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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숭이 Sep 01. 2021

꿈의 정원 가꾸기

오랫동안 꿈꿔왔던 나의 이야기

 “정원아 이 책 읽어 봐.”

아빠가 건네주신 책, <가방 들어주는 아이>. MBC 느낌표 ‘책책책을 읽읍시다’ 선정 도서였다. 10년 만에 처음 받아보는 책 선물이었다. 책 표지를 살폈다. 나처럼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걷고 있는 아이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팡이를 짚고 하교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아이 앞에 서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가방을 든 아이, 나의 도우미 친구가 떠올랐다.

 그때의 내 상황과 비슷해 내용에 빠져들었다. 영택이가 ‘찔뚝이’라고 불릴 때 나도 몇몇 짓궂은 친구들에게 ‘애자’라고 불렸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반가웠고 슬펐다. 또 영택이가 “난 왜 장애인으로 태어난 거야!”라며 울부짖을 때 나도 친구들이 놀릴 때,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답답할 때,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엄마 나는 왜 못 걷는 거야?!!!”라며 울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마음이 더욱 아팠다.

 이 책을 감명 깊게 읽고 얼마 뒤, 학교에서 문집 만들기 행사가 열렸다. 시, 편지, 수필 등 자신이 쓰고 싶은 종류의 글을 써오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난 <내 이름은 박정원>이라는 제목의 수필을 썼다. ‘정원’이라는 이름이 흔하지 않아서 좋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방학식 날이 되었다. 문집을 받아 안을 들여다보니 3-1 박정원 <내 이름은 박정원>이 있었다. 정말 놀랐다. 심장이 방망이질을 해댔다. 믿을 수 없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확인했다. 내가 쓴 글이 틀림없었다. 엄마에게 볼륨 최대로 올린 스피커처럼 말했다.

 “엄마, 엄마! 이것 봐, 학교 문집에 내가 쓴 글이 실렸어!”

 “오 그래, 어디 봐, 오 잘 썼네.”

 글 잘 썼다고 칭찬받은 게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다음 해 문집에도 내 글이 실렸다. 각 반에서 1명만 실릴 수 있는데 내 글이 실리다니 정말 신기했다. 기분이 좋아 색색의 풍선을 타고 파란 하늘로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중학교에 와서 미래의 꿈을 글로 써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당시 내 꿈은 가수였다. 가수가 되어 나의 크고 맑은 목소리로 대중에게 힘이 되겠다는 꽤 당찬 포부였다. 난 나의 꿈을 단편 소설로 표현했다. 잠실 주경기장을 자신의 팬들로 가득 채운 성공한, 행복한 모습을 그렸다. 우연히 아빠가 이 글을 보셨다.

 “와! 정원이 글 잘 쓰는데?”

 아빠의 칭찬은 가뭄처럼 메말라서 항상 칭찬에 목말라 있었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를 본 것처럼 기뻤다. 이후 고등학교 때까지 저작권 관련, 양성평등 글짓기 등 글짓기 관련 교내 행사가 있으면 참가했다. 참가할 때마다 입상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두 장려상이었다. 이때부터 슬슬 글 쓰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내가 글을 써야 한다고 응원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작문 과목을 담당하셨던  담임선생님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대학 입시 준비로 자기소개서를 선생님께 첨삭받았다. 내가 지원했던 학과는 ㅇㅇ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자기소개서에는 [점점 삭막해져 가는 이 세상에 내 글로 온기를 불어넣고 싶다, 내 글이 따뜻한 세상으로 변해가는 데에 보탬이 되고 싶다.]라고 적었다. 선생님은 나와 입시 상담을 하다 위에 언급했던 부분이 인상 깊어서 “정원이는 글을 써야 할 것 같아, 자세가 좋아, 마음가짐이 좋아.”라고 내게 용기를 주셨다. 하지만 안타깝게 면접에서 떨어졌다.

 초조해져서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교를 검색, 학과를 둘러봤다. ㅇㅇ대학교 언어치료학과가 눈에 번쩍 들었다. ‘언어’라는 단어가 있어서 그런지 국어 관련 학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학과 설명을 보지 않은 채 반가운 마음에 지원했다. 면접 기회가 왔다. 기억에 남는 답변이라면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삶을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기회다]라고 발언하여 면접장에서 박수를 받았다.

 학교에 입학했다. 집과 거리가 멀어서 4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했다. 학과 이론을 공부해보니 국어 관련 학과가 아닌 언어재활을 하는 치료사를 양성하는 학과였다. 학과 선배들이 내 장애가 치료받는 아동들이나 보호자들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일 것이라며 전과를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불편한 몸이지만 글이 아닌 치료사로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자라는 생각으로 4년을 지냈다. 그리고 제4회 2급 언어재활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졸업 이후 자원봉사까지 약 1년간 언어치료사 일로 대상자들과 보호자들께 꿈과 희망, 용기를 주었다. 대상자들에게는 할 수 있다는 꿈을, 보호자들께는 자신의 아이도 나처럼 키우고 싶다는 희망과 용기를 드렸다. 하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병원이 폐업했다. 또한 평소 치료 진전에 대한 압박으로 스트레스가 매우 컸다. 그래서 다시 방향을 틀었다. 글로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깨닫지 못했던 이치를 깨우치게 하는 작가가 되겠다고.

 구체적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첫 번째로 아이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작가. 난 아이들이 잉크가 번지기 전 투명한 물과 같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예쁜 색의 잉크를 타 주고 싶다. 조금 삐뚤어진 사고를 가졌던 아이들도 그 시간이 노인만큼 길지 않기 때문에 바꾸기 쉬울 것이다. 아이들은 이다음에 세상을 이끌어갈 주역들이고 나의 글로 아이들이 좋은 배움을 알고 실천한다면 현재보다 훨씬 더 나은 세상이 될 거라고 믿는다. 또 장르 불문 장애인을 둔 가족의 이야기, 장애인 친구를 둔 비장애 친구 이야기를 써서 그들의 고충을 알리고 그들에게 글을 통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끝으로 서점에서 신간 읽기가 취미인데 언젠가는 나의 신간을 독자들 속에서 함께 읽고 싶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얘들아, 이 책 읽어 봐. 내가 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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