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by joni


우리 엄마는 특별하다.

꽤나 매력적인 외모와 동안의 얼굴, 이것저것 다양한 신변잡기가 많은 데다가 늘 활기차고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할 줄 안다. 나와는 비교를 하면 안 된다. 나는 엄마의 유일한 자식인데도 불구하고 엄마의 멋진 부분들은 거의 하나도 닮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내 또래의 부모님들과 비교해도 우리 엄마가 젊은 편이기는 하지만,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의 우리 엄마는 정말로 지나치게 젊어 보여서 낯선 사람들은 종종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던 엄마에게 (나를 손가락질하며) 조카, 친척, 심하면 늦둥이 동생이 아니냐는 충격적인 질문을 하곤 했다. 그러면 어쩐지 엄마는 지나치게 기분이 좋아져서는 냉큼 그렇다고, 자식이 아니고 조카나 동생쯤 된다고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중대한 거짓말을 해버리는 것이었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또는 멀리 떨어져서 보자면 이건 그냥 웃긴 이야기일 뿐이다. 대학 때 자취방에서 헐레벌떡 샤워를 하느라 머리에 샴푸 거품을 잔뜩 묻혔는데 갑자기 수도가 뚝 끊겨버리는 바람에 눈도 뜨지 못한 채로 덩그러니 화장실에 서있느라 약속시간을 놓쳐버렸다는 시트콤 같은 이야기.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욕실 안에서 눈을 꼭 감은 채로 ‘나는 왜 이럴까’ 하며 품었던 자기 연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중딩이었던 나는, 나를 자식이라고 소개하지 않는 엄마를 보며 어쩌면 나를 낳은 걸 후회하는 걸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엄마는 노래를 잘한다. 춤추는 것도 좋아한다. 나를 임신했던 당시에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해야 했던 엄마는 하루종일 소파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걸로 태교를 대신했었다고 들었다. 아니, 엄마가 그러고 있는 사진을 내 눈으로 보았다. 그런데 내겐 엄마의 음악적 소양이 그다지 유전되지 못했다. 나는 목청이 크긴 해도 박자 감각은 터무니없다. 리듬 게임은 내 약점이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서너 살일 무렵 전국 노래자랑에 출연해 상을 탔다. 아빠는 동네 창피하다면서도 만나는 사람한테마다 그 얘기를 했다. 내가 살던 시골 마을은 여름이면 별의 별 동물들이 내는 울음소리로 동네가 시끌벅적해지는 곳이었다. 논에서는 하루종일 개구리가 개굴댔고, 뒷산에 오르면 아름다운 새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어린 내가 엄마에게 붙잡힌 채로 엉엉 울며 샤워를 당할 때마다 우리집 화장실 한 구석에 숨어들어온 귀뚜라미 한두 마리가 귀뚤귀뚤 귀뚤귀뚤 나와 같이 울어주던 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하지만 그 모든 대단한 노랫소리들 사이에서도 우리 엄마가 당연히 1등이었다. 당연히, 나는 우리 엄마가 1등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목청이 큰 애다. 싱그럽고 멋진 버드나무에 매달린 채로 맴맴 비명을 지르던 거무튀튀한 참매미. 나는 모두가 노래를 그치고 땅속으로 알 속으로 방구석으로 기어들어가는, 사위가 고요하기 짝이 없는 한겨울에 태어난 애다.


엄마는 분명히 아주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내 어린시절 이후 도시에 나와 살면서도 깊은 산속 유명한 절들에 찾아가기를 좋아했고, 다시 귀농한 후에는 평소에도 법복을 즐겨 입으며 햇살 아래에서 불교 경전을 읽는 것으로 한가한 오후를 보내기도 했다. 나도 엄마를 따라 셀 수 없이 많은 촛불과 불상 앞에서 영문도 모르는 채 무릎을 꿇어온 역사가 있다. 이마를 마룻바닥에 딱 붙이고 납작 엎드린 채로 절을 할 때마다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묘한 수치심과 어색함을 느끼며 고개를 돌려 절하고 있는 엄마의 옆얼굴을 쳐다보곤 했는데, 바닥을 향한 엄마의 눈은 언제나 감겨 있었고 그 옆에 나란히 놓인 손바닥은 반대로 하늘을 향해 열려 있었다. 엄마가 마룻바닥에서 머리를 떼어내면 그제서야 나도 고개를 똑바로 하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두번 반, 절을 하는 동안 엄마와 나는 늘 똑같은 짓을 한다. 불상 앞에서 나는 고개를 돌리고, 엄마는 눈을 감고. 나는 엄마를 쳐다보고, 엄마는 손바닥으로 부처님의 발을 받들고. 엄마의 소원은 이루어질까? 절을 할 때마다 엄마는 나를 잊어버리는 걸까? 나는 절을 하는 도중에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바보같은 표정을 지어보인 다음에 씩 웃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대웅전 마룻바닥에 허리를 펴고 꼿꼿이 앉은 엄마는 말하는 것조차 꺼렸다. 나는 그래도 절이 좋았다. 산속에 있는 절에만 가면 시골에 살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내 걸음도 대여섯살짜리만큼 느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의 소원이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아무 소원도 없었던 시절.


그런데 엄마가 개종을 했다. 이제 교회에 다닌다고, 복음이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휴대폰 너머에서 진지하게 말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웃기는 소리, 나는 엄마가 웃겼다. 그런데 엄마는 언제나, 내가 ‘내 뜻을 펼치며’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나는 더이상 엄마가 웃기지 않았다.

부처님이 결국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변덕 심한 우리 엄마가 다른 신을 찾아나선 걸지도. 하느님은 좀 다를까? 눈을 감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게 하지 않고도 엄마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을까? 엄마가 교회에서 기도하는 모습은 상상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엄마는 법복이 깜찍하게 잘 어울리는 작고 마른 체구였으므로. 고요한 산속 깊은 절을 차박차박 거닐며 산세를 둘러보던 긴 머리칼의 뒤통수야말로 어린시절의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이므로. 엄마를 보러 못간 지가 꽤 되었다. 이제 엄마는 손바닥을 하늘로 열어보이기를 관두고 가슴 앞에다 다소곳하게 모으기로 한 모양이다. 변덕 심한 우리 엄마. 언제나 내가 따라가기가 벅찼던 우리 엄마. 손 모양이 달라졌듯이 기다리다 지친 엄마의 소원도 언젠가 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너무나 닮지 않은 엄마와 나, 너무나 닮지 않은 두 명의 신, 너무나 틀려먹은 소원.

이토록 간절하게 엄마의 소원을 이뤄주고 싶어하는 나는 한겨울에 태어난, 목청만 좋은, 부처님 앞에서 소원조차도 빌 줄 모르는 신이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엄마의 하나 뿐인 분-신’이므로. 엄마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나를 사랑한다. 나는 엄마를 따라 절에 갔던 때를 떠올리며, 그날의 엄마처럼 조용히 눈을 감고 엄마와 똑같은 소원을 빌어본다. 엄마는 불상으로부터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언제나 나를 너무 지나치게 사랑할 수 있었음을 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엄마를 닮지 못했다. 여전히 비명을 지르는 거무튀튀한 참매미인 채로, 뻔뻔하게도 나는 엄마의 분신 대접을 받는다. 나는 나의 맴맴 비명소리 때문에 엄마의 기도를 듣지 못한다. 깊은 산속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던 부처님도 아마, 매미 소리가 시끄러워서 엄마의 소원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진작에 눈을 감고 소원을 비는 법을 배웠어야 했는데, 엄마는 내게 한번도 그걸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기어코 엄마를 원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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