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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생물학자 천종식 Sep 13. 2019

장내 미생물로 치매 치료가 가능할까?

생쥐를 이용해 증명된 알츠하이머 병 치료의 가능성

[앨리스]
차라리 암에 걸렸으면
[존]
그런 말 하지 마
[앨리스]
난 진심이야.
그럼 지금처럼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아. 암 환자가 되면, 주변 사람들이 응원하려고 핑크 리본 달기도 하고, 오래 걷기 행사도 해주고, 암 치료를 위한 기금 모금 행사도 하잖아. 그럼 내가 사회.., 어, 나 지금 무슨 단어를 말하려고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

영화 <스틸 앨리스>


명문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 앨리스는 한참 인생을 즐길 50세의 나이에 치매의 가장 흔한 종류인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점점 기억의 잃어가는 중이다. 암 같은 다른 난치병처럼 몸이 특별히 고통스럽지는 않지만, 점점 기억을 잃고, 마지막엔 영혼까지 지워지는 무서운 병. 오죽했으면 "차라리 암에 걸렸으면"이라고 한탄했을까?


국제 알츠하이머 협회에 따르면, 전 세게 치매 인구가 2015년 4,680만 명에서 2050년엔 1억 3,1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가장 큰 적이었던 감염병이 항생제에 의해서 후퇴하면서, 최근에는 암이 우리의 가장 큰 적이 되었다. 그럼 미래에도 그럴까? 개인 맞춤형 면역항암제 같은 혁신적인 항암제가 속속 개발되면서, 암의 시대는 가고,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환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이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적절한 치료제는 없고, 최근에 들리는 여러 글로벌 거대 제약사의 임상 실패 소식은 이 질병의 극복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한다. 실제로 상당히 많은 수의 신약 후보 물질의 임상 시험이 최근에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기존의 치료제와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마이크로바이옴'이다. 바로 대장 미생물 생태계의 조절을 통해 뇌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장과 뇌가 연결되어 있다는 '장뇌 축 (Gut-brain-axis)' 가설에 근거한다. 의학 분야 저명 학술지인 Gut 誌에 한국 연구팀의 획기적인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되었다. 바로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이기에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뇌 질환과 관련된 의학 연구의 가장 어려운 점은 아마 실험동물 문제일 것이다. 연구 윤리를 고려하면 당연히 상당한 증거가 있기 전까지는 인간은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실험동물, 특히 생쥐를 초기 연구에 많이 사용하는데 질병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 실험동물이 사람의 질병과 유사한 증상을 잘 나타내야 한다. 예를 들어 피부암은 사람과 쥐가 상당히 유사한 병증을 나타낸다. 하지만 우울증을 한번 생각해 보시라. 우울한 쥐를 우리가 어떻게 진단할 수 있을까? 나도 내가 요즘에 얼마나 우울한지 측정하기가 모호한데. 쥐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대표적인 뇌 질환인 알츠하이머병도 바로 이런 문제가 연구에 큰 걸림돌이다. 인간의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한 질병이 발생할 수 있는 적당한 실험동물을 찾는 것이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필요한 작업이다.


서울대 의대의 묵인희 교수팀은 사람의 알츠하이머병과 아주 유사한 질병이 자연히 발생하는 생쥐의 개발에 성공했고, 2018년에 ADLP(APT)라는 이름을 붙여 국제 학술지에 보고한 봐 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난 이 생쥐를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을 붙여 ‘AD 쥐’라고 부르겠다. AD 쥐는 사람의 알츠하이머병의 여러 증상을 아주 잘 보여준다. 먼저 이 병의 가장 큰 특징인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이 두 단백질이 덩어리가 뇌에서 발견되고, 사람처럼 질병이 진행되면서 단백질 덩어리가 점점 커지고, 반대로 뇌 세포를 상실되게 된다. 그리고 영화 속 앨리스처럼 병이 진행되면서 기억 상실과 인지 능력 저하가 온다. 이런 적절한 실험동물을 개발한 묵인희 교수팀은 이를 이용해 치매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것이 바로 바이오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중요한 '기초'연구에 해당한다. 치매 치료제 개발을 위한 기초 연구는 치매의 모델 실험 동물의 개발인 것이다.


치매 전문가인 묵인희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생물 생태학자인 경희대 배진우 교수팀과 공동연구를 시작한다. 생물학 전공자가 아닌 분들은 그 나물에 그 나물 같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과거에는 연결고리가 별로 없는 완전히 다른 두 분야의 협력이 이루어지는, 흔히 이야기하는 융합하고 상생할 수 있는 드림팀이 만들진 것이다.


이미 치매와 마이크로바이옴의 연관성은 여러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다. 치매 환자의 절반 이상은 고질적인 장 질환을 앓고 있고, 치매 환자와 정상인의 장내 미생물 구성은 상당히 다르다. 그럼 치매가 발생하면, 마이크로바이옴이 변하는 것일까? 아니면 마이크로바이옴 때문에 치매가 발생하는 것일까?


묵 교수팀이 개발한 치매가 발생하는 AD 쥐에서는 사람의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생후 2개월이면 치매 초기 증상이 나타나면서, 이미 정상 쥐에 비해서 상당히 다른 마이크로바이옴을 가진다. 연구진이 세운 가설은 ‘만약 마이크로바이옴 때문에 치매가 진행된다면, 정상 쥐의 것으로 AD 쥐의 마이크로바이옴을 바꾸어 준다면, 질병의 진행이 더디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생후 2개월이 된 AD 쥐에게 정상 쥐의 대변의 미생물을 모아 이식하는 실험을 무려 4개월이나 진행했다. 그것도 매일!


논문에 '거의 매일’이라고 쓰여있어서, 필자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가끔은 대학원생이나 연구원들도 쉬어야지!). 이렇게 힘들게 연구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AD 쥐의 장에 정상 마이크로바이옴을 확실히 정착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게으른 필자라면, 2일에 한 번 이식했을 텐데. (실제 실험을 한 분들께 큰 박수를 보낸다)


장내 미생물 이식을 4개월간 진행한 연구팀은 이제 나이가 6개월, 사람으로 따지면 30세 정도가 된 정상 쥐, AD쥐, 그리고 AD 쥐에다가 이식을 4개월간 지속해서 한 이식 쥐, 이렇게 세 그룹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정상 쥐는 아직 젋으니 아무런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고, AD 쥐는 조작된 유전자 때문에 치매의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야 한다. 그럼 과연, AD 쥐에 정상 쥐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한 쥐의 몸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먼저 장내 미생물의 구성을 살펴보자. 3개 그룹은 서로 다른 세균으로 구성된 마이크로바이옴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경우 치매 환자에서 종 다양성이 크게 떨어지는데, 쥐의 경우엔 오히려 AD 쥐에서 다양성이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상 쥐와 AD쥐가 마이크로바이옴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고, 이식 쥐는 두 그룹이 섞여서인지, 앞의 두 그룹과는 또 다른 마이크로바이옴의 구성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치매의 특징인 베타 아밀로이드의 축적 정도를 보았다. 6개월 된 정상 쥐에서는 당연히 베타 아밀로이드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AD 쥐에 비해서 이식 쥐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으로 적은 수의 베타 아밀로이드가 발견되었다 (아래 현미경 사진). 이 둘은 생후 2개월까지는 같은 쥐였다. 단지 그 후에 마이크로바이옴만 바꾸어 주었을 뿐인데 말이다.

녹색으로 염색된 것이 치매의 특징은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다. 이식 쥐의 뇌에서 AD 쥐에 비해 크게 준 것을 볼 수 있다.


비슷하게, 타우 단백질을 관찰했을 때도 이식 쥐의 타우 단백질 덩어리의 수가 AD쥐의 50% 이하로 크게 줄어들었다 (아래 사진). 마이크로바이옴 이식으로 치매의 가장 큰 특징인 두 단백질 덩어리의 축적이 현저히 줄어들었음이 관찰된 것이다.

붉은 색으로 타우 단백질을 염색했다. 이식 쥐의 뇌에서 AD 쥐에 비해 크게 준 것을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연구팀은 뇌 안에서 일어나는 염증, 즉 신경염증을 관찰했다. 염증은 우리 몸의 면역계가 잘 조절이 되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된 상태를 말한다. 장이나 간 같은 기관에서도 일어나고, 전신 염증은 온몸에 걸쳐 일어나기도 한다. 이미 이전에 발표된 여러 연구에서 뇌 안에도 면역세포의 역할을 하는 세포인 소신경교세포(microglia)가 있고, 이들이 염증 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또 이런 신경염증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파킨슨, 치매와 같은 뇌 질환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진 바 있다. 그럼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식해서, 과연 이런 신경염증이 줄어들었을까?

신경 염증을 나타내는 뇌 안의 세포는 붉은 색과 연두 색으로 염색했다. AD 쥐의 뇌에 비해 이식 쥐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세포가 보인다.

연구진이 발표한 위의 데이터를 보면, 확실히 그렇다. 마이크로바이옴을 바꾸어서 뇌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는 신경염증이 준 것을 관찰한 것이다.


영화 '스틸 앨리스'는 앨리스가 기억을 잃어가는 괴로운 과정을 상세히 그린다. 자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생쥐의 기억 능력은 마이크로바이옴 이식으로 어떻게 영향을 받았을까? 연구팀은 단기 기억을 테스트할 수 있는 'Y형 미로'를 사용했다.

Y 미로 테스트. 외쪽에 있던 먹이를 생쥐가 먹었다면, 그 곳에는 먹이가 없으니 기억을 하고 있었다면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기억을 못 한다면, 다시 왼쪽으로 갈 수 있다.

Y형 미로 테스트는 조금 전의 기억을 기반으로 미로에서 정확한 선택을 하는 확률을 계산하여, 단기 기억 능력을 측정하는 이 실험이다. 테스트 결과, 이식 쥐에서는 정상 쥐에는 못 미치지만, AD 쥐보다는 훨씬 좋은 기억력을 보여주었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치매와 관련된 여러 생물학적 지표만 좋게 한 것이 아니라, 인지 능력의 향상도 가져왔다는 것이다. 바로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물론 이 연구는 생쥐에서 진행된 것이고, 사람에서 똑같이 재현될 것이라는 확증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새로운 치료제 개발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은 충분히 한 것이다. 공여자마다 서로 다른 대변 미생물 이식이 아니라, 약의 형태로 잘 정의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의 개발의 필요성도 열어준 중요한 연구이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신약 개발이나 진단을 위한 후속 연구가 있을 것이다. 이미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연구진이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대변 미생물 이식을 시술하는 임상 연구를 시작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장 마이크로바이옴의 조절이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만약 장내 미생물이 이 질병의 중요한 발생 요인 중 하나라면, 치매 예방의 방법도 개발될 수 있지 않을까? 2015년에만 국내 총 치매 관리 비용은 13조 원이 넘었으며, 2050년에는 무려 106조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한다. 이런 재앙이 오기 전에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혁신 신약을 개발을 통해 알츠하이머병의 예방과 치료가 이루어지길 이 분야의 연구자로 간절히 기원해본다. 많은 후속 연구와 투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도 열심히 여기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드린다.



장내 미생물은 비만, 당뇨, 아토피, 크론병, ADHD, 치매, 파킨슨, 암 등 많은 질병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장내 미생물을 위한 건강한 식단에 대해서 네이버 카페 <바이크로바이옴식탁>에서 자세히 원리과 실천 방법을 알려드리고 있으니 방문해주세요.




이 글에서 소개한 논문


#마이크로바이옴 #microbiome #장내미생물 #치매 #알츠하이머병 #장뇌축 #뇌장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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