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자러 갔나
달린 지 1년이 되었다.
무거워져 가는 몸을 일으켜 달리는 것이 쉬운 건 아니다. 현관문턱 넘는 게 한계령 넘는 것보다 어렵다. 한 번 달리는 건 쉬워도 다시 달리는 건 어렵다.
어쩌다 보니 달리는 것이 좋아졌고, 그토록 원했던 습관이 되었다. 매일 달린 것은 아니다. 일주일을 안 달린 적도 있다. 그래도 이제는 달리기가 부담이 아니라 설렘이 됐다.
일 년간 같은 시간에 같은 코스를 달렸다. 작년 가을 이맘때쯤 달리기를 시작했다. 코스는 한산했다. 아침 7시에 나와 달리는 사람은 나와 중년 여성 한 분, 근육맨 한 분, 할아버지 한 분 정도였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도 전동차를 탄 야쿠르트 아줌마, 출근 시간이 빠른 직장인 몇 명, 강아지 아침 산책 나온 분 정도였으니까.
꽃이 피고 날씨가 풀리니 러닝 붐이 생겼다. 누가 주도한 건진 모르겠다. 테니스, 골프 다음 트렌드라고 했다. 러닝화 브랜드 주가가 상한가라라고 했다. 카본화니 미드풋이니 달리기에 대한 콘텐츠가 유튜브에 늘어갔다. 러닝크루 문화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갔다.
그러면서 내가 달리는 길에도 함께 달리는 동지가 늘어갔다. 아침 7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부지런했나 싶을 만큼 달리는 사람이 늘어났다.
화려한 러닝화에 영화 엑스맨에 나오는 고글을 쓴 남자, 헬스장에서 벤치프레스 하다가 뛰러 나온 듯 한 근육맨, 당장 나이키 홈페이지 모델을 무리 없어 보이는 젊은 여자. 둘이 달리는 커플, 셋이 달리는 친구……
동료가 늘어난 것 같았다. 나도 달린 지 얼마 안 됐지만 선배가 된 기분도 들었다. 새로운 얼굴이 보이면 반가웠다. 지루함이 없었다. 몇 차례 마주친 동료들에겐 인사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달리는 길이라면 어디까지라도 지치지 않을 것 같았다.
날이 제법 쌀쌀해졌다. 아침에는 몸을 덥히지 않고 나가면 순간 닭살이 된다. 반바지를 입을지 긴바지를 입을지 고민을 한다.
나의 길었던 예비창업 기간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곧 정식으로 스타트를 할 것이다. 근 1년간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뜨거울 때와 차가울 때가 있었다. 동료가 있었을 때와 없었을 때가 교차했다. 이 코스가 맞는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나의 예비창업 시기는 무작정 달렸던 1년과 닮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길 위에 서있다.
작년과 같이 길 위는 한산하다.
약간은 고독하지만 즐겁게 달리기만 하면 되겠다.
1년 전부터 마주치던 몇 분과 함께.
그 많던 러너는 다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