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와 플라스틱 산업
돈은 삶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격언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러나 전 국민이 하는 생업의 가치를 국가에서 생산된 재화의 판매가격으로 줄을 세우는 마당에, 사회와 기업 그리고 가정에 스며든 화폐 기준 가치평가가 쉽게 사라질 수 있을까?
화폐 기준 가치로 볼 때, 플라스틱은 우수한 물질이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다. 한편 친환경을 논할 때면 선과 악의 대결 구도가 등장하고 플라스틱은 악역으로 대상화되어 공격을 받는다. 다 쓴 플라스틱 상품을 제대로 처리 못한 상황이 그리 만든 게 아닐까? 하지만 꼭 필요한 곳에 잘 사용하고 순환한다면 플라스틱도 얼마든지 선한 편에 설 수 있다. 화폐뿐만 아니라 천연자원의 가치와 생물다양성을 고려하는 순환 경제 관점에서는 플라스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2018년에 EMF(Ellen MacArthur Foundation, 엘런맥아더재단)와 UNEP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 유엔환경계획)이 공동으로 선언한 New Plastics Economy 글로벌 선언은 2016년에 EMF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출발했다. EMF는 아래 두 도식으로 내용을 널리 알렸는데, 하나는 선형 경제 다른 하나는 순환 경제에서의 플라스틱의 자원 흐름을 도식화했다.
자원을 취하여 사용하고 버리는 선형 경제의 플라스틱 흐름 도식에서는 2016년 당시 7,800만 톤의 플라스틱 자원에 대한 통계도 있다. [1] 편 말미에서 언급한 ‘업사이클링’이 포함되는 ‘가치저감 재활용(Cascade recycling)’ 즉, 본래 상품의 가치보다 낮은 가치로 재활용되는 8%를 포함한 14%만 재활용되었고, 40%는 매립, 32%는 유실 혹은 오염원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새로운 플라스틱 흐름은 새로운 원료, 발전된 방식의 재활용, 생분해 등을 활용한 닫힌 고리 (closed loop)를 비전으로 내놓았다.
새로운 원료 & 생분해
굉장히 많은 종류의 생분해 플라스틱 원료 중 하나인 옥수수 플라스틱이라고 알려진 PLA(Poly-lactic Acid)가 발명된 해는 무려 1932년이다. 경제성, 범용성 등에서 PS, PE 등에 뒤지기 때문에 널리 쓰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식물유래 전분에서 추출하는 점이나 특정 조건에서 생물학적인 분해가 가능하다는 성질 덕분에 새로이 주목받고 있고 또한, 3D프린터에 필라멘트 소재로 적합하여 생산량이 늘고 있다. 일반 소비재도 PLA 제품이 친환경 상품으로 일부 유통되고 있는데, 실제로 사용이 끝난 후 생분해 처리를 경제성 있게 하는 사례는 드물다. 상업화 퇴비화 시설이 있는 미국에서는 미식축구나 야구 경기장에서 쓰는 일회용 컵을 모두 PLA로 만들어 쓰고 한 번에 모아 생분해를 시키는 사례도 있다. 다만, 대규모 상업적 퇴비화 시설이 부족한 아시아 지역은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생분해 플라스틱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특히, 글로벌 화학가공 기업이 다수 소재한 한국에서는 PS 원자재 가격이 매우 저렴하여 PLA의 가격 경쟁력이 약하다는 사실도 있다. 미생물을 원료로 한 PHA는 PLA보다 생분해성은 우수하지만 상용화는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걸로 알려져 있고, 상용화가 되더라도 범용 플라스틱보다는 특수목적용으로 먼저 적용될 거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적절한 생분해 처리를 위해서는 적합한 폐기 시스템이 필요한 상황이다.
발전된 방식의 재활용
화석연료에서 정제된 화학물질인 플라스틱은 보통 쌀알 모양으로 원료 유통된다. 원료를 뜨거운 열로 녹이고 틀로 찍어내면 일상에서 보는 상품이 된다. 상품의 수명이 끝나고 분리배출을 거쳐 재활용하는 데에는 기계적 방식이 쓰이고 있다. 플라스틱 상품을 부셔서 쌀알 모양으로 다시 만드는 것인데, 같은 성질의 재질끼리 모으고 나누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애초에 상품을 만들 때부터 어떻게 버릴 수 있는지를 생각하여 디자인을 해야 한다. 한편 복합재질에도 대응할 수 있는 화학적 재활용 방식도 있다. 열분해, 용매 정제 등으로 플라스틱 상품을 본래의 화학물질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앞으로 화학공업 기술이 더 발전되기를 기대하지만, 아직까지는 재활용을 위해 추가로 들어가는 공이 많아 효율성과 경제성 면에서 시간이 더 필요할 거라 본다.
재사용
순환 경제의 새로운 플라스틱 흐름 도식의 안쪽 타원은 재사용이다. 소주와 맥주의 가격에 유리병 반환 보증금을 포함하고 병을 회수하고 씻어 새 술을 담아 재판매하는 유리병 사례와 같은 재사용을 말한다. 상품을 원래 모양 그대로 여러 번 다시 사용한다면 새 상품을 만들기 위한 플라스틱 자원도 줄이고, 버리는 플라스틱을 처리하기 위한 노동과 재화도 덜 필요하게 된다. 위생과 청결을 위한 포장지, 한 두 번 사용하고 버리는 음료 컵 등 악역으로 공격받는 플라스틱은 대부분 일회용인 경우가 많다. 일회용 컵과 생수병에 보증금을 매겨 돌려받는 방법도 필요하지만 애초에 다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마시는 것이나 일회용 쇼핑봉투를 유상으로 판매하여 장바구니를 쓰도록 유도하는 방법 등 플라스틱을 잘 아껴 쓰는 방법은 플라스틱의 순환고리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
EMF의 새로운 플라스틱 흐름에서는 플라스틱 상품의 수명이 끝나는 순간도 제품의 설계와 디자인 단계에서 고민하라는 주문이 가장 주요한 요소이다. 이 고민은 [1]에서 설명한 순환경제의 제1원칙을 고려하여 제품과 서비스를 다시 생각해 보는 데에서 출발할 수 있다.
EMF가 2016년에 쏘아 올린 공은 전 세계 플라스틱 업계와 국가 규제 등에 움직임을 이끌어 왔고 그것은 UNEP와 함께 The Global Commitment 2022로 진화되어 전 세계 500개가 넘는 조직이 플라스틱의 바른 사용을 위해 연구를 하고 사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Plastic Pact로도 조직화되었다. Plastic Pact는 전 세계 각 국가, 지역별로 조직되어 플라스틱에 관련 규제와 선도 사례를 만들기 위한 논의에 집중하고 있다. 각자의 사정에 맞는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조직들이 참여하고 있고, 전체와 관계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스템 사고로 플라스틱의 죄 없는 사용을 도모하는 움직임이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나 걱정이 많다. 실수로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외출을 했다면, 집에 돌아와서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이다. 물론, 넘친 물도 잘 치워야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