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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Aug 23. 2017

자기 전에 조금 긴 글

1. 좋아하는 콘텐츠 2. 추석 3. 꽃보다 할배 

내가 뭘 좋아하냐면 말이지


정이 많지도 않고 딱히 사람한테 관심이 많은 성격도 아닌데 유난히 인터뷰 콘텐츠를 좋아한다. 유명한 사람보다 우리 생활에서 '아저씨'라거나 '아줌마' 혹은 '형'과 '누나'와 '걔네'나 '그 사람들'로 불리는 수많은 무명인들의 이야기가 좋다. 


다큐 3일에 나올 법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면 보지 못할 수많은 무명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근처에 얼마나 아름답고 존귀한 삶이 많은지 깨닫게 된다. 살다보면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처럼, 우리네 근처엔 수많은 사연들이 있다. '뉴스성'이라 불리는, '개를 무는 사람'보다 뉴스성이 떨어져 기사화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 말이다. 


미스핏츠 데꿀멍을 진행할 때 몇몇 분들께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대선이니 당연하게 정치인의 이야기를 듣는 거고, 유명인이니 당연히 유명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아직 제도권의 논리를 배우지 못한 나로선 여전히 반문하고 싶다. 왜 마이크는 항상 권력자에게만 가야 하냐고 말이다. 왜 시민들의 목소리는 항상 사건의 관찰자 혹은 기사의 말미에 나오는 취재원으로만 써야 하냐고. 왜 무명의 시민들은 기사를 리드할 수 없냐고 말이다. 왜 항상 시민의 이야기는 여론조사 따위로만 치부되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굳이 남들과 다르기 위해 노력할 필요 없다. 우리 모두는 어쨌거나 조금씩 다 다르다. 여드름이 많은 얼굴, 눈썹이 많이 난 얼굴, 잔털이 많은 얼굴, 근육이 많은 몸, 빼빼 마른 몸, 살집이 있는 몸, 누구는 검은 색을 좋아하고 누구는 밝은 색을 좋아한다. 누구는 홍준표를 지지했고, 누구는 문재인을 지지한다. 지지하는 이유도 가지각색일 거다. 


나무를 자르면 나이테가 보인다. 모든 나무는 같은 펄프가 되지만, 그들의 나이테는 모두 다르게 생겼단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그들의 인생에 드러나는 수많은 결들, 그 가지각색의 다양한 결을 의미있게, 존귀하게 비추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조용히 묵묵하게 일하는 사람을 비출 수도 있다. 예술가들의 삶을 조망할 수도 있다. 항상 똑같은 길을 다니는 마을버스기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매해 학생들을 보내야만 하는 교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젊음을 불태우는 게이머를 들을 수도 있다. 단신이 아닌, 화제가 있을 때만 비추는 인터뷰 말고 그들의 삶을 바라보고 싶다. 노인정을 지키는 수많은 노인들의 삶을 들어도 좋다. 


한국의 저널리즘에 좀 더 많은 인터뷰가 실렸으면 좋겠다. 좀 더 많은 시민의 삶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렸으면 좋겠다. 우리는 우리 그 자체로 의미있기에 그 삶의 의미를 조망해보고 싶다. 그들의 삶의 경로를 따라 한 발자국씩 따라가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야 말로 궁극이 아닐까. 


-


아직까지 저번 대선을 앞두고 진행한 대꿀멍 프로젝트에 남은 한이 많다. 미련이 많다. 나는 꼭 이것을 넘어 무언가 만들고 말테다. 진짜다. 


미스핏츠 : 데꿀멍 http://misfits.kr/category/pig-and-dog


비즈한국 : 날청년

http://www.bizhankook.com/bk/article/13298


아틀란틱 : 인사이드 잡스

https://www.theatlantic.com/projects/inside-jobs/


중앙일보 : 직업의 정석 

http://news.joins.com/DigitalSpecial/203


오마이뉴스 : 인터뷰 100

http://www.ohmynews.com/NWS_Web/Issue/series_pg.aspx?srscd=0000011654


뉴욕타임즈 : One in 8 millions

http://www.nytimes.com/packages/html/nyregion/1-in-8-million/index.html?mcubz=3


더톡스 : 더톡스

http://the-talks.com


박진영이 만든 거 : 인스타워시

https://www.facebook.com/instawash.kr/videos/663615127161045/




닷페이스 : 리스펙트

https://www.youtube.com/watch?v=fchVSJjcZxc


추석이란?


과외를 끝내고 시간이 남아 카페에 있었다. 카페는 11시 반쯤 되면 닫아서 그때까지 있으려 했다. 과외돌이를 돌려보내고, 앉아 노트북으로 비즈한국에 보낼 현자타임을 끄적이고 있었다. 내 옆자리엔 커플이 앉았다. 여자는 적금 얼마를 들지 이야기했다. 남자는 얼마만큼의 금액이 적당한지 말했다. 


커플을 보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로만 듣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남자가 존댓말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 여자는 말이 없었다. 무슨 상황인지 궁금해 슬쩍 고개를 돌려 옆을 봤다. 남자는 통화중이었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어머니와 통화하고 있었다. 추석을 앞두고 이번에는 내려올 거냐라는 부모의 질문에 남자가 답하고 있었다. 남자는 추석이 자기소개서 시즌이랑 겹쳐서 힘들 것 같다고 말했고, 뒤이어 "추석은 하루지만 난 이거 공치면 1년이야"라고 말했다. 이번엔 가기 힘들 것 같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한숨이 들렸는데, 내 한숨인지 그 남자의 한숨이었는지 모르겠다. 뒤이어 커플은 자리를 떴다. 


친척이 다 같이 모이는 추석이랑 공채 시즌이 겹치는 건 비극이다. 짧으면 3000자, 길면 6000자의 자기소개서에 본인의 2X년 인생을 압축시키다보면 사람은 작아진다. 그 쪼그라든 본인의 모습이 뭐가 자랑스러워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을까. 차라리 기차표 예매전쟁에 실패해서 못 내려갔으면 하는 바램은 소수만의 것이 아닐 거다. 미생에서 장그래는 본인이 어머니의 자부심이라고 했지만, 요즘 것들은 누군가의 자부심이 되기에 제 코가 석자다. 우리는 누군가의 자부심보다 누군가의 회사 후배, 어느 회사의 패기어린 신입이 되고 싶다. 


'고시'라는 단어가 의미없어진 시대다. 대기업 취업 자체가 고시만큼의 경쟁률을 자랑한다. 분명히 행정고시와 외무고시 등을 제외하면 언론고시만 있었는데, 요즘엔 그냥 다 고시다. 


비즈한국에 보내는 글의 제목은 "노인이 된 청년들"이다. 발에 치이는 게 꿈이었는데, 이젠 꿈을 꾸면 누군가의 발에 차일 거 같다. 꿈이 발에 치이다가 꿈을 짓밟고 선다. 한가위처럼 풍성했던 꿈은 이제 아주 소박해졌다. 뭐, 어른들 이야기 들어보니 살다보면 다 그런 거 같다. 당장의 꿈을 위하기보단 미래의 결실을 위해 지금의 꿈을 적금하고, 행복을 저축하면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지금처럼 살아도 우린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을 욕심내도 괜찮은 걸까. 


꽃보다 할배 in 그리스를 보며


나영석류 예능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꽃보다 할배 시리즈와 꽃보다 청춘 - 페루편 그리고 꽃보다 청춘 - 아이슬란드편이다. 나보다 훨씬 오래 산 분들의, 한 분야에서 대가라고 불릴 만큼 모든 걸 바친 분들의 일상을 관찰한 예능을 보면 나도 모르게 왠지 숙연해진다.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랄까(꽃할배). 청년기를 지나 중년 - 바스코의 표현에 따르면 죽음을 준비하는 시기 - 을 맞이하는 음악천재들의 이야기(페루편)도 좋고, 청춘기를 함께 보냈던 동료와의 소소한 여행(아이슬란드편)도 좋다.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의 2화 초반부를 보면, 신구와 박근형의 대화가 나온다. 박근형 할배는 신구 할배에게 "(연기현장말고) 학교로 가고 싶지 않수?"라고 넌지시 묻는데, 신구 할배는 "그래도 현장이지"라고 말한다. 본인들과 뜻을 함께 했던 배우들이 늙었다는 이유로 연기 현장에서 떠나가고 사회에서 노인을 배격하는 분위기가 싫은 박근형에게 신구는 "80인데 뭘 더 바래"라고 넌지시 말해준다. 


오랫동안 함께 한, 내일을 생각하면 머리 아파 그저 오늘을 사는, 어떻게 떠날지 고민하는 시기를 보내는 삶의 동료들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 왠지 숙연해진다. 80이 넘어서도 삶의 밑거름을 만들기 위해 하나라도 더 보고, 조금이라도 더 궁금해하고, 더 해보고 싶어하는 할배들. 멋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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