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지켜야 할 예의는 있는 법
'밥 먹었냐?'가 인사인 한국인들에게, 집에 찾아온 타인에게 밥 줄 생각도 안한다는 스웨덴 식 개인주의, 소위 '스웨덴 게이트'는 이래저래 충격이다. 요새 이 스웨덴 게이트 때문에 밈도 많이 나왔던데, 볼 때마다 웃기면서도 참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구나를 실감한다.
하지만 같은 유럽이라도 스위스에서 그런 취급을 당할 일은 거의 없으니 걱정하지 말자.
스위스 대부분의 가정은 자녀의 친구가 식사 때까지 머물러 있을 경우 자연스레 밥 먹고 가겠느냐고 물어보고 수저 하나 정도는 기꺼이 더 놔주는 마음씀씀이를 갖고 있다.
물가가 비싸다보니 손님을 집에 초대해서 직접 차린 요리로 식사를 대접하는 경우도 흔하다. 실상 스위스의 사교 활동은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행위가 매우 큰 지분을 차지한다. 물론 의심 많고 정을 잘 안주는 스위스 사람들 특성 상 집에 초대받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스위스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면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1. 본격적인 식사 전, '아페로'가 먼저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생경할 단어인 아페로(Apéro)는 사실 스위스에서만 쓰이는 단어다. 프랑스어로 전채요리를 뜻하는 '아페리티프(Apéritif)'에서 파생된 단어인 아페로는 스위스 특유의 식전 문화다. 본격적인 식사 전, 간단한 핑거 푸드와 가벼운 칵테일 등을 즐기며 호스트와 담소를 나누고 위장을 준비시키는(?) 절차라 보면 될듯. 아페로에서 가장 흔히 서빙되는 음식은 감자칩과 견과류, 치즈, 올리브 등이다.
감자칩이나 견과류, 치즈, 올리브 모두 상당한 고열량인데 대체 이걸 왜 식전에 먹어서 밥맛을 떨어뜨리는지 한국인인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나름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는 이들만의 문화이니 존중한다. 대부분이 짭짤한 스낵 종류인지라 나도 모르게 과식하면 본격적인 식사 전에 너무 배가 부른 불상사가 발생하니 아페로는 아주 적은 양만, 우아하게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아페로의 본질은 먹는 게 아니라 '대화'에 있다.
2. 접시 하나는 대부분 3가지 음식으로 구성된다
-밥과 국을 기본으로 하고 밑반찬을 곁들이는 한국과는 달리,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 대부분 국가의 차림상은 육류(메인요리), 곡류(파스타나 감자), 야채류(샐러드나 더운야채) 이렇게 세 종류로 이루어진다. 단백질과 탄수화물, 비타민 및 무기질을 한 접시에 담아 먹는 구성.
스위스에서 메인 요리는 오븐에서 조리한 쇠고기나 돼지고기 요리가 대부분이다. 양송이와 크림, 쇠고기를 넣고 조린 게슈넷첼테스(Geschnetzeltes)는 취리히를 대표하는 메인 요리다.
위 사진처럼 파스타 면을 내놓기도 하지만, 감자국 사람들 답게 아래와 같은 비주얼의 찐감자가 더 흔히 등장한다.
여기에 다음과 같이 찐 시금치가 곁들여지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경우, 메인이 되는 육류 요리는 주인이 직접 접시에 놓아주지만 감자와 시금치, 파스타 등은 손님이 원하는 만큼 더 먹을 수 있게 식탁 위에 뷔페처럼 여분을 차린다. 덜어먹을 수 있는 수저와 포크가 함께 놓여있으니 혹시라도 자기가 먹던 수저와 포크로 여분 음식을 뜨는 실수는 절대 범하지 말자.
3. 식사 중에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위스 역시 식사 중에 내는 소음을 곱게 보지 않는다. 면 후루룩대는 소리, 국물 들이키는 소리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한국인들이다보니 유럽에 와서 자기도 모르게 그 습관이 나오는 경우를 종종 봤는데, 서양 문화권 대부분에서는 그래선 안된다. 입은 꼭 다물고 씹고, 음식물은 반드시 삼키고 말하자. 음료도 홀짝이면서 마시지 말자. 접시를 칼이나 포크로 긁는 소리도 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혹여 트림이 나오면 소리 나지 않게 최대한 숨죽여 조용히, 티나지 않게 하자. 무슨 당연한 소리를 이렇게 정성껏 써놨냐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유럽에 살다보면 한국인들이 얼마나 시끄럽게 먹는지 깨닫게 된다.
4. 접시 위에 의사 표시를 확실히 한다
-혹시라도 식사 중간에 화장실이나 전화 등으로 급하게 자리를 비워야 한다면 식사 중이라는 표시를 하고 가자. 식사가 아직 안 끝났다면 포크와 나이프를 여덟팔(八)자로 접시에 걸쳐 놓고, 다 먹었으면 오른쪽에 사선 11자로 나란히 놓는다.
중고등학교 가정가사 시간에 배우는 기본 테이블 매너인데, 의외로 많은 한국인들이 이걸 몰라서 잠시 화장실 다녀온 사이 접시가 치워지고 없었다는(?) 슬픈 사연이 종종 들려온다.
5. 내 접시에 뜬 음식은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다 먹는다
-갑자기 소화불량이나 맹장염이 찾아오지 않은 이상, 내 접시에 내가 직접 뜬 음식은 남기지 말고 다 먹는 게 예의다. 셀프 서빙할 수 있도록 식탁에 놓아준 음식을 욕심껏 떴다가 다 못먹고 남기는 건 주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음식이 충분한 이상 자주 가져다 먹는 건 결례가 아니니 조금씩, 능력껏 떠서 남는 것 없이 깨끗하게 다 먹자. 접시나 칼에 소스가 묻었다면 식탁에 놓인 빵을 뜯어 닦아 먹어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6. 식탁에 서빙된 냅킨은 사용 후 예쁘게 접어 놓는다
-스위스 가정에 초대받은 경우 대부분은 포크, 나이프와 함께 입을 닦을 수 있는 냅킨을 서빙해준다.
스위스 사람들은 예쁜 냅킨을 매우 좋아해서, 그날그날 날씨나 요리 종류, 행사 컨셉에 따라 냅킨을 달리 내놓는다.
식사를 마치고 이 예쁜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면, 아무렇게나 펼쳐놓거나 구겨놓지 말고 최대한 보기 좋게 접어서 식탁 위에 올려놓자. 가정이 아닌 식당에서도 냅킨은 식탁 위에 고이 접어 놓고 나오는 게 예의다.
7. 요리에 대한 칭찬은 필수
-초대해서 음식을 차려준 호스트에게 맛있다는 칭찬만큼 뿌듯한 인사는 없을 터. 절제된 감정 표현을 하는 스위스 사람들이지만 음식 칭찬은 좀 과해도 괜찮다. 생각보다 맛이 없어도 있는 힘껏 맛있는 티를 내면서 먹고, 정말 맛있었다면 온몸으로 맛있음을 표현해주자.
8. 식사의 마무리는 디저트와 커피로
-손님이 식사를 마친 것 같으면 호스트는 접시를 치우고 적당히 분위기를 봐서 디저트를 내온다. 스위스에서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뜨거운 초콜렛을 끼얹은 쿱데너마크(Coupe Dänemark)를 비롯한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 티라미수, 초콜렛무스(쇼끼무스) 등을 커피와 함께 대접한다. 이것도 맛있게 먹어주자.
스위스 가정에 초대 받을 경우, 너무 싸지 않은 적당한 가격의 와인이나 주인의 취향에 맞는 술(진이나 달달한 식전주, 식후주, 맥주 등), 꽃다발, 초콜렛, 디저트 등을 사가는 게 좋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선에서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기분 좋은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건 스위스 사람들 사이에 중요한 에티켓이다.
스위스 가정에 식사 초대를 받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건 호스트와의 사이가 그만큼 돈독해졌다는 뜻이니, 그동안 잘 다져온 인간 관계가 끝까지 유지될 수 있도록 식사 예절에도 최선을 다하자. 스위스인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우정으로 엮이게 되면 다른 국가 사람들과는 다른 진지한 충성심을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