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자로 미국을 경유할 때

준범죄자 취급을 받아본 경험

by 달라이하마

90년 말에 피지에서 지내면서 남미로 가기로 했기에 항공노선을 알아보니 남태평양에서 남미를 바로 갈 수는 없고 미국을 거쳐야했다. 지금이야 한국은 미국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나라이지만 당시에는 환승을 하더라도 비자신청을 해야 했다. 그래서 피지의 수도 수바에 있는 미국 영사관에 가서 비자 신청을 하는데, 조그만 영사관 데스크에서 나를 맞이한 젊은 영사는 "왜 한국에서 신청하지 않고 여기에 와서 하느냐?"는 질문 하나만 묻고 그 자리에서 비자발급을 거절해 버렸다. 더이상 항변도 통하지 않았고 난 허탈한 맘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지난 글에서 내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공항을 떠나 하와이를 거쳐 LA를 경유해 페루 리마까지 가게 된 사연은 따로 소개하겠다고 했는데, 이 글은 바로 그때 벌어진 일에 대한 이야기다.

갑자기 비자 없이 미국을 경유하게 됐으니 막막했다. 그래서 여러 경로로 알아보니 5시간 이하로 공항에 머물게 될 경우 무비자 경유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원래 선택한 오클랜드-LA-리마 노선의 경우, LA 착륙 5분 전에 리마행 항공기가 뜨게 되어 있어 거의 24시간을 공항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럴 경우에는 비자를 꼭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미 한번 한국을 떠나 제삼국에서 미국 비자 신청할 때는 심사도 없이 거절당하는 경험을 했으니, 다시 신청해도 소용 없을 것이 예상되어 결국 2시간 정도 뒤에 뜨는 오클랜드-하와이-LA-리마 노선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면 겨우 5시간 안쪽으로 LA에서 환승대기가 되는 노선이었다.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했더니, 호놀룰루에 내리지 않고 결국 LA 갈 거면 지금이라도 LA 직항에 태워주겠다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그래서 자세히는 설명 못하고 사정이 있어서 돌아가야만 한다고 설명하고 그렇게 빙 돌아 페루를 가게 됐다.

LA에 착륙해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한 사람이 게이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나를 에스코트해서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나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인계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입국심사대를 거쳤다. 그때 내 여권에는 TWOV라는 글귀가 적혔다. 바로 무비자경유(Transit Without Visa)라는 뜻이다.

나는 그를 따라 차에 탔다. 차는 안에서 문이 안 열리게 되어 있었다. 경찰차처럼. 그렇게 공항을 빠져 나와 어떤 건물에 도착했다. 그리고 내리라고 하더니 건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어떤 방으로 나를 안내한다. 그렇게 문이 닫혔는데, 이번에도 문은 안에서는 열 수 없게 잠겨 있었다. 얼떨결에 모르고 당한 일이지만 모든 과정이 황당하고 불쾌했다. 방 안에는 TV가 켜져 있었고, 한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자괴감에 서로 대화는 안 했지만 한 눈에 봐도 한국사람 같았다. 잠시 후 이건 아니다 싶어 문을 두드렸더니 열어줬다. 그래서 전화 좀 쓰게 해달라고 했더니 그건 허락해서 미국에 이민 가 살고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통화 마치고 다시 방에 들어가 감금된 시간을 한두 시간 보내고, 다시 나는 공항으로 돌아와 역순으로 리마행 항공기에 탑승했다.

97년 유학을 가기 위해 광화문 미국 대사관 앞에 줄을 선 적이 있다. 그렇게 줄을 설 때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굴욕감이 든다. 취급당하는 느낌. 그때 그 느낌에는 기시감이 있었는데, 바로 1991년 1월 15일, LA공항에서 경험한 그 느낌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단체로 남미가는 일행이 무비자 경유를 할 때는 개인적으로 겪을 때보다 훨씬 더 굴욕적인 경험을 한다고 한다. 한 코너에 몰아 넣고 아이들 뛰어다니는 거 단속하고 화장실도 에스코트해서 다녀오고 등등.

세월이 흘러 한국의 위상이 하늘을 치솟는 지금은 그런 일이 없기에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 누리는 편안함에 감사하고, 여전히 굴욕을 겪는 나라의 시민들을 향한 연대의 시선을 갖게 된다. 아무쪼록 출입국 경험이 이렇게까지 굴욕적인 일들은 개선되길 바라며 옛추억 하나를 소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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