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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Mar 08. 2024

런닝머신 최적의 속도 1.2km/h

헬스장에 처음가서 생긴 일


평소와 같이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유튜브 알고리즘에 운동 영상이 떴다. 예쁜 운동복을 입고 출근 전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그 사람의 모습은 휴대폰 화면 속 비치는 나의 모습과 참 많이도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의 몸매와 건강은 괜찮은 건가 라는 의문이 들었고 괜히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이번엔 반드시 운동을 시작해야지.'




내가 운동을 시작해야만 하는 이유는 사실 그동안 굉장히 많았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오르는 저질체력, 허벅지와 배에 알게 모르게 붙은 살, 마른 편이었지만 수많은 과자와 아이스크림으로 다져진 내장지방까지.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지는 꽤나 오래되었지만 알고리즘에 뜬 유튜브 영상 하나가 나를 결국 헬스장으로 이끌어 주었다.




아파트 내에 위치한 헬스장에 처음 간 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머릿속으로 나름대로 시물레이션을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입장했지만 헬스장은 생각보다 조금 더 무서운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무표정이거나 또는 인상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자신의 운동에 열중하는 모습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그동안 본 적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틈에서 내가 운동을 한다는 생각 만으로도 온몸이 경직되는 기분이었다. 처음 운동을 할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나는 무슨 자신감인지 과감히 독학을 선택했다.




나를 헬스장으로 이끌어준 수많은 유튜브 채널 중에 개인적으로 끌리는 채널 하나를 선택해 초보자 헬스장 운동 루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유산소 운동 30분 정도를 한 다음 몸에 열을 올리고 근력운동 20분 정도를 하면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유산소 운동은 인터벌로 진행하면 훨씬 더 효과가 좋다고 했으니 처음에 5분은 빠르게 나머지 5분은 느리게 런닝머신을 타면 되겠구나. 계획적인 성향답게 나름대로의 계획을 완벽하게 세우고 그렇게 런닝머신 위에 올라갔다.




그동안 꾸준히 해왔던 학업과 알바의 병행 덕분인지 생각보다 내 체력은 꽤나 괜찮은 편이었다. 런닝머신의 속도를 12km/h와 6km/h을 번갈아 가며 30분을 연속으로 달렸는데도 약간 땀이 날뿐 그렇게 힘든 느낌은 없었다. 이래서 어른들이 무엇을 하든 언젠가는 다 써먹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한 건가. 그동안 치열한 노동과 학업의 현장에서 쌓아온 나의 체력이 꽤나 괜찮게 그동안의 나를 지탱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그날의 운동을 마치고 헬스장을 나서며 오랜만에 굉장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터질 것만 같던 심장이 잠잠해지고 땀에 젖은 온몸이 샤워로 시원해질 때 느껴지는 이 감정이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그래 나도 이렇게 노력하면 다른 사람들처럼 갓생으로 살 수 있었구나. 그동안 인생을 열심히 사는 건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하루 운동을 해보니 그렇게 먼 세상의 이야기는 아닌 것만 같았다.




'아 헬스장 가기 싫어. 그래도 이미 돈을 냈으니 가야겠지.'




그날 이후로 수많은 유혹과 난관이 있었지만 나는 꽤나 성실하게 헬스장에 출석도장을 찍었다. 특히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퇴근시간이 빠른 편이라 사람이 적은 시간대에 갈 수 있어서 프라이빗하게 헬스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심지어 운 좋은 날은 관리자도 없이 혼자서 헬스장을 전세내고 열심히 운동했던 날도 있었다. 아직 한 달을 채우려면 꽤나 많은 날들이 남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꽤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이 조금 늦어지게 된 날 헬스장을 방문하면서 그동안 내가 했던 운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헬스장을 가서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런닝머신을 처음 사용해 본 내가 런닝머신의 조작법을 제대로 알리가 없었다. 특히, 달리기라면 쥐약인 내가 런닝머신으로 달리는 속도의 차이를 제대로 알리조차 없었다. 헬스장에서 여느 때와 같이 속도를 12km/h에 맞추고 런닝머신을 달리던 나의 옆에 헬스장을 이용하는 또 다른 회원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러닝머신을 만진 다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나도 분명 12km/h라는 어마 어마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내 옆자리에서 뛰는 그분은 나보다 더 빠른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저 사람은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하며 나의 운동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초보자의 궁금증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얼마나 헬스를 잘하면 저런 속도로 달릴 수 있는지, 도대체 얼마나 빠르게 달리고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옆자리에 계신 분의 런닝머신 계기판을 흘끔 바라보게 되었다. 분명 뭔가 이상했다.




내 계기판 1.2km/h

그 계기판 12km/h




그동안 내가 런닝머신을 인터벌로 30분이나 달리면서도 땀만 조금 나고 체력이 좋다고 느낀 이유는 바로 속도를 잘못 입력해서 그런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런닝머신이 소수점으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동안 12km/h 가 아닌 1.2km/h 속도로 움직이는 매우 느린 런닝머신에서 혼자서 발만 열심히 구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느낀 성취감은 한순간 창피함으로 바뀌어 버렸다. 나는 운동을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서둘러 짐을 챙겨 바로 헬스장을 뛰쳐나왔다. 그동안 런닝머신을 열심히 뛰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을 직원 분의 얼굴이 떠올랐고, 왜인지 헬스장에서 마주쳤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웃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혼자서 흔히 말하는 뻘짓을 헬스장에서 했다는 생각을 하니 창피함과 함께 내가 운동했던 적지만 소중한 날들이 다 부질없었다는 사실에 며칠을 괴로움에 몸부림치곤 했다.




그렇게 나의 첫 헬스장 방문은 끝이 났다.




그런데 이 경험으로 느낀 참 신기한 점이 있었다. 사실 그동안은 몰랐지만 내가 잘못된 방식이든 아니었든 운동을 했다는 사실 자체로 굉장한 성취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하던 운동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내가 느낀 뿌듯함은 창피함으로 금세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나의 용기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만 같은 좌절로 다시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내가 달렸던 헬스장의 런닝머신과도 같다. 




사실 우리의 인생에는 정답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정답으로 쓸 수 있고,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면 실패라고 써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운동을 했던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분명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자양분이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운동이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걱정하게 된 순간 내가 보냈던 시간과 노력이 마치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져 버렸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게 어떤 경험이던지 간에 나의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주변에서 뭐라고 하더라도 그저 나만 만족하고 나만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그거면 된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경험이라고 할지라도 내 인생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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