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롭게, 뚜렷하게 바라는.
개강하자마자 종강을 바라는 게 대학생의 마음이지만, 정작 방학을 제대로 찰지게 보내는 사람은 몇 없다. 방학이라는 놈은 시방 위험한 짐승이라 목줄이 풀리면 우리를 무기력의 늪으로 끌고 간다.
어떻게 방학을 잘 보내면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많이들 고민을 하지만, 딱히 뚜렷한 답은 없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도 벅차다. 막상 방학이 주어지면, 어떻게 보낼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올해 초 겨울에 만난 재은이는 그 점에서 남들보다 우수-한 인-재였다. 본인을 게으르고 여유로운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여행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또렷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본인의 취향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이미 훌-륭한 사람이다.
재은과의 인터뷰는 여행으로 시작해 본인이 즐기는 평소의 여유와, 주변을 챙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미래를 말했고 그리고 무엇을 바라는지 이야기했다. 장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던 그녀지만, 주변을 놓치고 싶지 않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싶고, 본인이 언제 행복한지 알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 : 아는 여자
대외활동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놀고, 친구와 가족도 열심히 챙기는 재은의 모습은 열정을 잃은 아이의 나이는 27인 날 반성케했다. 여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행복해보였고, 강아지와 가족 이야기할 때는 괜시리 따뜻해보였고, 미래를 이야기할 때는 괜시리 벅차보였다.
아래 내용은 올해 초 1월 4일에 이루어졌으며, 사진은 미디어학부 수지가 아니라 수지가 JYP 조은비인 은비가 찍어주었다. 내용이 조악하다면 그건 순전히 인터뷰어인 나의 잘못이다.
아빠랑 아프리카 여행을 갔었어. 아빠가 "갈래?"라고 하자마자 내가 "그래" 라고 하고 다음날에 말라리아 주사를 맞고 1주일 뒤에 출국했어. 진짜 그냥 쌩 무계획으로 간 거지. 아무 것도 없이 그냥 버너랑 라면만 들고 가서 숙소에서 라면 끓여먹었어.
그런 적도 있었어. 케냐 나이로비 국립공원을 가는 중이었어. 한 200km를 가야 했는데, 중간에 기름을 넣어야 하지 않을까해서 별 계산없이 넣었는데, 도착하자마자 기름이 딱 떨어진 거야. 만약에 그때 기름을 넣지 않았으면 그냥 야생동물 가득한 국립공원 한 가운데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던 거잖아. 진짜 무계획으로 갔구나 싶더라.
-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사실 여행지를 즐기는 것보다 여행지에서 여행 끝나고 돌아간 일상을 어떻게 꾸밀까 생각하는 게 더 좋은 거 같아. 물론 여행 현지에서 느끼는 것도 많지. 여행지에서는 익숙함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거 같아. 익숙한 걸 포기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니까.
-근데, 가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보다 돌아왔을 때 무언가를 얻으려고 가는 거 같아. 여행은 돌아왔을 때 더 좋은 힘을 주잖아. 다음 여행을 위해 돈을 벌겠다라든지, 운동을 해서 체력을 기르겠다 등의 다짐도 하잖아.
- 그렇다고 해서 맨날 맨날 여행만 하면 여행에서 배울 게 없을 것 같아. 꿈만 같은 여행과, 익숙한 현실 사이에서 적당한 깨달음을 얻는 게 중요하지. 여행지에선 새로움을 위해 열심히 여행하고, 돌아와선 다시 여행을 위해 열심히 살고.
- 고등학교 땐 그냥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었어.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막연하네. 지금은 꼭 뭐가 되야겠다는 생각은 없어. 사실 잘 모르겠어. 걱정되냐고? 음.. 나 같은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해
- 사실 이렇게 말해도 조바심이 들긴 해. 학교 동기들은 이것저것 다들 뭘 하고 있더라. 친구들은 진로를 확실히 알고 있고 원하고 노력하는데 난 아닌 거 같거든. 그런 친구들을 보면 조바심이 당연히 들지. 게다가 3학년이 되니까 친척이랑 부모님이 장래를 물어. 근데 전 사실 아무 생각이 없어. 남들처럼 경영전략, 마케팅학회 같은 걸 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
- 그런데 아빠가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남들이 해서 하는 거면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하더라. 활동과 경력으로 나를 설명하기보다 나 스스로, 나를 설명할 수 있게 자라라고 하셨어. 너무 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내가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놓치지 않을 정도로만 준비하라고 하셨어.
- 주변을 놓치면서 살고 싶지 않아. 친구, 가족, 연인, 동생, 강아지 주변을 놓치고 싶지 않아. 너무 바쁘게 살면 아무 것도 모르고 살 거 같으니까, 적당히 여유롭게 살래.
- 평소에 기대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실망이 크면 좌절하잖아. 행복은 세기가 아니라 빈도라잖아. 큰 기대말고 작은 만족감을 자주 느끼면서 살려고 해. 그러니까 친구나 가족이랑 잘 싸우지도 않고, 여유롭고 편안하게 사는 거 같아.
- 그냥 집순이야. 그냥 내 방에 꼭 갇혀 있는 걸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게 다 집에 있거든. 동생도 있고, 강아지도 있어. 거실에 누워서 강아지 만지면서 TV 보면 행복해. 엄마랑 동생이랑 모녀들끼리 놀면 얼마나 재밌는데. 동생들이 날 또 잘 챙겨줘. 동생들이 신라면 투움바 파스타도 해주고 붕어빵도 사다줘.
-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람을 만나. 왠지 무기력하고, 삶에 활력이 없으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이야기하기보다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어.
- 왜냐고? 내가 스트레스 받은 이야기를 하면 다시 생각나면서 또 스트레스 받아. 근데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재밌잖아!
- 아니면 강아지랑 같이 산에 올라가. 아니면 근처 호수공원에 놀러가. 집 근처에 있는 호수공원을 가장 좋아해. 밤하늘에 달이 떠있고, 분수대에 노래가 흘러 나올 때 가족이랑 강아지랑 같이 산책할 때가 행복해.
- 영화 취향은 단순해. 그냥 잘생긴 주인공 나오고, 이쁜 주인공 나오고 때려 부수는 그런 블록버스터 영화를 좋아해. 근데 그런 영화를 B급이라고 하면, 그런 취향을 B급이라고 하면 괜히 나까지 비참해. 흑흑. 영화 봤다고 올리기도 무서워.
- 아, 자기관리 잘하는 사람이 좋아. 원하는 것이 뚜렷한 사람도 좋아. 되고 싶은 것이 확실하고, 갖고 싶은 것을 위해 사소한 것에도 열심인 사람이 좋아. 그냥 매력적이고, 멋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