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도벽 있는 드라마 빌런.
관찰일기. 다 좋았는데, 내가 재미없었다. 사실 내가 관찰한 거라 사람을 알아가는 게 한계가 있었다. 포장지와 내용물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난 내 동료를 포장하는 게 아니라 알아가고 싶었다. 이 기록은 나와 우리 동료들이 같이 했던 2개월, 같이 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남기기 위한 일 중 하나다.
관찰일기의 시작은 다예였고, 이 인터뷰의 끝도 다예다. 처음 보자마자 감이 왔다. "우리팀의 색깔은 얘가 만든다" 싶었다. 우리팀의 브레인이자 감성러이자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했던 다예. 이제 한다.
구현모 (이하 구) : 왜 뉴스랩했어?
송다예 (이하 송) : 생각해보니까 기성 조직이 아닌 곳에서 내가 해보고 싶은 영상을 한 적이 없더라.
그나마 학교 방송국? 학교 방송국에서 했어. 그땐 피디 되고 싶단 생각으로 진짜 열심히 했어. 그때도 하고 싶은 거 했는데 동료끼리 만족하고 마는 느낌이었어. 자족하고 만 느낌.
내가 졸업하는데 내가 언론계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들더라. 내가 사실 박학다식하지도 않고, 무언가를 만들 때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어.
어릴 때는 PD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테크니션이 된 듯했어. 그래서 내가 기획하고, 저널리즘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했어.
구 : 저널리즘 역량에 대한 도전인가?
송 : 그렇지. 내가 저널리즘 관련된 일을 할 때 재밌는지와 잘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어.
생각해보면 뉴미디어든 기성 언론사든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을 하잖아. 세상에 있는 이야기를 사람에게 전달할 때 내가 재미를 느끼고 행복할 수 있나 알고 싶었어.
구 : 그래서 행복했어?
송 : 난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하지만, 불쑥 찾아온 기회도 거절하지 않거든. 날 찾아주는 곳이 있고 그곳이 내 가치관과 많이 벗어나지 않는 이상 다 했어. 그래서 항상 알바든, 인턴이든 뭐든 하고 있었어. 그러다 보니까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었는데, 그냥 막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사는 대로 생각하고 말이야.
근데 뉴스랩은 달랐어. 지원서를 쓰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을 좋아하고 하고 싶구나라고 생각 들더라.
구 : 1차 스프린트, 2차 스프린트 후기?
송 : 1차 때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 나랑 주영이만 3일 내내 나왔잖아. 사실 주영이는 개발자이기 때문에 당시 스프린트에서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힘들잖아.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일을 하고, 그 와중에 사람도 많이 빠지니까 이틀째까지 특별히 결정된 게 없었어. 그래서 3일째에 발표하기 직전에 정리하면서 내가 혼자 다시 짠 느낌이 들더라. "이렇게 혼자 하고 책임지고 싶지 않은데..”라는 생각만 들면서 얻은 게 없겠구나 싶었지.
2차 때는 최선을 다했지만 좀 답답했어. 이야기가 잘 진전이 되지 않았어. 왜냐면 우리 소재가 탕진잼이었는데, 나랑 잘 맞지 않았거든. 3일 동안 완성시키는 과정이라서 끝을 내야 하잖아. 문제, 타깃, 솔루션을 정하는데 탕진잼이라는 소재 자체가 어떤 뚜렷한 솔루션이 없는 소재야. 그런데 스프린트니까 마무리를 지어야 하니까 더 답답한 거지. 뚜렷한 솔루션이 없는 소재에서 솔루션을 만들어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답답했어. 틀린 거 같은데 억지로 마무리 짓는 느낌이 들었거든
구 : 스프린트 때 자신에 대해 느낀 점
송 : 정확히 말하면, 내게 어떤 동료가 필요한지 알았어. 난 내가 주도적으로 의견을 조율하거나 진행하는 일에 부담을 느끼는 편이야. 1차 때는 사람들이 일 때문에 중간에 자주 빠졌잖아. 그래서 내가 발표도 하고 완성도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게 심리적으로 힘들더라.
그동안 내가 했던 일이 영상이니까 주도적으로 팀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없겠지만 팀원들이 주는 의견들에서 뭘 빼고 뭘 더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게 필요한데, 잘 모르겠어. 어떤 의견들이 나올 때, 이게 딱히 맞는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침묵할 때가 있거든. 무언가 찜찜해서 이걸 고치자고 말하려면 상대방을 납득시켜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니까 접을 때가 많거든.
그래서 나 대신에 의견을 조율해주고 프로젝트 전체의 그림을 봐주고 리드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싶었어.
구 : 책임감은 왜?
송 : 난 내가 무언가 하나를 책임진다면, 진심으로 완벽하게 하고 싶어. 그래서 난 여태까지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어. 사실 최근에 만든 영상도 반응이 좋았지만 “하루만 더 있으면 잘했을 텐데”라고 생각해. 한 번도 “이만하면 됐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책임을 지면 이런 완벽에 대한 강박이 더 심해지니까 애초에 적당히 하고 싶어. 그러기 위해선 책임을 지지 말아야겠지. 이젠 적당히 받아들이지만 그래도 좀 그래.
구 : 면담 때 무슨 이야기 했냐
송 : 나를 더 이끌어주고 의견을 강하게 내줄 사람이 필요하다 했어. 자기 의견을 충분히 어필하고 팀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어. 그냥 들어주는 사람보다 자기 의견을 말해주는 사람이 좋거든.
아, 보현 언니랑 잘 맞는 것 같다고 했어. 사실 보현 언니는 원래 착하니까 다 좋다고 말할 거 같은데, 내가 의견을 말하면 좋다고 말하는 걸 넘어서 요지를 잘 파악해서 되묻고 이해해주더라.
아, 그리고 개발자랑 일하고 싶다고 했어. 직전까지 영상 제작 인턴을 했으니까 여기서도 똑같이 영상 제작만 하면 의미가 없잖아. "설마 내가 개발자 없이 영상만 하겠어?" 싶었는데 개발자가 없더라. 개발자랑 하고 싶다고 어필하지 못했는데 좀 아쉽지.
구 : 그래서 개발자 없이 해서 후회해?
송 : 잘됐으니까 후회 안 해. 그리고 하고 싶었던 것도 했잖아.
구 : 동아사이언스 걸렸을 땐?
송 : 처음엔 괜찮았어. 팀 배치 이후에 모여서 피자 먹었잖아. 동아사이언스 기자님들도 오셔서 우리 얘기 잘 들어주시고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셔서 다행이었지. 솔직히 괜찮은 언론사라고 생각했고, 과학을 싫어하지도 않았거든. 근데 오빠가 막 소리치면서 싫어하니까 속으로 “저분 참 특이하고 시끄러운 사람이구나” 싶었지. 결론은 동아사이언스 괜찮았다. 시작은 말이야.
구 : 시작은? 그리고?
송 : 과학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걸 많이 아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어려웠고 둘째로 우리 콘텐츠가 동아사이언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싶었어. 사실 내 생각에 동아사이언스는 과학과 기술 관련 영상을 만들 때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포맷이 필요했던 거 같아. 근데 난 그런 포맷 개발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거든
구 : 팀원 만났을 때 어땠어
송 : 보현 언니 만나서 너무 좋았어. 사실 언니나 나나 적당히 낯가리는 성격이기도 했고, 뉴스랩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거든. 메디 아티 운영진이랑 아는 사이도 아니고 여기에 아는 사람도 없었는데 언니랑 나는 스프린트 내내 같은 팀이라 어느 정도 안면도 텄어. 그리고 언니의 깔끔한 디자인 스타일이 너무 내 취저였어.
수종 오빠도 좋았어. 스프린트 기간에 나, 수종, 강령, 윤수 이렇게 넷이서 저녁도 먹었고 수종 오빠가 몇 번 말도 걸어주고 그랬거든. 성격도 좋아 보이고, 밥도 같이 먹었고 적당히 안면도 있으니까 좋았지.
사실 당신(구현모)이랑 돼서 걱정했어. 난 모더레이터가 필요했는데, 이 뉴스랩에서 가장 의견이 강한 모더레이터를 붙여줬잖아. 그래서 좀 걱정했지. 오빠 의견이 너무 강할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잘 듣고 수렴을 잘해줘서 고마웠어.
어디서 미안충의 뼈가 갈리는 소리 들리지 않아요?
구 : 뉴스랩 진행하는 동안 가장 좌절했을 때는?
송 : 그 모션으로 점철되고 내 뼛가루로 점철된 2번 영상을 할 때 좌절했어. 오래 걸릴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오래 걸렸어. 진도가 너무 더뎠거든.
https://www.youtube.com/watch?v=EbSCrlCiiO8&
구 : 왜 더뎠어
송 :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일단 내가 일을 효율적으로 안 했어. 와서 놀고, 딴짓도 하고 그랬지. 우리끼리 잘 놀아서 그런 걸까.
영상 편집을 할 때, 일단 컷을 나눠서 얼개를 잡고 그 위에 모션을 넣잖아. 근데 그 와중에 다시 얼개를 수정하니까 진도가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지.
생각해보면 내가 혼자 해야 하는 싸움이라 좌절이 더 컸던 거 같아. 사실 기획 이후에 편집에 들어가면 개인작업이잖아. 나는 계속 혼자 편집해야 하는데, 나 때문에 팀 발행이 늦어지니까 미안했지. 지켜야 할 일정이 있었는데, 그걸 지키지 못한 셈이니까 미안했지. 난 내 몫을 다 하고 싶었는데 못했고 이 상황 자체가 너무 부담이었어.
게다가 컴퓨터도 안되더라. 발행은 늦어졌고, 넣어야 할 모션은 태산인데 내 노트북이 너무 오래되어서 말을 안 들었어. 모션 한 개를 타임라인 위에 올려놓고 10분 동안 컴퓨터가 멈추니까 10분이면 될 일에 1시간이 드는 거지. 이 정도로 꽉 막히니까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생각이 드는 거야.
사실 오빠랑 보현 언니가 나온 콘텐츠가 상황극과 자막으로 푸는데도 잘 되니까 "모션으로 이렇게 엄청나게 어려운 소재를 풀 이유가 있나?", "사람들이 이걸 원할까?" 싶기도 하고 이걸 왜 하지 싶더라. 현타가 온 거야. 심지어 혼자 떠맡은 느낌도 들고 혼자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외롭기도 했고.
구 : 왜 말 안 했어?
송 : 사실 편집까지 하고 있는데 엎을 수도 없잖아. 모션은 이미 꽤 올라갔고, 기획을 수정하기엔 너무 늦었고 심지어 한 번 기획을 엎은 거니까 더 그럴 수 없었지.
버티는 수밖에 없었어. 우리 영상 중에 가장 과학적이니까 "이건 동아사이언스팀이니까 가능하다!", "가장 과학이다!" 이러면서 버텼지.
그리고 이게 잘 안되면 언니한테 너무 미안할 것 같았어. 언니의 디자인이 가장 많이 들어간 작품이니까 꼭 잘하고 싶었어. 언니 포트폴리오에 도움도 되고 싶었고 언니의 능력을 살리고 싶었거든.
구 : 프리즘에서 엎어질 때마다 어땠어?
송 : 우리 첫 소재가 스트레스였잖아. 그런데 솔직히 스트레스 엎어질 때는 예상 못했어. 안과 갔다 온 사이에 엎어졌는데, 사실 4명 중에 3명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엎는 게 맞으니까 괜찮았어.
구 : 콘텐츠 엎어질 때는?
송 : 일단 챗봇 영상의 기획이 바뀔 때는 생각 없었어. 수종 오빠가 챗봇 관련해서 장문의 카톡을 보내면서 기획을 수정할 때는 “그래, 뭐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어.
이거 스펙트럼 영상 기획 엎을 때도 별생각 없었어. 사실 생각할 시간도 없었어. 스토리보드 짠다고 끌어안고 낑낑대다가 엎어진 거라서 슬퍼할 시간도 없었어. "빨리 촬영하고 빨리 만들어야지"라는 생각뿐이었고, 팀원에게 미안할 뿐이었지.
근데 진짜 미안했어.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해놓고 한 번 엎으니까 미안했지. 비록 프로젝트 자체는 팀플레이지만 영상 편집은 개인플레이니까 사실 내가 엎겠다고 하면 팀원들은 따라와 줄 수밖에 없어. 이런 상황에서 내가 엎는다는 사실 자체가 별로였어.
구 : 왜?
송 : 어쨌거나 내가 편집하는 일이니까 아무도 내가 엎겠다는 의견을 반박할 수 없잖아. 그 상황에서 내가 엎겠다고 말하는 게 너무 부담스럽고 미안해. "뭐라고 생각할까.."싶지.
그리고 우리 지금 영상 하나가 남았잖아. 원래는 하나였던 영상을 두 개로 쪼갰는데, 그 스펙트럼 영상 만든다고 시간 엄청 써놓고, 이제야 만든다는 게 미안해. 그리고 우리 팀원들이 서로의 의견을 잘 들어주고 존중하니까 거절을 잘 못하잖아. 사실 불만이 있는데 거절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
구 : 너 미안하다니까 생각나는데 너 그때 발행하면서 울었잖아. 이유는 뭐야?
송 : 내가 티저 영상 발행을 예약한 줄 알았는데, 안 했던 거잖아. 그게 매체에서 일해왔던 내게 발행은 정말 큰일이야. 게다가 내가 실수한 영상은 우리 페이지에 처음 올라가는 티저 영상이니까 의미도 큰데, 그걸 실수했으니까...
미안한데 서러웠어. 오빠들이랑 언니가 뭐 저녁에 약속 있다고 갑자기 가버려서 서러웠거든. 내가 전날에 티저 영상 편집한다고 밤샜는데, 오빠랑 언니는 약속 있다고 가버렸고 심지어 구현모는 엄청 들뜬 표정으로 가니까 너무 서러웠어. 나 심지어 그날 집에 가면서 울었어.
여하튼, 그 상황에서 발행이 잘못됐으니까 미안해서 전화했는데 오빠들 목소리가 정말 다운된 거야. 그래서 화난 줄 알았지. 그 와중에 난 너무 힘들어서 서러웠는데 내가 잘못한 거니까 할 말이 없고 미안하고 그래서 엄청 울었지. 서러우면 다들 울잖아. 안 그래? 나만 우나
아, 근데 또 웃긴 게 팀원들이 다 착해서 집 가는 길에 나한테 기프티콘을 보내주는 거야. 그래서 더 미안했어. 사실 답답하고 서러운데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 그러면 눈물로 푸는 수밖에 없어.
구 : 책임감이랑 미안함을 이야기하는데, 눈치를 보는 거니 아니면 공감 능력이 좋은 거니
송 : 어렸을 때부터 눈치를 많이 봤어. 어렸을 때도 친구가 너무 기분 안 좋아 보이면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 들면서 아무 일도 못했어. 이거 인터뷰한다고 곰곰이 나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정말 되게 눈치 많이 보고 죄책감을 느끼고 부끄러워하지 싶더라.
공감능력이 좋은 거 같기도 해. 눈치와 공감능력이 분리되었는지는 모르겠어. 뭐가 먼저인지도 모르겠어. 내가 박사모 관련 다큐를 봤는데, 거기에 나오는 할아버지들이 버스 안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식을 보고 울더라. 근데 나 그거 보면서 감정이입되어서 울었어. 왜냐면 그 사람한텐 박근혜가 공주고, 사랑이고, 영애님인데 그 사람이 그렇게 추락한 거니까 얼마나 슬프겠어. 그 감정이 느껴지는 거야. 적당히 이해되면서 슬프더라.
최근에 느꼈는데, 난 남한테 상처 주는 일이 너무 싫어. 남을 위한 일인지 스스로를 위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우리 영상이 인터섹스를 다뤘는데, 당사자가 싫어하고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까 봐 진짜 걱정 많이 되어서 자막 토씨 하나 다 봤거든.
구 : 무뚝뚝한 애 한 명이랑 이상한 애 한 명이랑 공감능력 좋은 애 한 명이랑 웃는 애 한 명이네. 우리 팀은 왜 잘 굴러갔을까?
송 : 우리가 정말 하나로 잘 뭉쳐져서 굴러갔어. 영상 하나하나가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팀의 작업이었던 거 같아. 우리가 우리 영상에 출연하고, 목소리를 녹음하니까 하나로 뭉칠 수밖에 없었고 잘 굴러갔지. 사실 안 그랬으면 누구 하나는 심심하고, 다른 일 찾으면서 현타 오고 그러지 않았을까?
사실 난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강력하게 민 적이 없어. 내가 팀원들을 설득하고 리드하면 그걸 책임져야 하는데 그게 싫으니까 밀지 않았지. 예를 들어 내가 "소수자와 과학을 접목시키자!"라고 하면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부담스러웠지.
근데 이번에 만난 우리 팀원은 그거에 대해 설득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코드가 잘 맞았어. 그리고 팀원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줬어. 그때 우리 어반 테이블에서 스트레스를 엎고 새로운 소재를 찾을 때 내가 흘러가는 소리로 “퀴어 이야기를 과학으로 해보고 싶다”라고 했잖아. 그런데 그게 흘러가지 않고 잡혔어. 너나 할 것 없이 그거에 대해 공감하고 말을 던지면서 발전됐어. ‘퀴어’라는 단어가 ‘소수자와 과학’으로 포장되어서 이야기가 잘 풀렸지. 그만큼 우리가 코드가 잘 맞은 거지.
구 : 어릴 때도 많이 울었어?
송 : 뭐 눈물 없지도 않고 많지도 않았어. 지금은 좀 많은 편이긴 한데 말이야. 드라마 보고 감동받으면 울고 그래.
구 : 10대 때 어떠 애였니
송 : 내 전성기는 중학교였어. 나 중학교 때 공부 진짜 존나 잘했어 (그녀는 바닥을 치며 말했다). 내신이 총 200인데, 내가 198점이었어. 중학교 3년 동안 중간 기말 합쳐서 12번 시험 보는데, 1번 빼고 전부 전교 1등이었어.
아, 지금보다 훨씬 말이 적었어. 지금은 내가 말이 적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 처음 보는 자리에선 질문하고 이야기 끌어내고 그래. 예전에 했던 피아노 동아리에선 내가 분위기 풀고 그랬어. 근데 어릴 때는 지금보다 더 노잼이고 말수도 적었어.
고등학교 때문인 거 같아. 중학교 때는 공부를 잘해서 사는 데에 불편함이 없었어. 공부만 잘하면 될 때라서 공부만 하면 누구랑 싸울 일도 없었지. 그래서 고등학교 때 외고를 갔는데, 반년만에 집 근처 일반고로 전학 왔어. 입시 위주 교육받으면서 좋은 대학가 봤자 좋을 거 같지 않다는 핑계로 일반고에 왔지만, 사실 친구가 없어서 그랬어.
고등학교는 기숙사 학교였어. 집이랑 머니까 아는 사람이 없고 친구 만들기도 어려웠어. 성격 맞는 애를 못 찾았거든. 한 명 있었는데, 걔가 다른 친구랑 더 잘 맞아서 나랑 멀어졌어. 그러니까 너무 지치고 외롭더라. 온갖 이유를 만들면서 전학 갔지. 내겐 그 전학의 의미가 컸어. “세상에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구나”라면서 좌절했거든. 집 근처로 전학 가니까 원래 있던 동네 친구들도 만나서 좋긴 했어. 동네 친구들도 만나고 그래서 좋았지.
그래서 고등학교 때 완전 다크 했어. 공부는 그냥 저냥 괜찮았는데 좌절이 컸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상처를 많이 받았던 거 같아. 도망친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고등학교 친구들 만나면 "난 그때 네가 창밖으로 뛰어내릴 줄 알았어”라고 말하고 그래.
구 : 어쩌다 밝아진 거야?
송 : 그냥 대학 오니까 마음 편해졌나 봐. 대학 와서 술 먹고 노는 것도 좋았고 노니까 마음이 편해졌지. 해보고 싶던 교내 방송국도 하고, 그거 하면서 사람들이랑 잘 지내는 법도 배우고 그래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거 같아.
구 : 학교 방송국에선 뭐했어?
송 : 아침마다 교내 스피커로 나가는 라디오 방송이랑 유튜브에 올라가는 영상 만들었어. 라디오 방송은 PD가 대본 쓰고 선곡하고 연출했지.
그땐 내가 사회에 대한 사명감도 있고, 열정도 가득했어. 그래서 선배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이어받지 않고 ‘시사 라이브’라는 새로운 프로그램 만들었어. 보통 라디오 프로그램 한 편 스크립트가 7장인데, 내 꺼는 14장이었어. 아나운서애들이 극혐하지 않았을까?
구 : 극혐했을 거야.
송 : 그랬을 거야. 내가 시사 라디오 시험방송을 했는데, 시험방송 엔딩 멘트에 “세상을 바꾸는 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라 여러분의 작은 마음도 있다”라고 썼는데, 동기 아나운서가 매우 당황하더라.
구 :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뭐야 미친놈아
송 : 미쳤나 봐.
구 : 영상은 뭐했어?
송 : 7분짜리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영화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만들고 드라마도 만들었어. 7분짜리 다큐엔 원룸 임대업자와의 갈등을 담았어. 우리 학교 앞에 행복기숙사가 들어오게 됐는데 회기동 원룸 입대업자들이 그거 받으면 자기네들 힘드니까 받지 말라고 시위를 하는 거야. 지금도 동의하지 않지만 그때는 완전 개빡쳐있는 상태였어. 그래서 만들었지.
구 : 운동은 왜 안 했어?
송 : 의미가 없는 거 같아서 싫었어. 사실 난 내가 대학 가면 운동할 줄 알았어. 부모님도 서로 운동하다가 만났고, 엄마도 회사에서 노조활동을 되게 오래 했어. 그래서 어릴 때 엄마 손 잡고 같이 농성장에 가서 “투쟁! 투쟁!” 그랬어. 아저씨들이 이뻐했지. 뭐 따지고 보면 엄마가 맡길 데가 없어서 데리고 간 건데 말이야.
어쨌거나 그런 걸 보고 자랐으니까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했어. 또래 친구들에 비해 많이 그랬지. 그런데 오히려 허무하더라. 엄마가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는데 내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허무할 수밖에 없지.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부당한 처우에 반발해서 연대하는 게 모두 옳지만, 그걸 대중들이 들어야 더 큰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해. 그래서 난 그런 이야기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어.
구 : 여행을 자주 갔잖아. 돈 모아서 여행 다니는 스타일인 듯한데,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
송 : 뭐 돈 모아서 여행에 올인하는 타입은 아냐.
구 : 아, 그래? 여행 좋아하는 거 같던데 그건 아닌가 보네. 그럼 첫 번째 여행을 말해봐
송 : 반수 하려고 재수학원을 등록했는데 일주일 만에 때려치우고 나왔어. 그러고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하겠다고 학교 동기 여자애 둘이서 파주에 갔어. 교회에서 얻어 자고 그랬는데 너무 힘들었어. 근데 그 해에 이례적인 폭우가 쏟아져서 이대로 가면 죽을 거 같아서 바로 친구한테 돌아가자고 했어. 친구한테 욕 개쳐먹었지.
그해 겨울방학에 그 친구랑 제주도에 가서 자전거로 4박 5일 여행했어. 제주도 4분의 3 정도 돌아다녔어. 미친 짓도 했지. 내 생일 저녁에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대어를 잡아서 그걸 회쳐줬는데 그거만으로 소주 세병 반 먹고 한라산을 등반했어. 진짜 스무 살이니까 가능한 미친 짓이지. 그때 한라산에 눈이 쌓였는데 나랑 친구랑 돈 아낀다고 아이젠 한 세트를 빌려서 서로 한 짝만 끼고 올라갔어.
구 : 미친 놈이네
송 : 교내 방송국 한 이후엔 거의 여행을 못 다녔어. 방학 때도 바쁘니까 갈 수 없었지.
교내 방송국 끝나고 네팔에서 NGO 활동을 했어. 네팔에서 한국으로 오는 이주노동자 중에 부당대우당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 일을 막기 위해 네팔 현지에 NGO를 만들자는 분들이 계셔서 여행할 겸 따라갔지. 대구랑 경상도 지역에서 노동 운동하시던 한국분이랑 네팔분이랑 나랑 총 셋이서 갔어. 4달 동안 있었어.
거기서 간판도 만들고 한국어학원에서 강의도 하고 전단지도 만들고 그랬지. 그때 네팔어를 모르는데 사전 뒤져가면서 책을 번역하고 그랬어. 그게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어
구 : 왜?
송 : 그 전에는 엄마 속도 많이 썩이고 인간이 덜됐어. 네팔에 가족이랑 떨어져 네팔에 있으면서 많이 자란 거 같아.
구 : 엄마 속 어떻게 썩였는데?
술 먹고 집에 안 들어가고 그런 정도.
구 : 에이, 그 정도는 양반이네. NGO 한 것도 그렇고 너는 진보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고 활동한 거 같은데 이유가 뭐인 거 같아?
송 : 집에서 맨날 그런 이야기 들으니까 그렇지. 그런 활동에 적극적인 엄마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면 안 된다는 게 내 머리 속에 박혀 있었어.
생각해보면 사회학과도 내가 골라서 왔어. 자유전공학부였는데 사회학과 신청한 게 나밖에 없었어.
구 : 가서 후회는 안 해?
송 : 오히려 뿌듯한 거 같아. 1학년 때 사회학 원론을 들었는데 그때 교수님이 ‘사회학적 상상력’을 말했어. 주변에 있는 당연한 일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게 사회학적 상상력이야. 예를 들어 장애인은 인구에 5%인데 20명 중 1명꼴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의문 같은 거지.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하는 주장은 소외받는 사람 없이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거잖아. 고민할 필요 없고 당연히 맞는 말이고 착한 이야기라 좋아. 나쁜 사람이 되지 않거든.
구 : 그런 빨갱이가 어찌 보면 상극인 대학내일 한 이유는?
송 : 휴학하고 싶은데 핑계가 없어서 신청했어. 휴학하고 싶은데 대학내일 인턴 공고가 든 거야. 사실 그전까지는 관심 없었거든. 지원서 마감 세 시간 전에 급하게 써서 냈어. 100명 넘게 지원했는데 운 좋게 됐지.
구 : 드라마 피디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왜? 기자도 있고, 작가도 있는데.
송 : 아 나 감성충이야!! 나 노희경 진짜 좋아하거든. 아, 드라마 자체도 좋아해. 난 드라마를 보면서 인생을 고민했어. 내게 드라마는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세상과 연결해주고 바라보게 해주는 창이었거든. 묵직한 팩트가 있는 시사교양보다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드라마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좋았어. 조금 더 쉽게 다가갈뿐더러 사람들의 마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겠다 싶었어. 비문학보다 소설이 더 기억에 남고 울림을 주듯이 말이야.
구 : 오호. 그런데 노희경은 사실 작가잖아.
송 : 내 첫 번째 장래희망이 드라마 PD였을 정도로 드라마 자체가 좋아. 사실 작가는 못하겠더라. 내가 0에서 1을 만들진 못할 것 같고, 누군가 쓴 좋은 대본이 있으면 그걸 시각적으로 잘 만들어서 전달할 수 있겠다 싶었어. 대본에 담긴 메시지를 더 잘 녹여낼 수 있게 찍고, 영상을 수정하면서 그 이야기에 담긴 감정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고 싶었어.
구 : 나같이 드라마 안 보는 사람한테 추천할 드라마 있어?
송 : <괜찮아, 사랑이야> 아니면 <그들이 사는 세상>. 둘 다 노희경 드라마야.
구 : 왜 추천해?
송 : 노희경 드라마는 사람을 위로해. 사실 사람은 다 나약해지잖아. 돈이 많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까 못난 짓을 해도 넘어갈 수 있는데, 돈이 없거나 다른 이유로 나약해지면 그게 안되고 나를 지키기에 급급해. 노희경 작가는 그런 인간의 나약해져서 추한 모습마저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면서 토닥여줘. 그런 못난 모습마저 "다들 그렇잖아, 그렇지?” 이런 느낌으로 그려.
예를 들어 ‘괜사'는 정신병이 소재야. 노희경 작가는 그 환자를 소재로 인간 자체를 다독여주는 거 같아. “누구나 다 그래, 괜찮아” 라면서 위로해줘. 괜사에서 나온 대사 중에 “다 처음 사는 인생이라 실수가 많은 거다. 엄마도 처음 해보는 엄마라서 힘든 거고...”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 엄마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줬어. 엄마도 엄마가 처음인 만큼 부족할 텐데 우린 그걸 잘 모르잖아.
구 : 노희경이 좋은 거야 드라마가 좋은 거야?
송 :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워. 드라마 온에어를 보면서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었어. 그냥 방송과 관련된 일 자체를 하고 싶었어. 그렇게 장래희망을 정하고 나서 노희경 작가 드라마를 봤어. 그때 드라마가 이렇게 감동을 주고, 따뜻할 수 있구나 싶어서 드라마 PD가 되고 싶었지.
구 : 그래서 여전히 드라마 PD가 되고 싶어? 나중에 뭐 하고 싶어?
송 : 몰라. 난 뉴스랩 하면서 좌절한 거 같아. 특히 오빠 보면서 그랬어. 뉴스랩 운영진이랑 밥 먹을 때 오빠랑 구글 쪽 담당자가 ‘블록체인’을 소재로 미디어의 미래에 대해 논했잖아. 예전 같으면 나도 언론에서 일하고 싶으니까 거기에서 말을 거들 텐데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그동안 난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 자극받았어. 근데 그 광경을 보면서 ‘공부해야지’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거야. 미디어와 언론에 대해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걸 보고 자극을 안 받으니까 "내가 미디어에 흥미를 잃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든 거지.
사실 방송 관련 일에 재미를 못 느끼는 거 같아. 영상을 편집하는 일 자체는 재밌는데 말이야. 책임지기 싫어하고, 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는데 정작 영상 편집은 재밌으니까 내가 점점 테크니션이 되는 거 같더라.
구 : 뉴스랩 끝나고는?
송 : 복학해서 공부 열심히 할 거야. 일단 학점도 많이 남았지만 마지막 학기니까 사회학과에서 배울 수 있는 걸 다 배우고 싶어. 1년 동안 휴학하고 사회에 있으니까 학생처럼 공부할 시간이 없겠다 싶었어. 공부는 남 책임 안 지고 나만 책임지면 되니까 제일 편한 거 같아. 막말로 학점 망하면 나만 감수하면 되잖아. 그래서 학생이 좋은 가봐.
시발, 이래 놓고 복학하면 팀플 하고 책임지고 고통받겠지만.
구 : 뉴스랩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송 : 막판에 오니까 과학이 걸린 게 아쉽더라. 과학이라는 너무 큰 적을 만나서 하고 싶은 걸 못했어. 사실 저널리즘 실험이라고 했을 때 하고 싶은 다른 게 있었어. 그런데 과학을 해야만 했지. 게다가 어떻게든 과학을 녹여내야 하니까 그거에 대한 부담감이 컸어.
우리에게 과학은 새로운 소재인데, 그걸 저널리즘으로 풀어야 했고 심지어 기존 시도는 전무했지. 과학이라는 새로운 놈을 만나니까 기존에 생각했던 저널리즘, 뉴스랩이라는 그림과 정말 동떨어진 그림을 새로 그려야만 했어.
요약하자면 기존의 저널리즘을 떠올렸을 때 예상되는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못해본 게 아쉬웠고 기존에 해보고 싶던 분야를 도전하지 못해서 아쉬워.
구 : 처음에 뭐 하고 싶었는데?
송 : 3개월 전 뉴스를 다시 취재해보고 싶었어. 엄청나게 많은 뉴스가 있는데, 한 번 화제가 되고 끝나잖아. 가해자는 어떻게 되고 피해자가 어떻게 되고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잖아. 3개월, 6개월, 1년 전에 있던 사건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하는 뉴스를 만들어보고 싶었어.
구 : 본인이 생각하기에 2달 동안 가장 성장한 부분은?
송 : 언젠가 하고 싶던 아이디어를 콘텐츠로 만들어서 성공시킨 경험을 얻었어. “아, 이게 되는구나”라는 경험이지.
그리고 내가 콘텐츠로 사람들의 문제점을 해결해주었다는 경험도 했어. 내가 만든 콘텐츠로 사람들이 간지러워할 만한 부분을 긁었는데, 사람들이 정말로 시원해하는 거야. 이 경험이 너무 좋더라. 언론에 대해 흥미를 잃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 경험 때문에 좀 더 해보고 싶어졌어.
아이디에이션을 하고 간지러운 걸 긁은 경험 말고는 잘 기억나지 않네.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거 같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해야 한다면, 팀원에게 고맙지. 왜냐하면 한없이 늦어져도 이해해주고. 이해한 건지 화났는데 참은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하려는 일을 아니꼽게 생각하지 않고 같이 고민해줄 사람들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더 열심히 할 수 있던 거 같아. 이 팀원들 아니었으면 진짜 우울하고 현타가 미친 듯이 왔을 텐데 좋은 팀원 만나서 다행이었어. 내가 진짜 힘들어지면 밥 먹으면서 이야기 꺼내면 잘 들어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그래서 고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