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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Aug 24. 2017

개인적이고, 가장 문제적인.

퍼블리 글 쓰기 전에 시동 걸기 위해 부릉부릉

1.


세상에서 가장 사적이고, 정치적인 공간은 어디일까. 정치라는 게 권력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에 개인적이고 사적인 동시에 권력관계를 갖고 있기는 쉽지 않다. 어찌 보면 형용모순처럼 들릴 정도다. 배트맨인 동시에 슈퍼맨이고 사이보그인 놈이 나와야 할 정도다 (실제로 셋이 합체한 캐릭터가 있기는 하다).


바로, 집이다.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개인적인 공간이다. 집에 있으면, 방 안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우면 길거리와 학교에서 금지된 '대자'로 뻗게 된다. 하루 웬종일 '대자'로 뻗지 못해 죽은 귀신이 들렸나? 싶을 정도로 벌러덩 눕는다. 세상 누구의 눈치도 없이 무기력하게 누워있을 수 있는 곳이다. 애인이랑 전화도 하고, 야동도 보고, 괜히 소개팅한 사람의 프사를 쳐다본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보기엔 좀 부끄러운 아이돌의 무대도 본다. 


근데, 집은 사실 조-올라 정치적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엄마와 아빠의 눈치를 본다. 학교 끝나고 집에 왔을 때 냉랭한 기운이 느껴지면 졸라 몸을 사린다. 친척이 모이는 제삿날이나 명절엔 이 정치의 수준이 더욱 고차원으로 올라간다. 자식자랑을 매개로 한 며느리들의 기싸움이나 누가 먼저 친정으로 가는지를 두고 싸우는 치열한 눈치싸움부터 엄마의 눈치를 보며 졸라게 집안일을 하는 무기력한 대학원생 구모씨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와중에 어른들이 "너 요즘 뭐하니?" 라고 물으면 졸라 닥치고 주방에 가서 일을 돕는다. 


오늘, 뭐랩 라이브를 끝내고 집에 가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집만큼 정치적인 곳이 어디 있겠냐고. 내일은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제사가 있는 날인데, 솔직히 가기 싫다. 큰집에 갈 생각을 하니까 숨막힌다. 내게 친척집은 항상 그런 공간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요즘 학원 잘 다니니? 중학교 때는 뭐 등수는 어떠니? 고등학교 때는 무슨 대학교가니? 였다. 사실 큰엄마와 큰아빠들만 조촐하게 모이는 날이면 상관없는데, 이름과 직업 그리고 촌수와 직업마저 모르는 친척들이 모이는 추석과 설날 당일엔 진짜 카테나치오 후두려팼다. 


어른들의 저런 질문엔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진짜 그것말고 어떻게 대화를 걸지 모르는, 안타까운 배경이고 둘째는 자기 자식 자랑을 위한 큰그림이다. 사실, 어른들의 갱킹에 무기력하게 당할 나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좋은 학교에 왔으니까 (여기까지가 리즈였지 ㅅㅂ). 


저 갱킹을 당하면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내 친구들은 잘 알겠지만, 난 명절 때 진짜 카톡에 불이 날 정도로 톡을 한다. 왜냐면 친척집에 가면 묵언수행을 하는데 (웃지도 않는다) 개인이 하고 싶은 소통의 양은 그대로 있어서 그걸 카톡으로 푼다. 근데 진짜 묵언수행한다. 요즘 뭐하냐? 는 질문에 아니 뭐 그냥 있어요 라고 답하고, 잘 지내니? 하면 네. 뭐 학교는? 하면 그냥 네만 한다. 중학교부터 그랬다. 


비단, 나만 그럴 건 아니다. 친척집이나 큰집 그리고 명절이 기쁘다거나 진짜 명절인 집안이 어디 있겠냐.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아니 시발 이럴 거면 대체 왜 모이냐? 싶은 거지. 


내리갈굼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저 갱킹에 시달리니까 엄마와 아빠한테 두 가지를 부탁했다. 제발 사촌동생이나 사촌 형과 누나한테 "요즘 뭐하니?" 라거나 "회사 잘 다니니?" 라는 걸 묻지 말라고. 엄마의 일은 내가 그만큼 하면 되는 거고, 아빠의 문제는 음... 여튼. 근데 내가 당한 갱킹을 방지하려면 어른들의 입을 막거나 우리 부모님에게 제발 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나름 최선이지. 또 하나는 제발 누구 앞에서 내 이야기 하지 말라고. 


뭐, 내가 너무 시니컬한 걸 수도 있겠지만, 나를 공개하면 공개할수록 그게 상처가 되거나 누군가의 뒷담화거리로 씹히는 게 친척집일 거다. 진짜일걸? 직업, 소득, 결혼 상대, 학교 등등 온갖 것으로 평가하고 평가받고 욕하고 씹는 공간이니까. 명절에 받는 스트레스를 그걸로 푸는 거 같은데, 얼마나 한국의 명절이 좆같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명절마다 해외로 떠난다는 뉴스를 보면 "와, 이씨 우리나라 졸라리 잘 사네!" 보다는 "시발 이럴 때 아니면 사람들이 휴가를 못 가니까 저러는 구나"라는 생각이랑 "아 시발 존나 부럽다 시발 시발 시발 나도 직장가면 존나 평생 친척집 안 가야지"라는 생각만 드는 버르장머리 없는 것의 생각이다. 


2.


가장 개인적이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공간 하나는 바로 '팬티'다. 아, 이거 너무 자극적이다. 다시 문장을 수정하자. 난 브이아이피처럼 되기 싫다. 


가장 개인적이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공간 하나는 바로 생리대다. 뭐 남자가 생리대 이야기를 하는 게 웃기긴 한데, 사실 생리대와 관련된 최근의 사회 문제 (작년의 깔창생리대, 올해의 릴리안 사태) 를 보면 그동안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왔던 것들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풀려야 했던 놈들이었는지 다시 알 수 있다. 


여성 한 명이 평생 쓰는 생리대가 1만 개라는 스크립트를 봤는데, 그게 사실이면 그동안 생리대가 사회적으로 '쉬쉬'된 물건이라는 게 참 흠좀무다. 신체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과 맞닿아있고, (시발 선택권도 없이) 1달에 최소 3~4일은 부대껴야 할 물건이 그동안 소홀히 대접(?!)된 게 신기하다.


가장 개인적인 게 가장 정치적이라는 문장엔 딱히 동의하지 않는다. 그냥 케바케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생리대 문제는 정말 그동안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다. 생리대가 비싸 사지 못하는 학생이 깔창으로 생리대를 대용할 때까지 사회는 딱히 도와주지 않았다. 그런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런 문제가 생기면 누구한테 말해야 할지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뭐 모든 걸 가르쳐줘야 알아?!"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학교에선 알려줘야지. 


릴리안 문제도 그랬을 거다. 개인의 신체리듬과 스트레스 등에 따라 생리 주기와 생리 양은 많이 달라지는데, 여성환경연대가 공론화하지 않았으면 그냥 흔한 네이트판이나 다음과 네이버 여초카페의 글이나 댓글로 소모됐겠지. 


개인적이지 않은데 개인적으로 여겨지고, 공론화되어야 하는데 사회적으로 이야기하기 금기된 많은 부분이 '성'과 관련됐다. 코-오리안 유생들에게 '성'이란 존나 숭배하거나, 존나 숭배하다못해 존나 천박하게 여기는 문제라 터부시된다. 좀 더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져야 할 생리문제는 '성'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쉬쉬됐다. 그렇게 쉬쉬되니까 가뜩이나 대자연 (...) 과 관련없는 남자들은 더 알 길이 없다. 그렇게 더 쉬쉬하고,,,,망하고,,,후후,,, 우리네 인생,,,


생리대 이슈가 어떤 이슈를 또 가져올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개인적으로 여겨졌던 - 모든 비용을 개인이 떠맡아야만 했던 - 문제들이 좀 더 공론화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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