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About Lily Chou-Chou, 2001
“소원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면 왠지 이루어질 거 같아 가지고, 친구들이 자살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살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잘 모르겠는데…. 열심히, 할 수 있는 거 있으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항상 우리 존재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 부문을 수상한 키라라의 소감이다. 나는 이를 이후 근 10년이란 시간이 흘러 자몽살구클럽에 같이 손잡고 가고 싶은 이에게 들어 알게 됐다. 나는 그가 정말 잘 살아냈으면 좋겠다. 내일도, 다시 내일도, 또다시 내일도 계속 맞이했으면 좋겠다.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데이터가 싫어 스스로 SNS를 닫은 그가 내 글을 보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를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그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키라라의 저 말을 들을 때 무언가 번쩍이는 것이 내 안에서 일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하 <릴리 슈슈>)의 주인공, 릴리 슈슈라는 가수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열네 살의 하스미(이치하라 하야토)는 릴리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이는 ‘릴리 필리어’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릴리를 사랑하는 이들은 릴리에게서 ‘에테르’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에테르라는 것이 무엇인가? <릴리 슈슈>를 봤음에도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찾아보니 한때 빛의 파동이 전파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매질이었다는 것이 현대과학에서는 존재 자체가 부정됐다고 한다. 하지만 릴리 필리어에 릴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에테르를 느꼈다고 한다. 몇 가지 적어봤다.
내 고통은 에테르로 치유된다.
아이디: 유메코
내겐 소중한 것이 있다.
친구도 있고,
부모도 있고,
애인도 있다.
하지만 그들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는다.
모두 그걸 견디며 살아간다.
그래서 에테르가 있다.
평온함과 영원한 장소,
그게 에테르.
아이디: 레스폴
릴리에겐 보일 거예요.
우리에겐 안 보이는 무언가가.
그게 에테르라면,
릴리 음악을 들을 수밖에.
아이디: 아이스
릴리는 말한다.
늘 해 질 녘이었다고.
방이 어두워지고
공기가 둘로 분열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음이 물결치며 나온다.
빛이 넘쳐 나온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문득 보니 그렇게 돼 있었다.
라고 릴리는 말한다.
이것은 릴리가 에테르에 눈떴을 때의 매우 중대한 에피소드다.
아이디: 필리어
다시, 여전히 에테르가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어렴풋이 짐작은 간다. 내가 키라라의 수상소감을 듣고 느낀 무엇을 에테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사실 에테르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상처를 입고, 흔들리고, 힘든 와중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게 에테르가 아니겠는가. 실리카겔은 비슷한 것을 노래로 말했다.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소외됐던 사람들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우리만의 따뜻한 불, 영원함 꿈, 영혼과 삶
하지만 이와이 슌지는 <릴리 슈슈>의 인물들을 적당히 흔들 생각이 없다. 적당히 힘들게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영화가 시작하니 논에 들어가 릴리의 노래를 듣고 있는 하스미의 모습이 보인다. 카메라는 좌우로 심하게 흔들려 멀미가 날 정도인데 다시, 여름철의 논은 물이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하스미의 신발은, 바지는 어쩌고 저길 들어가 있는 것일까. 왜 들어가게 된 것일까.
방학을 맞이해 하스미, 호시노(오시나리 슈고)와 일행들은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난다. 1999년의 여름, 필리어로 활동하는 하스미의 말을 빌려 그들이 친구였던 마지막 시절, 장밋빛 시대의 종말과 잿빛 시대가 도래하는 시기다. 필리어는 이때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인류가 멸망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곳에서 호시노는 죽음을 마주한다. 처음은 바다에서 동갈치가 날아온 것, 다음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것, 세 번째는 차에 치여 죽은 탐험가를 본 것이다. 탐험가는 앞서 하스미에게 말했다.
우리에겐 낙원처럼 보여도 자연 속 생물들에겐 지옥일지도 몰라.
자연이란 그런 거지 그게 멋진 거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스릴 있잖아. 그렇지?
그래서 여행을 멈출 수가 없어.
이미 열네 살의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엔 큰 사건들인데,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원작 소설에선 이 시점 호시노의 아버지의 공장이 부도가 나고, 경제적인 어려움과 모종의 사건으로 가정마저 붕괴된다. 감당할 수 없는 와중 시간이 멈춰줬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 없다. 나는 세계에 순응하며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는데, 다른 곳에선 버스가 통째로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레코드샵에서 CD를 왕창 훔쳐다가 되팔아 돈을 벌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이 상처를 입었는데도 여전히 흘러가는 세상의 모습을 보며 호시노는 변모한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무기력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자신이 세상을 파괴해 지옥으로 만들려 한다. 강해져서 스스로를 지키고자 했던 검도부 소년은 그 힘을 이용해 주변 남학생들을 휘어잡고, 여학생들에겐 성폭력을 가한다.
츠다(아오이 유우)는 그래서 스스로를 망가뜨릴 생각을 한다. 자신이 상품성을 잃으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츠다는 그래서 냇가에 뛰어들기도 하고, 폭식을 통해 살을 찌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쿠노(이토 아유미)는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밀어버린다. 하스미는 호시노의 친구로서 그의 붕괴를 보고, 호시노의 하수인으로서 츠다를 따라다니고, 짝사랑했던 쿠노를 파괴의 현장으로 이끌며 무너진다. 하스미는 주변인들의 붕괴와 함께 자신도 붕괴한다. 단지 릴리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에테르를 느끼고 치유받던 것이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게 되자 죽고 싶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쿠노의 소식을 듣고 츠다는 “괜찮을 거야!”라고 한다. “강한 아이니까.”라는 말을 덧붙이며. 사실 츠다는 자신이 괜찮고 싶어서, 쿠노가 잘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그러고 싶었을 것이다.
죽으려 마음먹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영원한 굴레, 계속 낙하한다.
누가 좀! 나를 구해줘! 누가 좀! 여기서 끌어내 줘!
아이디: 필리어
당신은 느끼고 있겠지. 투명한 에테르를
누구보다도 깊이..나는 알 수 있어.
왜냐하면 나도 분명 당신과 똑같은 아픔 속에 있기 때문에.
아이디: 파란 고양이
영화의 시작이자 마지막을 장식하는 논밭에서의 인물들이 릴리의 노래를 듣는 장면이 이때 나온다. 대신 추수가 끝난 후 추워진 계절에서. 호시노는 다시 한번 세상에 분노한다. 자신을 파괴하던 세상을 오히려 자신이 파괴하려 하면 할수록 정작 자신만 더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균열을 가하려던 것이었지만 사실 거대한 호수에 작은 돌멩이를 던진다 한들 잠시의 흔들림 이후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되기 마련일 것이다.
릴리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던 하스미는 에테르가 고갈되어 감을 느낀다. 에테르의 한계를 느낀다. 호시노가 릴리의 <호흡>이란 앨범을 파괴했음을 세상에 공공연히 하고, 릴리의 콘서트에서 자신을 죽이기로 한다. 영화에선 설명되지 않지만, 하스미는 릴리의 앞에서 자신의 손목을 긋기로 했다. 그래서 칼을 가지고 간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스미는 호시노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던 파란 사과를 보게 된다. 필리어로 활동하는 하스미가 온라인상에서 많은 긍정적인 흐름을 주고받던 푸른 고양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던 이가 자신을 파괴한 호시노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스미는 자신을 죽이는 것에서 호시노를 죽이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한다. 릴리는 콘서트에서 살인 사건을 벌어지게 되어 불길한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다. 많은 이들에게 에테르라는 이름으로 위로와 위안을 주던 인물이, 마치 릴리 슈슈라는 종교를 믿던 이들의 신처럼 여겨지던 인물이 한순간에 그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릴리는 더 이상 신이 아니다. 에테르를 느끼는 이들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는 강한 힘은 더 이상 없다.
하스미에 의해 릴리에 대해 알게 됐던 츠다는 사람들이 하늘에 날리는 연처럼 하늘을 날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간의 육신으론 그럴 수 없다. 츠다는 떨어지고 만다. 떨어지고 만다. 모종의 사건 이후 하스미는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다. 드뷔시의 아라베스크일까. 서툰 그의 연주 탓에 어떤 곡을 연주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없다. 피아노를 연주하던 하스미는 앉아 있던 의자를 밟고 올라선다. 카메라는 천장에서부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문간에 딱 하스미의 얼굴만 잘려져 보이니 왠지 하스미 역시 떠나가려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스미는 생을 택한다. 이제 열다섯 살이 되었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니 겸사겸사 미용실을 하는 어머니가 커트해 주시는데 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머니는 아기를 달래러 잠시 자리를 비우는데, 창문에 붙여진 초록색 필름을 넘어 푸른빛이 실내로 들어온다. 하스미는 열처리 기계에 얼굴을 집어넣는다. 창문을 넘어들어 오던 푸른 빛이 이내 하스미를 감싼다. 쿠노를 떠올리게 하는 피아노 연주,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 하스미는 어쩌면 릴리가 아닌 생의 에테르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로 돌아가니 쿠노는 모종의 이유로 연주할 수 없었던 피아노를 다시 연주하고 있다. 그녀의 손에서 다시 아라베스크가 연주된다. 아직 자라지 않은 쿠노의 머리처럼, 혹은 시간이 더 흘러 머리가 다 자라더라도 쿠노도 하스미도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이 있다. 그들을 삶으로 이끌어줄 음악도 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둘이 함께할 수도 있을 것이다.
No pain, No fail, 음악 없는 세상
Nowhere, No fear, 바다 같은 색깔
No cap, No cry.
이미 죽은 사람 아냐, 사실
화면엔 영화 내내 가득했던 디지털 텍스트로 RELOAD라고 나온다. 내가 지금 이 RELOAD라는 단어를 입력하는 것처럼, 컴퓨터 프로그램을 버튼 하나로 재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고 싶다. 응원하고 싶다. 다시 논밭에 들어가 릴리의 노래를 듣는 인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카메라는 이리저리 흔들린다. 마치 연에 카메라를 달아 촬영하기라도 하듯, 떠나간 츠다나 호시노가 바라보기라도 하듯. 하지만 푸르른 여름의 계절이 지나 벼 이삭이 익어 고개를 숙이는 가을이 되니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입에서 입김이 나오는 겨울이 되어선 어떤 둥지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카메라는 인물들의 상태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에 맞춰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노력하던 누군가의 힘이 가해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이 현대과학에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 극 중 인물들에게 불길함으로 여겨지게 된 릴리에게서 느끼던 에테르든 무엇이든 간에.
내가 <릴리 슈슈>를 처음 봤던 때엔 영화가 에테르였다. 내가 가장 에테르를 느꼈던 건 <해리포터> 시리즈였다. 해리에겐 그를 괴롭히는 말포이 일당이 있었다. 이마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고 평생을 죽음으로 내몰던 존재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곁엔 헤르마니와 론이 있었다. 내게도 그런 이들이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시리즈 중 <혼혈 왕자>를 가장 좋아했다. 그러나 동시에 내 아픔을 넣어두고 문을 걸어 잠가 버리기라도 하듯 <비밀의 방>은 다시 보지 않았다. <릴리 슈슈>에서도 끝내 에테르가 완전한 치유를 인물들에게 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스미도, 쿠노도 그리고 나의 시간도 계속해서 흘러간다. 흘러는 간다. 끝내 영화가 삶에 어떤 답을 주지도, 영화 속 인물들에게 어떤 힘을 주지도 않고 끝난다. 에테르든 무엇이든 부정적인 생각만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나는 응원하고 싶다.
다시, 2026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일렉트로닉 음반 부문을 수상한 키라라는 소감으로 “여러분 세상 밖으로 나오세요. 울지 마세요. 자살하지 마시고, 세상 밖으로 나오세요.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너무 감사합니다. 음악 계속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지인아 나와. 산책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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