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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사탕 Jun 06. 2021

그건 언니가 예민해서 그래

사람들은 성격을 크게 내향성과 외향성으로 나누고는 한다. 왜. MBTI에서도 첫 번째 철자가 내향과 외향을 가르는 철자이지 않은가. 그만큼 사람의 성격을 가장 쉽게 나눌 수 있는 것이 내향과 외향이다. 그런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생각해보면, 나는 지극히 내향성이 강한 인간이고 동생은 지극히 외향성이 강한 인간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집에 머무는 날이 많았고 동생은 밖으로 도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밖으로 나돌던 동생은 이 사람 저 사람 부딪히면서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알아갈 기회들을 많이 갖게 되었다. 그에 비해서 나는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으니 '나에 대해서 안다'라고 착각을 하고 지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처럼 나는 고민이 생기면 동생에게 털어놓고는 했다. 이번에도 문제는 인간관계였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 때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대해서 기분이 나빴던 나는 동생에게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얘기를 듣다 듣다 짜증이 난 동생이 한 마디를 했다.

그건 언니가 예민해서 그래.

이 말을 듣는 순간 너무 충격을 받아서 나도 모르게 그 순간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만 같았다.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싶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내가 동생의 말에 대해서 반박하려고 하자 동생은 말했다. 동생 본인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예민한 편이지만 언니인 나는 본인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예민해서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유달리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처음 동생의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동생이 내 이야기를 듣는 게 짜증 나서 나를 흠집 내고자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그 상황과 나에 대해서 곱씹을수록 나는 예민한 사람이 맞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이다.

솔직히 나의 예민함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예민함을 인정하는 것이 받아들이는 것보다 어려웠다. 내 나이 이십 대 후반이나 되어서야 내가 예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 사실을 인정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솔직히 쪽팔렸다. 나는 스스로가 둔감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둔감한 나에 대해서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뜸 예민하다는 특성이 부여되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머리로는 내가 예민하기는 하구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직까지도 나 스스로 '나 예민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나의 예민함을 스스로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내가 나의 예민함을 받아들이게 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맞춰지지 않았던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상대방의 행동들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하기 때문에 그런 허점들이 너무나 잘 보였기 때문이고, 또 예민한 특성으로 인해 생긴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더더욱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남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사소한 말과 행동만으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고민하기도 했다. 이게 다 내가 예민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나는 스스럼없이 '나는 예민하다'라고 잘 말하고 다닌다. '나는 예민하기 때문에 좀 더 이런 것 같다', '나는 예민해서 이런 정보를 좀 더 잘 파악하는 것 같다'와 같이 말이다. 내가 나의 예민함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된 것은 내가 나의 예민함을 부정하게 된다면 나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에 대해서 더 이해하고자 노력했으며 그 결과 나의 예민함을 인정할 수 있었다. 뭐. 어떻게 보면 아직도 예민하다는 특성 말고도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나에 대해서 하나라도 알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나 스스로와 더 친해지는 데에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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