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비용을 받으려면 또 법원에 가야 한다?
회사에서 '법무'를 담당한 지도 5년 6개월 정도가 흘렀다. 이 기간 동안 대학시절 글로만 배웠던 것들을 직접 경험해 보면서 재밌기도 하고 통쾌한 순간도 많았지만, 활자에서 배울 수 없었던 현장감을 깨닫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사건 하나가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법을 공부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대법원 판례들을 접하게 된다. 상고심(제3심, 대법원)은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건의 사실관계가 판결문에 상세히 기재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를 파악하기 위해 하급심 판결문까지 찾아가다 보면 제1심 판결부터 상고심 판결까지 짧게는 3년 길면 수년씩 걸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당시에는 빠른 속도감의 법정드라마가 현실보다 더 익숙한 학생이었기에 사법부의 사건처리 속도가 쉽게 납득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종류의 분쟁을 접해본 현재의 나로서는 3년이면 "꽤 빨리 끝났네?"라는 생각과 “그만큼 신중했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대법원이 발표한 《2023 사법연감》에 따르면 민사 1심 합의부 사건의 경우 평균 14개월, 항소해서 고등법원으로 올라간 경우 또다시 10.5개월, 상고해서 대법원으로 간 경우에는 4.9개월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내가 회사에서 담당한 사건들도 상고심까지 진행된 경우에는 평균적으로 3년이 걸렸다. 이마저도 대부분 심리불속행기각으로 끝났기에 이 정도의 기간이 걸렸던 것이지, 만약에 내가 담당했던 사건이 하급심 사건들의 기준이 될만한 법리적인 쟁점이 있었다면 현재까지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고 또,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상고심에 올라갔던 사건이 파기환송되어 원심법원으로 되돌아가는 경우에는 재판 기간이 더더욱 늘어나 버렸을 것이다.
긴 시간을 거쳐 판결이 확정되고 나면 승소한 사람은 기쁘고 패소한 사람은 슬프거나 분노가 차오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현실은 좀 다른 것 같다. 승소한 사람도 예전에 내가 느꼈던 감정처럼 허탈감을 느끼기도 하며, 당연한 내용을 가지고 "이렇게나 길게 끌었어야 했나?" 하는 분노가 차오르기도 한다. 패소한 경우에는 슬픔보다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에 두려움과 걱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금전과 연관된 소송의 경우에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소장 부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또는 판결 선고일로부터 연 12%의 이자가 계산되기 때문에 충분한 자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꽤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판결이 확정되고 나서부터가 찐이다.
소송이 진행 중일 때도 할 일은 넘쳐나지만 판결이 있고 나서도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최근에 내가 담당했던 미지급 임차료와 건물인도 청구 소송을 예로 들자면 승소는 했지만,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상대방 측에서 순순히 판결의 내용대로 이행하면 다행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또다시 법원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받지 못한 임차료에 대해서는 채권압류와 추심명령 또는 전부명령을 받아야 하고 건물인도의 경우에도 법원 집행관 분들과 함께 법에서 정한 절차대로 건물을 인도받아야 한다.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무턱대고 건물로 들어갔다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거침입죄, 업무방해죄,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송과정에서 투입된 소송비용을 받으려고 해도 법원을 찾아야 한다. 「민사소송법」 제98조에 따라 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토록 하고 있으나, 일부승소인 경우에는 이겼더라도 소송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는 판결이 나오곤 한다. 여기서 함정은 판결에서 소송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하는지는 정해 주지만 그 액수를 명확히 확정시켜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선 귀찮게도 영수증 등 자료를 정리하고 나서 '소송비용액 확정 신청'을 별도로 접수하여야 하고 또, 법원으로부터 결정을 받아야 한다.
받을 수 있는 소송비용은 변호사 보수, 감정 비용, 증인 여비 등 다양하다. 특히, 변호사 수임료의 경우에는 대법원이 정한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착각처럼 1억을 썼다고 해서 1억 모두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단해 보이는 이러한 결정도 금방 나오지 않고 평균적으로 3개월은 소요되고, 각 당사자는 당연히도 불복할 수 있다. 만약에 상대방이 소송비용을 상환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법원에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등을 신청해야 하는 것은 동일하다.
제1심부터 상고심까지 시간과 판결의 이행(집행)을 위한 법원의 결정, 마지막으로 소송비용확정신청까지 진행해야 하니 하나의 사건에서도 법원을 수없이 거쳐야 한다. 나로서는 이런 일들을 회사에서 계속적으로 처리하다 보니 갑작스레 소장을 받게 되는 날이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헤드라이트 없이 진입하는 것처럼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법률 분쟁은 터널에서 숨을 참는 것과 같다.
모두들 어릴 적 누가 알려준 적은 없지만, 차를 타고 터널을 지나갈 때 숨을 참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소송도 별반 다르지 않다. 터널의 입구에서 이미 빛이 보이는 경우에는 싱겁게 지나가지만 빛이 어렴풋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점점 숨이 막혀오기 시작한다. 소송에서도 소액사건이나 너무나도 명확한 증거가 있는 때에는 금방 끝나기도 하지만, 금액이 크거나 한쪽 당사자가 작정하고 갖은 수단을 동원해 소송을 지연시킬 때에는 정말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답답함이 밀려온다.
업무로서 소송을 담당하는 나로서도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는데, 개인적인 입장에서 소송을 진행 중인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끔찍한 시간의 연속일 것이다. 이마저도 한 개의 터널을 꾹 참고 버텨냈지만 이내 새로운 터널이 시작되는 경우에는 숨 한번 크게 내쉴 틈도 없이 다시 숨을 참아야 한다.
출구가 막힌 터널은 없다.
터널에 진입한 이상 어떻게든 빛을 보게 되는 것처럼 시간은 미래로 흐른다. 나 역시도 담당하고 싶지 않던 사건을 담당하며 괴로워했던 시간들이 결국에는 지나갔고, 승소를 해서 기뻤던 순간도 찰나에 불과했다. 소송의 마무리인 소송비용을 받아내기 위해 상대방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오늘 나의 업무도 퇴근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는 과거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이 긴 소송을 견디지 못해 포기하기를 바라며 억지주장으로 소송을 지연시키기도 하지만, 어두운 터널 끝의 빛을 마주하며 멈추었던 숨을 내쉬기 위해서는 참아내야 하는 수밖에 없다.
힘들었던 날, 화가 났던 날, 가슴이 철렁했던 날, 함박웃음을 지었던 날, 초조했던 날 등등 결국엔 모두 지나간다. 어떻게든 결론이 나는 소송처럼 괴로웠던 순간을 지나 보내고, 우리는 또 다른 내일을 마주해야 한다.
결국에 터널의 끝은 오고, 상쾌한 숨을 쉴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