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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리뷰 (2편)

AI가 예술가가 되던 날

by GreyMan

[이 글은 Medium에 영문으로 동시 연재됩니다. 한국 베스트셀러 "먼저 온 미래"를 해외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AI 시대를 먼저 맞이한 바둑계의 이야기가 주는 보편적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Link]


AI가 인간 전문성을 어떻게 바꾸는지 탐구하는 시리즈의 두 번째 글입니다.

첫 번째 글은 여기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Link


오후 4시 11분, 그 순간

2016년 3월 9일 오후 4시 11분, 서울.

이세돌 9단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둑판을 바라봅니다. 방금 알파고에게 진 거예요. 그것도 단순한 계산력이 아니라, 해설자들이 "창의적 천재성"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요.

모두가 이세돌이 쉽게 챙길 거라 생각했던 100만 달러(약 12억 원) 상금? 갑자기 아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 방에서 진짜로 죽은 건 돈보다 훨씬 소중한 거였어요.

인류가 독점하던 창의성이 죽은 거죠.


"이건 체스랑 달라요"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1997년에 IBM의 딥블루가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이긴 적이 있어요. 그때 우리에겐 위안이 있었죠. "그냥 빨리 계산해서 이긴 거야"라고요.

바둑은 차원이 달라요. 경우의 수가 10의 761 제곱이래요. 체스(10의 120 제곱)와는 비교도 안 되죠. 단순 계산으론 절대 못 이깁니다. 필요한 건 패턴 인식, 직관...

우리가 창의성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거요.

그런데 알파고가 그걸 갖고 있었던 거예요.

프로 기사들의 증언이 소름 돋아요: "알파고는 4,000년 바둑 역사에서 인간이 한 번도 생각 못 한 수를 뒀다."

진짜 충격은 뭐였을까요? 정작 틀에 박힌 사고를 하던 건 인간이었다는 거예요. 우리 창의성이 처음부터 제한적이었다는 거죠.


제 이야기: 인간관계가 데이터가 될 때

저는 몇 년간 영업과 기획 일을 했어요. 고객 이해하고, 관계 만들고, 제안서 쓰고... 이런 건 정말 인간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었죠.

그런데 어느 날 깨달았어요. 끝이 시작되고 있다는 걸.


모든 통화가 학습 데이터로

제가 일했던 대형 테크 회사에서 본 거죠:

영업사원들 통화 전부 녹음

음성인식으로 텍스트 변환

AI가 학습: 화난 고객 달래기, 성공한 제안 패턴, 매출과의 상관관계

데이터는 이미 쌓여 있어요. 수백만 건의 대화. 수십억 개의 데이터.

회사 역사상 모든 성공 사례를 학습한 AI랑 어떤 영업사원이 붙어서 이길까요? 절대 까먹지 않고, 컨디션 나쁜 날도 없고, 만 번 겪은 상황을 절대 실수하지 않는 AI를요?


5분 만에 뚝딱 나오는 기획서

좋은 프롬프트만 있으면 AI가 몇 분 만에 완벽한 기획서를 만들어요. 제가 며칠씩 분석하고, 인터뷰하고, 정리하던 게 순식간에 끝나더라고요.

이제 질문은 "AI가 기획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니에요.

"그럼 기획자는 뭘 해야 하지?"예요.


"AI는 도구일 뿐"이라는 착각

"잠깐, "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어요. "AI는 그냥 도구잖아. 어떻게 쓸지는 우리가 정하는 거고. 협업하면 되지."

맞아요, 우리는 AI와 "협업"할 거예요. 학생들이 계산기랑 "협업"하는 것처럼요. 우리가 버튼 누르고, 계산기가 생각하는 거죠.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파고 이후에 자기 스타일 고수하려던 바둑 고수들 보셨어요? 선택지가 딱 두 개더라고요:

스타일 버리고 AI 따라 하기

계속 지기

세 번째는 없었어요.

AI가 당신 분야를 정복하면, "안 쓸래"는 선택이 아니라 직업적 자살이에요. 다들 이메일 쓰는데 혼자 손 편지 쓰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죠.


창의성의 불편한 진실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창의성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새로운 걸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어요.

이 정의대로면 알파고는 창의적이었죠. 근데 저를 괴롭히는 건 이거예요:

애초에 창의성이 특별한 게 아니었다면요?

그냥 우리가 설명 못 하는 패턴 인식이라면? "직관"이란 게 그냥 무의식적 정보처리라면?

상상해 보세요. AI가 사람 이름으로 소설을 써요. 그 소설이 문학상을 받아요. 평론가들이 "깊은 인간적 통찰"이라고 극찬해요.

그때도 "AI는 창의적이지 않아"라고 우길 건가요? 아니면 또 기준을 바꿀 건가요?


왜 남의 얘기가 아닌가

2016년 바둑 고수들도 자기들은 특별하다고 생각했어요:

수천 년 축적된 지혜

직관적 이해력

바둑을 통한 예술적 표현


익숙하지 않나요? "바둑"을 여러분 직업으로 바꿔보세요:

"변호사 일은 인간의 판단력이 필요해"

"마케팅은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해"

"개발은 창의적 문제해결력이 중요해"


바둑계는 하루아침에 깨달았어요. 자기들 직관은 열등한 패턴 매칭이었고, 창의성은 제한된 상상력이었고, 전문성은 낡은 경험칙이었다는 걸요.

그들은 이미 2030년을 살고 있어요. 우리만 아직 못 따라간 거죠.


이미 일어난 미래

2016년부터 바둑 프로들이 겪은 일이 곧 모두에게 닥칠 거예요:

평생 해온 일을 AI가 더 잘함

거의 공짜로 누구나 쓸 수 있음

"협업"하라고 강요당함 (사실상 AI 시키는 대로)

알던 개념들이 다 바뀜

잃고 나서야 뭘 잃었는지 알게 될 거예요.


아무도 묻고 싶지 않은 질문

창의성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었어요. 우리 자체였죠.

수천 년 동안 우리는 이렇게 믿었어요: 동물은 도구를 쓰지만 인간은 창조한다. 기계는 계산하지만 인간은 상상한다.

그런데 기계가 우리보다 더 잘 상상한다면, 그럼 인간다움이란 뭘까요?

바둑계 사람들은 이미 알아요. 이해도 못 하는 수를 이길 수도 없는 기계한테 배우면서, 한때 인간 지성의 상징이었던 게임을 두고 있으니까요.

나머지 우리도 곧 알게 되겠죠.


여러분 일 중에 AI가 절대 못 할 거라고 확신하는 게 뭔가요? 정말 확신하세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그리고 2년 후에 다시 와서 읽어보세요.

다음 편에서는 AI가 어떻게 개인의 스타일을 없애고 모든 프로를 똑같은 방식으로 두게 만들었는지 이야기할게요. "전문성"이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분야가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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