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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생물학자 천종식 Aug 11. 2019

미생물을 이용한 췌장암 치료가 가능할까?

췌장암을 물리칠 가능성이 있는 마이크로바이옴의 발견

천하의 스티브 잡스도 결국 이기지 못한 췌장암. 가장 예후가 안 좋은 것으로 알려진 췌장암과 장내 미생물 (마이크로바이옴)과의 관계가 새롭게 조명된 논문이 미국의 연구팀에 의해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Cell지에 발표되었다. 여기에 그 내용과 의미를 정리해본다.


췌장암 특히 그중에서 가장 흔한 pancreatic ductal adenocarcinoma (췌관 선암)은 예후는 매우 좋지 않다. 보통 말기에나 발견되고 그 경우 5년 생존율이 9%에 불과하다. 스티브 잡스처럼 수술을 하더라도 대부분의 환자는 평균 24-30개월만 생존한다. 하지만 드물게 수술 후 5년을 넘게 생존하는 환자도 있다. 한 가지 수수께끼는 어떤 환자는 오래 살고, 다른 환자들은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인데, 현재까지 그렇게 구분되는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았다.


이전에 여러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췌장암 조직에 세균이 살고 있음을 알고 있는데, 이 세균의 역할에 대해서는 모른다. 연구진은 MD Anderson과 Johns Hopkins 병원에서 각각 평균 10년을 생존한 장기 생존자와 1.6년 밖에 살지 못한 단기 생존자의 췌장암 조직과 그곳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생태계 (마이크로바이옴)을 조사했다.


암 조직 마이크로바이옴 (tumor microbiome)은 생존 기간과 상관관계가 있는가?


연구진은 생존 기간에 따라 췌장암 조직의 세균의 구성이 다름을 확인했다. 장기와 단기 생존자의 차이는 다음 두 가지로 크게 볼 수 있다.


1. 장기 생존자의 경우 단기 생존자에 비해 췌장암 마이크로바이옴의 종 다양성이 높았다. 이건 암 조직에 사는 세균의 종이 많고, 각 종에 속하는 세균이 골고루 분포함을 의미한다.

췌장암 장기 생존자의 암 조직에는 더 다양한 세균 생태계, 즉 마이크로바이옴이 존재한다.

2. 장기 생존자에게만 나타나는 세균이 밝혀졌다. 바이오마커에 해당하는 세균은 다음의 4가지이다.

Pseudoxanthomonas, Saccharopolyspora, Streptomyces,  Bacillus clausii

앞의 3개의 세균은 속 (genus)에 속하고, 마지막 세균은 종 (species)이다. 분석에 사용된 분류학적 마커 유전자는 16S rRNA gene인데, 사용된 분류 database의 한계로 종 단계의 분석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천랩의 EzBioCloud database를 쓰면 종 단계까지 분석이 가능한데, 아쉬운 부분이다. 위의 바이오 마커가 되는 미생물은 모두 토양 세균으로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옴에서 쉽게 발견되는 종류는 아니다. 예를 들어 6백만 개의 세균을 동정한 필자의 대장 마이크로바이옴에서 위 세균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데이터는 여기). 왜 이런 세균이 췌장암에서 발견되었는지는 미생물학으로 보면 (필자에게는) 완전히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암 조직 마이크로바이옴 (tumor microbiome)을 통해 생존 기간, 즉 췌장암의 예후를 예측할 수 있는가?


연구진은 MD Anderson과 Johns Hopkins 병원의 두 환자군(discovery cohort)을 조사했는데, 이에 추가해서 별도의 환자군(validation cohort)을 예후 예측을 테스트하기 위해 지정하였다. 앞의 두 환자 군으로부터 찾은 바이오마커를 이용해서 예측을 시도한 결과 validation cohort의 예측의 정확도 (AUC)는 99.17로 아주 정확했다. 다시 말해 암 조직의 미생물을 분석하면 아주 정확히 췌장암 환자의 예후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 생존자는 왜 암을 더 잘 극복할 수 있는가?


장기 생존자의 암 조직 내에는 단기 생존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CD3+ T 세포, 세포독성 T 세포(CD8+ T cell), granzyme B 생성 세포의 수가 많았으며, 조절 T 세포 (Treg), 대식세포 (macrophage), 골수유래 면역억제 세포 (MDSC) 등의 차이는 없었다. 특히 암 조직 마이크로바이옴의 다양성과 암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세포독성 T 세포의 밀도는 상관관계를 보인다. 마이크로바이옴이 항암 효과를 내든, 다른 항암 효과를 내는 이유가 마이크로바이옴의 변화를 유도하든, 두 변수는 분명히 연관이 되어 있다.

췌장암 장기 생존자의 암 조직에는 단기 생존자에 비해 많은 수의 암을 공격하는 세포독성 T 세포 (CD8+ T cell, 붉은색으로 염색)가 발견된다.


췌장암 조직에 사는 세균의 어디서 온 것일까?


암이 없는 정상적인 췌관에도 마이크로바이옴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발견되는 세균의 종은 몸 안에서 가장 많은 세균이 살고 있는 대장의 마이크로바이옴과는 거의 겹치지 않는다. 아마도 산소의 농도나 영양분 등의 환경이 많이 달라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암 조직의 경우엔 대장 마이크로바이옴과 25% 정도의 세균이 겹친다. 즉 1/4의 세균은 대장에서 췌장암 조직으로 이주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이들 세균이 암 조직으로 이동하는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미스터리. 아마도 암 조직이 대장과 비슷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마이크로바이옴을 변화시켜 췌장암을 치료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많은 연구에서 다양한 질병과 마이크로바이옴의 연관성이 대변 미생물 이식 (Fecal microbiota transplant, FMT)를 통해 밝혀졌다. 예를 들어 비만인 사람의 대변을 생쥐에 먹이면 생쥐가 비만이 된다. 같은 원리로 암과는 상관이 없는 건강한 사람, 췌장암 단기 생존자, 그리고 장기 생존자, 이렇게 세 그룹의 사람의 대변을 동일한 생쥐에 이식하고, 췌장암을 일으켜 봤다. 이식한 미생물이 암 조직 마이크로바이옴이 아닌 대장 마이크로바이옴인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결과는 그동안 다른 종류의 암에서 이미 보고된 것과 같이, 마이크로바이옴을 제외하면 같은 조건에서 췌장암이 발생한 생쥐의 암의 크기는 장기 생존자, 건강한 사람, 단기 생존자의 대변을 이식한 생쥐의 순으로 작았다. 

장기 췌장암 생존자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하면 그 항암 효과로 생쥐에서 췌장암이 크게 줄어든다.

장기 생존자의 대변 안의 마이크로바이옴이 건강한 사람보다 더 항암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다. 생쥐의 암 조직을 조사한 결과, 장기 생존자의 대변을 이식한 쥐에서는 상대적으로 종양 미세 환경에서 세포독성 T 세포의 수는 많고, 조절 T 세포 (Treg)와 골수유래 면역억제 세포 (MDSC)의 수는 적었다. FMT를 통한 실험에서 마이크로바이옴의 조절로 생쥐의 췌장암 치료 가능성은 최소한 확인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어떻게 항암 효과를 내는가?


본 연구와 이전의 다른 연구를 통해 종합적으로 보면, 다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1. 암 조직 내에 세포독성 T세포의 수를 크게 증가시킨다. 본 연구에서는 장기 생존자의 대변 이식을 한 쥐에 암을 공격하는 세포독성 T세포를 무력화시키는 CD8 항체를 처리한 결과, 처리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서 암의 크기는 증가하는 것을 관찰하였다. 항암에 있어서 세포독성 T 세포가 주요 플레이어인 것을 확인한 것이다.


2. 암 조직 내에 조절 T세포 (Treg)의 수를 적게 유지하도록 유도한다. 조절 T세포는 암을 공격하는 세포 독성 T세포의 활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결국 이 세포가 줄어 들면 암세포에 대한 우리 면역계의 공격이 빈대로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3. 아직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으나, 우리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인식할 수 있는 신생 항원 (neoantigen)이 암 조직에 붙어 있는 세균의 항원과 서로 유사하여, 세균이 암에 대한 면역을 유도하는 메커니즘이 가능할 수 있다. 앞으로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이다.


본 연구의 주요한 학술적인 기여는?


1. 필자가 본 이 논문의 가장 큰 기여는 암 조직의 마이크로바이옴과 질병의 예후에 대한 직접적인 연관성을 밝혔다는 점이다. 이전에 연구에서 췌장암의 예후와 관련하여 암 유전체학 연구에서는 어떤 차이도 발견하지 않았기에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마이크로바이옴도 넓은 의미에서는 암 유전체로 볼 수 있지만.


2. 췌장암의 경우 암 조직 마이크로바이옴 분석을 통해 환자의 예후를 예측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 한국에서 췌장암 데이터가 없어 직접적인 비교가 당장은 불가능하다. 이 분야에 공동연구를 원하시는 분은 필자에게 연락 주시기 바란다.


3. 비록 생쥐에서 나온 결과이지만, 장기 생존자의 마이크로바이옴의 이식을 통해 암의 치료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곧 사람에서 비슷한 원리의 임상연구로 FMT를 이용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의 치료 가능성이 증명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특정할 수 없는 대변 미생물의 이식이 아닌, 정의된 미생물을 이용한 신약 (Live Biotherapeutic Product) 개발의 가능성도 열어 두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장내 미생물은 비만, 당뇨, 아토피, 크론병, ADHD, 치매, 파킨슨, 암 등 많은 질병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장내 미생물을 위한 건강한 식단에 대해서 네이버 카페 <바이크로바이옴식탁>에서 자세히 원리과 실천 방법을 알려드리고 있으니 방문해주세요.



암과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해 궁금하면, 아래 한겨례신문 연재 글을 참고.


이번 글에서 정리한 논문은 아래와 같다. 본 글에 포함된 그림은 이 논문에서 발췌한 한 것이다.


Riquelme et al. (2019). Tumor Microbiome Diversity and Composition Influence Pancreatic Cancer Outcomes. Cell. VOLUME 178, ISSUE 4, P795-806.


사진 credit: CBS news


글쓴이 주) 스티브 잡스가 걸린 췌장암은 췌장 신경내분비종양으로 주로 본 연구에서 다룬 췌관선암과는 다르다. 신경내분비종양과 마이크로바이옴의 관계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췌장암 #마이크로바이옴 #microbiome #항암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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