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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쟁이 공작새 Oct 04. 2019

오늘날 기형도를 읽는다는 것

절망하는 자의 위로법

죽은지 벌써 30년이 된 시인이 있다.

그는 등단한지 불과 5년만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시집 또한 유고시집으로 나왔던 단 한 권의 시집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에게 읽히고 있다.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단 5년 간의 시작 활동뿐임에도 올해, 그의 30주기를 맞아 시인을 위한 추모 콘서트와 헌정시집이 발간되었다.

대체 무엇이 우리를 기형도라는 시인에 여지껏 매이게 하는 것일까. 


올해 발간된 기형도 시전집과 헌정시집


기형도는 아직 사회가 서슬 퍼렇던 1989년, 새벽 4시의 어느 심야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시 속에서 끊임없이 죽음을 얘기하던 이의 죽음으로 어울리다면 어울리는, 허무하다면 허무한 죽음이었다.

향년 30세에 문단 생활 5년, 짧은 인생, 짧은 문생(文生)이었지만 그의 시와 문장들은 아직도 많은 이들 가슴 한 구석에 침울한 못을 내리꽂고 있다. 


군부독재가 이어지던 80년대, 문인들은 글로써 자유를 갈망하거나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바야흐로 저항과 참여문학의 시대였다. 기형도는 그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글을 썼다. 그는 그저 슬퍼했다. 사회의 폭력이 일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먼 지방, 먼지방 속 에 갇혀 책을 읽고 있었다고 고백한다(「입 속의 검은 잎」). 그는 사회의 폭력에 저항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았다. 그저 주변의 다른 이들처럼 미쳐버린 시대와 사회를 무서워하고, 나약한 자신에 절망했다. 그는 이런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글로 써내려갔다. 시대와 사회, 자신에 대한 절망을 자신만의 언어로 우울하게 풀어나갔다. 

  

『입 속의 검은 잎』은 기형도가 생전 펴낸 유일한 시집이다. 그 속에는 우울함과 절망감, 비탄이 감돌고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침울함에 빠지게 한다. 평론가 김현이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 평한 그의 시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현실에 대한 지독한 환멸과 절망을 그려내고 있다. 힘든 어린 시절의 누나와 어머니는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모티브이며, 그 속의 자신은 ‘찬밥처럼 방에 담겨’ 외로움을 겪고 있다. 현실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기형도가 살아온 70, 80년대는 안개가 흘러나와 그 속에 일어나는 온갖 악행을 가리고(「안개」), 한 사람에게 홀린 듯 열광하며(「홀린 사람」), 시를 쓰던 후배가 자신이 기관원이라며 고백하던(「대학 시절」) 괴물의 시대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절망한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폭력과 저항의 시대 속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절망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런 상황이기에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장미빛 인생」)고 단언하며 갈 곳 잃은 방랑자, 사랑을 잃은 이, 외톨이, 늙은이 등으로 자신을 형성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사실 그의 시는 요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세련된 시'는 절대 아니다. 관념과 추상만을 풀어놨다던가, 과도하게 표현되는 감정같은 특징들은 '세련'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시는 감정을 감추려 하거나 은유로 감정을 가리려는 일은 하지 않는다. 문장의 운율이 수려하다거나, 상징이 기존을 발상을 뒤집거나 하지 않는다. 되려 노골적으로 절망하고 슬퍼한다. 거기에는 늙은이로, 방랑자로, 어린이로 형상화된 절망만이 있다. 분명 어찌보면 투박한 시다. 그럼에도 그의 시가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유를 위해 누군가가 희생하고 투쟁하던 시절, 모두가 저항하진 않았다. 모두가 소리 내어 비판할 순 없었다. 그 속에 숨죽여 절망하던, 눈물 흘리던 청춘이 있었다. 기형도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울었다. 부조리와 폭력의 시대상을 우울과 절망의 어조로 써내려간 그의 시는 침묵하던 이들, 자신을 자책하던 이들의 절망을 이해했다. 시인은 그들을 억지섞인 위로를 건네거나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함께 울어주었다.  


어설픈 연민을 건네는 자는 타인의 슬픔을 여전히 타자화한 상태다. 위로는 '멀쩡한 내'가 '슬퍼하는 너'에게 전하는 말이다. 그러나 공감은 그 슬픔과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타인과의 벽을 허물고 진심으로 그를 위로한다. 기형도의 시는 가장 우울한 감정이라 할 수 있는 절망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흘러넘치는 절망 속에 그는 아주 희미하게 반짝이는 희망을 박아넣었다.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턱턱, 짧은 숨쉬며 내부의 아득한 시간의 숨 신뢰하면서 

천국을 믿으면서 혹은 의심하면서 도시, 그 변증의 여름을 벗어나면서

-「비가2- 붉은 달」 중에서


오, 지폐처럼 흩날리는 우리의 생애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는 숱한 겨울과 싸워 이겨왔던 것이냐, 

보아라 필생(畢生)의 사랑을 껴안고 엉켜 쓰러지는 

일년초(一年草)의 아름다움이여.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2」 중에서


그는 힘없이 절망하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덧없이 스러져갈 그 미약한 생들에게 찬가를 남겼다. 절망과 슬픔에 맞서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시인에겐 '위대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아파야 청춘이라는 미신의 시대는 끝났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괴로워하고 절망하고 있다. 이에 대한 기형도의 위로법은 '다 잘 될 거야' 같은 주문이 아닌, '죽고싶다'라는 절망이다. 그의 시는 우리와 함께 함께 울고 함께 절망한다. 그러고나면, 어느새 조금, 아주 조금은 후련해진다. 시대를 넘어, 기형도의 시가 아직도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것은 이러한 절망의 공감과, 그 속에 숨은 희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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