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이직 회고록
퇴사했다. 2년 간 함께해온 회사를 뒤로하고 새로운 회사와 함께하게 되었다. 퇴사한지는 1달이 넘었고, 이직한지는 딱 2주가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선택한 결정이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내가 좋은 선택을 한 게 맞을까?'라는 긴장감에서 오는 피로감이 첫 주에는 지속된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긴장감은 금요일 퇴근 후 샴페인과 참치를 먹으며 오도로 입안에서 녹듯 사라졌다.
같이 일할 회사를 선택하는 일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써, (반대로 결혼은 인생 일대의 인수합병이라고 생각하는 편) 이번 이직은 나에게 좀 더 특별했다. 이제는 신입 혹은 중고 신입이 아닌 정말이지 '경력이직'을 할 때였고, 이직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득과 실 또한 상당히 명확하게 보이는 연차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1년 텀으로 회사를 옮기는 것이 그 사람의 경력을 증명해주는 경우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린 연차에 이미 상당히 잦은 이직을 해 본 나로서는 오히려 오래 다닌 경력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지난 회사에서는 운이 좋게도(?) 다닌 지 2년이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이직을 하게 된다면 이것보다 더 오래 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를 결정하고, R&R을 파악하고 처우를 논의하는 데 있어 타협의 수준을 매우 높게 잡기로 했다.
오퍼를 준 회사까지 합치면 약 반년의 기간 동안 20개가 넘는 포지션에 지원을 했고, 그중 4개의 회사에 최종 오퍼를 받았다. 사실 초반 3개월은 적극적인 구직보다는 오퍼가 온 회사들 위주로 면접을 진행했는데, 오퍼 시점에 맞춰 급하게 작성된 이력서라 상당히 완성도가 낮았다. 그래서 작년 말에 기존 이력서를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노션에 옮기는 작업을 했다. 이력서 작성엔 워니 님의 글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사실 지원 수 대비 최종 오퍼를 받은 승률을 따지자면 상당히 낮은 확률로 보이는 듯 하나, 지원 과정에서 나와 핏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회사들은 이후 단계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변을 해보며 (...) 나는 최대한 많은 회사와 많은 포지션에 지원해보았음을 밝힌다. 이유는 단 하나다. 이번 이직이 정말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 노동 가능한 신체 나이를 고려하면 너무 극단적인 생각일 수는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근로자로서는 향후 10년간 이직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각오로 준비했다. 그렇기에 적합한 회사를 찾지 못하면 이직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선택 가능한 옵션이었다. 가장 나에게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회사도 나랑 맞지 않을 수 있고, 기대치가 그렇게 높지 않음에도 나와 무척 잘 맞는 곳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많은 회사와 포지션에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만나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결국 내 생각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합류하게 된 팀은 몇 년 전부터 프로덕트 자체를 관심 있게 지켜보던 회사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직 준비 당시 오픈된 마케팅 포지션이 없어 PM으로 지원했던 게 TA와 이야기가 잘 되어 결국 Product Growth 조직의 마케터로 오게 된 케이스다. 포지션이 안 맞는다고 지원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면접과 여타 따라오는 테스트와 과제들을 준비하느라 무척이나 체력적, 정신적으로 매우 처졌던 시기도 있었다. 마침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도 겹쳐서 이미 스트레스 레벨이 높았던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잡생각 없이 평일 저녁과 주말엔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으나.. 한 번 더 하라고 하면, 또 하고 싶진 않다. 이 이상으로 더 열심히 할 수도 없었을 것 같다.
그렇게 이직 회고를 마치며-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