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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종상 Mar 05. 2018

철학, 하라

1. 교육이 중요하다

(어른들이) 센카쿠 열도, 다케시마(독도), 북방 영토를 지켜 주시고 일본을 악당 취급하는 중국과 한국이 생각을 바꿔 역사교과서에서 거짓을 가르치지 않도록 해주세요.

2017년 3월 1일 SBS 8 뉴스



최근 페이스북에서 본, 1년 전 SBS 뉴스 영상이다. 

기사는 이 유치원을 일본 아베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영상 속 아이들에게 중국과 우리나라는 어떤 대상으로 자리 잡았을까? 혹시 1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까? 교육이 권력의 도구가 되었을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실례다. 사실,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권력이 교육을 도구로 삼았던 시절이 있었고, 지난 정부에서도 역사 국정 교과서가 큰 이슈였지 않았던가.


‘교육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어떻게 하면 더 바른 교육이 이루어질까?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래 산 자들에게는 바르게 교육할 의무가, 이제 세상을 알아가는 이들에게는 바른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게 순리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우리는 바른 교육을 위한 방법으로 교육을 제공하는 이들, 즉 교육자의 질과 정책 개선에 주로 치중했었다.



이제는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제안 1 

교육도 생산과 소비의 원리가 작동함을 이해하자. 교육 분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긴 하나 깊이 들어가면 매한가지다. 


제안 2 

생산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이는 소비자뿐임을 잊지 말자. 그렇다면 교육에서 생산자는 누구인가? 교육자다. 교사, 그리고 교육을 주관하는 정부 등 교육 제공자라 할 수 있다. 생산자는 자발적으로 소비자를 위해 변화하지 않는다. 현실에 분노(?)한 소비자가 생산자가 된 경우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기억하는가? 예전에는 황색 달걀보다 하얀색 달걀이 더 많이 보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황색 달걀이 더 좋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황색 달걀을 더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산자들은 황색 달걀을 더 많이 생산하게 되었다. 과일은 또 어떠한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우리는 보통 과일을 살 때 겉모양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생산자는 그럴싸한 포장을 씌우기도 하고, 반짝반짝 윤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처리들이 정작 우리 건강에는 좋지 않다. 황색 달걀이 좋다고 소문을 퍼뜨린 게 생산자일 수도 있고, 먼저 과일 모양에 정성을 들인 당사자도 생산자일 수 있다. 보통 처음엔 생산자가 소비자의 소비를 추동하니까. 소비자가 무지할수록 더욱 그렇다. 생산자는 자신의 이익을 좇는 존재다. 글 첫머리에서 일본 아베 정부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거짓 교육을 하도록 지원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생산자에게 정직과 정의 그리고 공평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지켜야 할 법을 지키기만 해도 감지덕지다. 


제안 3 

따라서 소비자의 철학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교육에서 소비자는 누구인가? 당연히 피교육자다. 학생과 학부모라 보면 된다. 경쟁의 교육을 벗어나 바른 교육을 받고 싶다면 소비자가 그것을 원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동안은 이를 원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소비자라는 하나의 커다란 주체는 바른 교육을 원했을지 모르나 개별적인 소비자는 그렇지 않았다. 겉으로는 경쟁의 교육을 벗어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나는, 내 아이는 다른 친구, 다른 아이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가야 했다. 더 좋은 스펙을 쌓아야 했다. 사회가 그러한 스펙을 원하기 때문이라 강변하려는 이도 있을 것이다. 아니다. 이 역시 나는, 내 아이는 누구보다 더 좋은 곳에 가야 한다는 욕망(?)의 고백과 다름없다. 모든 곳이 그런 스펙을 원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모든 이가 그런 곳에 갈 수도 없다. 하지만 소비자는 자신의 욕망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계속해서 더 나은 곳, 더 좋은 곳을 선택하려 한다. 생산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런 소비자의 욕망을 계속 부추기고, 그런 생산자의 논리에 놀아나는(?) 소비자는 생각보다 많다. 물론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문제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고 욕망이 욕심이 아닌 것은 아니다. 


제안 4 

철학, 하라. 상식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 자신의 철학을 구축하라. 상식은 우리 이성의 기저에 이미 새겨져 있는, 본성에 내재된, 마땅히 그러한 또는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치이자, 이해하고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유의 바탕이다. 철학은 필연적으로 소신을 수반한다. 쉽진 않지만 담대히, 그리고 소신껏 자신의 철학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삶이 바른 삶임을 서로 인정하고 나누어야 한다. 그렇게 철학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교육이 달라진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는 모두 각자의 몫과 역할이 있다. 돈이 진리가 되어 버린 현대지만, 잠시 돈을 빼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 사회를 지탱하는 귀한 인생들이다. 위, 아래는 없다. 발은 손을 질투하지 않는다. 귀는 입보다 높이 있다고 우쭐대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자신의 재능을 갖고 있다. 자신의 재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 더 행복하리라.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그렇게 돈이 잘 벌리는 일이 내 목표가 되고, 사람도 일도 돈으로 줄 세워지는 오늘날, 이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오직 철학밖에 없다. ‘정신 승리’하라는 말이 아니다. 정말 맞는 길을 당당히 가자는 얘기다. 

철학을 바르게 구축하면 자신에게 맞는,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역량보다 더 큰, 자신의 재능과는 다른 일을 생각할 수도 있고, 도전할 수도 있고, 실제 그런 일을 해 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모두 그렇게 힘겹게 살 필요는 없다. 이제는 그러지 말라고 가르치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인생의 초점을 일류 대학에, 일류 직장에 두어야만 잘 사는 게 아니라고, 너의 길을 가라고, 그게 정답이라고 응원하는 교육이 절실하다.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이는 결국 교육을 받는 소비자다. 내가 그걸 원한다고, 정말 원한다고, 그러니 일류 대학, 일류 직장, 그런 헛소리 좀 집어치우라고 진심으로 소리쳐 보라. 우리는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촛불 혁명을 이뤄냈다. 교육도 바꿀 수 있다. 그대, 소비자인가? 철학,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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