진 바닥을 닦고, 병원에 비치된 임부용 그물속옷(망사라고 하기엔 너무 투박한 그물 비주얼인지라...)을 착용한 뒤 화장실에서 나와 병원복으로 갈아입으려고 간호사에게 물어보자 "응, 여기는 병원복 없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분만실 기다리는 동안 집에 다녀온 남편이 센스있게 치마 잠옷을 챙겨왔기에 망정이지, 입고 온 티셔츠 차림으로 애 낳을 뻔 했다.
이번에 새로 레노베이션 한 분만실은 빈터투어 시내가 훤히 내다보이는 통유리창에 여유로운 크기의 실내, 수중분만을 시도할 수 있는 세련된 욕조가 갖춰진 곳이었다. 방 구경에 신난 것도 잠시, 3시 반이 넘어가자 진통이 심해지면서 간격이 짧고 강렬한 고통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까 참을 만 하다며 헛소리 지껄인 스스로가 미워졌다. 침대를 세우고 손으로 바닥을 짚고 무릎 꿇은 자세로 책에서 읽은 호흡법을 시도했지만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았다. 예의 그 세상 나른한 표정의 간호사 분이 추후 약물 투입을 위해 팔에 주삿바늘을 꽂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손 무딘 스위스 간호사 아니랄까봐 1차 왼팔 실패. 젠장, 이건 바늘도 굵은데... 결국 두 번째 시도한 오른팔에 겨우겨우 꽂았으나, 깔끔하게 꽂지 못해 피가 관을 타고 좌악 퍼져나왔다. 스위스에서 피 뽑을 때마다 매번 이런 식이어서 나름 익숙해졌다 생각했지만 진통으로 신경이 곤두선 이 시점까지 이 모양이니 한숨이 나왔다. "진통보다 이게 더 아프네." 툴툴댔으나 세상 나른한 표정의 그 간호사 분께서는 들은 척도 않고 모니터기를 매만지며 "응~계속 심호흡 해~잘하고 있네~" 라며 영혼이라곤 없는 응원 멘트를 날려주셨다.
하필 저녁을 가볍게, 일찍 먹은 터라 병원에 올 때부터 배가 고팠다. 벌써 4시가 다 됐으니 9시간 넘게 공복상태였다. 허기져서 힘을 제대로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병원에서 제공하는 오렌지 주스 한 병을 벌컥벌컥 마셨다. 본격적으로 수축을 시작한 자궁 때문에 고통과 피로, 졸음이 끊임없이 몰려왔다. 축 처진 채 아픔을 참으며 누워있는데 웬 의사가 들어와서 인사를 한다. 내 담당의 아닌데 뉘신지? 했더니 마스크 뒤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이곳 응급의학과에서 일하는 우리 동서, 카트린이었다. 야간근무 중에 병원으로 걸려온 우리 부부의 전화 내용과 이름을 듣고 출산하러 왔음을 알았다고 했다. 진통으로 몸과 마음이 약해져서인지, 아는 얼굴을 보니 반갑고 고마워 눈물이 났다. 설령 뭔가 잘못되더라도 이곳 의사인 카트린이 있으니 괜찮을거라는 안도감이 잠시 고통을 잊게 해 주는가 했...지만 그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오전 4시~6시.
카트린이 가고 나서부터 진통이 극심해졌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정신이 혼미했다. 지난 30년 간 한 달도 빠짐없이 월경을 하며 생리통으로 단련된 짬바(?)에, 그 아프다는 나팔관 조영술과 2회에 걸친 난자 채취도 꿋꿋이 참아온 나였으나 출산 진통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생리통이 그냥 커피라면 진통은 top랄까. 너무 아파서 예의 그 세상 나른한 표정의 간호사분께 '이거 언제까지 이렇게 아파야 되는거냐' 물어봤지만 '아직 자궁문이 다 안 열렸으니 두고 봐야지'라는 우울한 답이 돌아왔다.
그새 시간이 흘러 5시가 되자, 오늘 출산을 도와주실 헤바메가 들어와 자기 소개를 했다. 스위스는 헤바메(Hebamme)라는 전문 조산사가 출산에서 의사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출산의 전 과정이 헤바메의 지휘와 감독, 조력 아래 이루어지며, 결정적인 순간에 의사가 와서 출산을 마무리짓는 시스템이다.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헤바메의 따뜻한 갈색 눈동자에 조금 기운이 났다. 진통 간격이 짧아지면서 더욱 괴로워지자, 물속에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따뜻한 물속에서 근육이 이완되면 고통이 경감될거라 예상했지만... 아픈 건 그냥 아픈 거였다.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힘을 주고 싶은 욕구가 오히려 더 강하게 찾아왔다. 30분 남짓 물속에 있다가 밖으로 나와 내진을 했는데, 헤바메가 "오, 그새 엄청 빠르게 진행됐다~아기 머리가 만져져! 이제 금방 나오겠는데?!"라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진짜로 '금방' 아기가 나올 줄 알았으나 크나큰 착각이었다...
오전 6시~10시 30분.
금방 나온다던 아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고, 나는 허기와 피로, 고통에 탈진 일보직전이 됐다. 자궁 수축간격이 더 짧아져서, 진통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온 몸을 뒤흔들고 사라졌다가 또다시 몰려오기를 반복했다. 진통에 동반되는 고통을 알기에, 진통이 지나간 후 다음 진통이 몰려올 때까지의 그 짧은 순간이 너무나 두려웠다. 드라마나 영화의 출산 장면에서 배우들이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며 '연기하네' 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힘을 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짐승같은 괴성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남편은 내가 진통하는 내내 침대 머리맡에 서서 땀으로 흠뻑 젖은 내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주스를 먹여주고, 물을 떠다 주며 마라톤 선수를 응원하는 코치처럼 "잘하고 있어, 할 수 있어, 조금만 힘내자."를 반복했다. 극심한 진통이 4시 경부터 시작됐으니, 6시간 넘게 한 자리에 서서 물 먹이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원망하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을 착한 남편의 모습, 안봐도 비디오였다. 너두 참 안쓰럽다만 지금 내 몸에 닥치는 고통이 너무 커서 너의 안위까지 챙길 겨를이 없다, 남편아.
진통 강도가 점점 강해지자 지금 이 아픔을 멈추기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잠시라도 좋으니 이 고통에서 벗어나 보고자 무통주사 여부를 물어봤다. 그러나 나의 헤바메께서는 인자한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네 자궁 경부가 무통 맞기에는 너무 많이 열렸는걸. 그냥 없이 시도해보자."
... 스위스 산부의 70%가 맞는다는 무통주사를, 난 그렇게 놓치고 말았다.
나의 헤바메는 대신 '해피버튼'을 제안하셨다. 고통이 심할 때 버튼을 누르면, 진통제인 레미펜타닐이 혈관으로 소량 주입되면서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이론적으로) 방식이다. 레미펜타닐이든 레미콘이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일단 뭐든 줘보세요, 제발.
12시간이 넘는 공복에, 잠 한숨 못자고 땀으로 샤워하며 진통으로 날밤을 샌 내게 해피버튼은 찰나의 반 수면 상태를 선사해 주었다. 자궁 수축의 쓰나미가 한바탕 지나가고 다음 진통이 밀려오기 전 버튼을 누르면 잠에 취한 듯 몽롱해진다. 그러나 내가 진통을 겪고 있고, 그게 겁나게 아프다는 현실까지 잊기에는 효과가 강하지 않아서 몽롱한 상태로 고통을 느끼며 계속 힘을 줘야한다. 말이 좋아 '해피'버튼이지 실제로는 해피와 거리가 꽤나 먼 기능임에도, 이 지옥같은 상황을 함께 나눌 무엇인가가 손에 쥐어졌다는 게 위안이 되었다.
그새 동이 트고 출근 시간이 되어 내 담당의인 닥터 펠만이 분만실에 들어왔다. 닥터 펠만과 헤바메는 나올 때가 됐는데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아기를 기다리며 어떤 의료적 방법을 쓸지 상의했다. 아기 머리가 보이지만, 모체가 지쳐있어 아기가 완전히 산도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들어갔다 나왔다하는 상태라고 했다. 진통이 허리로 와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데다 지치고, 배고프고, 답답해서 이번에야말로 정말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힘을 주자고 이를 악물었다.
~10시 42분.
시간이 지체되고 내가 점점 지쳐가자, 닥터 펠만이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이제 거의 다 왔으니 내가 길게 푸쉬를 하면 그에 맞추어 아기 머리에 진공흡착기를 붙여 한 번에 끄집어내겠다고 했다. 이번이 부디 마지막이기를 바라며 건물이 떠나갈 듯한 괴성과 함께 힘을 주었다. 아랫도리가 찢기는 통증과 함께 뭔가 쑥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몸에서 마치 불덩이가 나오는 것 같았다.
10시 43분.
응애 소리와 함께 분비물로 뒤덮인 아기가 갑자기 배 위로 뿅 나타났다. 불덩이가 나오는 듯한 그 고통의 순간, 천장을 보고 소리지르느라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는데, 갑자기 배가 묵직해져서 내려다보니 닥터 펠만이 아기를 배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너냐, 내가 열 달간 품고 있었던 작은 인간이.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 구석에 서서 감격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양수 때문에 얼굴이 퉁퉁 부은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 남편을 쳐다봤다. 초음파 볼때마다 손으로 얼굴을 가렸던 녀석은 밖에 나와서도 손을 얼굴 가까이 올리고 있다. 쭈글쭈글한데다 엄청나게 긴 손가락, 그새 뾰족하게 자란 손톱 때문에 손이 아니라 닭발같았다. 막상 아기를 보자 "되게 못생겼다."라는 말이 제일 먼저 나왔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은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예쁜 아기한테 무슨 몹쓸 말이냐며 나무랐다. 애가 나오는 순간 이미 두 눈에 콩깍지가 장착된 게 분명했다.
피와 양수 냄새로 뒤덮인 고깃덩어리 같은 아기를 품에 안은 채, 헤바메의 도움을 받아 태반을 꺼내고 후처치를 했다. 아까 찢기는 통증이 느껴졌던 건 정말로 살이 찢어져서였다. 스위스는 한국에서 일명 '출산 3대 굴욕'으로 통하는 관장, 회음부 절개, 제모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닥터 펠만이 찢어진 회음부를 꿰매주었다. 진통의 고통이 너무 컸기에, 살 꿰매는 아픔 따위는 가소로웠다.
남편이 경건한 자세로 탯줄을 자르자, 헤바메는 아기를 검진용 책상으로 데려가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 뒤 신체 사이즈와 출생 시간을 적고 발바닥 도장을 찍은 출생 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감자 주니어, 2022년 7월 4일, 오전 10시 43분 출생, 무게 3.3kg, 키 52cm.
아기가 나오자마자 진통의 고통이 깡그리 사라져서, 짐승 소리를 내던 10분 전 상황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게 꿈이 아니었음을, 병원 로고가 찍힌 아기옷을 입고 내 품에 부리또처럼 안겨있는 내 아이가 증명해 주었다.
헤바메를 비롯, 출산을 도와준 분만실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아기를 트로피마냥 안고 휠체어에 올라 산후조리실이 있는 2층으로 향했다. 복도를 오가는 간호사들과 방문객들이 나와 아기를 보며 '축하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첫 아이, 감자 주니어가 세상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