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 호의와 환대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1991년 1월 7일, 나는 뉴질랜드 땅을 밟았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자연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고 깨끗했다. 히치 하이킹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한 가정에 초대를 받아 근사한 풀코스 저녁 식사를 대접 받기도 하는 등, 그곳에서 여러 기억에 남을 친절 에피소드가 넘쳤다. 그중 압권은 뉴질랜드를 떠나던 날 경험했다.
당일 공항으로 가는 막차는 시내에서 밤 9시에 떠나게 되어 있었다. 나는 오후에 미리 가서 버스표도 구매해 두었고, 자정쯤 출발하는 항공편을 타고 남미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버스가 출발하는 위치도 알아두었다.
9시 좀 안 된 시간, 나는 미리 도착해 대기석에 앉아 막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되었는데도 버스가 오질 않는 것이다. 5분이 지났다. 여전히 버스는 안 왔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안에 들어가 남아 있는 직원에게 문의하니 글쎄 막차 떠났다는 것이다! 아, 그럴리가. 내가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들은 직원이 어디서 기다렸냐고 묻는다. 내가 있던 쪽을 가리키며 저기라고 하니, 고개를 흔들면서 버스는 반대편에서 떠났다고 한다. 아뿔사...
그래서 그쪽으로 가보니 웬 일인지 버스 한대가 앞문을 열고 서있다. 반가운 마음에 혹시나 하고 공항 가는 거냐고 묻자 똑같은 답이 돌아온다. 막차 떠났다고. 내가 낙심하는 표정을 짓자 기사님이 묻는다. 지금 공항 가야 하냐고.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럼 타라고 한다. 그렇게 나 한 사람을 위한 버스 운행이 시작됐다. 그분은 그날 이미 일을 마친 후였다. 이윽고 앞차와 무선으로 통신을 하면서 혹시라도 따라 잡을 가능성이 있는지 대화를 해보더니 불가능한 상황이라 딱 나 한 사람만 태우고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다. 정말 몸둘바를 모를 정도로 고마운 친절이었다. 내리려고 하는데, 고마운 건 알겠지만 버스표는 내고 내리라고 웃으며 손을 내민다.
내가 안 해도 되는 일들을 남을 위해 기꺼이 하는 친절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평생 남을 정서적 자산이 되고 그 사람을 형성하는 힘을 갖는다. 그 친절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조금이라도 더 친절하고 사려깊은 사람이 되도록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믿는다.
뉴질랜드 친구 한명이 이런 말을 했다. 뉴질랜드행 비행기 타고 갈 때, 옆에 앉은 뉴질랜드 사람과 친구가 되면 십중팔구 그 사람 집에 초대받기 쉬울 거라고. 이제 개인의 친절을 기대하기 보다는 모든 것을 돈으로 사는 시대가 되었으니 과거에 내가 겪은 일들이 희귀한 경험이 되었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여행자들은 이런 놀라운 친절을 평생의 자양분으로 얻고 가는 일들은 이어질 것이다. 길위의 여행자이든, 여행자를 만나는 현지인이든 언제나 친절로 서로에게 베푸는 일이 계속 이어진다면 세상은 그나마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