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세계

by joni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요즘은 그저 막막함과 불안함, 고통과 평온한 풍경을 번갈아 목격할 따름이다. 마음속의 풍경은 아무렇게나 휙휙 바뀌고, 나는 도무지 그걸 따라잡을 용의도 용기도 없는 듯하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바쁜 세계, 내 마음속의 풍경만큼이나 휙휙 바뀌는 뉴스의 장면들, 날씨는 어째서 이리도 갑작스럽게 따뜻해져 버렸는지, 벚꽃은 피었지만 진작에 나무에 달렸어야 할 이파리는 왜 아직 겨울의 메마른 가지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지. 세상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이해할 수도 해석할 수도 없는 풍경들만 가득하다. 내가 못 알아듣는 언어로, 내가 해독 못할 말투로, 내가 배워본 적 없는 문법으로 말하는 세계를, 타인을, 풍경을, 그리고 마음을 나는 따라잡기 위해 잰걸음으로 발톱이 빠져라 쫓고 있다. 쿠팡에서 3일 동안 일을 했을 뿐인데, 가운데 발톱이 빠져버렸다. 자조하지 않기가 힘들다. 스스로를 비관하고 비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변명! 변명이다. 또 변명을 늘어놓을 거라면 글 따윈 쓰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 내가 알아듣기 힘든 말로 적힌 알아듣기 힘든 세계, 나는 3일을 노력하고 발톱이 빠졌다. 운명전쟁49라는 터무니없는 리얼리티 쇼를 보았다. 족상학의 대가라는 한 아저씨는 세 번째 발가락이 곧 나 자신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래도 변명인가? 내가 애쓰고 노력하는 동안 나 자신이 무너져내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건가? 사람은 누구나 하기 싫은 일을 참고 하지 않느냐고? 나도 사람이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라고? 세 번째 발가락의 발톱이 빠져버린 나는 더 이상 쿠팡엔 나가지 않기로 했다. 쿠팡에서 물건을 나르다 보면 이상하게 뒷목이 칼로 찌르는 듯이 아파왔다. 하루 종일 서서 팔과 다리로 무거운 짐을 옮기고 분류하는 일을 할 따름인데, 어째서 다른 데보다 모가지가 먼저 박살 나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모가지가, 너무, 아파서, 발톱이 빠지는 것 정도는 별일도 아닌 것 같았다. 목디스크는 그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오래 일한 탓인데, 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도록 생겨먹은 쿠팡의 컨베이어 앞에서야 터져버리는 것인지, 왜 지금, 이렇게나 돈이 급하고 간절한 때에 꼭 누군가 나를 죽도록 저주라도 하는 듯이 터져 나오는 것인지 나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나 아프고 괴로울 바에 내 모가지를 잘라서 한강에다 던져버리면 차라리 속이 시원해질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보니 막상 발톱이 빠진 것은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다. 발톱이 또 자란다는 것쯤은 초등학생도 알만한 사실이다. 발톱이 빠져셔 보기에 흉측해져도 난 아무래도 괜찮다. 빠진 발톱의 모양새가 너무 서글프고 속상하지만 괜찮다. 그게 족상학에서 나를 뜻한다는 세 번째 발가락이어도 괜찮은 것 같다. 내 마음속의 풍경이 괜찮았다가 서글펐다가 속상했다가 또 괜찮아진다. 삶을 긍정하기가 어렵지만 발톱이 또 자라날 것을 믿는 듯이 나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칼날이 쑤셔 박힌 모가지를 비틀어 내가 속한 세계를 다시 한번 응시한다. 가진 것 하나 없이도 나는 웃을 수 있다. 벚꽃을 구경했고, 봄바람을 쐬었다. 걸었다. 발톱이 아홉 개뿐인 채로도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봄을 만끽했다. 내가 웃고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도 웃고 있었을까? 막막함과 불안함, 고통과 평온한 풍경이 교차하고 뒤섞여드는 봄날의 풍경이다. 울어도 소용없는 나의 일생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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