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는 일을 왜 선택하셨어요?
처음부터 마케팅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다양한 직무를 경험했고, 그중에서 내 성격과 취향에 가장 잘 맞는 일은 마케팅이었다.
취업준비를 할 때는 도통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랐다.
궁금하긴 했지만 경험해보지 않은 길이었고 첫 직장에서 시작한 직무로 경력을 이어나가야 할 것 같았기에 섣불리 선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짧게나마 아르바이트, 대외활동, 인턴을 통해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경험했다. 꼭 직장생활이 아니어도 가성비 높게 내가 싫어하거나 스트레스받는 직무를 블랙리스트로 지워나가기 좋은 방법이었다.
나는 내향적이다. 그래서 영업을 하기는 싫었다.
학창 시절 새 학기가 되면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할지,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있는 한 공간에서 내가 편하게 마음을 나눌 사이가 아니면 그런 사람을 대할 때 불편함을 느낀다.
그 불편함은 내가 가진 에너지를 소진해서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나는 원래의 내가 아닌 새로운 가면, 두 번째 페르소나를 쓰고 남들 앞에 나선다.
그게 내 성격이기에 아무리 외향적이고, 밝은 척하고, 수다스러워 보이려고 노력해도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내가 내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모르는 사람을 계속해서 만나고 협상해서 계약까지 따와야 하는
영업이라는 직군은 내게 너무나도 어려운 미션이었다.
성격 때문에 영업은 내가 할 수 없는 블랙리스트에 들어갔다.
수학을 싫어한다. 나는 완벽한 문과생이다.
유전적인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리는 숫자보다는 언어에 강했다.
수학 문제는 응용이 필요한 학문이었고, 이해를 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언어는 암기가 기본이 되는 학문이었으며 보다 감성적이다.
수포자에 완벽한 문과생이었던 나는 수험시절 언어 덕분에 대학에 갔다.
고 3 수험생활 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제자리였던 수학 점수에 지쳐
언어로 대학에 가고자 마음먹었고, 그때부터 논술 공부를 죽어라 했다.
그렇게 대학에 왔고 전공도 무려 언어를 선택했다. 영어와 중국어.
언어라면 전혀 생소한 언어라도 자신 있었으니까.
심지어 나는 언어라면 뭐라도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전혀 알지 못하던 국가의 언어,
이를테면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과 같은 곳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렇게 언어로 두 개의 학위를 받은 후 졸업할 때가 되니까
문득 내가 지원해야 할 곳은 회사임을 깨달았고 그때 한창 인기학과였던 경영학과를 졸업하지 않은 것에 잠시 후회를 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영문학을 배우며 영어 소설을 읽고 토론을 할 때, 경영학과에서는 회계원리를 배우고 회사에 필요한 공부를 했을 테니까.
그래서 취업 준비할 때 회계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수학이 싫었고 숫자로 밥 벌어먹어야 하는 일을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했으니까.
그렇게 회계, 재무라는 업무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회사에서 문과생을 많이 뽑는 영업이랑 재무 직군을 제외하고 나니, 남는 선택지가 많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과생처럼 개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디자인을 전공해서 포토샵 혹은 일러스트와 같은 툴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기술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그런 기술 말이다. 무엇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무기가 없었다.
반복되는 일을 싫어한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랐고, 일단 좋아하는 직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니
좋아하는 직군이라도 경험해보자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보니 언어를 좋아하고, 다른 나라 문화 배우는 걸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니
여행사에서 일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라는 단어는 참 낭만적이지만, 남들에게 낭만적이고 특별한 일상을 선물해주기 위해
여행사에서 일하는 업무는 참 고되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사와 관련된 얘기라면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은데 짧고도 긴 1년이라는 시간 속에
그곳에서 신입사원으로 했던 일은 반복 업무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그 일들을 해나가며, 내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같은 일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
루틴 하게 생각 없이 같은 프로세스로 업무를 진행하는 거야말로
나 스스로가 버티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마치 공장에서 일하는 블루칼라의 탈을 쓴 화이트칼라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반복적인 업무는 영업관리, 운영 업무였다.
영업을 서포트하며 서비스가 잘 굴러가도록 하는 일. 마치 집안의 살림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안 하면 티 나지만, 해도 제대로 티 안 나는 일. 그리고 매일 반복적으로 무언의 과정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해야만 하는 일. 그런 반복적인 일을 할 때마다,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잘 맞을지도 모르는 직무일 테지만,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내게는 맞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마케팅이라면 잘 맞지 않을까
재미있는 일만 하면서 살 순 없지만, 적어도 일을 하면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고민하다가 내가 선택한 직무는 마케팅이었다.
처음에는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워 중국 마케팅 업무를 지원했다.
그곳에서 나는 중국 가전제품을 한국에 론칭하며
오프라인 런칭쇼를 준비하고, SNS 마케팅을 하며 서포터즈를 운영하고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가끔은 중국어 사용설명서나 제안서를 번역하는 업무를 맡았다.
처음 보는 제품을 관찰하고, 소구점을 찾아 상세페이지를 만들며 고객이 선호하는 포인트가 어딘지 고민했다.
어떤 카피를 쓰고, 어떤 소재로 프로모션을 진행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고객의 생각을 읽었다.
누군가 소통하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소개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누군가 써보고 반응한다는 것이 즐거웠다.
매번 똑같지 않은 새로운 일들이 툭툭 튀어나왔고, 반복되는 업무가 아니라 신선했다.
새로운 업무를 접할 때마다, 도전하는 기분이 들었고 그 일이 끝나고 매출로서 큰 성과를 맛봤을 때
프로모션 전 후 매출 성과를 비교해보며 혼자 뿌듯해했다.
재미도 있고, 일에 대한 성취감도 느꼈다.
마케팅이라는 직무가 내 성격과 취향에 참 잘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굳이 나 아니어도 누구나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문득 일을 하다 5년 차가 넘어가는 시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케팅이라는 직무는 분명 즐겁고 잘할 수 있는데 나 말고도 누구나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불안감.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니터 화면 속 알 수 없는 언어로 작업하고 있는 개발자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내가 기획한 프로모션을 멋진 그래픽으로 구현해내는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실력을 가지고도 싶었다.
그러나 나는 개발자도 아니었고 디자이너도 아니었다.
그들과 협업하며 다양한 일을 했지만, 나는 그 일을 기획하고 의뢰하는 마케터였다.
누구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마케터로서 쌓은 경험과 업무를 진행하며 얻은 인사이트는 쉽게 배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프로모션만 찍어내는 마케터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마케팅이라는 업무는 내가 얼마나 배우고 경험하는지에 따라 그 깊이가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마케팅의 범주는 너무 다양하다. 오프라인부터 온라인 영역도 엄연히 다르고
퍼포먼스 마케팅, 데이터 마케팅, 제휴 마케팅, 브랜드 마케팅 등.
내가 하고싶은건 데이터 기반 마케팅이기 때문에,
요즘은 제대로 마케팅하기 위해 통계와 빅데이터, 파이썬 등의 데이터 분석 도구를 익히는 중이다.
직장은 원래 대체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는 일이 하찮다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누구나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얼마나 어느 정도의 깊이로 그 일을 하는가는 대하는 사람마다 다를 테니까.
그리고 직장이라는 곳은 원래 직장인이 퇴사해도 알아서 잘 굴러가는 조직이다.
내가 내 사업체를 가진 사장이 아닌 이상, 직장인은 누구나 대체 가능한 존재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장점을 살려 지금 내게 맞는 마케팅이라는 직무를 더 알아보려고 한다.
내가 읽는 책, 영화 그리고 새로운 경험들을 한 데 모아 마케팅으로써 풀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