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 부서에서 막내로 지낸 1년의 시간들
한 때 무슨 업무를 할지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앞으로의 밥벌이를 무엇으로 할지, 첫 직장이 다들 중요하다니까
가능하면 내가 배운 지식과 원하는 직무를 잘 살려서 일해보고 싶었다.
여행을 좋아했던 나의 취향을 반영한 첫 직장은 여행사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취향만으로는 밥벌이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방향을 틀었다.
두 번째 회사는 중국 제품의 유통을 하는 곳이었는데,
사실 회사의 메인 비즈니스는 '온라인 커머스'였고 우리 팀은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갑자기 조직된 '신사업' 부서였다.
그때는 신사업 부서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그저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게 멋져 보였고,
드디어 내가 배운 중국어를 활용하며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신사업부서에서 1년이 지나고, 팀이 사라질 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들어서 일을 해나가는 것은,
기존에 있던 조직에서 일을 하는 것보다 수십 배 어렵다는 것을.
신사업 부서에서 지낸 1년의 시간,
팀이 사라지기까지 신입으로 겪었던 일들을 적어 보았다.
보통 어떤 일을 시작하면, 일을 진행하기 위해 선례를 찾아보거나
회사 프로세스가 어떤지 확인을 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신사업 부서의 비즈니스와 회사의 메인 비즈니스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기준이 없었다.
신사업은 중국 업체와 무역을 통해 국내에 납품하는 업무를 담당했고,
회사의 메인 비즈니스는 CP 업체를 통해 물건을 매입하고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디자인팀의 도움도 받고 개발팀의 도움도 받아야 하는데
다른 부서에 협조를 구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우리 팀은 전시회를 준비하며 편집 디자인을 통한 인쇄물도 만들어내야 했지만,
회사 디자인팀은 온라인 기반의 상세페이지, 이벤트 페이지를 만드는 디자인 업무를 주로 했다.
마치 같은 회사명을 달고는 있으나, 다른 회사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일하는 직종은 무역, 유통업. 회사는 온라인 커머스.
그 간격을 메꾸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타 부서와 회의할 때만 되면 모든 일에 부딪혔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것처럼,
우리는 실적을 내기 위해 자꾸 지원 부서에 요청을 했고,
협업 부서는 안 하던 일을 자꾸 받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보통의 타 팀과의 업무 협력은, 사내 인맥이 어느 정도 동원되기도 하는데
우리 팀은 다 신규로 들어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기존 회사의 프로세스에 대해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도움을 구할 사람도 딱히 없었다.
수도 없이 방향이 바뀌고 바뀔 때마다 회의를 했다.
신사업은 안정적인 먹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만큼 초반에 투자를 해야 되는데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실적 계획을 잡고 예산을 확보해야만 했다.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사업계획에 툭 던져진 신사업 부서였기 때문에
우리가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증명해내야만 했다.
팀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증명해내기 위한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고작 2년 차로 이 직무로는 신입이나 다름없었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고, 정리하기에 바빴다.
그중 기억 남는 것은 회의록 작성.
우리 팀은 상품기획 담당자와 영업 담당자가 거의 매일 회의를 했다.
어떤 제품을 가져와 얼마로 단가를 책정하고 누구에게 팔지를 정하는 과정
가끔은 의미 없이 반복되는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회의라도 하지 않으면 방향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하루의 일과는 회의로 시작했고,
마무리는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으로 끝났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조직 구성 방식이었다.
보통의 경우에 피라미드 조직의 형태에 의사결정 방식이 탑 다운으로 이루어져
일을 실제로 진행하는 실무자가 여럿 있어야 하는 게 정상적인 조직의 모습이었지만
그때 우리 조직은 역 피라미드 조직이었다.
한 부문으로 이루어진 신사업 조직에 부사장 1명, 이사 1명, 그리고 나머지는 영업과 AS와
마케팅을 아우르는 팀장님들. 실제로 시키는 일을 할 팀원이라고는 나와 내 위의 상품기획 선배 둘 뿐.
팀장님들도 팀원들이 없으니 실무를 했지만,
팀에서 일어나는 각종 품의 작성부터 자질구레하게 챙겨야 하는 일들은 모두 내 몫이었다.
이 역피라미드 조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공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경력이 많으신 분들이라 의견도 다양했고,
그 의견의 격차를 하나로 모으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 몇 개월이 지났다.
사업의 방향성의 모호함과 실적이 빨리 나오지 않는 상황에 부딪혀
상위 직급자 한 분씩 퇴사를 하시고, 그렇게 조직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던지라, 조직이 정말 사라져 버릴 줄은 몰랐다.
1년간 몸담았던 팀이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팀이 사라지면서, 같이 계셨던 팀장님들도 회사를 나갔다.
팀 내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나였다.
나는 사실 거의 신입으로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 직종에서 일하다가 온라인 커머스로 전향해도 경력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애초에 팀장님들은 다른 직종에 계셨던 분들이라 다른 팀으로 이동하기에는 경력상 맞지 않았다.
결국, 팀은 망했고 나는 살아남았다.
그 1년간의 시간은 안 되는 것에 도전하고 부딪히는 시간들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일,
새로운 사업을 이끌어 수익을 창출하는 일,
신사업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안정궤도에 올려놓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회사에서는 그만큼 투자가 필요하고, 신사업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더 투자해도 좋을지를 지켜본다.
그 기간은 회사마다 다른데, 우리 회사는 안타깝게도 1년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뭘 할 수 있었을까.
마케팅을 하고 싶어도 예산이 없어 제대로 된 마케팅을 실행하지도 못한 채,
제품만 이 세상에 남겨두고 사업이 종료되었고
팀이 사라지면서 결국 내 이력서에는 1년의 시간을 담은 짧은 한 줄만이 남게 되었다.
지금도 수천 수만개의 서비스와 제품이 출시되고 팔리지 않으면 사라지고 만다.
제품 출시의 실패와 팀의 와해를 한번 겪고 나니,
그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제품들이 보이고 한번도 써보지 않았던 앱도 이용해보게 되었다.
지금도 어쩌다보니 새로운 결제 서비스를 마케팅 해야되는 자리에 놓여있다.
아직 이용자수는 많지 않지만, 이번에 투입된 신사업은 꼭 성공적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