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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주리 Aug 22. 2023

<엘리멘탈>, 사랑?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개인적인 감상평 13

<엘리멘탈>

별점 : 4개

일자 : 2023.06.29

장소 :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감상 :


* <엘리멘탈> 영화에 대한 크고 작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디즈니 100주년

디즈니 100주년, 기뻐하기만 해도 모자랄 판국에 디즈니의 기세는 예전만 못하다. 오히려 '최악'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디즈니플러스'의 적자행진에 이어서, 논란 속에 개봉한 <인어공주>가 최악의 흥행 부진으로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다.


솔직히 감상평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선, <인어공주>는 군침이 흐르는 평가대상이었다. 바쁜 일정과 귀차니즘으로 결국 볼 수 없었지만 오히려 다행이었을지도. 영화를 보지도 않았지만, <인어공주>에 대해 한줄평을 써보자면... '악평보다 끔찍한 무평'


<엘리멘탈>은 이보다 더 흉흉할 수도 없는 어두컴컴한 분위기 속에서, 나름대로 어떻게든 해보려는 듯 해맑게 개봉했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작은 성공도 어느 정도 크게 느껴질 게 분명할 터였다.


했던 거 또 하는데 또 재밌을까

사실 <엘리멘탈>을 포스터로 처음 접했을 때는 '이거 했던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었다. <인사이드 아웃>과 캐릭터 디자인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결과적으로는 픽사에게 미안한 선입견이었지만. 사실 캐릭터 디자인을 비슷하다고 느낀 것과 별개로, 픽사 애니메이션은 은근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다. 사회 전반에 대한 우화적 성질이라든가, 통통 튀는 창의력에서 기인한 전개들(그러나 다소 유치하거나 뻔한 구석이 있는)이 그렇다.

영화를 볼 때는 막상 넋을 놓고 있지만...

영화의 기본적 구조나 주제는 이미 많이 알려진 것 같아 자세히 다루려고 하진 않겠다. 다만, 픽사 특유의 '뻔하지만 결코 진부하지만은 않은'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기억을 되짚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픽사 애니메이션을 꼽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월-E>를 고를 이다. 픽사가 내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월-E>에서 전부 나왔다. 독창적인 상상력과 사랑스러운 디테일, 애니메이션을 단순히 아이들만의 전유물로 남겨두지 않는 메세지. 픽사의 모든 발걸음은 이 세 가지의 정신에서 비롯된다.


디즈니와 픽사가 융합이 되어버린 지금 와서 디즈니가 어떻고 픽사가 어떻고 왈가왈부하기엔 사실 많이 늦었다. 그래도 <엘리멘탈>이 가진 개성은 픽사 특유의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디테일 포인트는 절대 놓치지 않는 모습이나 '엘리멘트 시티'라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버리는 도전적 창의력이 돋보였다.


'주토피아'와 '엘리멘트 시티'


<주토피아>를 재밌게 봤다면 '엘리멘트 시티'를 보고 주토피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겠다. 두 도시가 가진 색채와 분위기가 너무나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엘리멘트 시티는 매력적인 도시임에는 틀림없지만, 주토피아만큼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왜일까?


사실 주토피아가 개봉한 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딱히 전문가도 아니면서 두 영화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미안하지만 나는 적어도 '빈약해 보이는 후속작'의 느낌에 예민한 편이다. <주토피아>를 영화관에서 처음 봤을 때,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도시의 각 구역이 모두 이유에 의해 디자인되어있다는 디테일이 단번에 느껴졌다. 영화에서 세계는 이야기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다. 그려내려는 세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다면, 세계는 매력을 잃고 만다.


그렇다고 매력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엘리멘트 시티는 '원소다움'으로 직관적이며 미적으로 아름답기는 하나, 주토피아처럼 치열한 고민 끝에 생성된 느낌은 아니었다. 세계가 각 캐릭터들의 매력을 부각해 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단순한 차원에서의 상상에 머물러 있다. 세계관에 공을 들인 창작자들은 자신들이 고안해 낸 세계를 구석구석 보여주고 자랑하기 바쁘다. 반면 엘리멘탈에서는 '여기는 그냥 이런 도시야. 이 부분 그래픽 쩔지'라는 태도가 느껴진다.


<아바타>급이 아니고서야 단순히 CG 자랑에 별다른 영화적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나로서는, 못내 아쉽다는 말을 붙이고 싶다.


공기, 흙 캐릭터 이름은 기억도 안 난다.


가장 아쉬운 건 영화의 가장 큰 모티브가 된 '4대 원소'의 활용이었다.


왜 4가지로 나누었는가?.... 그냥?

난 아직까지도 포스터 기준 왼쪽 친구들(공기, 흙)이 왜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4대 원소' 모티브로 만들었으니까 뺄 수는 없어서?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이 오른쪽 친구들(물, 불)이라서 어쩔 수 없이 비중이 줄어드는 건 이해하겠다만, '없어도 그만'일 정도로 만들 거면 사실 그냥 없애도 되지 않을까?


캐릭터를 아래 4가지로 분류한다고 가정해 보자.

1. 비중과 매력을 둘 다 챙긴 경우

2. 비중은 없지만 매력적인 경우

3. 비중은 많은데 매력이 없는 경우

4. 비중도 매력도 없는 경우


<엘리멘탈>은 '4대 원소'라는 소재를 가지고 와서, 2개의 원소를 4번 캐릭터로 만들어버렸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킥복싱 대회에서 주먹만 쓰는 느낌이다.


"주먹이 진짜진짜진짜 쎄면 되지 않나요?"

... 맞다.


엘리멘탈의 흥행은 단순히 엠버와 웨이드가 상당히 매서운 잽과 훅이라는 점에서 비롯되었겠다. 그래도 기왕 하이킥 로우킥도 있으면 좋지 않은가...? 명색이 4대 원소 중 하나의 대표 격인 캐릭터가 한다는 게 '겨드랑이에서 꽃털(???) 뽑기'


이건 너무하지 않냐고.


차별의 이유를 굳이 붙이지 마라


불 원소 캐릭터인 엠버는 극 중 내내 후드를 뒤집어쓴 채 도시를 다닌다. 이는 엠버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의한 부담감 때문이 아니다. 놀랍게도 엠버가 닿는 것만으로도 도시가 파괴되거나 옆 원소가 불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난스러운 디테일이겠지만, 영화가 이민자 계층을 차별하는 사회에 대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면 이래선 안 됐다. 누군가가 닿기만 해도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차별이 정당화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기, 흙, 물은 서로에게 과연 무해한가? 각각 다른 원소들이 어떻게 사회를 이루어나가는지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서, 엠버의 '파괴적 면모'(의도와는 일절 관계없이) 때문에 후드가 강요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네 원소가 어떤 식으로 공생하게 되는지 결말부, 심지어는 크레딧의 단편적 아트에서조차 속 시원하게 보여주지 않았다.


웨이드와 엠버


웨이드와 엠버는 각각의 원소에서 느낄 수 있는 직관적인 외형과 성격,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엠버는 불 캐릭터로 열정적이고 다혈질적이며 웨이드는 물 캐릭터로 감성적이며 낙관적이다.


"그럼 다른 불, 물 캐릭터들도 그래요?"

"그렇죠?"

"주인공 성격이 딱히 특별하진 않네?"


주인공 성격이 특별할 필요는 없지만 원소와 그 성격이 비슷하다면, 다혈질의 도시 파이어시티가 나름 멀쩡히 발전 중인 게 놀라울 따름이긴 하다. 각각의 원소가 가진 성질을 문화가 만들어내는 보편적 가치관에 한정하고, 각각의 자아에 따른 개성 있는 성격이 드러났다면 캐릭터들은 더 입체적이고 매력적으로 묘사되었을 테다.


감독인 피터 손이 한국계 미국인이라 그런지(선입견이겠지만) 엠버와 웨이드는 한국형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캐릭터다. 엘리멘트 시티는 물이 기반인 도시로, 대부분의 시설이 물 친화적으로 되어 있어서 물 캐릭터인 웨이드는 부유한 집안의 걱정 고민거리 없는 낙천적인 아들내미다. 반면 엠버는 엘리멘탈 시티 외곽의 이민자들을 위한 도시에서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착한 딸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장녀고.


엠버의 후드는 재질이 뭘까.

근래에는 PC, 여성 서사가 두각 되면서, 이런 신데렐라풍의 전개는 지양되는 분위기였다. '백마 탄 왕자'는 클리셰 중의 클리셰잖아. 웨이드는 백마가 아니라 배관을 타고 나타났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구조는 너무 뻔해졌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엠버가 가진 고민들은 개인적이지만, 엠버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회적이다. 영화는 늘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에 기반해 극을 전개하며, 주인공의 고민은 곧 사회를 관통하는 고민이 된다. 엠버는 이민자 계층의 소수집단이 받는 차별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책임감과 부담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캐릭터다. 엠버는 개인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래서 무섭게도, 엠버가 맞이하는 결말은 우리의 결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세계의 지배계층인 웨이드 입장에선 엠버 같은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 게 당연하다. 보다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며 감정 표현도 자유롭다. 꿈을 꿔 본 적도 없는 엠버의 입장은 어떤가? 재능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어색하며, 자신을 돌아볼 여유 또한 없다. 가업을 이어받는 게 일생의 목표였을 뿐인 엠버에게 웨이드는 말 그대로 인생의 전환점이다.


극에서 엠버는 꽤 주도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행동이 웨이드의 배려와 오지랖에 커다란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임은 변하지 않는다. 엠버의 미래는 본인과 웨이드의 노력으로 개척되었지만, 엠버가 소속된 사회의 모습은 변화도 없다. 수많은 엠버들이 여전히, 오히려 웨이드들을 배척하기도 하며... 허우적댈 것이다.


현실의 문제를 조명하는 영화에서, 어떤 영화적 해결책조차 제시하지 않은 건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이민자 계층의 차별 문제에 대해 픽사더러 '해결책 좀 줘봐' 하는 건, 이것도 부조리긴 하지만... 영화적 차원에서 위로를 받기 위해 앉아있는 관객들에게는, 최소한 납득할 수 있는 만큼의 해결책을 제시해야 했다.


엠버의 자아실현은 응원받을 일이지만, 그 모습에서 우리가 위로받을 수 있는 부분은 잘 없다... 엠버조차 차별을 온전히 극복해내진 못할 것이다.


"애니메이션인데 너무 현실적으로 보는 거 아닌가요?"

... 맞다. 그런데 애초에 주제를 현실적인 걸 들고 왔으니까 이입할 수밖에 없지 않나?


두 원소의 사랑은 분명 아름답고 신비롭지만... 이 사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는 단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했다.


달다......


근데 달다. 웨이드의 유쾌한 성격과 귀여운 행동들, 그를 좋아하게 되면서 점차 변화하는 엠버의 모습도 마냥 보기 좋고 달달구리하다. 싫어하는 점을 10가지 꼽을 수 있어도, 정말 좋아하는 이유 한 가지만 충족되면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것처럼. 이 영화는 엉성한 세계관과 꼬집지 않고는 못 배기는 포인트들을 갖고 있으면서, 그저 몽글몽글한 배경음악과 영상미로 얼버무리는 매력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둘의 사랑이 '보편화된 모습'으로 영화가 결말을 맞이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엠버의 행복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 아쉬웠달까. 엘리멘트 시티라는 거대한 세계관이 둘의 사랑에 기인해 변화되는 모습이 등장했다면 좀 웅장했을 텐데.


그래도... 귀여우니까.

두 원소가 맞닿을 수 있는 이유는 '라이덴프로스트 효과' 때문입니다.

엠버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즉 반대되는 특징에 스스로를 비춰보고 꿈을 점화했다. <엘리멘탈>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성취는, 상반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결국은 자신을 이해하는 결과를 이끌어올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가장 크게 변화한다. 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하고, 때로는 과감해지고 때로는 위축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을 할 때,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또한 변화다. 상반된 서로를 만나 사랑할 때, 우리는 가장 크게 변화하며 성장할 것이고 동시에 가장 크게 두려워할 테지만...


그럼에우리는 분명히

사랑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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