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 달리고 싶은 거 아니었니?
달리기를 할 때 ‘준비 운동’을 하지 않는다. 스트레칭도 좀 하고 발목도 좀 풀어줘야 할 텐데, 그냥 냅다 시작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음식을 보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 코스가 시작되는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들어오면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달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2km 코스의 첫 바퀴는 천천히 달리는 습관이 든 것. 근육에 피가 돌아 몸이 따뜻해지기 전까지는 속도를 올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워밍업’이다. 별도의 준비운동을 하지 않고 ‘첫 바퀴가 워밍업이자 준비운동’이라고 생각하며 달린다.
달리기다 문득 ‘나는 왜 준비 운동을 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달리기 전에 스트레칭하고 손발목 풀어주는 준비 운동은 상식이고 기본인데?
시간이 아까웠다. 매일 달리는데 최소 30분에서 1시간을 쓰고 있다. 체력과 정신력에 큰 도움이 되니 달리는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다. 그런데 달리기 위한 준비운동을 하는 데는 단 5분이라도 시간을 더 쓰기 싫었던 것 같다.
달릴 때와는 달리 일할 때 나는 준비 운동이 좀 필요한 사람이다. 누가 보면 ‘일 안 하네’ 싶어 보이는 시간을 보낸다. 기획하는 영역의 동향도 리서치하고, 이해관계자 파악도 한다. 내가 이 일을 어떻게 해내고 싶은지‘ 따위를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다.
일을 시작하기 전의 준비도 모두 일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프로젝트의 시작 전에 ’비효율적‘이어 보이는 준비 시간을 가졌을 때 일이 다 잘 됐다.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
내가 달리기 전에 준비 운동을 하지 않았던 이유가 명확해졌다. 나는 그동안 ‘준비 운동은 달리기의 과정이 아니’라고 생각했구나. 준비 운동을 해서 더 잘 달렸던 경험이 없구나.
그렇다면 해보자. 일을 철저히 준비했던 것처럼 달리기도 준비해보자. 스트레칭을 하고 관절을 부드럽게 하자. 그것이 더 나은 달리기를 만드는 것을 느껴보자.
창업가의 여정에서도 출발선에 서서 준비운동을 하는 중이다. 어디로든 냅다 달리고 싶을 때가 많다. ‘달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안정감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기억해야 한다. 준비 운동은 더 나은 창업 여정을 만든다.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준비운동을 하고 달렸다. 몸은 더 가뿐했고, 관절도 부드러웠다. 무엇보다 더 멀리,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준비 운동도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은 바뀌질 않네. ‘예비’ 창업 기간도 빠르게 보내고 싶은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