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에서 인터뷰로 바뀜^오^
관찰일기. 다 좋았는데, 내가 재미없었다. 사실 내가 관찰한 거라 사람을 알아가는 게 한계가 있었다. 포장지와 내용물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난 내 동료를 포장하는 게 아니라 알아가고 싶었다. 이 기록은 나와 우리 동료들이 같이 했던 2개월, 같이 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남기기 위한 일 중 하나다.
첫번째는 우리의 디자이너, 김보현이다. 두번째는 영상러 헤드킹, 이수종. 세번째는 영상러 벽이, 송다예.
구현모 (이하 구) : 인터뷰하기 전에 가볍게 분위기나 풀자. 너 목소리가 되게 얇고 갸녀린데, 녹음 들어본 적 있어?
김보현 (이하 퀸) : 들을 때마다 이상해(푸하하). 내가 생각한 것보다 목소리가 너무 어리더라구. 그래서 내 목소리 듣는 거 안 좋아해.
구 : 싫어하니까 녹취 따는 거 너가 해라.
퀸 : 아, 뭐야. 내가 하라고? 알겠어.
라고 하지만 내가 다했다고 합니다.
구 : 가볍게 물어보자. 왜 뉴스랩했어? 저널리즘에도 관심없고, 심지어 유학준비하는 대학원생이었잖아.
퀸 : 뉴스랩은 생각 없이 했어. “방학 때 뭐하지?” 고민하다가 했지. 그냥 “어, 구글?”, “어, 장학금?” 그래서 했거든. 따지고 보면 이 프로그램에 신청한 사람 대부분이 피디나 기자처럼 방송과 저널리즘에 조금이라도 뜻이 있는데 난 아니잖아. 관심도 없었어. 2기 참여한 소영 언니가 좋다면서 해보라고 해서 신청했지. 디자인 포트폴리오 만들기도 좋겠다 싶었어. UX/UI 디자이너니까 개발자랑 같이 일하면서 포트폴리오 쌓고 싶었는데 우리팀은 개발자가 없어서 영상 만들고 있네.
구 : 면접에서 뭐 물어봤어?
퀸 : 디자이너로서 내 장점이 무엇인지 물어봤고, 스타트업에서 뭐 했냐 물어봤어. 그리고 개발자랑 의견조율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셨는데 정작 개발자를 안 붙였네? 날 미워하나?
디자이너로서 장점을 물어봤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 그래서 그냥 “저는 손이 빨라요” 이랬어. 그 다음엔 스타트업에서 잠깐 일했을 때 작업에 시간 얼마나 걸었냐고 물으시더라고. 근데 그때는 내가 전일제가 아니라 파트타임이었단 말이야. 이런 부연 설명은 못하고 그냥 ‘3개월’이라고 답해버렸어. 손이 빠르다고 했는데 작업 하나에 3개월이나 걸린 거니까 말인 안 되는 거지. 그래서 떨어진 줄 알았어. 대체 왜 붙인 걸까? 개발자도 안 붙여줄 거면서.
구 : 그러게. 정작 붙여놓고 개발자를 안 줬을까? 우리를 싫어하나? 여튼, 우리가 붙은 다음에 총 2번 동안 파일럿 프로젝트로 스프린트를 진행했잖아. 저널리즘에 관심도 없고, 뉴스랩에 별 생각도 없이 지원했으니 새로웠을텐데 너의 소감은 어땠어?
퀸 : 1차 스프린트 때는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어. 다예가 “우리 팀에 셀럽이 있어”라는 거야. 근데 정작 오빠랑 나는 기말고사 때문에 서로 번갈아가면서 빠져서 일을 못했잖아. 그래서 누군지 궁금했어.
구 : 보니까 어땠어 ㅎㅎ?
퀸 : 음.. 쩝.. 신기했다고 할게. 발표 잘해서 신기했어.
구 : 엎드려 절받기네. 2차 스프린트는 어땠어?
퀸 : 일단 1차 스프린트를 같이 진행한 다예가 있어서 좋았어. 1차 때 한 번 일을 해봐서 편하더라. 사실 2차 때는 나 스스로에 대해 좌절했어. “왜 이렇게 내 세계가 좁아졌고 실력이 줄었지?”라는 생각에 좌절하고 스프린트에 집중이 안됐거든. 디자인이라는 게 사실 “이런 컨셉으로 할 거야!” 이러면 남들한테 어떻게 설명하고 납득시킬 필요가 없어. 외주에 가까워서 그냥 나 혼자 이러쿵저러쿵하면 되는 작업이거든.
근데 스프린트 때는 내가 기획에도 참여해야 하잖아. 기획에 참여하고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토론하는 작업이 어렵더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글쓰기도 좋아하고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했어. 심지어 학부에서는 협업이랑 설득을 잘했는데 대학원 들어오면서 슬럼프가 겹쳐서 이런 걸 다 까먹은 거야. 내게 대학원 3학기는 그동안 살아왔던 와중에 가장 의욕없고 아무 것도 하기 싫던 시기였거든. 그래서 크게 성장하지 못했던 거 같아. 팀원을 설득하기 위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정리가 안되고, 그와중에 팀원인 다예는 엄청 잘했어. 그래서 신기하고 좌절하고 반성했지.
구 : 신기했네. 전혀 그런 줄 몰랐어. 그냥 피곤했거든. 그러면 팀구성 면담 때 이런 이야기를 다했어?
퀸 : 그냥 평소에 내가 어떤 사람이랑 잘 맞는지에 대해 얘기했어. 원래 나는 조용한 사람이랑 있거나 의견이 잘 안 나올 때는 내가 이끌어가려고 해. 투머치토커가 되는 느낌? 근데 그러면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서 이끌어주는 누군가랑 해보고 싶었어. 활발하고 팀을 이끌어가는 사람이랑 하고 싶다고 말했지.
구 : 그러면 뉴스랩 때는 뭘 하고 싶었어?
퀸 : 웹사이트 기획부터 제작까지 하고 싶었어. 내가 파트타임으로 일한 스타트업은 사실 컨셉이 다 나와있었고 내가 기획을 수정하거나 아이템을 발굴하는 건 아니었어. 다 된 컨셉에 브랜딩만 조금 도와주는 거였지. 그래서 아예 기획초기부터 하는 걸 해보고 싶었어. 기획부터 디자인 그리고 브랜딩까지 전부 하고 싶었고 그걸 웹사이트로 구축하고 싶었어. 근데 우리 팀은 개발자가 없잖아. 그래서 오빠가 “넌 뭐하고 싶어?”라고 물을 때 답변하는 데에 오래 걸렸어.
구 : 그래서 우리는 동아사이언스와 함께 하게 됐지. 어땠어?
퀸 : 어떤 언론사가 걸리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는 사실 크게 상관없었어. 쉽게 말해 “갈리면 되지, 뭐~” 이런 마인드거든. 결국,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랑 하냐가 중요하다 싶었어. 사람이 안 맞으면 너무 힘들어. 일단, 난 오빠를 1차 스프린트 때 같이 했는데 정작 한 번도 못봤는데 다시 만나서 신기하고 좋았어. 같이 했던 다예가 있어서 좋았지. 수종이는 마주칠 일이 아예 없어서 전혀 몰랐는데, 그래도 첫 인상은 좋았어. 신뢰감 있는 얼굴이잖아.
구 : 잘생겼다고 하자.
퀸 : 응, 맞아. 수종이 잘생겼지.
구 : 그래, 좋아. 그러면 현재까지 뉴스랩하면서 가장 좌절한 순간은?
퀸 : 2차 스프린트 때 가장 좌절했지. 요약하자면 “내가 대학원부터 지금까지 성장하지 못했구나” 싶었어. 나 그래서 요즘에는 글도 많이 읽고, 2차 스프린트 이후에는 일기도 쓰고 있어. 짧은 글이라도 쓰지 않으니까 정작 내가 글을 써야 할 때 못 쓰겠더라. 내 세계가 좁아졌다고 했잖아. 그래서 일기도 쓰고, 글도 읽고 쓰면서 넓히려고 해. 예전이라면 상현님이나 오빠가 쓰는 거 보고 그냥 "그렇구나” 이랬을텐데 요즘엔 “오, 그렇구나”하며 생각도 많이 해.열정을 좋아하고 열정적인 사람을 동경하지만 정작 나는 무기력하게 살았어.
구 : 무기력하게 살아서 열정을 동경해?
퀸 : 내가 전에 영화 <위플래쉬>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하나에 열정을 쏟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게 멋있어 보였거든. 나도 그렇게 미친듯이 열정적으로 살아보고 싶은데, 지금 내가 무언가 결핍되지도 않고 아쉬운 것도 없더라. 아쉬워하지도 않으니까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결국 무기력해졌지.
구 : 그럼 대체 대학원은 왜 간 거야?
퀸 : 큰 고민도, 생각도 없었어. 학부 졸업전시회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시했어. 단순 2D 작업보다 상호작용이 있는 미술을 하니까 관객이 더 몰입해. 그게 너무 좋더라. 그걸 더 공부하고 싶어서 해외 대학원을 준비했는데, 그걸 준비하는 기간 동안 약간의 보험용으로 생각했지. 사실 당장 취업이 급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우리 과 (아트 앤 테크놀로지) 가 특이해서 좋았어. 주위에서 오고 싶다면서 어떠냐고 묻더라. 잘 나가는 과인가봐. 나는 아니지만.
구 : 그럼 쭈구리 김보현이 잘 나가는 대학원을 다녀보니 어때?
퀸 : 와서 더 혼란스러워졌어. 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엄청 고민했거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관심종자끼도 있어서 유명해지고도 싶어. 그런데 예술도 하고 싶어.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킬 일이 무엇이 있을지 엄청 고민했어. 부모님은 내가 교수가 되길 바라시니까 내가 학자스타일인지 고민해봤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어. 궁극적으로 어딘가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오빠, 나 대체 뭐 해야 할까?
구 : 그걸 알면 내가 하고 있겠지. 예술을 하고 싶다는데, 뭘 하고 싶은 거야?
퀸 :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나온 빙봉을 진짜 좋아해. 그거 정말 사소한데 잘 묘사했잖아. 누구나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이나 캐릭터가 있잖아. 크면서 그걸 잊게 되는데, 그 과정을 너무나 완벽하게 묘사했어. 그렇게 사소한 것을 아름답게 묘사해보고 싶어. 내 작업물이 누군가를 위로했으면 좋겠어. 저번에 우리가 치킨 먹으면서 내가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고 했잖아. 사실 세상에 실질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선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너무 힘들 거 같아. 그걸 내가 못한다면 누군가에게 잠깐의 위로가 되고 싶어. 위로할 수 있는 예술을, 그 예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지.
구 : 뉴스랩은 오지게 물어봤으니까 과거로 돌아가보자. 자, 아주 어릴 때의 김보현을 묘사해봅시다.
퀸 : 엄청 어릴 때 내 모습이 기억나지는 않아. 그런데 엄마가 그랬어. 내가 한약을 먹는데 너무 쓰다고 하니까 엄마가 “이거 콜라라고 생각하고 먹어”이랬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알겠어. 그러면 콜라라고 생각하고 먹을게!”이러면서 먹었대. 그냥 귀여웠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회장이랑 부회장할 정도로 활발했어. 전교 부회장도 했어. 내 인생에 첫 실패는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 반회장 선거에 나갔는데 떨어졌거든. 그전까지 자주 했으니까 당연히 될 줄 알았는데 떨어졌어. 중학교랑 고등학교 때는 딱히 기억나는 게 없어. 그나마 동아리 활동?
구 : 뭐 했는데?
퀸 : 중학교 때는 방송부했고 고등학교 때는 영자신문했어. 우리 중학교 방송부는 아침에 영어 삼국지 이런 거 틀어줬는데, 그런 거 하는 선배들이 멋있어 보였어. 그냥 멋있어 보여서 했어. 방송부에서는 교내방송 아나운서했다. 방송부는 방송부실이 있어. 난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일하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게 좋았고, 거기서 하는 건 다 재밌었어.
영자신문은 그냥 친한 친구가 해서 했어. 대학가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 근데 지금 생각하면 거기서 뭐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일은 재밌었는데 같이 한 사람들이랑 친해지지 못했어. 방송부랑 달리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그랬던 걸까? 그냥 각자 따로 일했어. 다 같이 모여서 하지 않고 내가 쓰면 그걸 번역했어. 온라인으로 일했거든.
구 : 공간 되게 좋아하네. 이건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넌 어쩌다가 너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 항상 너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거 같은데 말야
퀸 : 자기 객관화라. 중학교랑 고등학교 때까지는 전혀 안그랬어. 평생 서초구랑 강남구에 살았으니까 다 비슷한 애들만 만났으니까 자기 객관화가 안됐지. 그런데 대학교 오니까 다른 거야. 단적으론 생계 때문에 아르바이트 하는 애들도 많았고, 등록금 걱정하는 친구들도 많았거든. 예를 들어 나는 '이왕 먹을 거면 비싸고 좋은 거 먹자'는 주의인데, 사실 천 원이랑 이천 원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잖아. 파마에 3만 원이 들어가면 저녁을 안 먹는 사람도 있고, 곱창 먹을 때 이거저거 추가로 시키자고 하면 편하게 “그래”라고 말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을테니까 말야.
내 환경을 인지하지 못하면 의도치 않게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 조심하게 돼. 지금 뉴스랩도 단순하게 보면 내가 써서 합격했지만, 자기소개서랑 포트폴리오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결국 내 삶의 출발선으로 돌아가게 되더라. 내가 그동안 누린 거를 돌아보게 되는 거지. 단순히 합격과 불합격으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큰 과정이야.
구 : 이야기만 들어보면 거의 완벽한 삶인데, 박탈감 느낀 적 있어?
퀸 : 왜 없어, 많지! 일단 재능에 대한 박탈감이 있었어. 고등학교 때 미술 학원을 다녔는데 거기에 그림 진짜 잘 그리는 애가 있었어. 같은 삼다수를 그려도 걔는 정말 달랐어. 난 왜 저렇게 안 될까? 이런 게 있었지. 사실 개는 예고를 나왔고, 나는 미술을 늦게 시작했으니까 당연히 내가 걔보다 잘 그릴 수가 없던 건데, 당시엔 너무 슬펐어. 정말 잘 그리고 싶었거든. 그거 말고도 사소하게는 외모에 대한 박탈감부터 크게 보면 대학에 대한 박탈감까지 있었지. 내가 입시할 때 서울대랑 이화여대 그리고 건국대를 썼는데, 건국대만 붙었어. 학원에서 같이 준비하던 애들은 서울대를 가니까 엄마가 아쉬움이 컸나봐. 동생이 입시를 준비할 때 약간 나를 깎아내리면서 자극하는 거 같아서 좀 그랬지.
구 : 와, 나 같으면 엄마한테 화낼 거 같은데.
퀸 : 무슨 문제나 갈등이 생겼을 때,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남과 연관짓지는 않아. 그냥 나 혼자 생각하고 말지.
구 : 방금 들어보니까 그림을 늦게 시작했는데 왜 그리게 됐어?
퀸 : 중학교 2학년 때 취미로 포토샵을 배웠어. 그냥 엄마가 “다녀볼래?" 이랬거든. 매주 토요일에 나가서 한 달에 4번 배웠지. 포토샵을 할 줄 아니까 사진보정을 하게 되고, 그래픽작업을 했어. 작게는 생일파티초대장을 만들고, 고등학교 때는 학교 축제 포스터를 만들었지. 내가 컨셉을 잡고 만드는 과정 자체가 좋아. 고등학교 때 내 그림을 보고 선생님이 미술해보라고 추천하시더라. 직전까지 포토샵은 취미였고, 미술을 하면서 관심이 좀 생겼는데 선생님이 추천해주시니까 마음먹었지.
구 : 미술이 왜 좋았어?
퀸 : 시각이 주는 힘이 정말 어마어마해. 행사 전체에 시각적인 효과를 주거든. 더 직관적으로 말하면, 무대 앞에 엄청 크게 걸리고 내가 만든 포스터로 홍보하는 게 좋았어. 관심받잖아! 내 작업물을 보고 행사까지 오는 게 너무 신기했어. 대학교 총학생회 때도 축제를 기획했는데 정말 힘들었는데도 너무 좋았어. 내가 기획하고 진행하고 운영하는 데에 사람들이 와서 너무 좋았어.
구 : 존재를 증명받는 기분이야?
퀸 :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내가 한 걸 누군가한테 보여주면 좋잖아. 내가 이성적인 아빠와 열정적인 엄마 사이에서 조용하고 감성적으로 자라서 그런지 누군가와 공감하고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 시각디자인학부도 시각적인 언어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게 좋아서 갔어.
구 : 이성적인 아버지와 열정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면 고생 좀 했겠네. 부모님 말고 지금의 김보현을 만든 사건 좀 말해볼래? 어쩌다가 지금의 너가 된 거야?
퀸 : 2014년도 총학생회, 구글 뉴스랩 그리고 인셉션.
구 : 총학생회는 왜 했어? 솔직히 학생회는 숨만 쉬고 있어도 욕 먹잖아.
퀸 : 사람 만나는 게 너무 좋아서 했어. 우리 과에는 전부 예술하는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은 뭐하면서 살까 궁금했거든. 공부하는 분야에 따라 고민이 달라지니까 다른 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었어. 그리고 내가 조용해도 관심 받는 걸 좋아해서 했지. 호기심으로 했는데 내 대학 생활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자 터닝포인트가 됐어.
구 : 다른 세계를 만나도 좋아? 반대가 끌리는 거야?
퀸 : 동질적 세계를 가진 사람에겐 편안함을 느끼고 이질적인 사람을 만나면 여행하는 느낌이 들어.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고 알아가고 내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나랑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면 친해지고 싶어. '어떻게 저렇게 생각하는 저런 사람이 됐을까?’가 궁금해서 말야.
구 : 그럼 학생회는 왜 터닝포인트야?
퀸 : 사회에 나가면 돈도 신경써야 하고, 경력 개발에 도움이 될지도 고민해야 하니까. 순전히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잖아. 근데 그런 거 없이 순전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떤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같이 일할 수 있어서 좋았어.
오그라들 수도 있지만, 난 내 삶에 있어 사랑을 되게 중요시해. 단순히 연인에 대한 사랑 말고 내 근처에 있는 사람 그리고 사회랑 인간 전체에 대한 사랑. 사실 UX도 사용자가 좀 더 좋은 경험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잘되는데, 이게 사실 인간에 대한 애정이지. 애정이 들어간 작업물은 달라.
그 학생회가 터닝포인트이자 최고의 기억이었던 이유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랑 일에 대한 애정 두 가지 모두 있었기 때문이야.
구 : 아니, 어떻게 총학생회 일에 애정이 있을 수 있습니까
퀸 : 총학생회를 하면 등록금 인하 운동도 하고 축제도 준비해. 그러면 우리 학교 학생을 돕는 거잖아. 우리가 이런 일을 했다고 페이스북에 올리면 거기에 사람들이 “이번 총학생회 너무 좋아요”라고 댓글 다는 게 너무 좋았어.
구 : 성모 마리아네. 같이 일한 사람에 대한 애정도 있었다는데, 처음부터 있었진 않았지?
퀸 : 수업 끝나고 심심하면 무조건 총학생회실에 갔어. 심심할 때마다 가고, 거기에 눌러앉아 있으니까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그랬지. 그리고 축제처럼 큰 일을 같이 하면 전우애도 쌓이고 애정도 생기잖아. 그리고 거기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었어
구 : 오케이, 이해했어. 그러면 구글 뉴스랩은 왜?
퀸 : 아직 완전하게 일이 끝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내 삶의 모습을 바꾸게 된 이유야. 과거에 열정을 동경하던 나도 생각나고 그동안 정체한 나를 반성했거든.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공부든 뭐든 말이야. 대학원 2년 동안 이런 생각을 전혀 안했는데 이제 하게 됐지.
구 : 마지막으로 인셉션은 왜?
퀸 : 와, 진짜 충격적이었어. 꿈 속의 꿈이라는 흔한 주제로 시작해서 남들과 다르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너무 신기했어. 내 인생영화야. 그때부터 예술을 하고 싶게 됐고, 내 작품이 누군가의 인생 작품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구 : 가시밭길 그 자체인 예술은 왜 하고 싶은 거야?
퀸 : 나는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 간접적으로 돌려서 표현하는 걸 좋아해. 예술은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간접적이고 아름답게 전달하는 일이라서 좋아. 간접적으로 전달하면 그 주제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되거든. 예를 들어서 사랑은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때, 문장보다 다른 형식으로 표현하는 게 좋은 거지. 5분짜리 영상이면 5분 내에 스토리텔링하는 거고, 미디어아트면 설치작업으로 표현해. 그러니까 더 고민하게 되고, 고민하다 보면 애정이 생기고 더 좋은 작업물과 더 큰 울림이 나오는 거 같아. 난 사람의 감성을 건드려서 사람들이 나를 궁금해하고, 그 사람의 기억에 남고 싶어.
구 : 감성왕이 좋아하는 감성은?
퀸 : 투머치 감성인 거 같은데, 비오는 날에 차타면서 헤이즈 “비도 오고 그래서” 듣는 거 좋아해. 손잡는 것도 되게 좋아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좋아. 키우는 고양이 몽이 안고 침대에 눕는 것도 좋아. 강변북로의 노을도 좋아. 하루가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어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 그러면 내 존재가 느껴지고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 음, 그리고 적막한 공간에 나 혼자 있는 걸 좋아해. 사실, 집에 가면 엄마랑 아빠 그리고 동생이 있으니까 혼자 있을 시간이 없거든. 학교에서도, 카페에서도 항상 누구랑 같이 있으니까 더 그렇지. 내가 재수도 안 하고, 휴학도 안 하고, 바로 대학원에 왔거든. 거의 쉬지 않고 사람이랑 부대껴서 그런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
구 : 사람이랑 부대껴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는데, 정작 외로움은 많이 느끼지 않나?
퀸 : 외로움 많이 느껴.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인데 하필 김보현은 그중에서도 특히 그래. 게다가 감성적일 때도 많아. 운전할 때 갑자기 정체되면 깜빡이 틀잖아. 난 그것도 너무 좋아. 내가 깜빡이 키는 이유는 뒤에 사람한테 “차 멈춥니다. 조심하세요~!” 말하려는 거잖아. 근데 이게 너무 좋아. 남을 위한다는 게 너무 따뜻하지 않아? 자동차는 산업의 산물이고 되게 차가운데, 그 차가운 차 안에 있는 건 결국 사람이고 그 사람이 남을 위한다는 게 너무 이뻐. 그래서 깜빡이 킬 때마다 항상 사이드미러로 본다. 쓸데없지?
구 : 응. 심각하네
퀸 : 나쁜 인간아
구 : 사람에게 질린 적은 없어?
퀸 : 질리지는 않았고 상처는 받았지. 나는 사람 사이에 당연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 애인이 전화하면 받아주고, 아침에 연락하고 이런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 고마운 일이거든. 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빼고, 걱정할까봐 연락하는 일이잖아. 나는 그게 당연하지 않고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 거기서 나오는 괴리감을 느낄 때 상처받지.
내가 예전에 친구한테 장단점을 물어본 적이 있는데, 장점은 착하다였고 단점은 너무 착하다였어. 내가 화도 잘 안내고 그러니까 은근히 호구잡히는 일이 있더라고. 상대방이 막대하는 거지. 사람이 적당히 까칠하고 세보이면 함부로 못하는데, 다 받아주니까 막대했던 상황이 있었어. 그러니까 착하다는 소리가 안 좋게 받아들여지기도 했지. 바보 같다는 소리로 들려서 짜증나고 그랬어. '안 착하게 살아야 하나’ 싶더라.
친한 언니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언니가 “착한 척하는 사람은 많지만, 너처럼 진짜 착한 사람은 없어”라면서 착한 게 좋은 거라고 하니까 위로가 됐어.
구 : 그럼 이제 미래에 대해 얘기해보자.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댔잖아, 방향은 뭐야?
퀸 : 우리 치킨 먹으면서 얘기했잖아. 더 생각해봤는데, 아프고 외로운 사람이 없으면 좋겠어. 근데 내가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그런 세계를 바로 만들 수 없으니까 내 작업물로 사람들이 위로받았으면 좋겠어.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위로 받을 때 행복해. 예전부터 남들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게 좋았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데, 그걸 극복하고 자기 손해를 감수하면서 이타적일 때에 사랑과 애정을 느껴. 너무 이쁘지 않아?
구 : 그러면 어떻게 살고 싶어? 어떻게 기억되고 싶어?
퀸 : 영화 <코코> 보고와서 그런지 생각이 많아지네. 일단,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 내가 의지할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어.
구 : 어떤 성취말고 너 자체로 말이야
퀸 :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일단, 내가 나이가 들어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 할머니 할아버지들 보면 나이가 들면서 자기 생각이 확고해져서 자기 생각이 틀렸어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난 이상형이 스스로 많이 배우고, 배움에 열린 사람이야. 잘생기면 당연히 좋고.
구 : 돈은 왜 많았으면 좋겠어?
퀸 : 돈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내가 아끼는 사람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경제적인 이유로 서포트해주지 못하면 너무 마음이 아플 거 같아. 그건 싫어.
구 : 그러면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퀸 : 일단 회사에 들어가고 싶고 최종적으로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 형태는 생각 못해봤어.
구 : 예술가랑 회사는 좀 다른데, 왜 들어가고 싶어?
퀸 : 시스템을 배우고 싶어. 내가 항상 일을 그냥 감으로 했거든. 그냥 대충 컨셉을 상상하고 일했는데 회사는 프로세스가 있잖아. 겪어보고 싶지.
구 : 그러면 뉴스랩 끝나고는?
퀸 : 유학준비할 거야. 밖에 나가서 공부해보고 싶어. 내가 디자인을 배우잖아. 근데 우리나라에서 디자인 업무가 진행되는 방식이 아직까지는 기획 참여보다는 외주에 가까워. 모든 게 정해져있는 상태에서 정해진 일만 해. 디자이너가 단순 기술자로서 존재하는 느낌이라 역할이 정해져있는데, 해외는 좀 달라.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분야를 디자인해보고 싶어. 그래서 1년 뒤엔 미국에 가있고, 그곳에서 내가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
구 : 그동안 아쉬웠던 점은?
퀸 : 일단 정체되어있던 1년 반이 너무 아쉬워. 기회를 많이 놓쳤어. 주위에서 “뭐 할래?”라고 했을 때 나 혼자 뭘 하는 게 무서워서 많이 안 했어. 일을 한다는 건 책임지는 일인데 그게 너무 무서웠어. 연애를 너무 막한 것도 아쉽네.
구 : 본인이 생각하기에 2달 동안 가장 성장한 부분은?
퀸 : 배울 의지가 생겼어. 어제에 비해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졌으면 하는 의지가 생겼어. 그리고 글쓰고 싶어졌어. 남을 설득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구 : 자극을 줬던 사람?
퀸 : 오빠. 구현모. 구현모가 되게 사소한 걸 잘 캐치해. 예를 들어 오빠가 레퍼런스로 카카오 영상 공유한 거 있잖아. 카톡방에 공유한 다음에 그거 관련해서 글 쓴 게 신기했어. 하나 갖고 생각을 깊게 해서 신기했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글을 자주 쓰는 거랑 말 잘하는 게 신기했어.
구 :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 하고 싶은 말.
퀸 : 되게 내 생각을 얘기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사실 들어줄 사람은 없어서 못했거든. 사실 '어떻게 살고 싶어?' 이런 건 좀 무거운 얘기잖아. 해본 적이 없었어. 그래서 어제 이 인터뷰를 생각하고 답변을 준비하는데 너무 설레는 거야. 날 인터뷰하는 사람이 생기다니!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