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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존재 Apr 07. 2023

18. 포르투갈에서의 삼시세끼

요즘에 남편에게 자주 내뱉는 말이 있다.


"우리 집에 셰프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


당최 말도 안 되는 소리라 나도 남편도 헛웃음이 나오는 순간이다.

둘이 사는 집에 무슨 셰프가 필요하겠냐만은...


셰프가 있으면


메뉴 고민 안 해도 되고,

장 보는 시간 절약되고,

제때에 규칙적으로 식사할 수 있으며,

영양가 있는 식단으로 건강까지 챙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유난히 피곤했던 하루를 보냈던 날,  

마침 식재료가 딱 떨어진 날은 저녁 식사만이라도 누군가가 딱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남편도 여기에는 100% 동감!)




대학을 다닐 때는 기숙사 식당에서 삼시 세끼가 잘 나왔다.


휴학하고 복학하고 나서는 아는 언니와 함께 학교 근처에서 1년 정도 자취를 했었는데 학교 식당도 가깝고 주변에 먹을 곳도 많고, 또 같이 사는 사람이 있으니 소박하게라도 차려서 같이 먹고는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혼자 자취를 시작한 날부터는 요리하는 삶과 완전히 멀어졌다.


나의 첫 직장은 아주 작은 홍보대행사였다.

야근을 밥먹듯이 했기에 저녁 때로는 야식까지도 회사에서 모두 해결했다.

그래서 부엌 싱크대에서 설거지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엄마는 늘 일에 쫓기는 내가 밥을 제대로 안 챙겨 먹을까 봐 걱정하셨고,

전화를 하면 늘 우리의 대화는...


"엄마!"

"밥 잘 먹고 다니냐?"

"네. 잘 먹어요."

"바빠도 절대 밥 거르면 안 된다. 너 저번에 왔을 때 삐쩍 말라가지고... 응? 밥 잘 안 챙겨 먹제?"


 또 같은 설교가 시작된다.


"(아주 약간 짜증스럽게) 저 잘 먹고 다녀요. 회사 동료들이랑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니고요. 아휴 걱정 마세요!"

"이번에 김치랑 반찬이랑 과일이랑 보냈으니까 꼭 챙겨 먹어라."


그렇게 냉장고에서 묵을 대로 묵어져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쉰 김치만 몇 키로다.


삼시 세끼 제대로 챙겨 먹는 게 귀한 줄도 모르고 엄마가 보내주신 김치를 입에 대보지도 않고 몇 달 묵혔다가 쓰레기봉투에 욱여넣어 버린 적도 여러 번이다.


그때는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지라 국물이 흐르고 냄새 때문에 버리기 번거로운 김치를 바라보며 짜증도 참 많이 냈었다.


이제 더 보내지 마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엄마에게 절대 못했던 얘기다.

물론 앞으로도 말이다.




응답하라 1994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전라남도 순천이 고향인 해태가 서울로 올라와서 하숙집에 살고 있는데 엄마가 보내 주신 무화과잼을 다 먹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 얘기를 듣고 해태 어머니는 새벽에 딴 무화과로 만든 무화과잼을 또 보낸다고 하신다.


그렇게 어머니와의 통화가 끝나고 해태의 시선이 향한 곳은 열어본 흔적 없이 검은 비닐에 싸여 책장에 놓여있는 무화과 잼이었다.


그 에피소드를 보고 엄마 생각이 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확신했다.

분명 그런 경험이 있는 작가가 자신의 얘기를 쓴 것이라고.

 



배달 음식이,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이 엄마 김치와 반찬보다 맛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뀐 건 아일랜드에서 살고부터였다.


비싸서 외식은 꿈도 못 꿨고 식비를 줄이기 위해 기본양념을 사서 집에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만들다 보니 레시피를 찾아보며 요리하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처음에는 김치도 사다 먹었는데 갓 담근 생김치가 먹고 싶어 집에서 담그기 시작했다.


엄마가 담그는 것만 보고 먹을 줄말 알았지 만들어 본 적이 없는 내가 양념 조절을 못해 첫 김치를 처절히 실패한 후 절치부심으로 담근 두 번째 김치가 맛있게 됐고, 친구들의 응원을 받아 세 번째 담근 김치는 주문을 받아 소량으로 한인들에게 팔아보기도 했다.


그때부터 포르투갈에서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김치는 만들어 먹고 있고, 한국에서 만큼 다채롭게 해 먹기는 어렵지만 아시안 마켓, 한인 마켓에서 웬만한 식재료는 다 구할 수 있어서 서운하지 않을 만큼은 한국 요리를 해 먹는다.




그런데 최근에 남편과 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하루 한 끼는 이 파우더만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파우더 두 스쿱, 그리고 500ml의 물을 셰이커에 넣고 마구 흔들면 한 끼의 식사가 된다.


일반 프로틴 셰이크와 다르게 프로틴뿐만 아니라 한 끼의 식사에서 섭취해야 하는 영양분이 골고루 들어가 있다.


남편보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한 나이기에 한 끼를 저 파우더로 때운 다는 것이 말도 안 되지만 실제로 삶이 조금 더 가벼워질 것 같아 기대도 된다.


아니지.


오히려 요요가 심하게 와서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해 먹고 싶은 욕구가 더 발산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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