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이 되면 대부분 '조교'라는 일을 하게 된다. 조교라는 게 뭐 엄청난 큰일을 한다기보다는 수업을 보조하는 업무들을 하는 그런 계약직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서 실험 수업에 보조역할을 한다든지, 시험감독을 한다든지, 시험지 채점을 한다든지가 그들의 업무다. 그렇다 보니 조교라는 것을 하게 되면 웬만한 학부생들에게 얼굴이 팔리게 된다. 즉, 나는 그들을 모르지만 그들은 나를 아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후배들이 나에게 진학과 관련해서 조언을 구하는 일들이 종종 있게 된다. 내 나름 좋은 선배가 되어주고 싶고, 나도 진학을 하는 데 있어서 힘들었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없는 시간을 쪼개서 그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조언을 해주면서 그 시간을 마무리하고는 했었다. 그렇게 진심으로 상담을 해주었을 때 생각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한 마디면 충분했다.
물론 이 친구들이 당연히 나에게서만 진학 상담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건 정말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가끔은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으면서 그 자리에서 내 말을 의심한다든지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을 때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나빠지고는 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해준 조언과 똑같은 조언을 다른 사람에게 듣고 나에게 와서는 '그분이 나더러 이렇게 하라고 해서 나도 이렇게 하려고 생각 중이다'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나도 분명히 똑같은 말을 해주었는데 말이다.
'음... 나도 똑같은 말을 해주었는데, 무슨 소리지?'
이렇게 후배들이 이야기를 해줄 때 잠자코 조용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나와 똑같은 조언을 해주었던 사람이 나보다 좋은 이름의 대학으로 대학원을 간 사람이거나 좋은 이름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조언에도 학벌을 통해서 수용할 건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건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는 듯했다.
똑같은 말을 해주었는데도 누구의 말은 듣고 누구의 말은 듣지 않는 것. 즉, 그 말에 믿음과 신뢰를 실어주는 것이 아직도 학벌이라는 것이 나를 비참한 기분에 빠지게도 했던 것 같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진심을 다해서 조언을 해주지 못하기도 했다. 나의 자격지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그들에게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고 머리를 써주는 내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그들은 나를 신뢰하지 않으면서 나에게 다시 한번 확인사살을 받고 싶어서, 혹은 나를 은연중에 시험해보려는 질문들로 나에게 선을 넘었기에 나는 굳이 그런 친구들에게는 내가 아는 것들을 모두 이야기해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조언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친구들은 항상 있기는 했었다. 그래서일까. 나의 조언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친구들과 학벌 순으로 조언을 선별적으로 택하는 친구들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조언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친구들은 처음부터 나를 대하는 태도가 진심이었던 것 같다. 나와 일상적인 대화를 해도 가식적으로, 형식적으로 하는 대화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학벌에 따라서 조언을 받아들였던 친구들은 나와 일상적인 대화를 했을 때도 진심이 아닌 가식이 느껴졌던 때도 있었고, 나는 떠보는 듯한 질문들도 수차례 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나를 이미 신뢰하지 않았고, 그저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을 나에게 요구하려고 상담을 요청하고 조언을 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결정에 당위성을 주어 자신들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