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7일~28일 1박 일정으로 스위스의 작은 도시, 뇌샤텔(Neuchâtel, 독일어 명칭은 노이엔부르그Neuenburg)에 다녀왔다. 프랑스어가 쓰이는 이곳은 다른 국가와 접하지 않은, 온전한 스위스 령 최대의 호수 뇌샤텔호를 따라 자리한다.
혹시 몰라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 봤는데, 도시가 너무 작고 관광객을 끌어모을 강력한 한 방(?)이 없다보니 한국인들에겐 미지의 장소인 듯 하다. 그러나 스위스 사람들, 특히 베른이나 취리히 사람들에겐 나름 사랑받는 휴가지.
인구 3만 정도의 아담한 도시이기에, 휴식을 목적으로 짧게 다녀오기로 했다.
취리히에서 1시간 반 정도면 뇌샤텔 중앙역에 도착한다. 단지 1시간 반 기차를 타고 달렸을 뿐인데 프랑스어 세상이 펼쳐지는 이 신기한 나라, 스위스.
일단 역에서 멀지 않은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숙소는 호수 뷰가 잔잔히 보이는 Best Western Premier Beaulac. 2015년 레노베이션을 거친, 별 4개짜리 비즈니스 호텔이다.
체크인을 하니 고맙게도 대중교통과 각종 박물관을 1박 2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관광객용 쿠폰북을 준다.
짐을 풀고 호수 뷰를 구경하러 나섰다.
호수를 왼쪽에 낀 채 산책로를 걷다보면 걸리버가 앉았을 법 한 사이즈의 대왕벤치가 보인다.
(아래 사진은 퍼왔다...인기가 많은 장소라 항상 사람이 올라가 있어서 사진 찍기가 여의치 않다)
산책로 끄트머리에 이르자 꽃이 흐드러진 멋진 광장이 펼쳐진다. 이를 기점으로 건너편이 번화가이다.
(꽃이 너무 예뻐서 감상에 젖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힘찬 가죽피리 소리...알고보니 우리 뒤 벤치에 앉은 아저씨께서 (자신에게만 작게 들리는) 방귀를 날리고 다소곳이 모른 척 하고 계셨음...)
길을 건너 번화가로 나가 마주한 프랑스어의 스멜...'아, 프랑스어권에 있구나'가 실감난다.
번화가를 걷다보면 이런 장소와 만난다.
사인을 따라 오르막을 좀 오르다 보면 유명한 교회, '콜레지알르(Collegiale church)'가 나온다.
1185년 건축 시작, 1276년 공사를 마친 교회로,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 양식으로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교회 지대가 다소 높은 편이라, 뇌샤텔의 풍경을 둘러볼 수 있다. 이런 신박한 다리도 그 중 하나.
배가 고파져서, 뇌샤텔의 인기 카페 'Okapi Cafe'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칠리 소스가 들어간 베지터리언용 샌드위치를 먹고싶었지만 하필!오늘 이것만 안된다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
주인 청년...하...계획이 틀어지자 결정장애가 있는 나는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져서 청년에게 다른 메뉴 추천을 부탁했고, 그는 가게에서 두 번째로 비싼 샐러드를 추천해 주었다. 가게가 붐벼서 더이상 시간을 끌 수 없어 일단 그걸로 주문.
샐러드를 즐겨 먹고 좋아하긴 하지만 프렌치 파트에 왔으니 뭔가 색다른 걸 먹어보고 싶었는데...ㅠ
눈물 젖은 샐러드와 플랫화이트로 점심 후, 저녁은 든든한 걸 먹자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호텔로 복귀.
호텔에서 쉰 후 저녁 먹으러 가는 길, 극장가로 보이는 골목을 지났다. REX라는 극장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상영 중이었는데, 바깥까지 늘어선 줄로 보아 인기가 많은 듯 싶었다. 처음엔 <라이언킹> 줄이 아닐까 했으나 찾아보니 이 시간대에는 <기생충>하나만 상영하더라. 관객들의 소감이 궁금.
뇌샤텔의 또다른 명소, '르 팔레 드 페이루(Le Palais du Peyrou)'. 직역하면 '페이루의 궁전'이란 뜻인데,
사실 궁전까지는 좀 오버고 스위스식 저택이다. 1765년~1771년 간 공사한 건물로, 건물 주인이자 엄청난 부자였던 피에르 알렉상드르 드 페이루(Pierre Alexandre Du Peyrou)를 위해 베른 출신의 건축가 에라스메 리터(Erasme Ritter)가 설계. 드 페이루는 전형적 금수저 집안 출신으로, 장 자크 루소의 친구였다고 한다. 얼마나 친했으면, 돈 없는 루소를 위해 첫 저서 출간비를 대줬을 정도.
드 페이루 부부는 자식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고, 그 후 저택은 다양한 주인을 거쳐 뇌샤텔 시의 소유가 되었다. 지금은 레스토랑 겸 행사장으로 사용 중이다.
점심의 선택을 설욕하고자 괜찮은 레스토랑을 열심히 찾아봤지만 도시가 작다보니 코멘트가 거기서 거기고 썩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그냥 가장 만만한 곳에 가기로. 호텔에서 가까운 스위스식 레스토랑, '메종데잘(Maison des Halles)'.
채식주의자인 남편은 딱히 괜찮은 메뉴가 없어 3가지 치즈가 들어간 피자를, 나는 뇌샤텔 호수에서 잡은 생선으로 만든 요리를 먹었다.
그다지 고급스러운 맛은 아니었지만, 생선 자체는 부드럽고 먹을 만 했다. 날 화나게 한 건 곁들여 나온 링모양 쌀. 나처럼 쌀을 주식으로 먹는 나라 사람에게 저 링모양 쌀은 차라리 모독이었다. 수퍼마켓에서 파는 쌀 중 가장 싸구려 쌀을 사서 미리 조리했다가 주문하면 데워서 내보내는 듯한 식감과 맛. 윗부분은 심지어 눌어붙었다.
어차피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걸 알고 갔기에 큰 기대는 안했지만 저 쌀은 좀...혹여 이곳에 가실 분들은
메뉴판을 잘 보고 '쌀(영rice/프riz/독Reis)'이 나온다 써진 메뉴는 패스하거나 감자튀김으로 바꾸시길.
우리 테이블 건너편에는 술이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가 맥주를 홀짝이며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는데, 화장실에 다녀오던 남편한테 이렇게 말했단다. "봉주르, 테러리스트!"
저녁을 먹은 뒤엔 원활한 소화를 돕기 위해 호숫가를 거닐었다.
안타깝게도, 다음 날은 비가 왔다. 도시 웬만한 곳은 다 둘러봤고, 비 오는 와중에 짐을 끌고 돌아다닐 수 없어 그냥 일찍 귀가하기로 결정. 역에 닿으려면 언덕을 올라야 하기에, 어제 받은 무료 교통 쿠폰으로 푸니쿨라를 타기로 했다.
SBB에서 선물(?)받은 할인권으로 1등석 표 저렴하게 구입, 집까지 편안하게 귀가.
한국 관광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지만, 당일치기, 혹은 1박으로 여유롭게 다녀오기에 괜찮은 곳이다. 뇌샤텔 호의 깨끗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사색에 빠지고 싶은 분에게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