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감상평 16
*<로봇 드림> 영화에 대한 크고 작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소심함의 역사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나는 소심하지만은 않았다. 축구를 하는 모르는 친구들에게 껴달라고 하기도 하고, 끼어들어서 해결될 것 같은 사이즈의 불의 정도는(각 재는 건 약간 추하긴 하지만) 참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말도 잘 걸고, 욱하는 감은 있었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하는 편이었다.
욱하고, 덤벙대고, 세심하지 못했던 탓에 나는 결국 몇 번의 사고를 쳤다. 돌이켜보기 껄끄럽고 부끄럽기에 덮어놓고 지내고 있지만... 나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몇몇 사고들.
결과적으로, 나는 많이 소심해졌다. 내가 느끼기에 '소심함'이라는 건 단순히 '내향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물론 내향적인 사람이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을 전부 소심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내가 주변을 통해 듣는 '너는 소심해'라는 말에는 '넌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내향적인'과 '외향적인'은 서로 반대의 성질일 뿐인 개념이지만, '소심함'과 '대범함'은 어느 정도는 우열이 정해져 있는 개념이다.
내가 소심한 이유는, 나에 대한 믿음이 모자라기 때문이겠지.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극복하기가 쉽지는 않다. 나는 그래서 자꾸만 나를 더 적극적으로 만드는, 나를 변화시키는, 어쨌든 나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과 일들을 좋아한다. 그것들이 나를 조금은 더 아프게 했을지라도.
개 같군.
<로봇드림>의 주인공격인 '도그'는 왜인지 나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였다. 어딘가 어수룩하고 소심하고... 사소한 일들조차 뭐 하나 멋지게 하는 일이 없었던 나.
외로움을 타는 편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붙잡고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먹은 거냐'라고 하소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위로라거나 응원을 바라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나 스스로가 답답해서였다. 휘둘리지 않고, 쪼그라들지 않으며, 열등감에 욱하지 않는, 나를 만들고 싶었다.
도그의 일상은 어땠는가. 옆집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배경음악으로 TV화면을 바라보는 도그의 모습은 무료하고 외로워 보일 뿐 아니라 어딘가 애처롭다. 여담이지만 게임을 너무 재미없는 걸 한 탓도 있지 않나? 야식과 재미있는 게임. 대체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1980년대가 배경인 것 같으니 이건 넘어가자...
로봇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 도그의 모습은 왜 이렇게 나와 같을까. 내 힘으로 해결해 보려다 안 되고, 도움 요청도 똑바로 못하고, 간단한 설명조차 하지 못해서 오해받고, 일만 키운 채 자연스럽게 해결될 때까지 방치해 버리는 모습까지.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서 억울하겠지만, 분명 방법은 있었을 테다. 개 같지만 나도... 방치해 버린 로봇들이 이곳저곳 누워 있다. 도움 청하기가 민망해서, 너무 먼 길을 돌아가기 귀찮아서, 어려운 방법은 배우기 싫어서, 남들 앞에 나서기가 무서워서, 나 자신을 못 믿어서.
내가 어딘가에 버려둔 로봇들.
그러니까 내가 잊어버렸거나, 잊어가고 있거나, 잊고 싶어 하는,
꿈일 수도, 친구일 수도, 사랑일 수도 있는 그것들은-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부서졌을 테고.
사랑하지 마.
아니, 사랑은 해야 된다.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로봇이든(?) 그것도 아니면 어떤 개념이든...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어떻게든 망가지게 되어 있다. 물론 사랑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겠지만. 올바른 사랑이라는 전제 하에,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무언가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로봇드림>은 내가 앞서 다르게 비유하긴 했지만 분명 사랑 영화다. 영화를 함께 본 친구 N은 영화가 전통적인 헤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않은 것에 대해 낙담했지만, 이보다 자연스러운 결말이 어떻게 존재할까. 세상에 사람처럼 걸어 다니는 강아지와 꿈을 꿀 줄 아는 무생물 로봇이 서로 사랑하는 영화인데,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마음에 와닿다니.
삶을 살아가는 가장 큰 의미 중에 하나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는 것이겠다. 사랑은 고착된 삶이 변화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가 된다. 소심한 나의 등을 떠밀어주고, 움츠린 다리를 움직이게 만들고, 입을 열어 노래를 부르게 만들었던 것도 사랑이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중에 하나는 누군가에게 똑바로 마음을 전할 줄 몰라서였고, 운동을 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누군가가 그 운동을 좋아해서였다.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내가 재밌어서였지만. 우리는 어떤 일에 재미를 느끼는 것조차 다른 이에게 영향을 받는다. 좋아하는 사람이 즐겨 듣는 노래를 따라 듣다가, 어느새 취향이 바뀌어 버리는 것처럼.
도그와 로봇은 각자 어떻게든 이별을 견딘다. 애달프긴 하지만 이별한 후에도 삶은 이어지잖아. 과거에 매달리는 것조차 사랑의 일부이나, 과거에만 매몰되어 있는 건 분명 문제가 있기에. 도그는 삶의 또 다른 의미를 찾는다. 너무 어렵거나 가치관이 맞지 않거나, 마음을 준 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무수한 일들 속에서.
로봇이 꿈을 꿀 줄은 몰랐지만(제목이 '로봇 드림'이잖아...), 질투 같은 걸 할 줄은 더 몰랐지만, 로봇은 무구했던 지난날들과는 다르게, 관계에 대해 되새긴다. 사랑의 감정은 찬란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불안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자신이 대체될지도 모른다거나, 이곳에 영원히 갇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꾸는 꿈들과 현실이 모두 정반대로 이루어지며 영화의 결말이 또렷해진다.
결말이 불만일 수는 있지만, 도그와 로봇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됐으니까. 세계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나아가고 있으며, 다가오는 순간들을 선명하게 받아들이는 게 더 중요하니까. 도그는 새로운 인연을 조금 더 섬세하게 대할 줄 알게 되었고, 로봇은 감정적으로 보다 성숙한 판단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이별도 사랑의 일부고 어쩌고 하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나랑 어울리지도 않고... 뭘 안다는 듯이 주절거리기도 싫지만... 지난 인연에 감정을 수탈당하지 않고, 흘러가는 삶 속에서 더 나은 가치를 찾으려고 할 때 우리는 다시금 성장하지 않을까.
지나간 일에 매몰되어 스스로 망가지지 않는 것.
다가오는 순간들을 보다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것.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춤을 참지 않는 것. (???)
그게 <로봇 드림>이 우리에게 주려는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