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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관 Aug 09. 2017

하나의 카페, 네 가지 사연

영화 <더 테이블>


 영화를 만들게 된 사람들 대부분은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들이다. 나 또한 내 주변의 사람들보다 조금 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고 어느새 영화를 만든다는 것을 꿈꾸게 되었다. 꿈을 꾸고 긴 시간이 지나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 때 자연스레 내가 보고 좋아했던 영화들, 취향이 되어버린 영화들이 내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의 바탕이 되었다. 

 그 외에 나이를 먹어가며 생기는 나의 관점과 나의 경험들, 그리고 연극, 뮤지컬, 음악, 미술, 사진, 소설 등  나에게 자극을 줬던 다양한 문화들이 내가 만들어 나갈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내가 창작으로 다루고자 하는 세계 그리고 창작적인 취향은 그렇게 내 과거의 모든 산물들의 종합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 중 강한 기억으로 남은 것들이 재료로 쓰이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문화적인 경험이 풍부해야 좋은 창작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 기억의 재료들이 몇 가지 되지 않는다 해도 창작에 대한 테마를 지니고 있고 그 안에서 구조화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다음의 질문을 해 나갈 수 있다면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다. 


 곧 개봉할 <더 테이블>에도 나만의 개인적, 문화적인 경험, 그리고 취향들이 묻어 있다. 때로는 의도에서 영화가 시작되지만 <더 테이블>이라는 영화는 어떤 취향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 어떤 취향 중 하나는 소설이다. 그중 짧은 소설들. 나는 소설의 길이를 따지지 않지만 그러므로 짧은 소설들도 많이 읽는 편이다.    

 안톤 체홉과 레이먼드 카버, 제임스 셜터, 엘리스 먼로, 헨리 제임스, 줌파 라히리, 마츠모토 세이초 등의 작가들이 쓴 단편소설들은 내가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적잖은 토양이 되었다. 요란한 수식 없이 함축적으로 내용과 정서를 전달하기도 하고,  단 하나의 장면으로도 인간의 삶이 드러난다. 한 사람이 느낀 긴 삶의 슬픔도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도 혹은 짧은 시간의 토막으로도 보이지 않는 삶의 이면을 이야기한다. 

  <더 테이블>은 짧은 글로 여러 삶을 보여주던 단편소설을 좋아하던 내 취향들이 반영된 작업이다. 이 영화가 단편영화의 형식과 닮아 있음으로 단편소설과 단편영화의 형식이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단편소설의 형식은 장편영화가 될 수도 있고 단편영화가 될 수도 있다. 다만 단편소설 중 어느 하나의 성격이나 단면을 보여주면서 전체를 상상하게 하는 이야기의 성격을 좋아하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즐겨한다. 나는 장, 단편 영화를 가리지 않고 많은 작업을 하고 싶지만 굳이 어떤 경향을 내가 가지고 있다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형식은 단편소설과 닮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영화 <더 테이블>은 하루 동안 하나의 카페 안, 하나의 테이블 위에서 벌어지는 네 가지 이야기에 관한 영화다. 테이블을 두고 두 명씩 짝을 지어 대화를 시작한다. 관객들은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전체의 과정이 아닌 툭 잘린 사연의 단면들만 들을 수 있다.  단편소설의 형식과도 닮아 있고 단편영화의 형식과도 닮아 있다. 하지만 나는 관객들이 등장인물의 짧은 대화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그들의 삶의 경험과 감정을 읽고 교감을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 이야기들이 모두 스쳐 지나가고 관객들이 단 하나의 인상을 가질 수 있기를, 카페와 테이블이라는 공간과 물체가 바라본 사람에 관한 이야기에서 노출되지 않은 것들을 상상하고 인물들에게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영화 <더 테이블>은 조금 낯선 방식의 영화다. 상업영화의 관점에서도 그렇고 다양성 영화로 봐도 나름 새로운 시도가 있다. 새로운 시도는 항상 조금씩 외롭다. 발자국이 드문 길이기 때문이다. 작은 예산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투자를 받을 수 없는 프로젝트다. 투자는 없었지만 좋은 배우와 좋은 스텝이 조금씩 소중한 시간을 내어줬고 단 7일의 촬영 기간으로 모든 프로덕션을 마칠 수 있었다.  


 글에 대한 취향에서 이야기가 왔지만 이 곳에는 배우들이 있었다. 두 명의 배우 앞에 카메라를 놓았다. 생생하고 깊이 있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들이 각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렇게 하나의 사연을 끝내면 다음날 같은 테이블 같은 의자에 다음의 배우들이 앉았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또다시 배우들은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를 하거나 대화를 듣거나 눈길이 오가고 엇갈리며 배우들은 나의 글에 생명을 덧대어 주었다. 나와 스텝들은 숨 죽인 채 그들의 대화를 보았고 배우들이 떠나면 빈 공간을 찍었다. 긴장의 시간들이 지나고 모든 촬영이 끝난 후 난 배우들이 떠난 의자에 앉아본 적이 있다. 모든 것이 지나간 텅 빈 공간에 이야기들이 남아있었다. 테이블 위에도, 창밖 거리에도, 지나갔고 내가 보았던  것들이 그곳에 남아있었다. 





http://tv.kakao.com/v/375865424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6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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