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i Yi, 2000
다시 화면이 전환되니 타이베이다. 엘리베이터에서 팅팅이 내리고 옆집에서 리리네 영어 선생이 나온다. 영어 선생님은 리리의 어머니의 불륜 상대이다. 팅팅이 그의 옆을 인사도 없이 지나가는 건 그런데, 영어 선생이 혼잣말로 미안하다고 계속 중얼거린다. 세 번 반복되는 사과 중 마지막의 것은 그 자신과 관객만이 들을 수 있었다. 누구에게 미안한 것일까. 우리는 후에 영어 선생과 또 다른 관계를 알게 되는데, 그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말하는 것이었을까. NJ와 팅팅도 누군가에게, 무엇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 상황일까.
팅팅은 패티와의 데이트를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고르고 있다. NJ가 출장을 준비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장면과 겹쳐진다. 팅팅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건물을 나설 때 리리의 엄마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간다. 우리는 이것의 이상함에 대해 후에 파악하게 된다. 팅팅이 리리처럼 패티의 자전거 뒤에 올라타고 이동하자, 다시 도쿄의 NJ에게로 화면이 넘어간다. 셰리는 아직 아이가 없고 입양을 생각 중이라며, NJ의 아이들에 대해 묻는다. NJ는 팅팅이 이제 다 커서 다른 남자와 데이트도 하게 될 것이라 말하는데, 둘의 대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화면이 먼저 타이베이의 팅팅과 패티에게로 넘어간다. 영화의 초반부에도 사운드가 먼저 넘어가는 장면 전환이 있었기에 이상할 건 없는데 조금 다르다. NJ와 셰리의 대화가 담긴 오디오 트랙이 끝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고, 그 위에 팅팅과 패티가 지금 몇 시냐고 묻는 짧은 문답이 끼어들어 온다.
패티가 팅팅에게 “9시.”라고 답하고
바로 셰리가 NJ에게 “벌써 10시가 다 됐네. 시카고에선 아침 8시인데.”라고 한다.
카메라는 다시 도쿄, 셰리가 말한다. “여기 봐. 우리 학교 근처에 있던 횡단보도랑 비슷해.”
NJ가 답한다. “그때 생각나? 당신 손을 처음 잡았을 때 영화 보러 가려고 철길을 건널 때였잖아.”
역시 NJ의 대사가 아직 안 끝났는데 화면은 타이베이로 넘어간다. 팅팅과 패티는 영화를 보러 가려고 횡단보도를 건너려 하고 있던 참이다.
“당신 손을 잡았는데 손에 땀이 흥건해서 어찌나 부끄럽던지.”
카메라는 다시 도쿄 여전히 NJ, “그런데 다시 당신 손을 잡았네. 그때와 장소가 다를 뿐이지”
카메라는 다시 타이베이 여전히 NJ, “다른 시간, 다른 나이에.”
카메라는 여전히 타이베이 셰리가 답한다. “하지만 땀이 벤 손은 똑같아.”
카메라는 팅팅과 패티가 잡은 손으로 서서히 클로즈업한다. 팅팅이 잡은 패티의 손에 땀이 흥건할 것만 같다. 팅팅과 NJ의 이야기가 서로 랠리를 주고받듯 왔다 갔다 한다.
이전까진 네 사람의 이야기가 병렬로 배치돼 있었다면, 이제는 완전히 포개진 느낌이다. 영화가 잠시 양양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양양은 본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관객은 지금 아빠 NJ와 딸 팅팅의 삶이 다른 장소, 다른 시간, 다른 나이에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음을 봤다. 뿐만 아니다. 팅팅과 패티는 영화를 본 후 NY 베이글스로 이동해 대화를 이어간다. 이곳은 과거 리리가 팅팅과 함께 패티를 기다리다 바람맞은 곳이었다. 이웃의 고성은 갓난아이의 울음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누군가의 죽음은 누군가의 출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시, 영화의 오프닝에서 결혼식에서 집으로 오는 길 차 안에서 할머니의 클로즈업이 있었다. 할머니는 모종의 이유로 쓰러지셨는데 관객은 그 후 양양이 주가 되는 이야기들을 봐왔다. 단지 NJ와 팅팅 뿐 아니라 영화에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던 이야기들이 커다란 하나로 합쳐지는 이상한 흐름이 생겼다. 이 흐름은 심지어 한 가족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서두에 언급했던 삼촌이 들려준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왠지 비극적으로 들리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되잖아. 안 그래?”라고 팅팅이 덧붙이고, 다시 도쿄의 NJ와 셰리에게로 넘어간다. 둘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가 했는데, 과거에 그들의 사랑이 실패했던 것에 관해 얘기한다.
심지어는 직접적으로 보지 않고 창문이나 거울 같이 유리로 된 매개를 통해서 바라본다. 거리감이 생기는 것 이상으로 대상이 흐릿해지기도 하므로 불필요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에드워드 양 감독님은 영화 속 허구의 인물들일지라도 실제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인물들에게 끝까지 배려심을 놓지 않는다. 유리의 미쟝센을 통해 전혀 다른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관객으로 하여금 그것을 다 따라갈 수 있게 여유 있는 호흡을 가져간다. 영화의 호흡이 조금 길어질 수는 있지만, 다시, <하나 그리고 둘>은 좋은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사 오해와 오독은 생기기 마련이다. 양양은 결혼식장에 간 아이 중 유일한 남자아이인데, 나이가 어려서인지 체구도 가장 작다. 누나들로부터 놀림을 받기도 하는데, 아저씨들의 담뱃불에 풍선이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터지자, 주변 사람들이 놀라는 것을 보고 풍선을 들고 여자아이들 앞에서 터뜨려 복수를 한다. 여자아이들은 저마다 엄마 품에 안겨 큰 소리를 내며 운다.
다음날 학교에선 아마도 결혼식장에서 가져왔을 것으로 보이는 풍선을 뱃속에 넣고는 결혼식에서 본 숙모의 배가 이랬다며 아이들에게 말한다. 문제가 여기서 발생한다.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와서는 학교에 나쁜 물건을 가져온 학생이 있다며, 콘돔을 왜 학교에 가지고 왔냐며 양양에게 묻는다. 여덟 살 난 아이들이 콘돔이란 걸 어떻게 알았는지도 의문이지만, 분명 풍선인데 콘돔이라고 다그치자 양양은 콘돔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하더니, “누가 그런 거짓말을 한 거죠? 선생님은 듣기만 했지, 직접 본 것도 아니잖아요.”라 말한다. 양양의 것은 분명 풍선이었다. 머쓱한지 앞으로 지켜보겠다며 으름장을 놓고는 교실을 나가는 선생님을 보고 교실 안 아이들이 모두 크게 웃는다.
본다는 것은 양양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결혼식 이후 병상에 누워있는 할머니에게 민민이 가족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할머니에게 얘기를 들려주라고 할 때도 양양은 “말하면 뭐 해? 할머니는 볼 수도 없는데.”라고 말하며 그것을 거부한다. 양양이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뒤통수를 사진으로 찍는 것도 그렇듯 본다는 것에 대해 영화는 조금 더 깊게 말한다. 후에 양양의 풍선을 선생님에게 고자질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물풍선을 던지는데, 무겁기도 했던 물풍선을 조준에 실패해 옆에 있던 선생님이 맞게 된다. 앞선 일을 담아두고 있던 선생은 양양의 사진을 보고 떠오르는 예술가가 납셨다고 비꼬기도 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원래의 목표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복수에 성공한 셈이 된다. 양양은 사건 현장에서 도주하다 시청각실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들어가다 문에 옷이 걸리게 된다. 이어 소녀가 들어오는데 치마가 걸려 양양은 소녀의 치마 속을 보게 된다. 시청각실에선 구름이 만들어지고 천둥이 치게 되는 자연현상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마침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소녀만이 우뚝 서 있게 되니 양양의 시선은 소녀에게 고정된다. 이 영화에 몇 없는 클로즈업은 양양의 시점숏이 되고 치마 속을 봐서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양양은 소녀에게 매료된 것처럼 보인다. 이때가 영화가 시작하고 125분이 됐을 무렵이다. 엔딩크레딧을 제외하고 딱 중간이 지난 이 시점부터 영화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 변화한다. 양양과 소녀는 수많은 학생 틈에 섞여 있지만 양양의 눈에는 오직 소녀만이 보인다. 소녀의 뒤로 보이는 천둥의 이미지는 드레이크 도리머스의 <조>(2018)의 그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앞에선 카메라가 인물과 이야기에 거리를 두고 있다고 했다. 다양한 인물들에게 각기 다른 다양한 사건들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이때부터는 무언가 하나로 연결되는, 심지어는 각 인물에게 펼쳐지는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물이 겪는 다양한 이야기로 느껴지게 된다. 양양이 있던 시청각 자료에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다가 화면이 전환되고 비 오는 날 팅팅이 패티(위방)와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양양과 팅팅의 이야기가 포개지는 느낌이다. 패티는 양양네 옆집에 사는 리리(애드리안 린)와 만나던 남학생이었다. NJ는 앞서 아디의 결혼식이 있었던 호텔에서 학창 시절 좋아했던 셰리(켈리 코)를 우연히 만났었다.
어느 해 12월 24일의 새벽 나는 태어났다. 지금은 나이를 셈하는 방식이 바뀌었으나, 예전엔 불과 태어나 일주일 만에 한 살을 더 먹은 셈이었다. 2000년도까지만 하더라도 ‘빠른 연생’이란 제도가 있어 1~2월에 태어나면 전년도에 태어난 이들과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빠른 연생은 있는데 느린 연생은 없어서 나는 어떤 경우엔 20개월 이상 살아온 날이 차이 나는 이들과 친구가 되기도 했다. 지나고 보면 그저 내가 공부를 상대적으로 덜 했을 뿐인데 어린 시절의 나는 내 느린 학업 속도에 저것을 핑계로 대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다정하게 가르쳐 주시던 3학년의 최홍일 선생님, 친구처럼 대해주시던 4학년의 박상덕 선생님, 방과 후에 나머지 공부를 하는데도 같이 남았다가 이른 저녁을 사주기도, 영화관에 데려가 영화를 보여주시기도 했던 이은혜 선생님도 생각난다. 삶이란 것에 대해 생각할 때면 인간은 무릇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생각하는 경향도 있으므로 살아온 기간도 중요하겠지만 내가 바라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할 것일 텐데, 심지어 한 박자 혹은 두 박자씩 늦게 무언갈 깨닫곤 했던 내게 영화는 그 시선이 되어주었다. 나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본다고 생각했다. 내가 밟고 있는 대한민국은 물론 저 멀리 있는 나라의 수 세기 전의 삶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 그리고 둘> 안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현실엔 기쁨과 슬픔이 함께하잖아. 영화는 현실을 닮아 있어.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지.
- 그럼 뭐하러 봐? 그냥 현실을 살면 되지.
우리 삼촌이 이런 말을 했어. “영화가 생겨난 후로 인간의 수명이 3배 늘어났다.”
- 정말? 말도 안 돼.
일상을 통해 얻는 것 말고도, 영화를 통해 2배의 삶을 더 경험한다는 거지. 예를 들면 살인 같은 거. 우리가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잖아. 영화를 통해 그런 게 가능한 거지.
- 그래서 내가 얻는 이득이 뭔데? 인생이 그렇게 끔찍하면 뭐 하러 살아? 친절을 베풀면 돌려받기 마련인데 꼭 살인할 필요가 있을까?
예를 들면 그렇다고. 다른 이유도 많지. 삼촌이 하신 말씀 중에 “구름과 나무가 없다면 아름다움도 없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난 그 말에 엄청 감동받았어. 여러 면에서 날 바꿔놨지.
2017년, 아니 2018년이었을까. 언제 처음 봤었는지 모를 <하나 그리고 둘>은 나 역시도 여러 면에서 바꿔놨다. 내 왼쪽 팔에는 이 영화의 한 장면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는데, 누군가에게 이걸 설명해야 할 때면 나는 늘 양양(조나단 창)과 NJ(오념진)의 대화를 언급했다.
아빠, 아빠가 보는 걸 난 못 보고 난 보는데 아빤 못 봐요. 둘 다 보려면 어떡해야 하죠?
- 그건 생각 못 해봤는데. 그래서 카메라가 필요한 거란다. 카메라로 찍어보렴.
우린 반쪽짜리 진실만 볼 수 있나요?
-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앞만 보고 뒤를 못 보니까 반쪽짜리 진실만 보이는 거죠.
- 오늘은 질문이 많네. 그럼 하나만 묻자. 요즘 엄마가 기운이 없는데, 주말에 엄마랑 어디로 놀러 가면 좋을까? 한번 생각해 봐.
2000년에 이 영화가 공개된 후 25년이 넘게 지났으니 이젠 영화의 종반부에야 알게 되는 양양의 찍은 피사체에 대해 언급하는 건 스포일러가 아닐 거라 믿는다. 양양이 그래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들의 뒤통수를 찍는다는 사실은 25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나로서 살아온 나도 나를 잘 모르는 나의 다른 면이 있을 수 있음을, 세상 만물엔 내가 보고 들은 것 외에도 이면이 있을 수 있고, 내 생각과는 다른 무엇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했다. 내게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되어주었다. 내게 영화는 그랬다. 어느새 <하나 그리고 둘>은 내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영화로 다가왔었다. 평생 지고 가겠다는 이유로 10년이 되도록 이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가, 이번 관람에서 조금 낯선 흐름을 발견해 이젠 무언가 적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그리고 둘>은 대만의 타이베이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는다. 요즈음에 볼 수 있는 여느 영화들처럼 카메라가 이리저리 역동적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눈을 즐겁게 하는 화려한 색감도 없다. 심지어는 인물들 간에 어떤 굴곡진 서사도 없는 것처럼 군다. 그렇게 세 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영화를 보기도 전에 덜컥 겁을 먹게 만들더니 상영관 안의 관객들을 졸음과 싸우게도 만든다(비 오는 날 저녁의 에무에서는 실제로 많은 이들이 졸았다). 긴 러닝타임에 대해 말하게 되면 나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2시간 53분의 <하나 그리고 둘>이 짧지 않은 것도 맞지만 이 감독님은 하고자 하는 말을 다 하기 위해 3시간 57분짜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이란 영화도 만드셨다고, 혹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2014)를 보았냐고, 그것도 2시간 49분이라고. 왠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의 이찬실(강말금)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 순간들이다(나는 놀란 영화도 좋아한다).
사실 나는 <하나 그리고 둘>의 특히 러닝타임에 대해 말할 때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뿐 아니라 에드워드양 감독님의 <광음적고사>(1982)부터 <하나 그리고 둘>까지의 전체 필모그라피를 다 언급하고 싶다. 단지 한 편의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 그리고 둘>은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여덟 편의 영화의 집대성 같은 작품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종전 이후 대만은 독립을 하며 전쟁으로 망가진 사회와 질서를, 경제와 문화를, 시대를 새로 세워야 하는 시기였다. 우리나라의 종전 이후, IMF시기를 거쳐온 세대들이 그러했듯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했던 모습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혼란했던 모습도 있는데, 에드워드 양 감독님은 그것을 구태여 꾸미거나 달리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없어 보인다. 그저 그 모습을, 그 시대를 카메라에 담을 뿐인데, 그것은 어쩌면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데 영화가 된다. 자연히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3시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내 어릴 적 꿈은 마술사였다"라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카드 마술을 보여주는 일본인 사업가 오타(오가타 잇세이)에게 NJ가 어떤 속임수가 있냐며 묻자, 그는 사실은 카드를 전부 외워버렸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마술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공들여 연마한 기술이라는 것이다. NJ도 회사가 파산 위기에 놓여있어 오타와의 계약을 따내는 어떤 마술 같은 것을 회사로부터 요청받고 온 것이었는데, 실은 마술 같은 것보다는 그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서 하는 작업에 더 마음이 가는 인물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가 비슷한 부류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었다. 오타는 NJ에게 말한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상술을 쓰지 않고, 요행을 바라지 않고, 묵묵히 혹은 성실하게 그것도 아니라면 미련하게 뜻하는 바를 밀고 나아가는 것에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다.
영화도 드라마도 굉장히 코믹하거나 시선을 사로잡는 액션이 없더라도,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는 슬픔이 없더라도, 잔잔하게만 흘러가는 분위기 속에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순 없으나 더 끌리는 좋은 방식도 있기 마련이다. 다시, <하나 그리고 둘>은 ‘좋은 영화’입니다. ‘에드워드 양 감독님은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감독님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영화는 성대한 결혼식으로 시작한다. 아디(진희성)와 샤오얀(소숙신)의 것이고, 민민(금연령)은 아디의 누나다. 민민과 NJ 사이에 팅팅(켈리 리)과 양양이 있으며 극 중 이름이 불리지 않는 할머니(유엔 탕)가 나온다. 그 시절 중화권 영화 특유의 하이톤으로 재빠르게 대화가 오가며 인물들에 입체감을 불어넣긴 하는데, 카메라가 일정 거리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많은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은데 왜인지 카메라는 인물 하나하나에 더 마음이 쓰이는지 다른 인물의 목소리가 외화면에서 들리기 시작했는데 이미지는 몇 초를 더 머물다가 소리를 쫓아 다음으로 이동한다. 디졸브같이 쓰이는 이런 사운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이미지라는 것도 그렇다. 인물들을, 그리고 그들에게 벌어지는 사건들로부터도 거리를 유지한다.
그저 인사치레나 하고 지나가는 인연인 줄 알았는데 시카고에 있던 그녀가 도쿄로 온다는 것이었다. NJ는 오타를 만날 겸 도쿄로 출장을 떠난다. NJ는 사실 영화가 시작하고 내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혼식장에서 양양을 데리고 맥도날드에 왔을 때도 신난 양양 옆에서 연신 하품이나 하고 있었고, 민민이나 팅팅에게도 잘 웃어 보이는 법이 없었는데 오타에게 어린 시절 자신에게 음악이 큰 의미로 다가오게 했던 사랑의 대상에 대해 말할 때, 그리고 그 사랑의 주인공인 셰리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밝게 웃어 보인다.
NJ는 집에서 출장을 위한 짐을 싸면서도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할머니가 아직 혼수상태이고 어린 팅팅과 양양만을 집에 남겨두고 떠나는 데에 있어 망설임은 없어 보인다. 카메라는 타이베이인지 도쿄인지 모를 곳의 야경을 담는다. 어차피 시차라곤 별로 나지 않는 아시아 내의 이동이지만 굳이 그걸 구분하려는 노력도 없다. 에드워드 양은 <하나 그리고 둘>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지점을 동일하게 설정하지 않았다. 어떨 땐 도로 위에서 달리는 차 안의 소리를 차 밖에서 들리게 했고, 아파트 건물 밖에서 창문 너머의 소리를 들리게도 했고, 역시 고층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1층에 있는 이들의 소리를 들리게도 했다. 어떤 때는 전화기 너머로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있었는데, 셰리가 NJ에게 출장 관련해서 전화를 걸 때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관객은 그가 지어 보이는 미소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 첫사랑인 건 알겠는데 NJ는 지금 한 가정의 가장이다. 사위이자 남편이자 아빠로 존재한다. NJ는 민민과 팅팅, 양양이 아닌 셰리에게 웃는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팅팅이 책을 읽으며 걸어오고 있는데 패티가 편지를 들고 따라온다. 패티는 리리와 관계가 소원해진 후 팅팅에게 편지를 대신 전해줄 것을 부탁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온다. 이번엔 편지가 리리가 아닌 팅팅에게 쓴 것이라는 것. 팅팅은 리리와 친구 사이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인다. 단호하게 굴던 팅팅의 망설임이 느껴지는 건 그가 패티의 말을 듣고 놀라선 바로 걸음을 멈춰 서는 것이 아니라, 몇 걸음 더 걸은 후에 멈추기 때문이다. 제대로 듣긴 했는데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리라. 팅팅은 패티와 그가 쥐고 있는 편지를 번갈아 보는데 끝내 그것을 받아들지는 않았다. 우리는 NJ와 셰리의 통화도 듣지 못했다. 다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출장을 준비하는 NJ에게서 어떤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되고, 나란히 이어지는 별개의 두 사건은 같은 분위기로 오인하기에 충분하다. 팅팅과 NJ의 이야기가 포개지는 느낌이다.
다시, 야경을 보여준다고 했다. 야경은 열차인지 자동차인지 어느 교통수단에 탑승해서 창밖을 바라보는 모양새다. 타이베이에서 도쿄로 장소가 이동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면서, A라는 인물에게서 B라는 인물에게로 어떤 마음이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NJ에게서 셰리, 팅팅에게서 패티를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NJ에게서 팅팅이 되지 말란 법은 없을 것이다. NJ의 설렘은 팅팅의 설렘이 될 수 있다. 도쿄에서 드디어 만난 NJ와 셰리는 서로를 꼭 끌어안는다. 앞서 타이베이에선 양양과 아디가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다른 장소에서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리고 오타도 그 자리에 있다. 오타는 둘에게 “젊은이들(young people)은 자기 갈 길은 알아서 찾아가겠죠. 최선의 방법으로.”라 말한다. 대만이라는 나라의 사람들의 인식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내겐 NJ와 셰리가 젊은이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 오타가 그들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지도 않는다. 아주 부자연스러운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럽지도 않다. 다음날 NJ와 셰리는 타국에서 지하철의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화면은 전환되고 열차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역시 외화면에서 NJ와 셰리의 대화가 들려온다. 둘은 저 열차에 탑승하고 있는 걸까.
우리 첫 데이트 생각난다.
- 그러게
나 너무 긴장해서 딸꾹질까지 했어. 어렸을 때부터 긴장하면 딸꾹질이 나오더라.
- 나도 긴장해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지도 못했어.
하긴 당신은 긴장해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지.
당신을 보지 않고선 견딜 자신이 없었거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어. 모든 게 산산이 부서졌다고! 그땐 기다림만이 유일한 기회였어. 하루 종일 기다렸어. 그다음 날에도. ... 당신은 그냥 사라져버린 거야.
- 말 한마디 없이 떠났었지 비겁한 변명 따윈 하지 않을게. 달리 할 말이 없었어. 너무 화가 났었어. 당신은 내게 엔지니어가 되라고 했었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기나 했어? 내가 졸업하던 날, 당신과 부모님은 너무 행복해했지만 난 말야 난 너무 슬펐어. 당신은 남의 인생을 간섭하고 마음대로 조종하려 했어. 난 그게 슬펐어. 그래서 내가 바라던 일을 했을 뿐이야. 그게... 나한테 얼마나 상처가 된 줄 알아? 아냐고. ... 재밌는 건 말이야.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당신이 그토록 강요했던 일이란 거야. 그리고 당신은 내 옆에 있는 것보다 더 여유를 누리고 살잖아.
당신이 너무 순진했지. 결국 아무것도 남은 게 없네.
조용한 신사를 걷던 둘은 나무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맑은 하늘에 햇빛이 나뭇잎에 부서져 내린다. <퍼펙트 데이즈>(2023)의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와 니코(나카노 아리사)가 올려다보던 고모레비처럼. 패티의 삼촌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구름과 나무가 없다면 아름다움도 없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때 말이야. 나한테 갑자기 반한 이유가 뭐야?
- 훨씬 전이었어. 초등학교 때부터야. 그때부터 짝사랑이 시작된 거지. 이상하게 매일 당신이 보고 싶더라. 하루라도 못 보면 종일 기분이 안 좋았어.
그래서 그렇게 멍하니 쳐다봤어?
- 다 똑같은 교복인데, 이상하게도 당신만 특별해 보였어.
어떤 면에서?
- 모든 면에서...
NJ와 팅팅의 이야기가 서로 공명하기라도 한 것 같았던 시간이 지나가고, 양양이 수영장에 들어서 소녀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초등학생인 양양은 수영하고 있는 소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양양은 집에 돌아와 세면대에 물을 받아놓고 한참 고개를 처박는다. 물속에 들어간 소녀의 심정을 알고 싶다는 듯.
화면은 다시 팅팅과 패티가 리리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호텔에 들어서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패티는 어떤 심정일까. 아무 말이 없던 둘의 정적을 깨고 팅팅이 먼저 방으로 들어선다. 모종의 허락이나 동의 같은 메시지였을 테다. 하지만 패티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만다. 다시 그것이 도쿄의 NJ와 셰리에게로 이어진다. 그게 맞는 거겠지만 NJ는 굳이 방을 두 개를 잡아 셰리와 따로 밤을 보내려 한다. 그런데 셰리가 쫓아와 소리를 친다.
당신이 그렇게 가버리면 내 기분이 어떤 줄 알아? 다신 볼 수 없을 것만 같아.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야. 이런 걸 바란 게 아니라고. 난 모든 걸 가졌는데 뭐가 두렵겠어? 로드니와 이혼하면 충분히 누리며 살 수 있어. 우리 다시 시작하자.
셰리의 울부짖음은 팅팅의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말 돌리지 마! 두려운 거지? 날 사랑한 적 없잖아! 사랑하지 않았잖아! 난 왜 이 모양이지…? 당신하고만 있으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미안해. 왜 맨날 같은 실수를 하는지... 언제쯤이면 깨닫게 될까...
NJ가 답한다.
- 괜찮아. 내가 아니면 누가 당신을 이해하겠어? 나 아니면 누가 하겠어?
NJ의 타이름은 왜인지 팅팅에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빠가 아니라면 누가 딸을 이해하겠는가.
셰리가 잇는다.
난 매일 생각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당신을 생각해.
- 생각한다? 생각한다... 우린 모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신중히 생각해야 해. 잊었나 본데 난 출장 온 거야. 자꾸 사람 마음을 무겁게 하는군. 일을 끝내려면 몇 번은 더 와야겠어. 부탁이야. 중요한 일이니까 시간을 좀 줘. 팅팅은 승낙했지만, NJ는 거절한다. 팅팅도 그것이 두 번째였다면 거절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NJ도 그것이 첫 번째였다면 승낙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밤이 지나고 NJ와 셰리는 도쿄의 호텔로 돌아온다. 다시 각자의 방으로 나뉘려다 NJ는 한다.
셰리. 다른 사람은 사랑한 적 없어.
셰리는 방 안에 들어가 홀로 흐느낀다.
장면은 이제 NJ와 오타의 것으로 넘어간다. 카드 마술에 대해 언급하는 곳으로. 상기하자면 NJ는 오타와의 비즈니스 때문에 도쿄로 출장을 온 길이었다. 글쎄, 오타는 단지 NJ와 잘 통한다는 것 이상의 무엇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NJ가 무언가 고백하려 하자 오타는 입을 막는다. 그러더니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한다. 좋은 사람이니 굳이 지금 무언가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괜찮다고 하는 것만 같다. 아마 오타와의 비즈니스는 잘 성사된 것처럼 보인다. 다음날 NJ는 호텔방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오타로 인한 것일까, 건너편 방에 기다리고 있을 셰리로 인한 것일까. 그런데 이때 타이베이에서 전화가 걸려 온다. 회사에서 아토라는 다른 사업가와 계약을 맺었다고, 오타와의 계약은 없던 일로 하자고. 애초 회사에서는 오타는 감당이 안 되는 거물이니 그의 아류 급으로 아토라는 인물을 고려했었다. 패티가 리리 대신 팅팅을 선택한 것을 연관 지어도 될까. NJ는 불같이 화를 낸다.
“너는... 사람한테 상처가 된다는 걸 몰라. 오타 씨는 좋은 사람이야. 품위를 좀 지켜.”
NJ는 오타에게 들었던 말을 오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함으로써 되돌려준다. 아니, 오타에게 닿지 못했으니 되돌려준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할까.
NJ는 전화를 끊고 셰리에게 향하는데, 그녀는 이미 체크아웃을 한 뒤였다. 남긴 메시지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카메라는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다본다. 저게 저 높이 떠 있는 구름이어서 그렇지, 저 정도 흘러가는 속도면 바람이 꽤 강하게 부는 것이다. 장소는 다시 타이베이로 옮겨 온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친다. 역시 하교하던 길에 팅팅은 패티를 만난다.
패티, 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리리랑 다시 만나는 거 알아. 우린 아직 친구잖아.
- 아직 뭐? 아무렇지도 않다고? 다 개소리야! 네가 뭘 알아! 인생은 네가 꿈꾸는 거랑 달라! 인생이 꿈같다면 연애소설 같은 게 왜 필요하겠어!
패티의 갑작스러운 분노는 NJ의 것과 연관 지어도 될까. 팅팅은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난다. NJ도 팅팅도 원하는 결과를 얻진 못한 것 같다. 그날 밤 팅팅은 울면서 할머니에게 말한다.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거죠? 저를... 용서하지 않은 거예요?
할머니는 선생님이셨다. 팅팅은 리리에게 할머니가 품위 있는 분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할머니는 좋은 사람이셨을 것이다. 다시, 영화 초반부 쓰러진 할머니를 팅팅이 처음 보는 장면은 팅팅이 집에서 창밖으로 내려다보는 리리와 패티가 싸우는 장면과 맞닿아있다. 다시 이 장면은 아디가 NJ에게 돈을 빌리는 장면과 맞닿아있다. 그날 밤 팅팅은 할머니에게 “제가 쓰레기 버리는 걸 잊어버렸죠? 깜빡했어요.”라 말한다. 할머니가 길가의 쓰레기통 옆에 쓰러져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했던 팅팅이었다. 그런데 해당 시각 NJ도 무언가를 잊었었다. 자신이 무언갈 찾고 있었다는 것조차 잊은 채로.
에드워드 양의 <독립시대>(1994)가 이런 식이었다. 우연인 것처럼 서로 얽히고설킨 이야기들 안에서 또 다른 것을 보게 되는 방식. <독립시대>의 치치(첸샹치)는 이런 말을 했다. "모두가 타인에게서 안정감을 찾는다면, 자기 자신은 어떻게 지키겠어." 이때 NJ는 자신이 준 카메라로 양양이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보게 된다. 많은 이들의 뒤통수로 가득 찬 사진들을. 양양은 본인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카메라를 들고 스스로 무언갈 하려고 한다. 풍선으로 시작한 해프닝으로부터 수영장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들을 보면 당돌하기 그지없다. 양양은 세면대에 물을 받아 머리를 담그는 것 이상으로 수영장 안으로 뛰어들기에 이른다. 순간 양양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소리가 나고 천둥까지 치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양양은 소녀를 더 잘 알기 위해 직접 물에 들어가 봤다. 비가 내리고, 수영도 할 줄 몰랐기에 크게 감기라도 걸리면 다시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양양은 행동했다.
별 의미 없는 말일지라도 심지어는 그래서 힘들어했던 민민일지라도 양양은 할머니가 직접 보고 듣는 게 아니라서 말하길 거부했었는데, 이런 행동 후에 할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건 큰 변화일 것이다. 양양은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편지로 그동안 못했던 말을 전한다.
할머니, 죄송해요. 할머니와 말하기 싫었던 게 아니에요. 무슨 말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할머니가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았어요. 할머니는 항상 남들 말에 귀 기울이라고 하셨잖아요. 사람들은 할머니가 멀리 가셨다고 해요. 그런데 저한테는 간다고 안 하셨잖아요. 그래서 제 생각엔 제가 스스로 알아내야 할 것 같은데, 할머니 저는 아직 어리잖아요.
제가 나중에 커서 뭘 하고 싶은지 아세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그들이 모르는 걸 알려주고 볼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면 정말 즐거울 것 같아요. 언젠가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가신 곳을 알아낼지도 몰라요. 그러면 그곳이 어딘지 사람들한테 말하고 다 같이 할머니를 보러 가도 돼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 특히 올해 태어나 아직 이름도 없는 어린 사촌을 볼 때 더욱 그래요. 그 아기를 보면 할머니가 “이젠 늙었나 보다.” 하시던 게 생각나요. 저도 사촌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나도 다 컸나 보다.”
앞서 결혼식장에서 돌아온 후 팅팅도 할머니가 하는 저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팅팅은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영화가 끝날 때 양양이 영화가 시작할 때의 팅팅에게 그 뜻을 알려준다. 시간의 흐름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것에서 발생하는 의미들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저마다의 경험에 따라 다르고, 지닌 시각에 따라 다르다.
이창동 감독님은 어느 영화제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영화는 눈에 보여주지 않습니까?
눈에 보여주니까 눈에 보여주는 거 이외의 것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게 되어있죠.
사실 우리 삶에 있어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경우가 많은데,
보여주는 매체이기 때문에 그 보여줌이라는 게 너무나 강력한 힘이기 때문에
그래서 관객들이 그걸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일깨우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가가 영화 매체가 가진 본질이다.
<하나 그리고 둘>은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하나 그리고 둘>이라는 영화가 지닌 힘은 반쪽짜리 진실이나 혹은 반쪽짜리 거짓만 보고 알 수 있는 현실의 이면을 볼 기회를 얻는 것일지 모른다. 누군가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보지 못한 것을 보여주고, 오해한 것을 바로 잡아준다. 오해와 오독으로 기인한 혐오와 그것으로 인한 피로감이 가득한 시대에 너는 너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 개개인들이 사실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많은 부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기회 말이다.
<공포분자>(1986)에서는 조금 달랐다. 젊은 사진작가 창(마소군)이 집의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각각의 프레임으로 흩날리는 시아오(왕안)의 거대한 사진처럼 오히려 관객이 기존에 생각하던 몽타주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복잡한 플롯을 만들어냈다. 하나로 포개지는 <하나 그리고 둘>과는 반대로, 오히려 일부러 조각조각 찢어놓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공포감을 형성했었다. 입대를 앞둔 청년의 시각이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샤오쓰(쟝첸)는 팅팅과 비슷한 말을 했었다. “세상에는 재수 없는 사람과 불공평한 일이 너무 많다.”라고. 팅팅이 <하나 그리고 둘>에서 겪는 일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 일어나는 일과 거의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세상에는 ‘사기꾼’과 ‘바보’ 두 가지의 유형이 있다며 바보가 될 바엔 사기꾼이 되겠다던, 사기꾼에게 있어 욕망의 섹스는 있어도 진실한 사랑이 담길 키스는 재수 옴 붙는 행위로 여겨지던 <마작>(1996)의 세계를 거쳐, <하나 그리고 둘>에 이르러 삶을 긍정하기에 이른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민민이 절에서 돌아와 NJ와 대화를 나눈다.
사실... 여기서 지내는 거랑 별로 다르지 않더라. 그냥... 엄마랑 얘기하는 거 같았어. 근데 입장이 바뀐 기분이었어. 내가 엄마고 그들이 나 같고. 매일 돌아가며 나한테 말을 걸어주는 거야. 하루에도 여러 번씩. 내가 깨달은 건 사는 게 별로 복잡하지 않다는 거야. 전엔 왜 그렇게 복잡해 보였을까?
-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당신이 떠나있는 동안 내 청춘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어. 처음엔 이제부턴 모든 게 달라지겠구나 싶었지. 그런데, 결국 똑같더군. 별로 다를 게 없었어. 불현듯 깨달았지. 내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똑같을 거 같아. 그럴 필요가 없어.
양양의 말도, NJ와 민민의 말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것을 바로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사업에 위기가 올 수도 있고, 사랑에 실패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할 수도 있고, 삶이 너무 복잡하게 느껴지는 순간에 그럴 수 있겠냐는 것이다. 직전에 살인 사건 현장을 지나왔으면서, 그 대상이 누군지 알면서 할머니에게 “이제... 저를 용서하셨으니 편히 잠들 수 있겠어요. 저는 이제... 자야겠어요. 제가 보는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요.”라고 하는 팅팅처럼 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말을 빌려 우리는 한번 태어나 다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매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비 체험의 존재이다. 다시, NY 베이글에서 패티가 했던 말을 언급하자면 “일상을 통해 얻는 것 말고도, 영화를 통해 2배의 삶을 더 경험한다는 거지.” 그래서 영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때로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무언가에 갇혀 무거움을 느끼는 와중에도 잠시 그것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 나 스스로 나라는 존재를 가볍게 날 수 있도록 날개를 달 수 있게 해주는 것, 오해와 오독 속에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별로 다를 게 없었어. ... 그럴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 말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이제 다 컸구나.”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Vita Nova”라는 말을 했다. 새로운 이야기 혹은 새로운 삶 정도의 뜻일 것이다. 내가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나의 과오로 인한 것이든 아니든, 때로 실패하고 좌절하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허무함을, 덧없음을 느끼는 순간이 오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기 마련이다. 시간은 흐르고 내가 스스로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 될 일이다. NJ가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거의 그대로 비슷하게 겪게 되는 팅팅, 그리고 후의 양양. 누군가의 과거는 누군가의 현재가 되고, 다시 누군가의 미래가 된다. 누군가의 실패는 누군가에게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실패는 나의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완전히 실패한 이야기, 완전히 실패한 삶은 없다. 다시 써 내려가면 될 일이다.
내 멋대로 에드워드 양 감독님에게 위로를, 위안을 끄집어내는 것 같기도 한데 나에겐 그렇다. 허우샤오시엔의 <동동의 여름방학>(1984)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순박한 미소를 띤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속 류 치슈의 미소 같은 것. <하나 그리고 둘> 속 유리창과 거울에 비친 많은 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많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구름과 나무가 없다면 아름다움도 없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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