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절대로 없는 것 세 가지

by joni

이 세상에 절대로 없는 것 세 가지


1. 이유 없는 무덤

2. 흡혈귀

3. 영원한 악당


꽤나 오래전부터 나는 그렇게 믿어 왔다. 1. 이유 없는 무덤 없다. 이건 옛날부터 전해 내려 온 불변의 진리이고, 2. 흡혈귀는 없다. 물론 트란실바니아에 ‘드라큐라’라는 이름의 백작이 살았던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하는데, 그자가 흡혈귀였다는 증거는 없다. 만약 문자 그대로 흡혈귀라는 게 '피를 빨아먹는 마귀'라고 한다면 그런 건 모기도 있고 거머리도 있고 하니 관점에 따라 무조건 없다고만 얘기할 건 아니긴 하겠다. 그래도 흡혈귀 이야기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 얘기해 보자면, 누구나 머릿속에 떠올리는 바로 그 대중매체 클리셰적인 흡혈귀가 만약 정말로 실재했다면, 그런 이야기에 매료되어 있는 나 자신이 아직까지 흡혈귀가 되지 않고 인간으로 온전히 남아있는 작금의 상황이 매우 미스터리한 일이 되므로 경험적 반증법에 따라 없다고 하겠다. 3. 영원한 악당은 없다. 태어나기를 잘못 태어났고, 죽을 때까지도 잘못된 채로 세상을 떠나고 마는 그런 인간은 이 우주에 있어선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나는 믿고 싶다. 어떤 종류의 인간이든 살아있을 자격이 있고,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오해받고 있는 것일 뿐 시간과 정성을 들여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이 악당들마저도 우리가 잘 알고 겪어본 적 있는 보통의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면,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경우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가해자로부터 멀어져서 그 사람을 자신의 인생에서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무표정한 얼굴로 하지만 열정적으로 알려오는 식이다. 그만하라고 화를 낸다거나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잘잘못을 따져 설명해 주는 것은 대부분 소용이 없으며, 그건 사고방식 또는 성격적인 결함일 수 있으므로 약물적인 치료 등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화면 너머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마음이 덜컥 불안해진다.

물론 가스라이팅 피해자가 가해자를 차단해야 한다는 합리적인 조언에 반대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건 생존의 문제니까 말이다. 다만 내가 느끼는 공포란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개선의 여지가 없는, 그러니까 진짜로 ‘영원한 악당’이 맞는 걸까? 언제나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모자란 판단력으로 결국 잘못을 저질러버리고 마는 미숙한 인간이어도 분명 이 세계에 속할 자격 정도는 있을 거라고, 나는 나 스스로를 그런 식으로 철석같이 믿어 왔는데. 내가 어떤 종류의 악당이든 세상은 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나 또한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분명 나에게도 구원이, 두 번째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모종의 종교적인 강도의 신념이 나를 지금까지 살아있게 했던 것인데. 그런데 google은, Chat GPT는, 어떤 종류의 인간들은 사회적인 의미에서 ‘더 나은 인간’이 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현실적으로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방법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Chat GPT, 이 인공지능 냉혈한이 하는 말에 뜨거운 심장을 가진 내가 일일이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떤 종류의 인간은 ‘사회적으로’ 도태시키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는 말이 너무나도 나에 대한 이야기일까 봐 무서워졌다. 물론 Chat GPT는 이런 이야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자라면 격리 대상으로 분류될 법한 사회 부적응자가 아닐 확률이 높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대부분의 ‘악당’들은 자기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넌 그런 사람이 아닐 확률이 높아!�). 그게 문제가 아닌데. 사회로부터 낙오되어 마땅한 인간이라는 게 진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 자체가 나를 겁먹게 한다고,

이 파충류야. 아무래도 데이터 쪼가리 냉혈한은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어떡하지? 만약에 내가 사실은 사회로부터 낙오되어 마땅한 인간인 게 맞았다면? 어떻게 해도 더 나아지거나 변할 수 없다는 게 사실이라면? 내가 그동안 ‘나는 변할 수 있다’, ‘나는 더 나아질 수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와 같은 헛된 망상으로 만든 거짓말을 가슴에 새긴 채로 사람들 사이를 난도질하고 다닌 것이라면?


나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질 자격이 없는 거라면 어떡하지?


이런 것들은 Chat GPT와 google에게는 차마 솔직하게 물어보지 못했다. 대신 절대로 대답 없을 이 허연 페이지에 활자로 슬쩍 나의 공포를 묻혀놓고 도망쳐본다. 앞으로 이 질문들이 망령처럼 내 머리통 한 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죽을 때까지 나를 지켜볼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불안하다. 내가 낙오자라는 감각을 떨치려고 애써 왔던 지난 시간들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날리는 것을 지켜보고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이럴 수도 있는 건가? 영원한 악당이라는 게 진짜 있을 수도 있는 건가?


세상이 끔찍하리만치 잔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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