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uman Show, 1998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30년 간 트루먼(짐 캐리)의 인생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는 이 영화의 설정은 너무나 유명하다. 전 세계로부터 쏟아지는 관심에 스케일은 날로 커져 우주에서도 촬영 세트가 보일 정도가 됐다. 인생을 함께해온 부모, 친구, 심지어 아내까지 모두 고용된 배우인데, 트루먼은 우연한 계기로 의심을 품게 된다. 나의 삶이 진짜가 아닌 다 쇼였다는 것은 코미디인 것 같으나, 오히려 잔인한 스릴러에 가깝다. 영화가 세상에 나온 지 20년도 더 지난 지금 이 세상은 모두 ‘트루먼 쇼’가 되어있다. <트루먼 쇼>를 보면서 놀랐던 건, 이 쇼를 기획하고 촬영하는 방송국 놈들이 아니라 그것에 동참하는 시민들이었다. 고용된 배우가 아님에도 트루먼이 ‘쇼’라는 이름의 새장에 갇혀있게 동참하고, 쇼가 방영되는 TV 앞에 삼삼오오 모여 무슨 스포츠나 서커스를 보는 것처럼 트루먼의 행동과 그것의 결과에 대해 내기를 하곤 한다.
2020년,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에서의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녹아내렸다. 녹아내린 건 미디어의 경계뿐만이 아니다. 미디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태도 또한 그러하다. 실제 나의 모습보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나의 이미지가 어떤 지가 중요하다. 2020년에 본 ‘트루먼 쇼’를 기획하고 촬영하는 PD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는 전혀 놀랍거나 새롭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가 크리스토프이자 트루먼이길 자처하는 시대가 아닌가. 모두가 크리스토프이자 트루먼인 쇼의 세계 “Seahaven”을 구축하고, 구성하고 있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지금 당장 나의 감정과 상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더 편하고 선호된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스스로 크리스토프와 트루먼이 되면서, 혹은 나는 무대에 올라 트루먼이 되긴 싫지만 무대에 오른 트루먼을 보는 것은 즐기는 이는 또 다른 크리스토프이자 트루먼인 이가 받게 될 아픔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나. TV 앞에 모여 내기를 건 시청자가 됨을 경계해야 하지 않나. 누군가는 그것을 탈출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해야 하며, 이 세상을 버리고 칠흑 같은 어둠으로 나아갈 용기가 필요할 텐데 말이다.
#트루먼쇼 #짐캐리 #에드해리스 #피터위어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