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남자 인터뷰 안 하는데.
관찰일기. 다 좋았는데, 내가 재미없었다. 사실 내가 관찰한 거라 사람을 알아가는 게 한계가 있었다. 포장지와 내용물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난 내 동료를 포장하는 게 아니라 알아가고 싶었다. 이 기록은 나와 우리 동료들이 같이 했던 2개월, 같이 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남기기 위한 일 중 하나다.
보현이에 이은 두 번째는 우리 영상러 수종이다. 부산에서 온 영상러. 머리 수에, 그 왕을 뜻하는 한자어 종. 그래서 헤드킹이란다.
구현모 (이하 구) : 왜 뉴스랩했어?
이수종 (이하 이) : 구글뽕? 하하하. 이건 장난이고, 내가 원하는 새로운 경험과 자극의 연장선이었어. 내가 부산에서 뉴미디어를 했잖아. 근데 거기서 계속하면 사실 칭찬만 받고, 새로운 자극을 받지 못할 거 같았어. 왜냐면 지역에서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주목받을 수밖에 없거든.
그래서 작년에 메디아티에서 진행하는 제이랩에 참여했어. 5일 동안 진행되는 멘토링이었는데, 그거 끝나고 로이킴의 <서울 이곳은>을 들으면서 부산에 내려갔지. 근데 내려가는 게 무섭더라. 내려가면 서울에서 받은 자극이나 영감을 잊을 거 같은 거야. 서울에 있을 때 되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극을 찾았는데, 부산에 내려가자마자 그걸 잊고 기존의 삶에 익숙해질 거 같았어.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할 시기에 너무 안주할 거 같았어.
근데 문제는 서울에 있을 핑계가 없다는 것. 내가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니지도 않고 취업할 시기도 아니었거든. 그래서 서울에 있을 이유를 막 찾다가 메디아티 스타트업 펠로우십이라고 해서 메디아티가 투자한 스타트업에서 펠로우로 일하는 프로그램이 있더라. 바로 했지. 그때 쥐픽쳐스에서 일했어.
근데 펠로우십이 끝나도 내려가고 싶지 않더라. 그래서 강정수 박사님이랑 상담했는데, 강박사님이 뉴스랩을 추천하셨어. 그래서 뉴스랩 신청했지. 되게 내 재능을 믿어주시고, 격려해주셨어. 그 믿음이 너무 감사해서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했지.
구 : 아니 인생 이야기 말고요, 뉴스랩을 왜 했냐고요.
이 :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필요했어.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 역량을 키우고 싶은데, 뉴스랩이 딱이었거든. 졸업하려면 2학기나 남았고, 서울에 있으려면 경제적 부담도 크지. 근데 뉴스랩은 장학금도 주고 좋은 사람들도 있잖아.
구 : 지금은 어때? 좀 있으면 내려가야 하잖아.
이 : 지금은 뉴스랩 끝나고 내려간다고 해도 두려운 게 없어. 충분히 성장했어. 테니스 선수 정현이 그랬어.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땄을 때의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여섯 번만 헹군대. 우승했을 때의 습도와 느낌 그리고 기분을 이미지 트레이닝하는 거지. “나는 최고다”, “나는 할 수 있다”를 계속 되새기는 거야.
지금의 내가 그래. 메디아티 사무실에서 만난 사람들이랑 뉴스랩의 동료들이 주는 자극과 영감을 체화했어. 그 영감이 스며드니까 부산에 내려가서도 자기계발도 열심히 하고 성장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부산에 내려가서 혼자 있어도 성장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어. 강박사님도 “수종 씨, 작년 9월보다 지금 성장했어”라고 하시더라.
구 : 그냥 던지신 거 아냐?
이 : 그럴 걸 수도 있지.
구 : 정확히 어떤 자극이야?
이 : 나보다 더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에게서 받는 자극이지. 나보다 한 발짝 앞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자극이야. 솔직히 말해서 형이 나한테 가장 자극을 많이 줬어. 형이 평소에 되게 또라이 같은 만큼 되게 영감을 줘.
구 : 이게 뭔 개소리야
이 : 성규님이 “현모 씨가 되게 학구적이고 하나를 깊게 판다”라고 말씀하셨어. 처음 그 얘기를 들을 땐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같이 일을 하니까 진짜인 거야. 형 같이 똑똑한 사람도 저렇게 철저하게 레퍼런스를 찾고 기획하는 게 신기했어.
사실 나는 그동안 맛깔나게 만드는 거에 집중했거든. 그런데 형을 보면서 리서치하고 공부하는 능력도 중요하구나 싶었어. 사실 난 게을러서 그동안 무언가를 만들 때 그렇게까지 안 했거든. 무언가 하나를 잘 만들기 위해선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현업에 있는 기자들은 더하겠구나 싶기도 했지.
사실 난 뉴스랩에 형이 없었으면 자극 못 받았을 거 같아. 사실 여기서 하는 일이 내가 그동안 아예 해보지 못한 일은 아니거든. 기존에 했던 일을 다시 한다고 느꼈을 거야. 사실 오글거려서 말 못 하였지만, 뉴스랩하는 동안 형을 보면서 공부하고 자극받았어. 사실 롤이 다르니까 경쟁심은 아니야. 그냥 형이 사람이랑 팀워크를 중요시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좋았어.
구 : 거참 부끄럽네. 너 인터뷰인데 내가 꿀 빠니까 좋다. 자, 그렇다면 1차랑 2차 스프린트 때는 어땠어?
이 : 사실 스프린트는 적응 못했어. 멘탈이 좋지 않았어. 좀 쫄아있었거든. 뉴스랩 설명회 때만 100명이 넘게 오고, 거기서 거르고 뽑힌 사람이니까 다들 잘할 거라고 생각했어. 실제로 다들 발표도 잘하니까 “내가 여기서 잘할 수 있을까?” 싶지.
내 영상 실력에 자신이 없었거든. 사실 나 혼자 하면 내 장점을 살리고 단점 숨기면 되니까 못해도 커버칠 수 있었거든. 그런데 팀으로 일할 땐, 팀이 요구하는 일을 해야 하면서 내가 기획도 하고 편집도 해야 하는데 그걸 다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없었어.
그 멘탈 상태에서 스프린트를 해야 하니까 공황인 거야. 주제 하나 골라서 아이디어를 짜고 기획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나니까 망했어. 어쩔 수 없이 버티는 느낌. 다른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잘 던지는데 난 기계적으로 하는 기분이니까 멘탈이 더 나갈 수밖에 없었지.
그래도 최종 팀 결정되고 메디아타이 와서 일할 땐 괜찮아졌어. 적응 완료했지. 형이 팀에서 무게를 잡아주고 기획 방향을 같이 논하면서 만드니까 난 디테일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지. 형이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니까 좋았고, 다른 팀에 비해서 빠르게 진행된다는 사실도 좋았어. 자신감이 붙으니까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도 보였어. 걱정됐는데 잘됐지.
지금 생각해보면 스프린트는 그동안 하던 일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해서 의욕을 잃었나 봐. 부산에 있을 때, 나는 누군가를 끄는 역할을 맡았어. 내가 잘났다기보다는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원하는 걸 할 수가 없었어. 토론동아리도 없으니까 만들었고, 대외활동도 내 성에 안 차니까 내가 끌었고 학보사랑 1인 미디어도 아무도 안 하는데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야.
그 환기도 필요했어. 내가 잘해서 이끄는 건지, 어쩔 수 없어서 했는지, 리더 말고 팔로워를 하면 잘할 수 있을지 궁금했거든. 그래서 리더십 있고 똑똑하고 통찰력 터지는 사람이랑 하고 싶었어. 1차 때는 내가 그동안 했던 역할을 해서 재미가 없었고 2차 때도 비슷했던 거 같아. 근데 동싸 때는 형이 그 역할을 하니까 내가 디테일에 집중하면 되더라고. 어떻게 대중에게 재밌게 전달할지만 고민하면 되니까 더 쉽더라고.
구 : 면담 때 뭐라고 했어?
이 : 면담 때 제일 같이 해보고 싶은 사람 물었잖아. 그때 형 이름 말했어. 뭔가 형이 조율을 잘할 거 같아서 해보고 싶다고 했어. 그리고 한국경제랑 다음세대재단이랑 하고 싶다고 했어. 한경이 뉴미디어에 가장 적극적이고 다세대는 재밌을 거 같았어. 새로운 경험이니까 말이야. 아무도 해보지 않은 포지션에서 일하면 재밌잖아. 뉴스 랩에서 처음으로 비영리 단체랑 하는데 뭔가 새로운 걸 만들었다고 하면 멋지잖아.
구 : 동아사이언스 걸렸을 땐?
이 : 솔직히 절망했어. 동아사이언스 가고 싶지 않았거든. 아니, 과학을 해야 하잖아. 헤드킹 때든 뭐든 내가 만든 콘텐츠는 김주하 저널리즘에 가까웠어. 내가 눈물 흘리는 게 직접 나오는 저널리즘인 거지. 관종에서 출발했으니까 나를 빛나게 하는 콘텐츠를 제작했어. 그래서 내실 있고 내공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지.
그런데 과학은 그게 어려울 거 같은 거야. 전문적인 거 잘못 건드렸다가 좆될 거 같고, 딱히 관심도 없었거든. 그렇게 막막했는데 팀원을 만나니까 좋았어. 사실 내가 팀워크에 대한 직감은 쩔어. 스프린트 때도 당시 조원들 만나자마자 어떻게 일이 진행되겠다고 예상했는데 그대로 적중했어.
동싸 때도 그랬어. 형이 설치니까 잡아주고, 다예도 착하니까 협업 잘 될 거 같고 나랑 영상톤이 다르니까 더 잘 될 거 같았어. 난 드라이하고 다예는 감정을 끌어내는 걸 잘하지. 나랑 톤도 다르니까 협업 잘되고. 보현이는 사실 어디를 가든 잘할 거 같아. 이 네 명 합이 좋고 재밌을 거라고 확신했어. 요약하면, 동싸 걸린 건 싫었지만 팀원이 마음에 들어서 좋았지.
구 : 뉴스랩 진행하는 동안 가장 좌절했을 때는?
이 : 좌절은 없고 자극만 있었어. 내가 부족했으니까 공부 열심히 해야 하고, 내가 그동안 만든 게 너무 야매였다고 생각 드니까 열심히 해야겠다고 자극받았지. 좌절은 아니었어.
그래도 영어 때문에 좌절했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레퍼런스를 많이 찾은 적이 없어. 우리가 과학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 영어 기사나 논문이잖아. 한글로 읽어도 어려운 걸 영어로 읽으니까 환장하는 거지. 내가 외국어 공부에 소홀했던 걸 한 번도 후회 안 했는데, 이번에 후회했어. 이번 뉴스랩하면서 진짜 외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어. 회화는 아니어도 독해는 해야겠더라. 필요성을 느꼈으니까 열심히 했겠지.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좀 게을러.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빼고 되게 게으르고, 이게 내 성장에 발목을 잡을 거라는 걸 아는데도 쉽게 고쳐지지 않았는데, 이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좌절하지 않았다고 말한 이유는 내게 뉴스랩은 정말 행복한 순간이고 공간이거든. 하고 싶은 분야를 연구하고, 제작하고, 심지어 장학금도 받았잖아. 원하던 일을 하니까 후회할 일이 없고 매일매일이 너무 좋아. 이게 안 끝났으면 좋겠어. 내가 매일 성장하는 게 느껴졌어. 그 성장이라는 게 단순히 스킬이 늘었다는 게 아냐. 삶에 대한 통찰을 얻은 거 같아.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공부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통찰 말이야.
구 : 가장 뿌듯했을 때는?
이 : 챗봇 영상 완성했을 때지. 그동안 내가 못 본 영상, 하지 않았던 영상을 제작했으니까 뿌듯했지. 아이폰이 핸드폰에 새로운 개념을 더한 것처럼, 내레이션 영상과 챗봇 영상을 더했는데 이게 신개념이라고 생각해.
우리 그 콘텐츠가 원래 소셜에서 바이럴 잘되는 형태의 2인 인터뷰였잖아. 근데 바이럴을 포기하고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를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잘됐으니까 뿌듯했지. 비록 바이럴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새로운 포맷의 영상에 도전했고 완성했으니까 좋았어. 뉴스랩은 실험하는 공간이기에 거기에 부합한 영상이라고 봐.
구 : 본인이 생각하기에 2달 동안 가장 성장한 부분은?
이 : 음, 내가 성장한 부분이라. 인사이트.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냐. 나만 아는 거야.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공부하고,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어떠한 방법이 있고 어떻게 해야 그 방법을 알 수 있는지. 정확히는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았고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깨달았어.
구 : 뭐가 부족했고, 뭐가 필요했어?
이 : 그냥 난 공부가 필요해. 강박사님이 나한테 본인은 글 하나 쓰기 위해서 이틀을 꼬박 공부했고, 공부 안 하면 뒤떨어질까 봐 불안해지신다고 말씀하셨어. 근데, 지금 보니까 내 밑천이 떨어졌어. 10대 때 영상 만든 경험으로 이런저런 대외활동을 했는데, 지금 다 떨어졌어. 좀 더 크고, 완성되고, 멋진 일을 하기 위해선 제작 경험 말고도 책도 읽고 고수들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그래야 하는 거 같아. 내공을 쌓아야지.
예전에는 내가 "우리 학내 구성원의 목소리를 들으세요"라고 했다면, 이제는 학내 구성원이 왜 말하지 않는지, 다른 학교는 얼마나 내는지, 과거엔 많이 냈는지 등 좀 더 교차하고 비교할 수 있는 여러 정보를 담고 싶어. 그런 정보를 담기 위해선 내가 많이 알아야지.
구 : 대안에 대해 고민한 거야?
이 : 대안까지는 아니야. 이렇게 보자. 예전의 내 영상이 "이게 문제야!"라고 했다면, 앞으로의 내 영상은 "이게 왜 문제냐면 블라블라 블라"라고 해야 할까? 왜 문제이고, 문제가 생기게 된 배경, 누구에게 문제인지 등을 말할 수 있는 고퀄리티 정보를 담고 싶어. 내가 그동안 만든 건 단순히 따봉 얻기 위한 느낌이야. 근데, 미디어라면 충성 고객이 필요하잖아. 충성 고객을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남들보다 한 단계 깊게 들어간 고민을 풀어내는 콘텐츠라고 봐. 이 콘텐츠가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해결의 실마리를 담아야 한다는 거지.
구 : 뉴스랩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이 : 별로 없어. 굳이 하나 꼽자면, 내가 챗봇 영상 편집에 집중하느라 다예랑 형이 하는 기획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던 거 같아. 이제 끝나가니까 하는 이야기지만, 같이 좀 더 깊게 고민하고 그랬으면 더 잘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 거지. 완성도도 높이고, 재미도 찾고 말이야. 이제 다 끝나니까 콘텐츠의 구멍이 보이더라. 그걸 메워서 정보성이랑 흡입력을 높일 수 있는데, 이제야 보이는 게 너무 아쉬워.
저번엔 안 보이다가 이제 보이는 이유는 간단해. 디테일을 채우기에 바빴거든. 우리가 기획을 같이 할 때 더 채울 수 있었는데, 각자 이미 주도하고 있는 영상이 있고 할 일이 있으니까 디테일을 같이 채우지 못한 거 같아. 근데 이건 사실 우리 협업 능력보다 콘텐츠 제작 기간 자체의 문제라 다시 돌아가도 똑같을 거 같아.
아, 하나만 더 꼽자면 다른 팀과 교류가 부족하다는 게 아쉬워. 뉴스랩 2기는 팀이 달라도 교류가 잘 되고 친한 거 같아. 3기는 보면 팀 안에서만 노는 거 같아. 이게 아쉬워서 전체 회식도 하자고 한 거야. 사실 고민이 있고 막힐 때 팀 내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바깥사람과 이야기하다가 풀리는 경우도 있잖아. 이렇게 환기를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면 팀 내에서 갈등이 되는 거지.
그래서 지금 막 “엠티를 추진할까?” 생각도 들었어. 거기서 술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섞여서 대화하고 회포 푸는 게 중요하지. 그걸 하고 쫑내는 거랑 뉴스랩 졸업식만으로 쫑내는 거랑 달라. 막말로 엠티 가서 둘이 이야기하다가 친해지면 팀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런 거잖아.
구 : 주도하는 역할을 계속하는데? 왜 팔로워 하고 싶다 그랬어?
이 : 사실 처음엔 내가 주도하고 싶어서 했지. 근데 계속하다 보니까 매너리즘에 빠져서 "내가 정말 잘하는 걸까? 다른 역할은 어떨까?” 싶어서 팔로워가 되어보고 싶었어.
내가 뭐 스티브 잡스나 에디슨처럼 무언가를 발명하는 사람은 아니야. 어느 정도 기틀이 세워져 있는 곳에 들어가서 부족한 걸 채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걸 잘하는 거 같아. 사업단 대외활동도 그랬어. 그 대외활동에서 하는 일이 사실 되게 내실 있고 좋은데 그걸 알리지 못하는 게 아쉬워서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활용하고 지역기업이랑 연락망도 만들었어.
짜장면 콘텐츠도 비슷해. 학교 앞 오프라인 시위만으로 안 바뀌더라. 전국을 대상으로 이슈화를 해야 레거시 미디어에서 관심도 주고 그래. 뉴스랩 엠티는 이렇게 보자. 교류에 대해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무도 안 하니까 내가 하는 거지. 내가 하면 이 문제가 풀리잖아.
구 : 이제, 뉴스랩 오기 전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 초등학교 때는 진짜 잘 나갔어. 모두 자기 어릴 때 잘 나갔다는데 난 진짜였어. 내 지금 키가 초등학교 때 키야. 외모도 어른들이 좋아하게 이목구비 뚜렷하고 심지어 공부도 잘했어. 학교 대표로 과학경시대회 나가서 동상도 받으니까 엄마 어깨에 힘들어가지. 엄마가 어릴 때 날 스파르타식으로 키웠어. 책도 맨날 읽히고 공부시키고 그랬거든. 그 엄마의 열성에 부합하게 자랐으니까 얼마나 뿌듯했겠어.
그렇게 내 뽕에 취해서 살다가 중학교에 올라가니까 공부하기가 싫더라. 갑자기 엄마의 그 열성에 반항심이 생기더라. 어느 정도였냐면, 내가 TV도 못 봤어. 중학교 때부터 대중가요를 들었어. 거짓말 아니고 빅뱅 거짓말이 내 첫 대중가요야. 에이치오티랑 지오디 몰라.
더 짜증 났던 게 키도 안 크더라. 아예 어릴 때부터 작았으면 모르겠는데, 예전엔 컸다가 더 안 크니까 스트레스받고 박탈감이 드는 거야. 자존감 바닥 치고, 소심해지고, 짝사랑만 하고 좋아한다고 이야기 못하는 쭈구리된 거지. 잘 나가던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고 쭈구리 중학교 시절에 왔지.
고등학교 좀 쭈구리였어. 근데 변했지. 고1 때 UCC로 수행평가를 했어. 고전시가로 UCC를 만들었는데 우리 팀이 전교에서 제일 잘했어. 그게 내 첫 영상제작이었는데, 그때 내 자존감을 되찾았어. “아, 내가 영상을 잘하나?”싶었고 그때부터 "나는 영상을 해야겠다!" 싶었지. 친한 친구의 엄마가 과외교사라 진로상담도 해주는 그런 분이었어. 근데 내가 만든 영상을 보고 나한테 PD 하면 잘 하겠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런 이야기도 들으니까 대학도 그쪽으로 진학했지. 이제 막 쭈구리 같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극복하고 영상으로 자존감을 되찾은 거야.
구 : 20대는?
이 : 그래서 대학교에 갔는데, 학교 커리큘럼이 너무 부족한 거야. “아, 이래서 지방이 안되나?” 생각마저 들었어. 그래서 그냥 아싸 됐어. 바로 대외 활동했어. 토론하고 싶어서 토론동아리도 만들고 그때 동아리에서 했던 이야기를 팟캐스트로 만들었어. 젊은 세대가 사회를 이야기하는 컨셉이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썰전 비슷했지. 학교는 결석해서 막 학사경고받았어. 그렇게 대외활동만 하다가 군대 갔어.
뭐, 대외 활동하는 걸 페이스북에 올리고 내가 주도해서 판을 벌리니까 사람들이 날 인정해주는 기분이 드는 거야. 멋있다고 하고, 열심히 한다고 하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올라가니까 성격이 밝아지고 좋아지더라고. 내 예전 잘 나가던 초등학교 시절처럼 말이야. 그래서 고등학교 때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지금 날 보면 놀라.
구 : 세 번째 사건은.
이 : 군대 갔다 와서 현실을 깨달았어. 군대에서 부조리도 겪고 그러니까 현실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좀 회의적으로 변했지. 예전엔 왜 이렇게 세상이 부조리하고 쓰레기 같은데 바뀌지 않냐고 한탄했으면 그때는 그냥 그렇구나라고 하면서 체념했어.
복학 이후엔 대외활동이나 미디어나 뭐 관심 다 끊고 학교 공부만 했어. 복학 이전에 평균이 2점 초반이었는데, 복학하자마자 3점 후반을 받은 거야. 정말 열심히 했고, 실제로 잘 됐는데 정작 재미는 없더라. 학점은 올라갔는데 성장은 못했지.
흥미를 못 느끼니까 바깥으로 갔지. 다시 대외활동을 했어. 부산 청년 일자리 사업단이라는 대외활동이었는데, 처음엔 서포터즈였다가 단장도 맡았어. 사실, 그것도 순수하게 재밌어 보여서 한 거는 아니야. 취업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했거든. 학점 따면서, 취업에 도움되는 대외 활동하면서 취업준비만 하는 사람이었거든.
그 대외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페이스북에 올렸어. 어떻게 홍보하고 어떤 영상을 제작하는지 고민을 막 하는데, 갑자기 현타가 오는 거야. 내가 대외활동 자체보다 그걸 소재로 뉴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재밌어하는 게 보였거든.
그렇게 현타가 왔을 때, 부산외대 짜장면 사건이 터졌고 내가 빡쳐서 영상을 만들었는데 그것도 터지더라. 그래서 “아, 이 일을 해야겠다!”라고 확신했어. 취미든 취업이든 뭐든 뉴미디어 일을 놓치면 안 되겠더라. 왜냐면 내가 이 일을 할 때 가장 빛난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헤드킹을 하게 됐고, 헤드킹하면서 한계를 느껴서 메디아티 펠로우십을 했고 여기까지 왔지.
구 : 학점에만 집중했다는데 학보사도 했잖아. 왜 한 거야?
이 : 당시 학보사 국장이 내 친구였어. 내가 유일하게 과에서 친하게 지내는 애거든. 근데 걔가 나한테 학보사를 제안했어. 사실 나도 그동안 토론동아리도 그렇고, 팟캐스트도 그렇고, 하고 싶은 일도 전부 뉴스에 가까웠거든. 그래서 학보사를 하면서 언론인으로서 역량을 키우려고 했어.
사실 생각해보면 손해는 아니었어. 원래 언론에 관심 있었고, 장학금도 주고, 학교 일도 하니까 좋았지. 학내 활동 하나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 일단 장학금 받으면서 하고 싶은 일 했으니까 좋았지. 우리 학보사가 부산 지역 대학교 최초로 뉴미디어 기반 저널리즘 했어. 페북에 글 올리고 뉴스 영상 콘텐츠도 재밌게 만들고 바이럴도 터지고 그랬어. 처음 학보사 시작할 때 페이지 좋아요가 200이었는데 금방 2천으로 올렸어. 다른 학교 학보사 애들이 나한테 어떻게 했냐고 막 물을 정도였어. 생각해보면 내가 캐리했다는 사실이 좋았던 거 같아. 뭔가 취업에도 도움이 될 거 같았어. 면접 때 풀 수 있는 이야기도 되는 거고.
구 : 뉴미디어 하기 전엔 뭐 하려고 했어?
이 : 아주 어릴 때는 외교관, 그리고는 영화감독. 처음에 어릴 땐 국뽕에 취해서 “독도 문제랑 중국의 동북공정을 외교로 풀어야지!”라는 환상에 빠졌어. A4용지에 프린트해서 방에 붙여놓을 정도였어.
그런데 곧 다 없어졌고, 고등학교 1학년 초반에 영화를 하고 싶었어. 영화 하나를 만들면 제작자에게 평생 남잖아. 방송은 더 빠르게 소비되고 새롭게 나오지만 영화는 약간 제작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평생 남는 예술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근데 영화를 만들다 보니까 재미없더라. 보는 건 재밌는데 하는 게 재미없었어.
사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건 야마를 잡아서 이야기를 퍼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해. 굳이 따지자면 영화보다 방송에 가까웠지. 그런데 기존 형태의 방송은 지루했고, 빠르게 올려서 바로 피드백받는 뉴미디어판에서 일하고 싶었어.
구 : 여성주의나 뉴미디어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이 : 여성주의는 동생이랑 페북에서 본 콘텐츠들. 사실 페미니즘에 진짜 관심 없었어. 내가 뭐 마초에다가 데이트 폭력 저지르는 범죄자는 아니었어도, 사실 어느 정도 고정관념은 있었거든. 예를 들어, 남자가 데이트 관계를 리드해야 한다는 생각?
그런데 우리 동생이 되게 철학에 관심이 많아서 페미니즘 책도 읽고 나한테 이야기도 많이 해주는 거야. 같은 집에 사는 애가 그러니까 관심도 생기고, 2016년 이후로 페미니즘 콘텐츠가 많이 생기고 그걸 보게 되니까 편견이 많이 깨지고 더 관심이 생겼지. 사실 이런 사상을 애매하게 알면 다른 사람이랑 대화가 안되니까 더 알고 싶어서 대학에서 여성학 강의도 들었어. 그 수업은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교양이 컨셉이라서 딱히 얻을 건 없었어.
구 : 부산에서만 살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
이 : 아빠가 한겨레가 창립할 때 기부금도 냈었고, 오랫동안 구독자였어. 사실 부모님이 지식인 계층은 아니지만 진보적이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 같아.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남을 생각하고 잘 챙기라 그랬거든. 심지어 엄마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도 일부러 대형마트에 안 가고 동네 슈퍼에 갔어. 대형마트에서 싸게 파는 아이스크림을 동네 슈퍼에서 “이런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지” 라면서 사고 그러셨거든.
단순히 부모님 때문만은 아닌 거 같아. 사실 어릴 때부터 사회 부조리에 대해 고발하는 영화랑 공권력에 대해 저항하고 비판하는 영화 되게 좋아했어.
구 : 자극을 받고 싶어서 서울에 왔다고 했잖아. 지역이랑 서울이랑 비교했을 때 가장 차이 나는 건 뭐라고 봐?
이 : 지역은 수도권에서 파생됐어. 대한민국은 어떤 일이든 수도권 위주야. 콘텐츠든 제품이든 수도권에서 내려오는 구도니까 파생인 거지. 지역에서는 특산품이랑 관광지 말고 독자적으로 나온 게 없어. 연극, 광고, 영화 모두 서울에서 먼저 나오거나 서울 중심으로 전파되지. 그런데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올 때 정작 알맹이는 빠져. 열화 되어서 내려와. 지역이 독자적으로 성장하고 고유문화가 있고 힘이 있어야 하는데 위성도시 같은 느낌이야. 서울을 유지시키기 위한 따까리라고 해야 하나?
사실, 지역균형이라고 해서 정부 부처도 내려오고 그러지만 무형의 무언가가 없어. 소프트파워가 없는 셈이야. 독자적인 콘텐츠가 없고 인프라가 없으니까 생기는 문제지. 막말로 공무원 준비를 하려고 해도 잘 하려면 서울에 가야 해. 심지어 부산이 영화의 도시라고 불리지만, 막상 영화를 공부하려면 서울에 가야 해. 선배들이나 인프라는 서울에만 있으니까 말이야. 연극이나 뮤지컬은 말할 것도 없지.
특히 청년들이 모여서 담론을 형성하고 커뮤니티를 만들 프로그램도 없어. 저번 크리스마스 보니까 서울에선 비건 페스티벌도 하는데, 지역엔 그런 모임도 잘 없어. 있어도 미약해. 예를 들어 지역 대학엔 페미니즘 담론화랑 관련 커뮤니티 형성이 쉽지 않아. 슬픈 말이지만 문화나 담론 수준이 좀 낮거든. 서울에서 가부장적인 이야기를 하면 비판받을 수 있지만 지역에서는 그게 나쁘거나 비판받을 일인지도 잘 모르는 거야. 문화 자본이랑 인프라가 부족하니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문제야.
사실 네트워크를 만들고 커뮤니티를 꾸리는 일에 관심 있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그걸 구체화시키고 주도할 사람이 부족하고 그러니까 네트워크가 없고 그러니까 인프라가 만들어지지 않지. 요약하자면 수도권이 중심이 되고 나머지 도시는 부수가 되니까 지역은 인프라, 학문, 산업, 문화, 네트워크 모두 부족한 거야.
누군가는 “뭐 2위 도시가 뭐가 아쉽냐”라고 말하겠지만, 2위 도시 부산이 이 정도면 다른 도시는 어떻겠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서 자극받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지.
구 : 그러면 서울에 살고 싶은 거야?
이 : 사는 건 부산이 좋아.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서울에 있어. 난 서울에서 이쪽 뉴미디어 분야에 있는 사람이랑 같이 일하고 교류하면서 성장하고 싶어. 난 지금 배워야 할 시기야. 배우면서 성장할 시기니까 서울에 있고 싶어. 만약 내가 부산에 있는 언론사 뉴미디어 팀에 들어가면 아마도 내가 배우기보다는 지금이랑 비슷한 일을 할 거 같아. 그래서 서울에 살고 싶은데, 경제적으로 너무 부담이지.
구 : 왜 부산엔 그런 커뮤니티가 없을까?
이 : 진짜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도저히 모르겠어. 일단 커뮤니티와 네트워크 형성에 대한 니즈는 분명히 있거든. 내 지인 중에서도 독서모임 만들고 글쓰기 모임 만드는 친구는 있어. 다만, 절대적으로 그런 사람의 비율이 적어. 왜냐면 이제 형성되고 있는 단계거든.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지자체에서 열심히 노력하지만, 서울에 비해선 느릴 수밖에 없고 이제 초기단계라서 한 10년은 있어야 달라질 거 같아. 그냥 뭐 서울에 비해 문화와 경제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구 : 그러면 뉴스랩 끝나고 내려가서 뭐 할 거야?
이 : 1~2월 내내 일했으니까 당장 내려가면 쉬고 싶어. 그 이후에 생각할 텐데 고민은 돼. 내려가서 뭔 일을 해야 할까? 사실 1인 미디어는 답이 없다고 봐. 포트폴리오에 도움은 될지언정 돈이 안되니까 말이야.
빠르게 졸업해서 스브스 뉴스 같은 언론사 뉴미디어팀에 들어갈까 싶기도 한데, 사실 졸업이 1년이나 남았으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사실 1년 뒤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잖아. 감도 떨어졌을 수 있고 부산에 있으니까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도 끊길 테니까 확언하기 어렵다. 심지어 "차라리 지금 뉴미디어 팀에 들어가서 일하면서 눈도장을 찍고 내려가서 졸업하고 다시 올라올까?”라는 생각도 들더라.
구 : 서울에 올라온 이후 가장 뿌듯했을 때는 언제였어?
이 : 매일 뿌듯하고 감사하고 행복해. 나한텐 올라오는 일 자체가 좋은 일이었거든. 공부하면서 성장할 기회를 받은 셈이니까 얼마나 좋았겠어.
구 : 힘든 건?
이 : 이 행복이 얼마나 갈까 싶었지. 정체성에 혼란도 왔어. 부산에 살고 싶지만 서울에서 일하면서 성장하고 싶다는 혼란이 왔거든. 서울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성장하고 싶지만 학교 문제도 그렇고 경제적으로 비용도 크니까 현실적으로 어렵잖아. 그러니까 이 기간이 끝난 이후에 서울에 있어야 할지 혹은 부산에 내려가야 할지 고민하는 거 같아. 결론은 심플하네. “뭐 먹고살지”에 대해 고민할 때가 제일 힘들어.
구 : 나중에 무슨 일 하고 싶어?
이 : 지금 뉴스랩에서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 부연하자면, 뉴미디어라고 일컬어지는 공간에서 뉴스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은 거야. 1인 미디어든 창업이든 조직에 들어가든 형태는 상관없어.
기성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난 예능에 교양을 담고 싶어. 사실 내게 그냥 교양은 재미없으니까 하고 싶지도 않아. 난 내가 정보를 가공해서 전달하는 데에 재미를 느껴. 똑똑한 강박사님보다 알지 못하는 대중에게 정보를 잘 가공해서 전달하는 게 재밌어.
그동안 해온 일도 다 그랬어. 학내 문제를 대중에게 전달하거나 대외활동 이야기를 대중에게 뿌리는 일이었으니까 말이야. 어떻게 보면 범근 님이랑 비슷하네.
구 : 무언가를 해결하고 바꾸는 걸 좋아하는 거 같은데, 궁극적으로 니가 만든 콘텐츠가 사회를 어떻게 바꿨으면 하는 거야?
이 : 그때그때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어. 내가 보기에 사람들이 알면 좋을 만한 정보가 더 많이 퍼졌으면 좋겠어. 예를 들어 짜장면 땐 우리 학교 학생들이 학내 문제에 관심 갖길 바랬고, 외부적으론 학생들의 투쟁을 알리고 싶었어. 헤드킹할 때는 청년들도 시사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보이면서 청년들의 관심을 이끌고 싶었어.
구 : 사회에 대한 애정이 있는 거 같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됐으면 해?
이 : 그냥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 문재인이 예전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겁니다”라고 했는데,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해. 정의로운 세상이 왔으면 해.
구 : 우리나라 사회에 뭐가 필요할까?
이 : 너무 많지만 하나만 말하자면, 노동권. 우리나라는 경제 수준에 비해 노동에 대한 존중이랑 노동권 보장이 부족한 거 같아. 급격하게 성장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필요한 노동권과 여성 인권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없어. 압축적으로 성장했으니 어쩔 수 없는 문제고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아쉬워. 학연, 지연, 혈연 빼고 청년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어른들도 필요해. 젊은이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재능 있는 어른들 말이야.
구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 없어. 이런 질문 싫어한다.
구 : 그지 같은 놈. 10년 뒤에 너의 모습은?
이 : 10년 뒤는 의미가 없지. 10년 전에도 "10년 뒤에 뭐할까" 고민했는데 지금이랑 별 상관없는 거 같아. 차라리 6개월이나 1년 뒤라면 모를까.
구 : 그러면 6개월 뒤랑 1년 뒤에 뭐할 거 같아?
이 : 대학을 졸업했거나 인턴하면서 내 포트폴리오를 만들었겠지. 여자 친구가 있거나. 여자 친구랑 200일 됐으려나. 아니다 30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