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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종규 Feb 15. 2023

[4] 의 衣 Fashion

순환경제와 패션 산업

스티브잡스 같이 실용적인 의류만 고집하는 사람일지라도 공장에서 만든 옷을 사 입고 낡으면 버리는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자원을 취하고, 버리는 선형 경제 구조에서 쉽게 눈에 띄는 악역, 패션.

사뭇 다르면서 멋지게 만드는 일에 매진하는 디자이너가 모여 경쟁하는 패션 업계이다. 경쟁에서 필요한 건 차별화 기회이다. 

EMF가 2017년에 발표한 A New Textile Economy에서 말하길, 선형 경제 구조 아래에서 패션 기업이 놓치고 있는 점을 순환 경제 관점에서 접근하면 변화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지속가능성 분야 기업 사례에서 빠지지 않는 프라이탁 FREITAG과 파타고니아 Patagonia가 모두 패션 업계에 있다는 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선형 경제 구조에서 패션 업계가 놓치고 있는 점은 무엇일까? 더 나은 염색 방법, 튼튼하고 고치기 쉬어서 오래 입을 수 있는 방법, 필요에 딱 맞는 옷을 잘 고를 수 있는 방법 등 허점이 있기에 보완책을 제시하여 차별화를 하는 여러 시도가 나오고 있다. 허점 중 하나는 바로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

대부분의 세탁기의 기본 설정은 온수 세탁인데, 냉수 세탁을 하면 물을 덮이는데 필요한 에너지도 아낄 수 있으며 미세플라스틱도 덜 생긴다고 한다. 플라스틱은 세탁기 안에서 플라스틱 직물의 마찰이 생기면서 흘러나와 화학세제와 섞여 하수에 섞여 흘러간다. 프랑스에서는 2025년부터 출시하는 모든 세탁기에 미세플라스틱 필터를 장착하라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가전제품 제조사가 두 개나 있지만, 국내에서 유통되는 세탁기에는 미세플라스틱을 걸러주는 장치가 아직 없다. 2015년에 조사한 위 도식의 수치를 보면, 97%의 직물 원료 중 플라스틱은 63%가 차지하고 있다. 기능성 소재를 비롯한 많은 의류 등에 석유 유래 직물을 쓰고 있는데 이 화학물질은 옷을 입을 때 인체에 끼치는 영향도 좋지 않고 더불어 생산과 폐기과정에서 해양 유출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위험이 보고되면 될수록 소비자가 안심할 수 있는 대안을 기대하는 수요가 늘어가고 있다.

변화는 제품을 설계하는 디자이너의 손 끝에 달려있고, 그 디자이너에게 일을 맡기는 기업의 전략에 기대고 있다. 안전하며 양심의 가책이 덜한 상품을 소비자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는 과한 것일까 아니면 놓치고 있는 기회일까?


Teemill 

영국의 스타트업 Teemill은 중소 패션디자이너를 위한 제조대행 솔루션을 제공한다. 유기농 면으로 만든 티셔츠에 디지털 프린팅을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전기는 모두 태양열이나 풍력 발전에서 가져온다. 제작과정에서 발생한 자투리 천으로 포장한 상품을 소비자가 받아서 입고 해지면 다시 Teemill에 보내면 직물을 재활용하여 새 티셔츠를 만드는 데 쓴다. 낡은 옷을 보낸 소비자에게는 점수를 주고 모인 점수로 새 옷을 주문할 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놀랍게도 이 모든 과정에 들어가는 자원과 영향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The Jeans Redesign

튼튼하게 오래 입을 수 있는 작업복을 찾다가 발명한 청바지는 패션산업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만들 때 쓰는 화학물질과 생기는 환경오염이 알려지며 새로운 발명이 필요한 시점을 맞이했다. 현재 100여 개의 제조사가 참여하고 있는 국제적 협의체 The Jeans Redesign은 순환 경제에 걸맞은 청바지를 만드는 가이드를 만들어 따르고 있다. 더 튼튼한 천연소재를 고르고, 패치 대신에 프린트를 하고, 레이저로 워싱을 하는 제조 단계의 변화는 물론 수선이 편리하도록 리벳을 디자인하고 헌 옷을 수거하는 체계를 갖추자는 제안 등을 담고 있다. 100개의 로고 중에 리바이스 같은 익숙한 해외 브랜드는 눈에 띄지만 한국 브랜드가 어느 것인지 눈치채지 못했다.


Good on you

윤리적 소비행위에 가이드를 제공하는 큐레이션 플랫폼이다. 환경, 노동, 동물복지 총 세 가지 영역에서 점수를 매긴 패션 브랜드를 모아 소개한다. 얼마나 리더십을 보이고 있는지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는지에 따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 큐레이션 목록에서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나 인종 다양성 등을 고려하지 않는 브랜드는 찾아보기 힘들며 동물성 소재를 쓰는 상품도 볼 수 없다. 온실 가스 배출이나 물 사용에서 부터 공정무역까지 다양한 측면을 제품 공급망 전반에서 살핀 내용을 모두 공개하고 있다.


GRAENN 

의류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맹점에서 출발했다는 한국의 패션 스타트업 그라인은 버려지는 원단을 활용한 상품을 출시했다. 천연 인디고 염료를 활용하고, 일반 폴리에스터와 재생 폴리에스터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비교하여 소비자에게 공유한다.


Circos 

네덜란드에서 출발해 유럽 인근지역으로 시장을 넓힌 아동의류 구독 서비스 모델이다. 아기가 태어나고 첫 2년 동안 약 280여 벌의 옷이 필요한데 한 옷은 길어야 세 달을 넘기지 못하는 점을 들어, 작아서 입지 못하는 아동의류를 돌려받아 손 본 후에 다른 구독자에게 보내주는 서비스이다. 여러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여 다양한 수요를 맞추고도 있다. 아동의류 말고도 의류대여나 구독 사업 형태는 많다. ThredUp처럼 헌 옷 재판매로 성공한 사례도 있다. 이런 사업형태는 상품을 원래대로 최대한 사용한다는 점에서 순환경제 측면에서도 좋지만 싫증 나기 쉬운 옷을 옷장 안에 가둬두지 않게 도와주기도 한다.


지속가능성을 말하며 선과 악의 대결 구도를 그리는 표현은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보호의 기능을 넘어서 자기표현 수단으로써 최고 경지에 이른 패션산업을 악역으로 둔다 한들 약해질 리 없다. 전세를 바꾸겠다고 하면, 순환 경제로 전환하는 게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상품의 수명이 길도록 원료를 고르고, 순환 유통 구조로 바꾸고, 수명이 다해도 다시 쓸 수 있는 패션을 디자인하는 창의성이 세계 곳곳에서 반짝거리고 있으니 방법을 모르기는 어렵다. 결정이 필요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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